8화(5,016자) · 진단 날

암반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팔월 십일일 화요일 아침 아홉 시. 두시는 문을 열지 않았다. 유리창 안쪽에 사장님 글씨로 종이가 붙었다. 오늘은 두 시부터 엽니다. 건물 검사가 있어서요. 그 아래 은오 씨 편지지는 그대로였다.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조용한 시간입니다. 팔월 삼십일일까지. 반기훈 씨 종이도 그대로였다. 종이 세 장이 한 유리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그 전에, 여덟 시 반에 나는 은오 씨와 턱 앞에서 만났다. 약속한 건 아니었다. 둘 다 일찍 와 있었다. 은오 씨는 여덟 시 이십 분에 왔다고 했고 나는 여덟 시 십오 분에 왔다. 그 오 분을 은오 씨는 모른다. 나는 골목 끝 편의점 앞에서 은오 씨가 오는 것을 봤다. 두 시 사 분에서 팔 분 사이에 오던 사람이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에 턱 앞에 서서 유리창의 종이 세 장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재요. 공식 말고.”

은오 씨가 말했다. 나는 줄자를 꺼냈다. 은오 씨가 끝을 잡았다. 딸깍.

“스물둘.”

“떨려요?”

“아니요.”

“거짓말.”

“숫자는 안 떨려요. 저만 떨려요.”

은오 씨가 줄자 끝을 놓았다. 줄자가 감기면서 끝이 내 손바닥을 쳤다. 따끔했다.

진단 팀은 셋이었다. 강 팀장, 사무소 직원 하나, 그리고 소장님. 소장님이 현장에 나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반기훈 씨가 약속대로 왔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반팔 셔츠 차림으로 골목 전봇대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의뢰인 쪽이었다. 사장님이 공식 계측 의뢰인이고, 계측 자료 설명을 사장님이 나한테 맡겼다. 소장님은 나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의뢰인 쪽 설명하러 왔습니다.”

“잘린 놈이?”

“잘린 놈이라서요. 이제 누구 편도 아니잖아요.”

소장님 뒤에서 아름이가 게이지 가방을 메고 있다가 웃음을 참았다. 아름이는 오늘 사무소 직원으로 나왔다. 게이지 대여가 오늘 끝난다. 반납 전 마지막 판독을 하러.

강 팀장은 말이 없었다. 먼저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앞, 옆, 뒤. 뒷벽 금 두 줄 앞에서 오래 섰다. 게이지를 봤다. 판 두 장의 눈금. 0.3. 삼 주 전 붙인 날과 같았다. 강 팀장은 사진을 찍고 수첩에 적었다. 이 층 바닥 처짐을 쟀다. 레이저 레벨을 세우고 붉은 선을 바닥에 뿌렸다. 처짐은 있었다. 구 밀리. 오래된 목조 장선 탓. 강 팀장이 그것도 적었다.

그리고 앞으로 왔다. 턱 앞에 쪼그려 앉았다. 턱 옆 벽 아래 박아 둔 은색 못, 레벨 기준점을 봤다. 아름이가 삼 주 동안 매일 잰 값을 표로 내밀었다. 스물한 번 판독. 변화 영.

“정후 씨.”

강 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 이 년 치 보여 줘. 줄자로 잰 거.”

소장님이 끼어들었다.

“강 팀장, 그건 비공식이야.”

“알아요. 보기만 해요.”

나는 종이를 내밀었다. 스물세 번. 두 달마다, 그리고 큰비 다음 날. 강 팀장이 그 종이를 아름이의 삼 주 치 표 옆에 나란히 놓았다. 공식과 비공식. 이 년과 삼 주. 값이 같았다. 이백이십이 밀리 언저리. 흔들림 일 밀리.

강 팀장이 오래 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골목 전봇대 옆 반기훈 씨를 봤다.

“반 사장님, 뒷마당 조금 파도 됩니까. 기초 확인 굴착이요. 폭 오십, 깊이는 나올 때까지.”

반기훈 씨가 팔짱을 풀었다.

“뭐가 나오는데요.”

“뭐가 나오는지 보려고요.”

소장님이 강 팀장 팔을 잡았다.

“강 팀장, 계획에 없잖아. 굴착은 비용이.”

“제 도장 들어가는 보고서입니다, 소장님.”

강 팀장은 그 말을 하고 팔을 뺐다. 천천히. 소장님은 손을 허공에 둔 채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반기훈 씨를 봤다. 건물주가 파지 말라고 하면 못 판다. 반기훈 씨가 대답할 차례였다.

반기훈 씨는 뒷마당 쪽을 봤다. 그 사람 아버지가 바위 위에 앉혔다는 기초가 거기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치매 노인의 기억으로 들었을 것이다. 파면 알 수 있었다. 파지 않으면 모르는 채로 D를 받을 수도 있었다. 반석빌딩. 위약금 삼천. 금리 칠 퍼센트.

“파세요.”

반기훈 씨가 말했다.

“제 아버지가 거짓말했는지 보고 싶네요.”

뒷마당은 폭이 삼 미터쯤 되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사장님이 화분 네 개를 키우던 자리. 사장님이 화분을 하나씩 옮겼다. 은오 씨가 도왔다. 은오 씨는 오늘 번역 마감을 미뤘다고 했다. 출판사에 십 년 만에 처음 거짓말을 했다고. 편집자한테 몸이 아프다고 했다고. 화분을 들고 가면서 은오 씨는 계속 기침을 했다. 거짓말을 맞추려는 기침이었다. 사장님이 옆에서 그거 너무 크다고, 목감기는 그렇게 안 한다고 했다.

강 팀장 사무소 직원이 소형 착암기로 시멘트를 깼다.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두시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멈췄다. 구 영감님이 한결문구에서 나왔다. 윤 원장님이 이 층 창문을 열었다. 여름방학 특강 중이던 아이들이 창틀에 매달려 내려다봤다. 반기훈 씨 차 옆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셌다. 열하나.

시멘트 밑은 흙이었다. 붉은 흙. 삽으로 떴다. 흙냄새가 골목에 퍼졌다. 여름 한낮에 오래 덮여 있던 흙의 냄새. 비린내와 쇳내가 섞여 있었다. 삽질은 강 팀장 사무소 직원과 내가 번갈아 했다. 잘린 사람이 삽을 드는 걸 소장님은 차 안에서 봤을 것이다. 은오 씨가 두시 주방에서 얼음물을 날라 왔다. 사장님이 얼음에 레몬을 한 조각씩 넣었다. 구덩이 옆에서 마신 레몬 얼음물은 시큼하고 차가워서 이가 시렸다. 삼십 센티. 오십 센티. 팔십. 흙이 점점 단단해졌다. 백 센티에서 삽이 튕겼다. 쇳소리가 났다.

강 팀장이 구덩이에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흙을 긁었다. 회색이 나왔다. 매끈한 회색. 강 팀장이 망치로 두드렸다. 둔탁하게 울렸다. 흙이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속이 꽉 찬 것이 울리는 소리.

“암반이네요.”

강 팀장이 구덩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화강 풍화암 위에 연암. 기초 저판이 바로 위에 앉아 있어요. 기초가 얕은데 얕을 필요가 없었네. 이 위에 있는 건 안 가라앉아요.”

골목이 조용해졌다. 두 시가 아니었는데.

그 조용함을 구 영감님이 깼다.

“내가 뭐랬어. 반 영감이 돌을 좋아한다고. 저 양반 사무실 책상에 맨날 돌멩이 올려놓고 살았어.”

아무도 영감님이 그런 말을 한 걸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기훈 씨가 구덩이 가장자리로 왔다. 쪼그려 앉았다. 회색 바위를 봤다.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강 팀장이 비켜 주었다. 반기훈 씨가 구덩이로 내려갔다. 반팔 셔츠에 흙이 묻었다. 그 사람은 바위에 손바닥을 댔다.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든 살 노인이 서른일곱 해 전에 파다가 멈춘 자리였다. 그 노인은 오늘 요양병원에서 그 아들을 기석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들은 고치지 않을 것이다.

소장님이 먼저 말했다.

“강 팀장, 그래도 뒷벽 금 있고 이 층 처짐 있어. 보수 필요 사항이 많아. D도 틀린 건 아니야.”

“틀린 건 아니죠. 짧은 거죠.”

강 팀장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은오 씨 말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강 팀장은 은오 씨를 모른다. 틀린 게 아니라 짧다. 이 여름에 그 말을 세 사람이 했다.

“C로 씁니다. 보수 후 사용. 뒷벽 균열 보수, 이 층 장선 보강. 기초 양호. 참고 자료로 임차인 제공 계측 기록 첨부. 이 년 치도요. 비공식이라고 적고 붙이면 됩니다. 판단은 읽는 사람이 해요.”

소장님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기훈 씨를 봤다. 반기훈 씨는 구덩이 안에서 흙 묻은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소장님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차에 탔다. 떠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도 갈 데가 없었다.

아름이가 뒷벽 게이지를 떼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다. 0.3. 떼어 낸 자리에 테이프 자국이 네모나게 남았다. 아름이는 게이지를 가방에 넣고 사장님한테 가서 대여료를 받겠다고 했다. 사장님이 라테를 내밀었다. 아름이가 한 모금 마시고 이걸로는 모자라다고 했다. 사장님이 한 잔 더 내밀었다. 아름이가 두 잔을 양손에 들고 차에 탄 소장님한테 갔다. 하나를 차창 너머로 내밀었다. 소장님이 받았는지는 못 봤다. 아름이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두 시에 두시가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골목에서 굴착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턱을 넘었다. 윤 원장님은 특강이 끝난 아이 셋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한테 여기는 두 시부터 조용히 하는 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딸기 스무디를 시키고 정말로 조용히 했다. 셌다. 열아홉. 이 년 동안 둘이던 두 시가 열아홉이 됐다.

반기훈 씨도 들어왔다. 손을 씻지 않고. 카운터 앞에 섰다. 사장님이 그 사람 손을 봤다. 흙. 아무 말 없이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원두 가는 소리가 조용한 가게에 길게 울렸다.

“지난번 거 끝까지 안 드셨죠.”

“네.”

“이번엔 드세요.”

반기훈 씨는 카운터 앞에 서서 첫 모금을 마셨다.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얼굴이 풀렸다. 풀리는 속도가 천천히 보였다. 그 사람은 잔을 들여다봤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찾는 얼굴이었다. 바뀐 건 없었다. 열두 해 동안 같은 원두였다.

“사장님.”

반기훈 씨가 말했다.

“저 아직 새 임차인 받는다고 한 거 아닙니다. 위약금도 있고, 이자도 있고. C 나왔다고 끝나는 거 아니에요.”

“알아요.”

“그래도.”

그 사람은 세 번째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가게 안을 돌아봤다. 열아홉 사람. 아무도 그 사람을 보지 않았다. 다들 자기 것을 하고 있었다. 책, 노트, 스무디, 창밖. 조용했다.

“아버지한테 이거 한 잔 갖다 드리고 싶네요.”

사장님이 테이크아웃 컵을 꺼냈다. 두시에는 테이크아웃 컵이 열두 해 동안 없었다. 지난주에 은오 씨가 한결문구에서 사 왔다. 구 영감님 가게에는 종이컵도 있다. 사장님은 거기에 아메리카노를 담아 뚜껑을 닫아 주었다.

“첫 모금 쓰다고 꼭 말해 줘요. 두 번째부터라고.”

반기훈 씨가 나갔다. 턱을 넘었다. 발을 높이 들었다. 컵을 흘리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들고.

은오 씨가 나를 봤다. 나는 노트를 폈다.

8월 11일. 암반. 백 센티. C. 보수 후 사용. 두 시. 열아홉. 반 사장 두 번째 모금.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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