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6자) · 반석빌딩
바위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반기훈 씨 사무실은 신축 오피스텔 구 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벽에 금이 하나도 없었다. 지은 지 삼 년 된 건물은 금이 없다. 금이 없는 건물에서는 볼 데가 없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 버튼만 봤다.
팔월 사일 화요일 오전 열 시. 약속은 반기훈 씨가 잡았다. 내가 전화를 걸어 뵙고 싶다고 하자 그 사람은 잠깐 말이 없다가 내일 열 시, 라고 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잘린 사람이 찾아오는 이유는 대개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무실은 작았다. 책상 하나, 소파 하나, 정수기 하나. 창밖으로 한결동 쪽 낮은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붉은 벽돌 건물의 옥상도 그 안에 있었다. 그 사람은 매일 여기 앉아서 그 옥상을 보는 모양이었다. 벽에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흑백 사진. 붉은 벽돌 삼 층 건물 앞에 양복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테이프를 자르는 가위를 들고. 건물 이 층 창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축 준공. 천구백팔십구 년 사월. 나는 그 건물을 안다. 뒷벽 금 두 줄의 위치까지 안다.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믹스밖에 없어요.”
반기훈 씨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았다. 종이컵 두 개.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부었다. 막대로 저었다. 저을 때마다 막대가 컵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은 컵을 내 앞에 놓고 소파 맞은편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도 기사님, 잘리셨다면서요. 제 탓 맞아요. 사과는 안 합니다. 저도 제 일 한 거라서.”
“사과 받으러 온 거 아닙니다.”
“그럼요?”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두 가지. 하나는 이 년 치 턱 기록과 삼 주 치 공식 계측 중간값. 턱 이백이십이 밀리, 균열 0.3, 레벨 변화 없음. 다른 하나는 은오 씨가 밤새 쓴 종이 한 장. 임차인 승계 제안서. 은오 씨는 그걸 쓰면서 계약서 영문 양식을 세 개 찾아 비교했다고 했다. 번역가는 남의 형식을 빌려야 글을 쓴다고.
“여 사장님 가게를 저하고 은오 씨가 이어받겠습니다. 권리금 드리고요. 월세는 반 사장님이 부르시는 대로요. 지금 월세의 두 배까지 알아봤습니다.”
반기훈 씨가 종이를 받았다. 읽었다. 제안서를 먼저, 계측 기록을 나중에. 계측 기록에서 오래 멈췄다. 이백이십이, 이백이십이, 이백이십일, 이백이십이.
“도 기사님은 건물 보는 사람이죠.”
“네.”
“그럼 이 건물 몇 년 더 버틸 것 같아요.”
“보수하면 이십 년은 갑니다. 뒷벽 금은 오래된 거고, 안 움직여요. 이 층 바닥 처진 건 목조 장선을 한 번 갈았을 때 생긴 거예요. 구조가 아니라 마감이에요. 기초는 멀쩡합니다. 턱이 증거고요.”
“이십 년.”
그 사람은 종이를 내려놓고 벽의 액자를 봤다. 오래.
“저거 우리 아버지예요.”
나는 알았다. 구 영감님이 은오 씨한테 했다는 말을 은오 씨가 전해 줬다. 반 영감. 팔구 년에 이 건물을 올린 사람. 십몇 년 전에 빚 때문에 판 사람.
그 사람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그 사람은 수화기를 들었다가 바로 내려놓았다. 받지 않고 끊었다.
“이천십 년에 팔았어요. 사업하다가 망하셔서. 저 대학 졸업하던 해. 아버지가 그 건물 판 날 저녁에 소주 두 병 드시고 나한테 그러셨어요. 저거 내가 지은 거다, 벽돌 하나하나 내가 골랐다. 그러고는 다시는 그 골목에 안 가셨어요. 십육 년 동안.”
그 사람은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는지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올봄에 매물로 나왔어요. 전 주인이 급하게 판다고. 저 모은 돈 다 넣고 대출 받았어요. 금리가 칠 퍼센트 넘어요. 월세 네 개 받아서 이자 절반도 안 돼요. 부수고 새로 올려서 분양해야 계산이 맞아요. 새로 올리면 일 층에 아버지 이름 넣을 거예요. 반석빌딩. 아버지가 지으려다 못 지은 이름이에요. 팔구 년에는 돈이 모자라서 그냥 벽돌 건물 올리셨거든요.”
나는 커피를 마셨다. 믹스. 바닥까지 저은 것.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단맛이었다. 두시 라테와 같은 종류의 맛이었다. 섞여 있는 맛. 그 사람은 그 맛을 잘 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님은 지금 어디 계세요.”
“요양병원이요. 치매 초기. 요즘은 저를 가끔 동생으로 아세요.”
“아버님이 이 건물 도로 사신 거 아세요?”
그 사람이 나를 봤다.
“말씀드렸는데 기억 못 하세요. 말씀드릴 때마다 처음 듣는 얼굴 하세요. 그래서 새로 올리면 모시고 가려고요. 새 건물은 기억 안 하셔도 되니까. 이름만 보시면 되니까.”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소장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네 손님 마음이지 구조가 아니야. 반기훈 씨의 재건축도 그랬다. 이자는 구조였다. 반석빌딩은 마음이었다. 그 사람은 마음을 구조로 만들려고 금리 칠 퍼센트를 지고 있었다.
“뵐 수 있을까요. 아버님.”
“왜요?”
“건물 지은 분한테 여쭤볼 게 하나 있어서요.”
요양병원은 한결동에서 차로 이십 분이었다. 반기훈 씨가 운전했다. 차 안에서 그 사람은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나도 말을 걸지 않았다. 두 시가 아닌데도 조용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그 사람 휴대폰이 컵홀더에서 진동했다. 화면에 시공사라는 글자가 떴다. 세 번. 그 사람은 세 번 다 받지 않았다. 네 번째에 전원을 껐다. 켜 두면 받을 것 같아서, 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차 안에 믹스커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사무실에서 반쯤 마시고 들고 나온 종이컵이 컵홀더에서 흔들렸다.
반 영감님은 창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여든. 마른 손이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벽돌을 나른 손이었다. 반기훈 씨가 아버지, 하고 불렀다. 영감님이 아들을 보고 웃었다. 기훈이 왔냐, 가 아니라 기석이 왔냐, 라고 했다. 반기훈 씨가 네, 하고 대답했다. 고치지 않았다.
영감님이 나를 봤다.
“자네는 누구여.”
“건물 재는 사람입니다.”
“측량사?”
“비슷합니다.”
“측량사가 빈손으로 왔네.”
반기훈 씨가 병실 밖 자판기에서 요구르트 한 줄을 사 왔다. 영감님은 그걸 받아 하나를 뜯어 내게 줬다. 빨대를 꽂아서. 새콤하고 달았다. 여든 살 노인이 측량사한테 요구르트를 따 주는 병실이었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나도, 했다. 영감님이 하나 더 뜯어 건넸다.
나는 휴대폰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두시 앞 턱. 줄자를 대고 찍은 것. 이백이십이.
“어르신, 한결동 붉은 벽돌 건물 아시죠. 팔구 년에 지으신 거.”
영감님 눈이 사진에 멈췄다. 오래. 그러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었다. 턱을.
“이거 누가 올렸어.”
목소리가 또렷했다.
“일 층 세 든 가게 바깥양반이요. 목수셨어요. 이천십사 년에.”
“잘했네.”
영감님이 말했다.
“그 집 일 층은 비가 들어. 내가 바닥을 낮게 잡았어. 돈이 모자라서 기초를 덜 파고 대신 바닥을 낮췄지. 장마 때마다 물 들어온다고 세입자들이 난리였어. 누가 이렇게 올렸구먼. 이십 센티는 넘게 올렸네.”
“이십이 센티요.”
“그래. 그 정도면 안 들어와.”
영감님은 그러고는 사진에서 손을 뗐다. 창밖을 봤다. 반기훈 씨가 나를 봤다. 처음 듣는 얘기라는 얼굴이었다.
“기초를 덜 파셨다고요.”
내가 물었다. 이게 여쭤볼 것이었다. 기초를 덜 판 건물이 이 년 동안 한 밀리도 안 가라앉았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했다.
“덜 팠지. 대신 밑에 바위가 있었어. 파다 보니 바위가 나와. 그래서 거기서 멈췄지. 바위 위에 앉힌 거야. 그 건물 안 가라앉아. 내가 알아. 백 년 가.”
영감님은 그 말을 하고 아들을 봤다.
“기석아, 그 건물 아직 있냐.”
반기훈 씨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참 뒤에 말했다.
“있어요, 아버지.”
“누가 갖고 있어.”
“제가요.”
영감님이 아들을 오래 봤다. 그 눈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나는 모른다. 동생인지 아들인지. 영감님은 이불 위의 굵은 손을 들어 아들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부수지 마라. 바위 위에 있는 거는 부수는 거 아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반기훈 씨는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한결동 골목 입구에 차를 세웠다. 두시 앞이었다. 두 시 사십 분.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이 보였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셌다. 열넷. 가운데 창가 자리에 은오 씨가 있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의 등으로 앉아 있었다.
“도 기사님.”
반기훈 씨가 운전대를 쥔 채 말했다.
“아버지가 한 말, 진단에 넣을 수 있어요?”
“아니요. 치매 어르신 기억은 자료가 안 됩니다.”
“그렇죠.”
“그런데 바위는 자료가 됩니다. 시추 한 번이면 나와요. 강 팀장님한테 말씀드리면요.”
반기훈 씨가 운전대에서 손을 뗐다.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기사님, 저 재건축 시공사랑 가계약했어요. 파기하면 위약금이 삼천이에요. 반석빌딩 이름도 벌써 설계도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자는 다음 달에도 나와요.”
“압니다.”
“아신다는 게 제일 짜증 나요, 요즘.”
그 사람은 웃지 않고 그 말을 했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턱 앞에 섰다. 반기훈 씨 차가 떠나지 않았다. 창문이 내려갔다.
“진단 날은 보러 갈게요. 그것까지는 약속합니다. 결과가 뭐든.”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턱을 넘었다. 발을 턱 높이만큼만 들었다. 이십이 센티. 여든 살 노인이 이 년 치 내 기록보다 먼저 알고 있던 숫자였다.
은오 씨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가운데 탁자에 앉았다. 사장님이 라테를 내왔다. 우유 먼저, 샷 나중.
“어땠어요.”
은오 씨가 물었다.
“바위 위에 있대요.”
“뭐가요.”
“여기요. 이 가게.”
카운터에서 잔을 닦던 사장님이 손을 멈췄다. 바위, 하고 따라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우리 양반이 그 턱 올릴 때 바닥 뜯었더니 밑에 돌이 있어서 못이 안 들어간다고 투덜거렸다고 했다. 그래서 못 대신 본드로 붙였다고. 열두 해 동안 그 얘기를 잊고 살았다고. 사장님은 행주를 접지 않았다. 그냥 들고 서 있었다.
은오 씨는 한참 나를 보다가 발밑을 봤다. 두시의 타일 바닥. 그 밑 어딘가의 바위. 그러고는 노트를 폈다. 요즘 잘 안 적는다던 노트였다. 한 줄을 적었다. 나는 그 줄을 보지 않았다. 대신 내 노트에 적었다.
8월 4일. 두 시 사십 분. 열넷. 바위. 백 년 간대. 반 사장 아버지는 반 사장을 기석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