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28자) · 사무소
사원증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칠월 삼십일일 금요일 아침, 사장님이 내게 봉투를 하나 줬다. 흰 편지 봉투. 겉에 큰 글씨로 도상철 소장님께. 안에 든 것은 한 장짜리 편지였다. 사장님은 봉투를 봉하지 않았다. 읽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읽지 않았다. 남의 편지는 이번 여름에 한 번 읽은 걸로 충분했다.
“그 사무소에서 나를 부르더라고. 의뢰 취소하러 오라고. 나는 가게 봐야 되니까, 손님이 좀 가 줘요.”
“제가요?”
“정후 씨 혼자 보내기가 좀 그래서.”
사장님은 그 말을 하고 잔을 닦았다. 스물두 개 중에 여덟 번째. 나는 사장님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어제 저녁 정후 씨한테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정후 씨는 전화를 받으러 턱 밖으로 나갔다. 이 년 동안 통화는 늘 밖에서 했다. 여덟 번. 내 일기에 있다. 어제가 아홉 번째였다. 돌아와서 정후 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라테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한 모금도 안 마셨다.
버스에서 정후 씨는 창가에 앉았고 나는 통로 쪽에 앉았다. 둘이 나란히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년 동안 대각선이었고, 요즘은 마주 보았고, 오늘은 옆이었다. 옆에 앉으니 얼굴이 안 보였다. 대신 팔이 닿았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반소매 끝이 한 번씩 스쳤다. 나는 그 횟수를 세지 않으려고 창밖 간판을 읽었다. 약국, 부동산, 부동산, 치킨, 부동산. 이 동네에는 부동산이 많았다.
도상철 구조기술사 사무소는 버스로 두 정거장이었다. 상가 건물 사 층.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참마다 정후 씨가 멈춰서 벽을 봤다. 금을 찾는 눈이었다. 사 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그 사람은 금 여섯 개를 찾았고, 나는 그 사람이 금을 찾을 때마다 숨을 골랐다. 일 층에서 사 층까지 세 번 쉬었다. 번역가는 계단을 안 오른다.
사무소 문은 유리였다. 안에 책상 여섯. 벽에 골프 사진 네 장. 같은 홀. 창가 책상에 유리 상자가 있고 그 안에 하얀 공이 하나 들어 있었다. 정후 씨가 문을 열기 전에 나한테 낮게 말했다.
“저 공 얘기 나오면 처음 듣는 척해 주세요. 그래야 빨리 끝납니다.”
소장은 쉰 후반이었다. 반팔 셔츠 가슴 주머니에 볼펜이 세 자루 꽂혀 있었다. 우리를 보자 일어서지 않고 의자를 돌렸다. 나를 봤다. 정후 씨를 봤다.
“누구셔.”
“여정란 사장님 대리입니다. 편지 가져왔어요.”
나는 봉투를 내밀었다. 소장은 봉투를 받아 열었다. 한 장을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 글씨는 크니까 한 장에 몇 줄 안 된다. 소장은 편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웃었다.
“취소 안 한대. 삼 주 다 잰대. 턱은 건드리지 말고.”
“네.”
“그럼 뭐 하러 오셨어.”
“편지 드리러요.”
소장은 나를 오래 봤다. 사무실 안 다른 사람들이 키보드 소리를 죽였다. 창가 쪽 책상에 앉은 젊은 여자가 모니터 너머로 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아름 씨였다. 연차 이틀을 쓴 아름 씨는 오늘 출근해 있었다.
소장이 정후 씨를 봤다.
“정후야. 이리 와 봐.”
정후 씨가 책상 앞에 섰다. 나는 한 걸음 뒤에 섰다. 소장이 모니터를 돌렸다. 이메일이었다. 보낸 사람 반기훈. 나는 다 읽지 못했다. 몇 단어만 눈에 걸렸다. 신축 세 건. 재검토. 계측 중단 시.
“반 사장 다음 건물 세 채. 일 년 치 일감이야. 우리 여섯 식구 월급. 반 사장이 그러더라. 우리 사무소 직원이 우리 사무소 장비 빌려서 자기 건물 반대쪽 증거를 만들고 있으면, 이 사무소를 어떻게 믿냐고. 틀린 말이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 멈춰. 아름이 연차 쓰고 나간 것도 알아. 오늘부터 게이지 떼. 그러면 나는 모르는 걸로 한다.”
정후 씨가 대답하지 않았다. 소장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공 상자 옆이었다.
“정후야, 너 입사 몇 년이냐.”
“팔 년입니다.”
“팔 년 동안 내가 너한테 틀린 숫자 적으라고 한 적 있냐.”
“없습니다.”
“지금도 안 한다. 뒷벽에 금 있잖아. 이 층 바닥 처졌잖아. 그거 적는 거야. 없는 금을 적으라는 게 아니야. 있는 걸 적는 거야. 너는 거기에 없는 걸 하나 붙이려는 거고. 이 년 동안 안 움직였다는 거. 그건 네 손님 마음이지 구조가 아니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상하게 두시의 첫 모금을 생각했다. 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 모금이 있다. 첫 모금만 적은 평가는 틀린 게 아니라 짧은 거다.
정후 씨가 입을 열었다.
“소장님. 제가 이 년 동안 잰 거는 제 마음이 맞습니다. 손님 마음이요. 그래서 비공식입니다. 그런데 삼 주 동안 아름이가 잰 건 장비로 잰 겁니다. 교정 기록 있는 장비요. 그 삼 주가 이 년이랑 같은 값이면, 제 마음이 구조랑 같았다는 뜻이고요. 그건 제가 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 거니까요.”
“그럼 너 나가.”
소장이 말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사무실이 조용해서 크게 들렸다.
“반 사장 일 끊기면 너 때문이야. 그 책임은 네가 지고 나가.”
정후 씨는 오래 서 있었다. 나는 그 사람 등을 봤다. 이 년 동안 옆얼굴만 봤던 사람의 등.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창가 오른쪽에서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은 늘 등을 폈었다. 지금은 굽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정후 씨가 말했다. 그리고 목에 건 사원증을 벗었다. 책상 위, 공 상자 옆에 놓았다. 줄이 공 상자를 한 번 스쳤다. 상자가 흔들렸다. 공이 안에서 한 바퀴 굴렀다.
소장이 반사적으로 상자를 잡았다. 두 손으로. 그러고는 자기가 한 일을 알고 얼굴이 붉어졌다. 사무실 누군가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으로 바꿨다.
“그 공.”
소장이 나한테 말했다. 왜 나한테인지 모르겠다. 아마 이 방에서 그 이야기를 안 들어 본 사람이 나뿐이어서.
“칠 번 홀. 백사십 미터. 칠 번 아이언으로.”
“처음 들어요.”
나는 정후 씨 말대로 했다. 처음 듣는 척. 진짜 처음이었지만. 소장은 잠깐 나를 봤다. 그러다 한숨을 쉬었다. 상자를 제자리에 놓았다.
“가. 둘 다.”
소장은 그 말을 하고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사장님의 큰 글씨를 한 번 더 읽었다. 이번에는 오래.
창가 쪽에서 아름 씨가 일어섰다. 모니터 뒤에서.
“소장님, 저 게이지 반납은 다음 주에 할게요. 대여 기간이 삼 주라서요. 대여는 제 이름이에요.”
소장이 아름 씨를 봤다. 아름 씨가 시선을 버텼다. 스물여섯 살이 쉰 후반을 버티는 데 걸린 시간은 사 초쯤이었다. 소장이 먼저 눈을 돌렸다.
“알아서 해.”
문을 나서는데 누가 뒤따라 나왔다. 마흔쯤 된 남자였다. 안경을 이마에 올리고 있었다. 정후 씨가 멈췄다.
“강 팀장님.”
반 사장 건물 진단을 맡은 사람. 강 팀장은 계단참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문 너머 소장님한테 안 들리게.
“정후 씨, 이 년 치 기록. 나한테 메일로 보내 줘.”
“소장님이 비공식이라고.”
“알아. 보고서 본문에는 못 넣어. 그런데 나도 현장 가서 턱을 봐야 되잖아. 서른일곱 살 건물 앞 턱이 이 년 동안 그대로면, 나도 그걸 모르는 척하고 D를 쓰기는 좀 그래. 모르고 쓰는 거랑 알고 쓰는 거랑 다르니까.”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사무소로 돌아갔다. 문이 닫혔다. 정후 씨가 한참 그 문을 봤다. 유리 너머에서 강 팀장이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소장님 쪽은 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정후 씨는 금을 찾지 않았다. 사 층에서 일 층까지 한 번도 안 멈췄다. 나는 두 번 쉬었다. 올라올 때보다 한 번 덜.
건물 밖은 한낮이었다. 매미가 울었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다음 차 칠 분이라고 떴다. 우리는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플라스틱 의자가 햇볕에 달궈져서 뜨거웠다. 둘 다 일어나지 않았다. 정후 씨가 정류장 옆 자판기에서 캔 커피 두 개를 뽑았다. 하나는 블랙, 하나는 밀크. 블랙을 내게 줬다. 이 년 동안 내가 쓴 것만 마시는 걸 적어 둔 사람이었다. 캔은 차가웠다. 첫 모금이 두시 것보다 훨씬 썼다. 두 번째 모금에도 산미는 오지 않았다. 캔 커피에는 두 번째 모금이 없다. 나는 그걸 처음 알았다.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왜요?”
“제가 교실에서 그런 말 해서. 한 줄 더 적어야 된다는 말. 그 말이 반 사장한테 가서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은오 씨 말은 맞았어요.”
“맞는 말이 요즘 제일 무서워요.”
정후 씨가 웃었다. 열세 번째. 나는 그 숫자를 속으로만 셌다. 요즘은 적지 않는다.
“팔 년이요.”
그 사람이 말했다.
“팔 년 동안 남의 건물에서 금만 찾았어요. 있는 금을 있다고 적는 거. 그거 잘했어요. 그런데 없는 금을 없다고 적어 본 적은 없어요. 아무도 그걸 의뢰하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처음 해 봤어요.”
“그래서 잘렸고요.”
“네.”
버스가 왔다. 우리는 타지 않았다. 다음 버스도 타지 않았다. 세 번째 버스가 왔을 때 정후 씨가 말했다.
“은오 씨, 반 사장이 그랬잖아요. 새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네.”
“월세 두 배 주고, 턱 높은 가게에서,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하게 커피 팔 사람.”
“네.”
“저 이제 두 시에 시간 있어요.”
나는 그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은 정면을 보고 있었다. 버스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기사가 우리를 한 번 보고 떠났다.
“그리고 은오 씨는 두 번째 모금을 잘하고요.”
그 말을 하고 그 사람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왼쪽 눈 밑 흉터가 햇빛에 하얬다.
“우리가 하면 안 돼요?”
두시로 돌아간 것은 네 시였다. 가게에는 아홉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 셋이었다. 유모차를 문 옆에 세워 두고 아기를 재우는 사람, 노트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중학생, 신문을 한 장씩 넘기는 구 영감님. 영감님은 가게 문을 닫고 왔다고 했다. 어차피 닫을 가게니까 연습한다고. 문 옆 할머니는 스물다섯 쪽째였다. 양복 아저씨는 창밖을 봤다. 사장님이 우리를 보고 행주를 접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나는 가운데 창가 자리에 앉았다. 정후 씨가 붙인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아메리카노가 왔다. 첫 모금을 마셨다. 썼다. 두 번째 모금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대답을 생각했다. 원문 없이. 두 번째 모금이 왔다. 산미가 혀끝에 올라왔다.
“해요.”
내가 말했다. 원문 없이 한 말 중에 제일 짧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