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6자) · 세입자 모임

교실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유리창에 붙은 명도 안내 옆에 종이를 한 장 더 붙인 사람은 나다. 칠월 이십사일 아침. 사장님 허락을 받았다. 사장님은 붙이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고 테이프를 건넸다. 반 사장이 붙인 종이는 A4에 굵은 고딕이었고, 내 종이는 한결문구에서 산 편지지에 볼펜 글씨였다. 번역가는 남의 글씨로 먹고살아서 자기 글씨가 엉망이다. 나는 세 번 다시 썼다.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조용한 시간입니다. 팔월 삼십일일까지.

그게 다였다.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다 지웠다. 원문이 없는 문장은 짧을수록 덜 틀린다.

그날 두 시에 두시에는 다섯이 있었다. 나, 정후 씨, 그리고 모르는 사람 셋. 한 사람은 백발의 여자였다. 책을 한 권 들고 와서 문 옆 자리에 앉더니 네 시간 동안 스무 쪽을 읽고 갔다. 한 사람은 대학생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이어폰을 꼈다가, 조용한 걸 확인하고는 이어폰을 뺐다. 한 사람은 양복 입은 남자였다. 아무것도 안 했다. 창가 오른쪽, 이 년 동안 정후 씨가 앉던 자리에 앉아서 창밖만 봤다. 여섯 시에 나가면서 사장님한테 말했다. 이 동네 삼십 년 살았는데 여기 처음 들어와 봤다고, 턱이 높아서 못 들어왔었다고.

다음 날은 여섯이었다. 아름 씨가 연차를 하루 더 내고 게이지를 읽으러 왔다. 0.3. 그대로.

그날 세 시에 반 사장이 왔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턱에서 발을 높이 들었다. 걸리지 않았다. 배운 것이다. 그 사람은 유리창 앞에서 멈췄다. 자기가 붙인 종이 옆의 내 편지지를 읽었다. 두 줄짜리를 오래 읽었다. 떼지 않았다. 카운터로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목소리가 작았다. 사장님이 커피를 내주자 그 사람은 카운터 앞에 선 채로 첫 모금을 마셨다.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쓴 첫 모금. 그 사람은 두 번째 모금을 마시지 않고 잔을 내려놓았다. 반 넘게 남은 잔이었다. 그러고는 가게 안을 둘러봤다. 여섯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는 가게를. 아무한테도 말을 걸지 않고 나갔다. 나가면서 턱을 넘을 때 다시 발을 높이 들었다.

사장님이 그 잔을 치우면서 말했다. 저 사람 두 번째 모금을 몰라, 하고.

반 사장의 세입자 모임은 칠월 이십칠일 월요일 밤 아홉 시, 이 층 영어 학원 교실에서 열렸다. 학원 윤 원장님이 교실을 내줬다. 칠판에 아이들이 쓴 영어 단어가 반쯤 지워진 채 남아 있었다. promise, borrow, stay. 작은 책상에 어른들이 몸을 구겨 앉았다. 의자가 낮아서 무릎이 책상 밑판에 닿았다. 구 영감님은 결국 의자를 포기하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이 건물 세입자는 넷이다. 일 층 두시, 일 층 한결문구, 이 층 학원, 삼 층 세무사 사무실. 세무사는 오지 않았다. 이미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나는 세입자가 아니었다. 사장님이 데려왔다. 대신 말 좀 해 달라고. 정후 씨는 교실 뒤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이 년 동안 창가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던 자세로.

반 사장은 교탁 앞에 섰다. 아이들 키에 맞춘 교탁이라 배꼽께밖에 안 왔다. 그 사람은 교탁을 짚고 허리를 조금 숙인 채 말했다. 목소리는 두시에서보다 작았다. 교실은 원래 떠드는 방이라 작은 목소리가 오히려 잘 들렸다.

“합의서 드린 대로입니다. 팔월 삼십일일까지 비워 주시면 이사비 드립니다. 한결문구 사장님은 어제 도장 찍으셨고요.”

사람들이 구 영감님을 봤다. 영감님은 부채를 부쳤다. 바람이 내 쪽까지 왔다. 교실 에어컨이 꺼져 있었다. 학원 에어컨은 아이들 있을 때만 켠다고 윤 원장님이 미안해했다.

“찍었지. 아들이 찍으래서.”

영감님은 그 말만 했다. 부채가 빨라졌다.

윤 원장님이 손을 들었다. 사십 대 초반. 아이들한테 말하던 버릇이 남아서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새 자리 알아보고 있어요. 애들이 칠십 명이에요. 방학 끝나기 전에 옮겨야 돼요. 저는 싸울 시간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 사람은 사장님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반 사장한테가 아니라. 그러고는 칠판 쪽을 흘끗 봤다. 아이들이 쓴 단어들. 그 사람은 여름방학 동안 그 단어를 다 지우고 새 교실에서 다시 쓰게 될 것이다. promise부터.

반 사장이 사장님을 봤다.

“사장님만 남으셨습니다.”

사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주가 없어서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목을 쥐었다. 비가 오려나 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창밖은 맑았다.

내가 손을 들었다. 교실이라서.

“하나 여쭤볼게요.”

반 사장이 나를 봤다. 알아봤다. 두시에서 일어섰던 손님.

“손님은 세입자가 아니시잖아요.”

“사장님 대신이에요. 사장님이 새 사람한테 가게를 넘기면요. 권리금 받고. 그건 막으실 거예요?”

반 사장이 교탁에서 손을 뗐다. 처음으로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공부하셨네요.”

“번역가라 읽는 건 빨라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나는 그 주말 이틀 동안 그 법을 영어로 옮기듯 읽었다. 문장마다 주어를 찾고 예외를 찾았다. 법 문장은 연애소설보다 쉬웠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다 말했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못 하는지. 다만 예외가 본문보다 길었다. 예외 안에 또 예외가 있었다. 나는 종이에 나무를 그리듯 가지를 쳐 가며 읽었다. 가지 끝에 사장님이 매달릴 데가 하나 있었다. 십 년이 넘으면 갱신은 요구 못 한다. 그런데 권리금을 받고 새 임차인에게 넘길 기회는 십 년이 넘어도 남는다. 건물주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새 사람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 정당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재건축이다. 건물이 낡아서 안전사고가 날 우려가 있을 때.

“재건축이면 막을 수 있죠.”

반 사장이 말했다.

“그 재건축은 진단 등급으로 정해지고요.”

“그렇죠.”

“그래서 D가 필요하신 거고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칠판의 stay가 형광등 아래 반쯤 지워져 있었다. 반 사장이 교실 뒤를 봤다. 정후 씨를.

“도 기사님이 공식 계측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임차인 명의로. 소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요.”

정후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짱을 풀었다.

“하셔도 됩니다. 진단은 강 팀장이 합니다. 기사님 계측은 참고 자료고요. 참고 자료는 참고만 하죠.”

“참고만 해도 돼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이 다시 나를 봤다.

“참고 자료에 이 년 동안 한 밀리도 안 움직였다고 적혀 있으면, 보고서에 D를 적는 사람은 그 이유를 한 줄 더 적어야 되잖아요. 왜 이 기록을 안 믿었는지. 그 한 줄을 못 적으면 D는 못 적어요.”

나는 그 말을 준비하지 않았다. 원문 없이 나온 말이었다. 입에서 나오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교실 뒤에서 정후 씨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년 동안 대각선으로만 보던 눈이 교실 대각선 끝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반 사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웃었다. 두시에서 본 그 피곤한 웃음.

“손님, 저도 하나 여쭤볼게요. 사장님이 새 사람한테 넘기면, 그 새 사람은 누구예요? 이 동네에서 월세 두 배 주고 이 턱 높은 가게에서 커피 팔 사람.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없었다. 아직은.

“없으면 다 소용없어요. 사장님은 팔월 삼십일일에 나가시고, 권리금은 받을 사람이 없으니 못 받고, 이사비는 도장 안 찍으셨으니 못 받고. 제가 드릴 수 있는 걸 사장님이 안 받으시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진짜로요.”

그 사람 말이 맞았다. 이번에도. 이 여름에 만난 사람들은 다들 맞는 말을 했다. 정후 씨도, 사장님도, 반 사장도. 맞는 말끼리 부딪히면 소리가 안 난다. 그냥 막힌다.

사장님이 그때 처음 입을 열었다.

“반 사장님, 커피 왜 남겼어요?”

반 사장이 눈을 깜빡였다. 교실 사람들이 사장님을 봤다.

“아까 우리 가게에서. 반도 안 마시고 갔잖아요.”

“아, 그게. 좀 써서요.”

“두 번째 모금부터 안 써요. 다음에 오면 끝까지 마셔요. 돈 받았으니까.”

반 사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구 영감님이 부채 뒤에서 킥 웃었다.

모임이 끝나고 구 영감님이 교실을 나가다가 문턱에 섰다. 학원 문턱은 낮다. 영감님은 뒤돌아 사장님을 봤다.

“정란이.”

사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영감님이 사장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나는 찍었어. 사십 년 했으니께. 근데 너는 열두 해여. 용석이가 짠 가게여. 너까지 찍으면 이 골목에 그 양반 대패 자국 하나도 안 남어.”

영감님은 그 말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사장님은 그 뒷모습을 오래 봤다. 용석. 사장님 바깥양반의 이름이었다. 정후 씨 노트의 내일 여쭤볼 것에 답이 생겼다.

계단을 내려와 골목에 섰다. 밤 열 시. 골목 끝 편의점 불빛만 하얬다. 정후 씨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바나나우유 두 개를 사 왔다.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바나나우유를 초등학교 이후로 안 마셨다. 빨대를 꽂았다. 단맛이 혀 전체에 한꺼번에 퍼졌다. 쓴 첫 모금도 산미 도는 두 번째 모금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맛. 두시 라테처럼. 저 사람은 이런 맛만 마신다. 두시는 불이 꺼져 있었다. 유리창에 종이 두 장이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었다. 굵은 고딕과 볼펜 글씨. 정후 씨가 내 옆에 섰다. 한 뼘 떨어져서. 이 년 동안 이 미터 팔십이었던 사이가 요즘은 한 뼘이다. 나는 그걸 적지 않는다. 적으면 줄어들까 봐.

“새 사람이 있어야 된대요.”

내가 말했다.

“들었어요.”

“월세 두 배 주고, 이 턱 높은 가게에서,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하게 커피 팔 사람.”

“네.”

정후 씨가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냈다. 턱에 걸었다. 당겼다. 가로등 아래에서 눈금을 읽었다. 딸깍.

“스물둘.”

“알아요.”

“오늘도요.”

나는 웃었다. 그 사람이 줄자를 감으면서 말했다.

“은오 씨, 번역 말고 뭐 잘하세요.”

“커피 마시는 거요. 두 번째 모금.”

그 사람이 나를 봤다. 오래.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계산을 끝낸 사람처럼.

그날 밤 일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7월 27일. 두 시에 여섯. 아름 씨, 문 옆 할머니, 대학생, 양복 아저씨, 나, 정후 씨. 구 영감님이 찍었다. 윤 원장님은 떠난다. 바깥양반 이름은 용석. 정후 씨가 뭘 잘하냐고 물었다. 이상한 질문. 대답을 잘못한 것 같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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