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5자) · 주방

바깥양반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사장님은 의뢰서를 읽지 않았다. 카운터에 올려놓은 종이를 행주로 덮었다. 젖은 행주가 종이 위에 네모난 얼룩을 만들었다.

“주방으로 와요. 둘 다.”

두시의 주방은 손님 자리에서 안 보인다. 카운터 뒤 커튼 너머. 이 년 동안 나는 그 커튼 너머를 본 적이 없었다. 은오 씨도 그랬을 것이다. 은오 씨가 먼저 커튼을 걷다가 커튼 봉에 이마를 박았다. 쿵. 사장님이 거기 낮아요, 했다. 은오 씨는 이마를 문지르며 이 년 만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한테 그걸 이제 알려 주시냐고 했다. 사장님이 이 년 동안 들어온 적이 없잖아요,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커튼을 걷고 들어서자 폭이 두 팔 벌린 것보다 좁은 공간에 냉장고 하나, 개수대 하나, 선반 세 칸. 선반 맨 위에 잔 스물두 개가 엎어져 있었다. 우유 냄새와 원두 기름 냄새와 락스 냄새가 한데 섞였다. 벽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공사 중인 가게. 톱밥 위에 서서 웃는 남자. 목장갑을 끼고 대패를 들고 있었다.

“우리 집 양반이에요. 이 가게 안은 저 사람이 다 짰어요. 탁자 아홉 개, 창틀, 카운터. 저 턱도.”

사장님이 커튼 너머, 문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목수였어요. 개업 석 달 앞두고 쓰러졌어요. 뇌출혈. 가게 문 여는 거 못 봤어요. 턱은 저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거예요. 보도블록보다 바닥을 높여야 비 올 때 물이 안 들어온다고. 이십이 센티. 좀 높다고 내가 그랬더니 이 동네 장마를 몰라서 그런다고 했어요.”

사장님은 사진 속 대패를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

“접자로 재더라고요. 나무로 된 거, 접었다 펴는 거. 턱 재고, 탁자 높이 재고, 창틀 재고. 내 키도 쟀어요. 카운터 높이를 내 팔꿈치에 맞춘다고. 그래서 이 카운터가 나한테만 딱 맞아요. 알바생들은 다 허리 아프다 그래.”

나는 카운터를 봤다. 이 년 동안 계산할 때마다 카운터가 조금 낮다고 생각했다. 그게 한 사람 팔꿈치 높이였다.

나는 그 숫자를 사장님 입으로 처음 들었다. 이십이 센티. 사장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세 들어서 남의 바닥 뜯는 거 아니라고 했죠. 그것도 맞는 말이고. 근데 진짜는 그거예요. 저 사람이 한 마지막 거라서.”

사장님은 개수대에 기대섰다. 오른손으로 왼손목을 쥐었다. 재작년에 금 간 손목이었다. 비 오기 전날이면 쑤신다고 했다. 오늘은 맑았다.

“팔월 삼십일일에 나갈 거예요. 이번 금요일에 반 사장이 합의서 들고 온대요. 도장 찍으면 이사비 사천 준대요. 원래 삼천이었는데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사천이 됐어요. 가만히 있으니까 천이 올라요. 웃기죠.”

“사장님.”

은오 씨가 불렀다. 은오 씨는 선반 앞에 서 있었다. 잔 스물두 개 앞에.

“싸우시면 이길 수도 있어요. 정후 씨가 이 년 동안 잰 게 있어요. 공식으로 다시 재면 건물이 멀쩡하다는 게 나와요. 그럼 재건축 이유가 약해져요. 그럼 반 사장이.”

“그럼 반 사장이 다른 이유를 대겠죠.”

사장님이 말을 잘랐다. 부드럽게. 열두 해 동안 손님 말을 자를 때 쓰던 목소리였다.

“손님, 저 예순둘이에요. 손목 이렇고. 이 가게 열두 해 했어요. 이 동네 월세가 두 배가 됐는데도 버텼어요. 반 사장이 아니어도 누가 와서 나가라고 했을 거예요. 나는 싸운 가게로 끝나기 싫어요. 조용한 가게로 끝나고 싶어요.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한 가게.”

“그건 사장님이 정한 규칙이잖아요.”

“내 가게니까.”

“그 규칙 때문에 저 이 년 동안 여기 왔어요. 정후 씨도요. 그럼 그 규칙은 사장님 것만은 아니잖아요.”

은오 씨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떨리는데 높아지지 않았다. 두 시의 목소리였다. 사장님이 은오 씨를 봤다. 오래.

“손님은 번역한다고 했죠.”

“네.”

“남의 가게 문장을 손님이 바꿔 쓰면 안 되지.”

은오 씨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은오 씨한테 제일 아픈 말이었다. 어제 내가 한 말과 같은 칼이었다. 원문을 고쳐 옮기면 그건 번역이 아니다. 은오 씨는 그 칼을 이틀 사이 두 번 맞았다. 나한테 한 번, 사장님한테 한 번.

나는 끼어들었다. 끼어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 년 동안 창가 오른쪽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은오 씨가 선반 앞에서 잔 스물두 개를 보고 서 있는 등이 보였다.

“사장님. 저 턱 재도 되죠.”

“재 왔잖아요, 이 년 동안.”

“공식으로요. 사장님 이름으로. 뜯는 거 아니에요. 재기만 해요. 턱도, 뒷벽 금도, 이 층 바닥도. 삼 주 동안. 사장님 바깥양반이 한 턱이 이 년 동안 한 밀리도 안 움직였다는 거, 그거 서류로 남기는 거예요. 가게가 끝나도 그건 남아요.”

사장님이 나를 봤다. 그러고는 벽의 사진을 봤다. 대패를 든 남자. 톱밥.

“그 양반 턱이 멀쩡하다는 거?”

“이 동네 장마를 알았다는 거요.”

사장님이 웃었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었다. 행주를 들어 눈가를 한 번 훔쳤다. 행주에서 원두 냄새가 났을 것이다.

“하나 알려 줄 게 있어요. 둘 다.”

사장님은 냉장고 옆 선반에서 공책 한 권을 꺼냈다. A5. 한결문구. 초록색. 우리 둘과 같은 노트였다. 표지가 닳아서 모서리가 하얬다.

“장사하면 셉니다. 단골은 다 적어요. 몇 시에 오고 몇 시에 가고 뭘 시키는지.”

공책을 폈다. 두 줄이 이 년 내내 나란히 있었다.

창가 오른쪽 · 14:00 · 아이스라테 · 18:20 창가 왼쪽 · 14:06 · 아메리카노 · 18:00

“두 사람이 같은 날 여기 있었던 날이 육백구십사 일이에요. 그중에 말을 한 게 몇 번인 줄 알아요.”

우리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 작년 팔월. 비 왔을 때. 손님이 우산 빌려줬죠.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게 다였어요.”

은오 씨가 나를 봤다.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은오 씨는 우산이 둘이었고 나는 하나도 없었다. 은오 씨가 접이식 우산을 내 탁자에 놓고 갔다. 다음 날 나는 그 우산을 은오 씨 탁자에 놓았다. 말은 두 마디였다. 그 두 마디를 나는 노트에 적었고, 은오 씨도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꿔 줬어요.”

“네?”

“노트요. 그날. 창가 오른쪽 손님이 화장실 간 사이에 탁자 위에 두고 간 노트를, 창가 왼쪽 손님한테 줬어요. 두고 가셨다고. 반 사장이 다녀간 날. 나가라는 날. 이 가게 사십일 일 남은 날.”

은오 씨가 웃었다. 소리를 내서. 그러다 입을 막았다. 막은 손 위로 눈이 젖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이 년 동안 적은 은오 씨 얼굴 중에 그런 얼굴은 없었다. 새로 적어야 할 얼굴이었다.

사장님은 공책을 덮었다.

“나쁜 짓이죠. 남의 일기를.”

“나쁜 짓이에요.”

내가 말했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가게가 없어지면 두 사람은 다시 못 만나요. 서로 이름도 모르는데. 그게 더 나빠 보였어요. 열두 해 하면서 이런 손님은 처음이라.”

“어떤 손님이요.”

은오 씨가 물었다.

“이 년 동안 자리를 한 번도 안 옮기는 손님이요. 둘 다. 단골은 자리를 옮겨요. 해 들면 옮기고 옆이 시끄러우면 옮겨요. 둘은 안 옮겼어요. 옮기면 서로 안 보이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창가 오른쪽에서만 창가 왼쪽 사람 옆얼굴이 보인다. 이 년 동안 계산했다. 가운데 자리는 너무 가깝고, 문 옆은 뒤통수만 보인다.

사장님이 행주를 치웠다. 그 밑에 젖은 의뢰서가 있었다. 사장님은 카운터 서랍에서 볼펜을 꺼냈다. 의뢰인 칸에 이름을 썼다. 여정란. 글씨가 컸다. 손목이 아파서 크게 쓰는 사람의 글씨였다.

“조건 하나. 턱은 뜯지 마요. 재기만 해.”

“재기만 할게요.”

“그리고 둘 다 오늘부터 자리 옮겨요. 가운데로. 이제 옆얼굴 볼 일 없잖아.”

“금요일은요.”

은오 씨가 물었다. 사장님은 볼펜 뚜껑을 닫았다.

“금요일엔 반 사장 커피나 한 잔 줘야지. 도장은 삼 주 재는 거 보고.”

삼 주. 진단 날까지 남은 날과 같았다. 사장님은 그걸 세어 보고 말했을 것이다. 장사하면 센다고 했으니까.

그날 오후 두 시 사십 분. 사무소 막내 조아름이 장비 가방을 메고 두시 턱을 넘었다. 턱에 발이 걸렸다. 넘어질 뻔했다.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소리쳤다.

“발 높이 들어요! 거기 이십이야!”

아름이는 가방에서 균열 게이지를 꺼냈다. 투명한 판 두 장이 겹쳐진, 손바닥만 한 자. 뒷벽 금 두 줄 위에 하나씩 붙였다. 금이 벌어지면 판이 어긋나서 눈금이 움직인다. 턱 옆 벽 아래쪽에는 레벨 측정 점을 박았다. 은색 못 머리 하나. 사장님이 그 못을 오래 봤다. 벽에 못을 박는 게 열두 해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바깥양반이 짠 벽에는 못 하나 안 박고 살았다고. 달력도 압정 대신 테이프로 붙였다고. 사장님은 그 은색 못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한 번 만져 보고, 이건 그 양반도 봐줄 거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제 공식이에요, 선배.”

아름이가 말했다.

“소장님이 알면.”

“의뢰인이 여정란 님이에요. 소장님 사무소 이름으로 계측하는 거 아니고요. 제가 개인 연차 쓰고 나온 거예요. 장비는 대여고요. 대여료는.”

아름이가 은오 씨를 봤다. 은오 씨가 지갑을 꺼냈다. 아름이가 손을 저었다.

“라테 한 잔이면 돼요. 선배가 맨날 먹는 거.”

사장님이 라테를 내왔다. 우유 먼저, 샷 나중. 섞지 않아도 섞인 것. 아름이가 한 모금 마시고 눈을 크게 떴다.

“선배, 이거 이 년 동안 혼자 드셨어요?”

우리는 사장님 말대로 자리를 옮겼다. 가운데 창가 자리는 한 사람 자리라서, 은오 씨가 그 자리에 앉고 나는 가운데 탁자 하나를 끌어다 붙였다. 바깥양반이 짠 탁자는 무거웠다. 다리 네 개가 바닥에 끌리며 낮게 울었다.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아무 말 없이 도로 숙였다. 탁자 두 개가 붙자 가운데에 이음매가 생겼다. 높이가 똑같았다. 일 밀리도 안 어긋났다. 나는 그 이음매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그날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두시에는 넷이 있었다. 이 년 동안 둘이던 두 시가 처음으로 넷이 됐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7월 23일. 두 시. 넷. 턱 22. 게이지 0.3. 레벨 기준점 설치. 탁자 이음매 0. 사장님 바깥양반 이름 모름. 내일 여쭤볼 것.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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