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59자) · 비공식

이십이 센티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이십이 센티미터. 정확히는 이백이십일 밀리에서 이백이십삼 밀리 사이를 오간다. 줄자 끝을 어디에 거느냐, 보도블록 줄눈에 먼지가 얼마나 찼느냐에 따라 일 밀리씩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빼면 이 년 동안 같았다. 스물세 번 쟀다.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큰비가 온 다음 날마다.

은오 씨는 줄자 끝을 쥐고 있었다. 턱 아래, 보도블록 쪽 끝. 손끝에 힘을 너무 주어서 손톱 끝이 하얬다. 내가 줄자를 감으면 그 끝이 은오 씨 손에서 빠져나와 내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딸깍.

“건물이 가라앉으면 이 턱이 커져요.”

내가 말했다.

“보도블록은 구청이 관리하니까 그대로 있고, 건물 앞쪽이 내려앉으면 가게 바닥이 따라 내려가요. 그럼 턱이 낮아지거나, 앞쪽이 들리면 높아지거나. 둘 중 하나로 움직여요. 서른일곱 살 벽돌 건물이 기초가 약하면 그렇게 돼요.”

“근데 안 움직였네요.”

“이 년 동안요.”

은오 씨가 턱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닳아서 둥근 자리. 이 년 동안 은오 씨가 넘은 자리.

“처음엔 왜 쟀어요?”

“사장님이 넘어지셨어요. 재작년 봄에. 쟁반 들고 나오시다가. 손목에 금 가셨어요. 저는 그날 창가에 있었어요. 소리가 컸어요. 잔 네 개가 한꺼번에 깨지는 소리.”

나는 그날 들은 소리를 설명하는 데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잔 네 개. 스물여섯 개였던 잔이 그날부터 스물두 개가 됐다. 사장님은 새로 사지 않았다. 그날 가게 바닥에 쏟아진 것은 라테 셋과 아메리카노 하나였다.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타일 줄눈을 따라 문 쪽으로 흘러와 턱 모서리에서 멈췄다. 사장님은 손목을 쥐고 앉아서 나한테 먼저 말했다. 손님 발 젖어요, 비켜요. 자기 손목보다 손님 발이 먼저였다. 나는 비키지 않고 사장님 손목을 봤다. 부어오르는 속도를 봤다.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서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턱 모서리에 고인 커피를 닦다가, 이 턱이 몇 센티인지 궁금해졌다. 그게 처음이었다.

“고쳐 드린다고 했더니 세 든 가게에서 바닥을 뜯는 거 아니라고 하셨어요. 건물주 허락 받아야 된다고. 그때 건물주는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이었고요.”

“그래서 재기만 했어요?”

“재는 건 허락이 필요 없으니까요.”

은오 씨가 웃었다. 이 년 동안 내가 적은 것 중에 은오 씨 웃음은 아홉 번이다. 오늘로 열 번. 다음 날 나는 노트에 그렇게 적었다. 열 번째는 턱 위에서.

여섯 시 십오 분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딸기 스무디의 시간. 우리는 턱에서 일어났다. 은오 씨가 물었다.

“그 숫자, 진단에 넣을 수 있어요?”

나는 대답을 미뤘다. 넣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그날 밤 나는 노트를 폈다. 남색. 이 년 전 첫 장에 새 손님이라고 적은 그 노트의 일곱 번째 권이다. 한결문구 영감님은 내가 서른 권쯤 샀다고 하시겠지만 노트는 일곱 권이고 나머지는 줄자다. 오늘 장에 적었다.

7월 22일. 두 시 정각. 처음. 가운데 자리에 앉음. 일 미터 사십. 이름 은오. 성은 안 알려 줌. 턱 22. 은오 씨가 끝을 잡음. 처음으로 둘이 잼.

일 미터 사십은 눈으로 잰 값이다. 이 미터 팔십은 작년 겨울, 가게에 아무도 없던 날 레이저 거리계로 잰 값이다. 창가 왼쪽 의자 등받이에서 창가 오른쪽 의자 등받이까지. 그날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나를 보고 뭐 하냐고 물었고, 나는 거리를 잰다고 했다. 사장님은 무슨 거리, 하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장님은 더 묻지 않고 라테를 한 잔 더 내왔다. 서비스라고 했다.

사무소는 두 정거장 떨어진 상가 건물 사 층에 있다. 구조기술사 도상철 사무소. 직원 여섯. 벽에 소장님 골프 사진이 네 장 걸려 있다. 네 장 다 같은 홀이다. 소장님은 그 홀에서 한 번 홀인원을 했고, 그 공을 유리 상자에 넣어 책상에 올려 두었다. 신입이 오면 제일 먼저 그 공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팔 년 동안 그 이야기를 서른 번쯤 들었다. 세지는 않았다. 이건 세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칠월 이십삼일 아침. 나는 소장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손에 A4 두 장. 이 년 동안 잰 턱 스물세 번의 날짜와 값. 그리고 뒷벽 금 두 줄의 폭. 뒷벽 금은 작년부터 쟀다. 금 양쪽에 연필로 작은 점을 찍어 두고 그 사이를 캘리퍼스로 쟀다. 0.3밀리. 여덟 번 재서 여덟 번 다 0.3.

소장님은 종이를 보지 않았다. 공을 봤다.

“정후야, 이게 뭐냐.”

“한결동 건물 계측 기록입니다. 이 년치요. 앞쪽 침하 없음, 뒷벽 균열 진행 없음. 이거 넣으면 C 나옵니다.”

“누가 쟀어.”

“제가요.”

“언제.”

“이 년 동안요. 두 달마다.”

“무슨 자격으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님 자격으로. 창가 오른쪽 자리에 앉는 사람의 자격으로.

“비공식이잖아. 의뢰도 없고, 계측 계획서도 없고, 장비 교정 기록도 없고. 줄자로 쟀지?”

“강철 줄자요. 교정은 안 했습니다.”

“그럼 끝이지.”

소장님이 종이를 내 쪽으로 밀었다. 책상 위를 미끄러져 온 종이가 내 손끝에서 멈췄다.

“그리고 너 거기 단골이라며. 반 사장이 그러더라. 손님이 진단 보고서에 자기가 잰 거 넣으면 그게 뭐가 돼. 이해관계자야, 너.”

“숫자는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숫자는 없지. 숫자 적은 놈이 있지.”

그 말은 은오 씨가 그저께 두시에서 한 말과 모양이 같았다. 숫자는 누가 적어요. 제가요. 그럼 정후 씨가 쓰는 거죠. 두 사람이 정반대 쪽에서 같은 말을 했다. 한 사람은 그래서 넣으라고, 한 사람은 그래서 빼라고.

“소장님은 D를 원하시잖아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뒤에서 누가 키보드를 치다가 멈췄다. 소장님이 공 상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렸다.

“나는 반 사장이 원하는 걸 원하지. 반 사장 다음 건물이 세 채다. 그 세 채 진단이 다 우리한테 와. 너 월급이 거기서 나와. 서른일곱 살 벽돌 건물이야. D 써도 아무도 뭐라 안 해. 뒷벽에 금 있지, 이 층 바닥 처졌지. 틀린 말 하나도 없어.”

“틀린 말은 없는데 빠진 말이 있습니다.”

“빠진 건 비공식이라서 빠진 거고.”

소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의자를 돌렸다.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이번 건, 강 팀장이 맡는다. 너는 빠져.”

나는 종이를 들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믹스커피가 한 잔 있었다. 옆자리 막내가 타 준 것이었다.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설탕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서 위는 쓰고 아래는 달았다. 두시 라테와 반대였다. 두시 라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단맛이다. 사장님이 우유를 먼저 붓고 샷을 나중에 넣어서 섞지 않아도 섞인다. 나는 이 년 동안 그 맛을 한 번도 적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바뀌지 않았으니까.

막내가 의자를 굴려 왔다. 조아름. 스물여섯. 입사 일 년. 사무소에서 유일하게 소장님 공 이야기를 두 번 듣고 두 번 다 처음 듣는 척을 한 사람이다.

“선배, 소장님이 빼라고 하셨죠.”

“응.”

“근데 선배, 그 비공식 말이에요. 공식으로 만들면 되잖아요.”

“어떻게.”

“건물 관계인이 의뢰하면 되죠. 임차인도 관계인이에요. 계측 의뢰서에 임차인 이름 들어가면 공식 계측이에요. 선배 개인 줄자 말고 우리 장비로. 교정 기록 있는 걸로. 지금부터라도 재면 진단 날까지 삼 주 치가 나와요. 이 년 치랑 같은 값이 나오면, 이 년 치도 같이 읽히겠죠.”

나는 막내를 봤다. 막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그러셨어요. 비공식 자료는 공식 자료 옆에 서면 증거가 된다고.”

“너 이거 소장님이 알면.”

“선배가 안 했잖아요. 임차인이 한 거죠.”

사무소를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도 기사님, 반기훈입니다. 소장님한테 들었어요. 이번 건에서 빠지셨다고.”

“네.”

“잘하셨어요. 기사님이 거기 손님이신 줄 저도 어제 알았어요. 서로 불편하잖아요.”

그 사람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두시에서처럼 크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차 소리가 났다. 운전 중이었다.

“그리고 하나만요. 손님으로 계속 가시는 건 자유인데, 사장님한테 괜한 기대 드리지 마세요. 저도 사람 내보내는 거 좋아서 하는 거 아닙니다. 기대가 길어지면 나가는 날 더 힘들어요.”

“그건 반 사장님이 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잠깐 말이 없었다. 신호에 걸렸는지 차 소리가 멎었다.

“기사님, 이 건물 제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아세요?”

“모릅니다.”

“그럼 모르시는 채로 계세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지 않았다. 적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것은 적을 수 없다.

그날 오후 두 시. 나는 두시 턱을 넘었다. 은오 씨는 벌써 와 있었다. 두 시 정각에. 이틀 연속. 가운데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 왼쪽 내 쪽, 아니, 은오 씨 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창가 오른쪽에 앉지 않고 은오 씨 맞은편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일 미터 사십이 아니라 팔십 센티. 탁자 하나 너비.

“빠졌어요.”

내가 말했다.

“뭐에서요?”

“진단 팀에서요. 다른 팀장이 해요.”

은오 씨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두 번째 모금을 마시기 직전이었다. 입술이 젖어 있었다.

“그럼 이제 정후 씨가 쓰는 한 줄이 아니네요.”

“네.”

“잘됐네요.”

은오 씨는 그렇게 말하고 창밖을 봤다. 잘됐다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계측 의뢰서. 빈칸이 많은.

“이건 은오 씨 말고 사장님이 쓰셔야 돼요. 임차인이니까. 공식으로 재려면.”

은오 씨가 서류를 봤다. 빈칸을 봤다. 의뢰인, 대상 건물, 계측 항목, 기간. 은오 씨는 한참 보다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 스물두 개. 행주가 잔 안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우리 둘이 동시에 자기를 보자 사장님이 손을 멈췄다. 우리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우리가 탁자 하나에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을 봤다. 사장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그러고는 행주를 접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뭔데. 둘 다 얼굴이 무슨 계약서 들고 온 사람 같네.”

은오 씨가 나를 봤다. 나는 서류를 들고 일어섰다.

카운터까지는 여섯 걸음이다. 이 년 동안 주문할 때와 계산할 때 하루 두 번씩 걸었다. 그날은 그 여섯 걸음이 턱보다 높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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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19· 3화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

    • 달밤에책2026.05.20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