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1자) · 사 분 오십 초
조건부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심사는 십일월 십삼일 금요일 오후 두 시, 시청 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정 선생은 전날 시장을 돌면서 심사 날짜를 알렸다. 기울기가 있었다.
“내일 시청에서 사진 찍는대. 1998년 사진 속 사람들 다 오래.”
그래서 한 시 반, 별관 로비에 여든네 명이 서 있었다. 개관식 사진 속 얼굴 아래 이름을 적었던 사람들, 금요일 막차 단골들, 박 여사 반 졸업생 넷, 김 할아버지 인쇄소 옛 직원들, 담요 든 할머니 둘. 몇몇은 사진을 찍으려고 옷을 차려입고 왔다. 한 할아버지는 넥타이를 맸다. 대회의실 방청석은 서른 자리였다. 청원 경찰이 난처한 얼굴로 여름을 봤다. 여름은 정 선생을 봤다. 정 선생은 로비 의자에 앉아 사탕 봉지를 뜯고 있었다.
“사진 찍는다며.”
“심사라고요.”
“심사 끝나고 찍으면 되지.”
여름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틈이 없었다. 청원 경찰이 방청석을 서서 듣는 자리까지 늘려 주었다. 서서 듣는 사람이 쉰넷이었다. 회의실 뒤쪽 벽이 사람 등으로 채워졌다.
입장 전 복도에서 오세진이 도현과 여름 앞을 지나갔다.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걸음을 늦추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심사위원석에서는 저 누구 편도 아닙니다.”
“압니다.”
“그러니까 숫자로만 하세요. 제가 숫자는 봅니다.”
오세진은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여름은 그 등을 봤다. 넥타이가 반듯했다. 오늘은 풀려 있지 않았다.
심사위원은 다섯이었다. 문화체육국장과 오세진 과장, 외부 전문가로 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와 이웃 시 도서관장, 그리고 주민 대표로 김용택 씨. 철물점 김용택. 개관식 사진 뒷줄 가운데 안경 쓴 남자. 금요일 밤 사진 아래 자기 이름을 자기 손으로 적은 사람이었다. 김용택 씨는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방청석을 한 번 둘러보고, 헛기침을 두 번 했다. 여름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서류로 고개를 숙였다.
앞줄 가운데 참관석에 배문수가 앉아 있었다. 도시건설위원장 자격의 참관이었다. 다리를 꼬고, 구두 끝을 까딱거렸다. 뒤쪽 벽을 채운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보고, 웃었다. 이가 보였다.
도현이 발표했다. 십오 분이 주어졌다. 도현은 첫 장에 마을버스 막차 시각을 띄웠다. 21시 30분, 실제 출발 21시 28분. 둘째 장에 시범 막차 탑승 추이. 열하나, 열일곱, 스물셋, 서른하나, 서른여섯. 셋째 장에 향토자료 디지털화 사천백팔십 점 완료, 유일본 육백이십 점 온라인 공개. 넷째 장에 금요일 야간 개관 방문자 누적 육백사십 명. 다섯째 장이 1998년 개관식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 이름이 여든한 개 적혀 있었다.
도현이 사진을 띄우자 뒤쪽 벽에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자기 얼굴을 찾는 소리였다.
발표가 끝나자 대학 교수가 먼저 물었다.
“야간 개관이 석 달 동안 잘됐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 년 가겠습니까. 처음엔 다들 신기해서 옵니다.”
도현이 대답하려는데 교수가 여름 쪽을 봤다. 방청석에 앉은 사서 명찰을 본 것이다.
“현장에 계신 분이 답해 주시죠.”
여름은 일어섰다. 준비한 답이 없었다. 대신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신기해서 오신 분은 첫 주에 끝났습니다. 둘째 주부터 오신 분들은 자기 사진을 찾으러 오셨어요. 이름을 적으러요. 지금 사진 마흔 장에 이름이 여든한 개 붙었습니다. 한 장에 이름이 다 붙으려면 몇 년 걸릴 겁니다. 사진은 사천 장이 넘고요.”
교수는 펜을 멈추고 여름을 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적었다. 여름은 앉았다. 앉고 나서야 무릎이 떨리는 걸 알았다.
그다음 배문수가 손을 들었다. 참관인은 질문권이 없었다. 국장이 난처하게 웃으며 「짧게 하시죠」 했다.
“숫자 좋습니다. 근데 심사위원님들, 이 관장님 경위서가 두 건 올라와 있는 거 아시죠. 주민 개인정보 무단 사용하고, 사서는 민간 업체 서류를 몰래 촬영하고. 절차 안 지키는 기관에 존치를 주면 다른 분관들이 뭘 배우겠습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대학 교수가 서류를 넘겼다. 이웃 시 도서관장이 도현을 봤다. 도현은 대답하려고 했다. 여름이 먼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컸다. 첫 회의 때 펜을 놓던 소리처럼.
“경위서는 둘 다 사실입니다. 편지 이백 통은 동의 없이 보냈고, 서류 사진은 제가 찍었습니다. 둘 다 징계받겠습니다.”
배문수가 웃었다.
“그래요, 그럼—”
“그런데 그 서류가 무슨 서류였는지는 위원장님이 제일 잘 아실 겁니다. 참관란에 위원장님 이름이 인쇄돼 있었으니까요.”
배문수의 구두 끝이 멈췄다. 뒤쪽 벽에서 누가 헛기침을 했다. 오세진이 심사위원석에서 볼펜을 내려놓았다.
국장이 황급히 말했다.
“그 부분은 심사 범위가 아니라서요. 다음, 주민 의견 진술 순서입니다.”
주민 대표 진술자는 한미숙이었다. 쉰일곱 명 서명 의견서 맨 앞에 이름이 있었다. 어머니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발언대에 섰다. 마이크가 너무 높아서 한 번 내렸다. 끼익 소리가 났다.
“한미숙입니다. 1998년에 이 분관 세우자고 서명 받으러 다닌 사람입니다. 사천이백 명 받았습니다. 삼 년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준비한 종이를 보지 않았다. 종이는 손에 접힌 채로 있었다.
“그때 매곡동 대문은 거의 다 두드렸습니다. 안 열어 준 집도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역 앞 이층 양옥이었는데.”
어머니는 참관석을 봤다.
“위원장님 댁이었죠. 그때 위원장님이 대문 안에서 그랬어요. 도서관 생기면 땅값 떨어진다고.”
뒤쪽 벽에서 웃음이 터졌다가 황급히 잦아들었다. 배문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 삼 년 동안 저는 내 딸을 할머니 등에 두고 다녔습니다. 개관식 사진에 우리 딸은 뒷줄 기둥 옆에 있어요. 울면서. 저는 앞줄에 남의 집 애 손 잡고 서 있었고요.”
어머니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 여름은 방청석 둘째 줄에서 그 멈춤을 봤다. 어머니 손에 쥔 종이가 한 번 구겨졌다.
“그 애가 지금 저 분관 사서입니다. 팔 년째요. 이번 넉 달 동안 그 애가 3층 상자 사천백팔십 개를 다 열었습니다. 저는 옆에서 사진 한 장 떼어 준 거밖에 없어요.”
어머니는 마이크를 한 번 더 내렸다. 끼익.
“이번에는 그 애가 앞줄에 서게 해 주세요. 오 분 다 됐죠.”
어머니는 발언대에서 내려왔다. 사 분 오십 초였다. 여름은 그걸 쟀다. 재지 않으면 다른 걸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때 회의실 뒷문이 열렸다. 회색 점퍼에 목걸이 신분증을 건 남자가 들어왔다. 감사관실 이정훈이었다. 그는 뒤쪽 벽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참관석 옆에 섰다. 그리고 배문수에게 몸을 숙여 무언가를 말하고, 봉투 하나를 건넸다. 배문수는 봉투를 열어 첫 장을 읽었다. 읽는 동안 구두 끝이 한 번도 까딱거리지 않았다.
배문수는 일어섰다. 국장에게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 뒷문으로 나갔다. 비서가 따라 나갔다. 뒤쪽 벽의 여든네 명이 길을 비켜 주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담요 든 할머니만 담요를 조금 들어 올려 그가 지나갈 자리를 넓혀 주었다.
심사는 네 시에 끝났다. 결과는 한 달 뒤에 통보된다고 했다.
별관 앞 계단에서 여든네 명이 사진을 찍었다. 정 선생이 약속한 사진이었다. 사진사는 김 할아버지 인쇄소 옛 직원이었다. 1998년 사진처럼 앞줄과 뒷줄을 맞추라고 누가 말했다. 다들 자기 자리를 찾느라 한참 걸렸다. 여름은 뒷줄로 가려다가 어머니에게 팔을 붙잡혔다.
“앞줄.”
여름은 앞줄에 섰다. 맨 오른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도현이 거기 설 차례였다. 도현은 사진사 옆에 서서 계수기를 누르고 있었다. 딸깍, 딸깍. 여든넷.
“관장님, 거기 말고 여기요.”
여름이 불렀다. 도현이 계수기를 주머니에 넣고 왔다. 맨 오른쪽에 섰다.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사진사가 셋을 셌다.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경위서 두 건의 처분이 먼저 나왔다. 둘 다 견책이었다. 여름은 처분서를 받아 서랍 맨 아래 칸에 넣었다. 흰 봉투가 있던 자리였다. 십이월이 되자 도현은 본청으로 갔고, 분관에는 관장 직무대리로 본관 팀장이 일주일에 두 번 왔다. 금요일 밤 도서관은 계속 열렸다. 계단참 계수기는 민지가 눌렀다. 민지는 누를 때마다 숫자를 소리 내어 불렀다.
결과는 십이월 십육일에 왔다. 도현은 그때 이미 본청 지하 서고에 있었다. 발령은 십이월 일일자로 났고, 오세진이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은 자리였다.
통보문은 한 줄이었다.
「매곡분관 존치. 단, 2028년까지 연 이용자 삼만 오천 명 이상 회복 조건부.」
같은 날 지역 신문 일면에 기사가 났다. 「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처남 회사 위탁 협약 관여 의혹… 감사 착수.」 배문수는 사흘 뒤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의원직은 내려놓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여섯 시, 도현이 분관에 왔다. 본청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여름은 3층 창가에 있었다. 통보문을 인쇄해서 책상에 놓아두고.
“삼만 오천이면 지금보다 육천 늘려야 합니다.”
도현이 문가에서 말했다. 숫자부터 말했다. 여름은 그게 이제 싫지 않았다.
“알아요.”
“저는 본청에 있어서 평일엔 못 옵니다.”
“알아요.”
“금요일 밤마다 자원봉사로 오겠습니다. 계수기 누르는 거라도.”
여름은 창밖을 봤다. 십이월이라 여섯 시인데 어두웠다. 정류장 불이 켜져 있었다. 창유리에 입김이 조금 서렸다가 사라졌다.
“관장님.”
“이제 관장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름은 거기서 준비하지 않은 말을 했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도현이 여름을 봤다.
“…제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요.”
“제가 먼저 물었어요.”
도현이 웃었다. 소리 없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서.
“같이 하시겠습니까?”
여름은 그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은 답이 나왔다.
“두 번 틀렸으니까, 세 번째는 안 틀리고 싶어요.”
그리고 여름은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폐관 결정 시. 봉투를 도현에게 내밀었다.
“이거 가지고 계세요.”
“왜요.”
“제가 가지고 있으면 또 서랍에 넣을 것 같아서요. 판단 빨리 하는 사람이라.”
도현은 봉투를 받았다. 무게를 재듯 손바닥에 잠깐 올려 두었다. 열어 보지 않았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계수기가 들어 있던 주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