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1자) · 그래서요

연착륙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그 금요일 뒤로 한여름은 도현에게 필요한 말만 했다.

필요한 말은 하루에 대여섯 마디였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3층 시정 완료했습니다」, 「금요일 막차 탑승 스물셋입니다」. 마지막 말은 셋째 금요일 밤 열 시 사십 분에 정류장에서 들었다. 첫째 주 열하나, 둘째 주 열일곱, 셋째 주 스물셋. 스물을 넘긴 첫 밤이었다. 한여름은 그 숫자를 말하면서도 도현 쪽을 보지 않고 버스 뒤꽁무니를 봤다. 도현은 그 숫자를 존치 근거 문서 넷째 쪽에 적었다. 적는 손이 조금 무거웠다. 숫자는 올라가는데 말은 줄었다.

말이 준 자리를 정 선생이 채웠다. 둘째 주 월요일, 도현은 일층 화장실 앞에서 정 선생이 어르신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관장이 잘린대. 사서가 그만둔대. 둘이 싸워서.」 셋 다 반쯤 맞고 반쯤 틀렸다. 반쯤 맞은 게 문제였다. 그날 오후 김 할아버지가 관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관장 양반 그만두지 마쇼」 하고 인쇄소 명함을 한 장 두고 갔다. 명함 뒤에 손으로 「급하면 전단 공짜」라고 적혀 있었다. 박 여사는 다음 날 1974년 졸업생 둘을 더 데려왔다. 윤 기사님은 구 사장에게 전화해서 금요일 막차를 「사서 선생 돈 받지 말라」고 했다고, 도현에게 자랑하러 왔다. 도현은 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로잡지 않았다. 바로잡으면 누가 그만두는지 말해야 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현은 짐작했다. 그날 밤 로비 자판기 앞에서 오세진이 캔커피를 들고 나가던 걸음. 너무 빨랐다.

구월 삼십일 아침, 도현은 차를 두고 버스로 시청에 갔다. 7번에서 간선으로 한 번 갈아탔다. 사십 분. 무릎 위에 서류 봉투를 올려놓고 창밖을 봤다. 매곡동을 벗어나자 길이 넓어지고 건물이 높아졌다. 신도시 호수공원 옆에 시립 본관이 유리벽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좋은 건물이었다. 도현은 그 건물이 좋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 유리벽 앞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 중에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셌다. 여섯 정거장 동안 셌다. 영이었다.

오전 열 시, 도현은 시청 삼층 과장실에 있었다.

과장 책상 의자에 오세진이 아니라 배문수가 앉아 있었다. 오세진은 자기 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인조 가죽이 쉭 하고 꺼지는 소리가 도현이 들어설 때 났다. 배문수는 과장 명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관장님, 오늘이 마감이지.”

“네.”

도현은 서류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배문수가 봉투를 열어 첫 장을 꺼냈다. 제목을 읽었다. 소리 내어.

“매곡분관 존치 근거.”

배문수는 둘째 장을 넘기지 않았다. 첫 장을 들고 오세진 쪽으로 흔들었다.

“과장님, 이거 시킨 거예요?”

“아닙니다.”

“그럼 이게 뭐야.”

도현이 대답했다.

“기능 조정 방안은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걸 씁니다. 금요일 야간 개관 세 번에 방문자 백구십 명, 시범 막차 탑승 쉰한 명. 향토자료 디지털화 이천팔백 점. 자원봉사 넷에서 열하나로 늘었고요. 1998년 서명자 가운데 열아홉 명이 다시 분관에 왔습니다.”

“숫자 좋아하시네.”

“첫 회의 때부터 그랬습니다.”

도현은 봉투에서 사진 한 장을 더 꺼냈다. 1998년 개관식 사진, 원본에서 뽑은 것. 뒷줄 맨 왼쪽 기둥 옆까지 다 나온 것. 사진 아래에 이름이 서른한 개 적혀 있었다. 금요일 밤마다 사람들이 한 줄씩 적어 넣은 이름을 도현이 옮겨 적은 것이었다.

“이 분관은 사천이백 명이 삼 년 동안 서명해서 세운 겁니다. 그중 서른한 명이 지금 이 사진 속 자기 얼굴 아래 이름을 적었습니다. 심사 날 이 사진을 심사위원 다섯 명 앞에 놓겠습니다.”

배문수는 사진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사진을 서류 위에 엎어 놓고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두껍고 뜨거운 손이었다.

“관장님. 내가 알아듣게 말할게. 그 부지는 매곡 역세권 개발 계획에 들어가 있어요. 분관이 비면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오고, 위탁 운영자가 정해져요. 다 정해져 있어. 관장님이 숫자를 몇 개 모아 와도, 그 숫자는 심사위원 다섯 명 책상에 올라가요. 다섯 명 중에 둘은 시청 사람이고.”

“위탁 운영자가 새봄문화개발입니까?”

배문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이가 보였다.

“공모 절차가 있어요.”

“대표가 위원장님 처남이시던데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오세진이 소파에서 몸을 조금 일으켰다. 쉭.

배문수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래서요.”

그 한마디에 이유가 없었다. 변명도, 논리도, 예산도, 효율도. 도현은 그 한마디 앞에서 자기가 준비한 문장들이 전부 한 방향으로만 서 있다는 걸 알았다. 설득하는 방향으로. 이 사람은 설득될 사람이 아니었다. 설득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오세진에게는 이동도서관 세 대라는 이유가 있었다. 틀렸을지 몰라도 이유였다. 배문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땅이 있고,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전부라서 흔들 데가 없었다.

“이백 명 명단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사관실에 넣으신 민원 말입니다.”

“무슨 명단.”

“제 책상 위에 있던 명단입니다. 곽 대표 일행이 이층 복도를 지나간 다음 날부터 민원이 준비됐습니다.”

“관장님, 말조심해요. 그거 명예훼손이에요.”

배문수는 일어섰다. 과장 의자가 뒤로 밀려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 사서. 한여름이. 계약직 아니지? 정규직도 전보는 돼요. 시립에 분관이 열한 개야. 제일 먼 데가 버스로 한 시간 반이던가.”

도현은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계수기가 만져졌다. 금요일마다 계단참에서 누르던 것. 그는 계수기를 쥐었다. 딸깍, 소리가 났다. 방 안에 있는 누구도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위원장님. 보고서는 이걸로 제출합니다. 기능 조정 방안은 쓰지 않습니다. 관장 이름으로는요.”

“그럼 관장을 바꾸면 되겠네.”

배문수는 오세진을 봤다.

“과장님, 발령 준비하세요. 심사 끝나고. 표 안 나게.”

배문수가 나갔다. 비서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그가 남긴 온기가 과장 의자에 남아 있었다.

오세진은 오랫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도현도 서 있었다. 한참 뒤 오세진이 말했다.

“관장님.”

“네.”

“십이월 일일자로 본청 자료관리팀 가셔야 될 겁니다. 지하 서고요. 제가 막을 수 있는 게 거기까지예요. 그보다 먼 데는 막겠습니다.”

“과장님이 막으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오세진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밖으로 시청 앞 광장이 보였다. 분수가 멈춰 있었다.

“저도 매곡동 살았어요. 초등학교 때. 분관 생기기 전에요. 도서관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탔어요. 그래서 안 갔어요. 한 번도.”

그는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그래서 이동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건물 말고 차가 가면 된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분관 하나 붙들고 있는 것보다 차 세 대가 낫다고.”

“압니다.”

“근데 오늘은.”

오세진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명패를 반듯하게 돌려놓았다. 배문수가 두드리다 간 자리였다.

“오늘은 그 차 세 대도 새봄이 위탁받는다는 걸 알았네요. 계약서 초안에 들어 있더라고요. 제 결재 전에.”

도현은 그 말을 들고 과장실을 나왔다. 계약서 초안. 결재 전에 들어 있었다는 차 세 대. 오세진은 그 문서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채로 말했다. 도현은 그게 오세진이 할 수 있는 최대라는 걸 알았다. 복도에서 계수기를 꺼내 봤다. 숫자창에 1이 떠 있었다. 아까 주머니 안에서 누른 것. 도현은 그것을 0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늘 이 방에서 센 사람은 하나였다. 그 하나가 무엇이었는지는 도현만 알았다.

본청에서 분관까지 버스로 사십 분이 걸렸다. 한 번 갈아탔다. 7번 마을버스로 갈아탈 때 해가 지고 있었다. 기사는 도현을 알아봤다. 금요일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

“관장님, 오늘은 금요일 아닌데요.”

“알고 탔습니다. 오늘은 그냥 타 보고 싶어서요.”

기사는 룸미러로 도현을 한 번 보고 액셀을 밟았다. 버스가 흔들리는 동안 기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금요일 막차 손님들이 관장님 얘기 많이 해요. 사서 선생 얘기도 하고. 둘이 싸웠다고. 근데 싸운 사람들이 같이 정류장에 서 있으면 그건 싸운 게 아니라던데. 담요 들고 다니는 할머니가.”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매곡시장 간판들이 지나갔다. 미숙 수선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재봉틀 앞에 누가 앉아 있는 그림자가 유리에 비쳤다가 지나갔다.

분관에 도착한 것은 여덟 시 반이었다. 일층 불이 꺼져 있었다. 직원들은 퇴근했다. 반납함 투입구에 책 한 권이 반쯤 걸려 있었다. 도현은 그 책을 밀어 넣었다. 안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빈 로비에 울렸다. 도현은 관장실에 들르지 않고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참마다 공기가 한 도씩 식어 있었다. 구월 말이었다. 3층이 처음으로 덥지 않았다. 계단 난간이 손바닥에 서늘했다.

향토자료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창밖 가로등 빛만 들어와 서가 끝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서가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팔월 내내 더위에 묻혀 있던 냄새가 선선해진 공기 속에서 제 모양을 찾고 있었다. 북 스캐너 받침대에 천이 덮여 있었고, 칠판에는 한여름 글씨로 누적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천팔백십사. 오늘 오후에 고친 숫자였다.

창가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다. 기운 의자에, 기운 채로. 짧은 다리 밑 받침이 빠져 있었다. 일부러 뺀 것 같았다. 접힌 종이 받침은 그녀 손에 쥐여 있었다. 손가락이 그 종이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한여름이었다.

책상 위에 흰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가로등 빛에 봉투 겉 글씨가 보였다. 폐관 결정 시.

도현은 문가에 섰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골랐다. 사과부터 할지, 설명부터 할지, 오늘 본청에서 있었던 일부터 할지. 셋 다 문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된 문장은 셋 다 도현이 먼저 말하는 문장이었다. 첫 회의 때처럼. 짧게 끝내려는 문장.

그가 입을 열기 전에 한여름이 먼저 말했다. 창밖을 보던 얼굴을 도현 쪽으로 돌리지 않고. 판단을 끝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끝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관장님.”

“네.”

“연착륙이 뭐예요?”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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