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3자) · 뒷줄 맨 왼쪽
편지 이백 통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디지털화는 팔월 첫 월요일에 시작했다.
스캐너는 두 대였다. 한 대는 분관에 원래 있던 평판 스캐너이고, 한 대는 도현이 시립 본관에서 빌려 온 북 스캐너였다. 빌리는 데 삼 주가 걸렸다. 북 스캐너는 책을 펼쳐 받침대에 올리면 위에서 카메라가 내려다보며 찍는다.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받침대 조명이 한 번 번쩍했다. 3층 자료실에서 그 번쩍임이 하루에 몇백 번씩 났다.
한 대로 하면 백칠십이 일, 두 대면 여든여섯 일. 심사까지 백 일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여섯이었다. 여름과 도현, 그리고 자원봉사자 넷.
자원봉사자는 도현이 모았다. 어떻게 모았는지 여름은 첫날 알았다. 1998년 분관 설립 서명부 복사본이 관장실 책상에 펼쳐져 있었다. 사천이백 명. 도현은 그중 아직 매곡동 주소가 살아 있는 사람을 주민센터 협조로 추려서, 이백 명에게 손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이백 통을 다 손으로 썼다고. 답장이 열아홉 통 왔고, 그중 넷이 3층 계단을 올라왔다.
첫째는 김 할아버지였다. 일흔넷, 매곡시장 입구에서 사십 년 동안 인쇄소를 했다. 종이를 만지는 손이 빨랐다. 둘째는 박 여사였다. 일흔하나, 전직 초등학교 교사. 1974년 졸업 문집 상자를 보더니 「이거 내 반 애들이야」 하고 한참 말이 없었다. 셋째는 윤 기사님이었다. 1998년에 마을버스 7번을 몰았다고 했다. 넷째가 여름의 어머니였다.
“엄마가 왜 여기 있어.”
여름은 계단참에서 물었다. 어머니는 손가방을 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3층까지 올라오는 데 두 번 쉬었다고 했다.
“편지 받았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네가 말 안 했잖아.”
어머니는 여름을 지나쳐 자료실로 들어갔다. 소매를 걷어붙였다. 걷어붙이는 손이 늘 하던 대로 빨랐다.
“팔 년 동안 여기 다니면서 한 번도 얘기 안 했어. 3층에 뭐가 있는지, 네가 뭘 하는지.”
여름은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도 이십팔 년 동안 한 번도 얘기를 안 했다. 둘 다 안 했다. 둘 다 안 한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작업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김 할아버지는 평판 스캐너를 맡았고, 박 여사는 순서를 맡았다. 둘은 첫날 오전부터 싸웠다.
“오래된 것부터 해야지. 삭는 순서대로.”
“아니, 사람들이 찾는 것부터 해야지. 문집부터.”
“문집은 안 삭아. 회보가 삭지.”
“회보는 아무도 안 봐.”
여름이 끼어들기 전에 윤 기사님이 말했다.
“버스 시간표부터 하쇼. 그게 제일 얇어.”
둘이 동시에 윤 기사님을 봤다. 윤 기사님은 그 눈길에 아랑곳없이 마분지 시간표를 한 장씩 받침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1977년 7번 노선 시간표. 첫차 다섯 시 사십 분, 막차 열 시 반.
“열 시 반.”
여름이 읽었다.
“그땐 열 시 반까지 다녔지. 공장 사람들 태우느라. 공장 없어지고 아홉 시 반 됐어.”
윤 기사님은 그 말을 하고 셔터를 눌렀다. 번쩍. 여름은 그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적으면서, 도현의 존치 근거 문서 첫 줄에 막차 시각이 적혀 있다는 걸 떠올렸다. 여름은 그 문서를 본 적이 없었다. 민지가 봤다고 했다. 민지 말이 정 선생 입을 거치지 않은 말이라 믿을 만했다.
박 여사는 결국 문집을 이겼다. 이틀째부터 1974년 졸업 문집이 받침대에 올랐다. 박 여사는 한 장 넘길 때마다 이름을 불렀다. 「얘는 반장. 얘는 맨날 지각. 얘는 지금 미국 산대.」 김 할아버지가 옆에서 「조용히 좀 넘겨」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박 여사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손을 멈추고 그 얼굴을 한 번씩 봤다. 쉰두 명을 다 부르는 데 오전이 다 갔다. 그 반 아이들 가운데 셋이 매곡동에 아직 살았다. 박 여사는 그날 저녁 그 셋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음 주에 둘이 왔다.
팔월 셋째 주 수요일에 감사관이 왔다.
정 선생이 먼저 카운터에 와서 알렸다.
“여름아, 시청에서 감사하러 왔대.”
“누가요.”
“고맙다고 왔대. 감사하다고.”
여름은 반납 도서를 내려놓고 로비로 나갔다. 회색 점퍼에 목걸이 신분증을 건 사십 대 남자가 서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신분증에 「감사관실 이정훈」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맙다고 온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관장님 계십니까?”
“본청 회의 가셨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민원이 들어와서요. 이 분관에서 1998년 서명부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써서 주민들한테 우편물을 보냈다는 민원입니다.”
여름은 그 말을 삼 초쯤 들고 있었다. 민원을 넣은 쪽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로비 게시판 옆 액자 속 배문수 위원장의 의정 보고 사진이 이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자원봉사 활동 전부 중지 요청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정보 이용 동의 없이 모집된 거라서요.”
“동의는 받으면 됩니까?”
“원칙적으로는 사후 동의도 절차가 있긴 한데—”
“지금 3층에 계십니다. 올라가시죠.”
감사관은 계단을 올라가며 두 번 숨을 쉬었다. 3층 공기가 그의 점퍼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자료실 문을 열자 번쩍, 하고 북 스캐너 조명이 터졌다. 김 할아버지가 문집 한 장을 넘기고, 박 여사가 순서표에 체크를 하고, 윤 기사님이 마분지를 받침대에 올리고, 여름의 어머니가 사진첩에서 사진을 한 장씩 떼어 내고 있었다. 넷 다 돋보기를 끼고 있었다. 감사관이 들어오자 넷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돋보기 네 개가 한꺼번에 반짝였다.
여름은 서가 아래 서랍에서 빈 양식을 꺼냈다.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 도서관 회원 가입 때 쓰는 양식이었다. 여름은 빈칸에 목적을 한 줄 손으로 적었다. 「1998년 분관 설립 서명 참여자 연락 및 향토자료 디지털화 자원봉사.」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돋보기를 내리고 펜을 받았다. 이름을 썼다. 한미숙. 글씨가 빠르고 컸다. 김 할아버지가 두 번째로 썼다. 인쇄소 사람답게 이름을 네모 칸 한가운데 정확히 넣었다. 박 여사는 쓰면서 감사관에게 물었다.
“선생님, 나 이 서명부에 1998년에 서명했어요. 그때 동의서 같은 거 안 받았는데, 그것도 문제예요?”
감사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윤 기사님은 서명을 마치고 펜을 감사관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다음엔 버스 타고 오슈. 7번. 아홉 시 반 막차 전에만 가면 돼.”
감사관은 동의서 네 장을 받아 서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여름에게 말했다.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민원은 민원대로 처리됩니다. 관장님 앞으로 경위서는 나갈 겁니다. 편지 보낸 건 이미 보낸 거라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 의견인데요.”
감사관은 계단 난간을 손으로 한 번 쓸었다. 손바닥에 먼지가 묻어났다.
“민원 넣은 쪽이 편지 받은 이백 명 명단을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감사관이 간 뒤 여름은 3층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이백 명 명단은 관장실 책상 위에 있었다. 관장실 문은 낮에 잠그지 않는다. 지난주 화요일, 곽정일 일행이 헤어드라이어를 가지러 일층으로 내려가던 길에 이층 복도를 지나갔다.
세 시에 도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청 회의가 끝났다고 했다. 여름은 감사관 이야기를 했다. 동의서 네 장, 경위서, 그리고 이백 명 명단.
“관장실 문, 낮에 안 잠그시죠.”
“안 잠급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새봄 사람들이 이층 복도를 지나갔어요. 드라이어 가지러.”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버스 안내 방송 소리가 작게 들렸다. 도현은 본청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중이었다.
“경위서는 제가 씁니다. 편지는 제가 보낸 거니까.”
“그 편지요.”
“네.”
“이백 통 진짜 손으로 쓰셨어요?”
“네. 사흘 걸렸습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새로 생겼습니다.”
“왜 손으로 쓰셨어요. 인쇄하면 한 시간인데.”
도현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1998년에 서명 받으러 다닐 때, 인쇄한 전단지는 다들 대문 앞에서 버렸습니다. 손으로 쓴 건 안 버렸고요. 그걸 봤습니다. 여덟 살 때.”
여름은 수화기를 쥔 채 서 있었다. 서명 받으러 다닐 때. 여덟 살 때. 이 사람은 그 여름에 누구 손을 잡고 대문을 두드렸나. 여름은 그 질문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답을 알 것 같아서였다. 사진 앞줄 맨 오른쪽.
“경위서에 제 이름도 넣으세요. 동의서 받은 건 저니까.”
“그건 안 됩니다.”
“왜요.”
“한 사람이 쓰는 게 덜 두껍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여름은 끊긴 전화를 한참 귀에 대고 있었다. 뚜, 뚜, 하는 소리가 세 번 나고 멎었다.
오후 다섯 시, 어머니가 사진첩에서 마지막 사진을 떼어 냈다. 1998년 개관식 사진이었다. 신문 축쇄판에 실린 것보다 크고 선명한 원본 인화지였다. 누가 기증한 사진첩에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받침대에 올리기 전에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자리를 짚었다.
“여기.”
여름은 어머니 어깨 너머로 봤다. 앞줄이 아니었다. 뒷줄 맨 왼쪽, 현수막 기둥에 반쯤 가린 자리. 흰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가 서 있었고, 할머니 등에 아이가 업혀 있었다. 아이는 카메라 쪽을 안 보고 앞줄 쪽을 보고 있었다. 입이 벌어져 있었다. 우는 입이었다.
“너야.”
여름은 그 아이를 봤다. 할머니 등에서, 앞줄 맨 오른쪽 남의 집 아이 손을 잡고 선 엄마 쪽을 보며 우는 아이.
“신문에는 잘려서 안 나왔어. 기둥 때문에.”
어머니는 그 말만 했다. 왜 앞줄에 있었는지, 왜 딸을 뒷줄에 두었는지, 왜 이십팔 년 동안 말하지 않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여름도 묻지 않았다. 둘 다 사진을 봤다. 받침대 조명이 켜져 있어서 사진 표면이 조금 번들거렸다.
어머니가 사진을 받침대에 올리고 셔터를 눌렀다. 번쩍.
“이것도 넣어야지. 목록에.”
어머니가 말했다. 여름은 목록에서 그 사진첩 번호를 찾아 불러 주었다. 이천삼백십팔. 불러 주는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어머니는 그 번호를 사진 뒷면에 연필로 적었다. 획이 빠르고 컸다.
그날 스캔한 것이 백사십 점이었다. 누적 칠백구 점. 여름은 3층 칠판에 숫자를 고쳐 쓰면서, 뒷줄 맨 왼쪽 그 아이도 오늘 칠백구 점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다는 걸 생각했다. 번호가 붙었다. 이제 이 방에서 나갈 때는 번호를 달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