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2자) · 빨간 스티커
두 번째 오해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한여름이 관장실 문을 두드린 것은 월요일 오전 열 시 사 분이었다. 노크는 두 번이었고,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셌다.
도현은 그 사 분을 기억했다. 열 시에 직원들 책상에 하반기 운영안 수정본을 돌렸고, 한여름 책상이 제일 멀었다. 걸어가서 앉고, 두 장을 넘기고, 셋째 항목에서 멈추고, 일어서서 이층까지 올라오는 데 사 분. 빠른 걸음이었다.
수정본 셋째 항목은 이랬다.
3. 분관 개관 삼십 주년 준비 — 2028년 5월 14일.
“관장님.”
“예.”
“삼십 주년 준비는 왜 넣으셨어요.”
“이 년 뒤니까요.”
“심사가 넉 달 뒤인데요.”
“압니다.”
“떨어지면 이 년 뒤가 없는데요.”
도현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넣었습니다. 심사위원이 이 운영안을 봅니다. 이 년 뒤 계획이 있는 기관하고 없는 기관 중에 어디를 닫겠습니까?”
한여름은 운영안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종이 모서리가 구겨졌다.
“계산이시네요.”
“계산이죠.”
“그럼 삼십 주년은 진짜로 안 하실 거고요.”
“합니다. 살아남으면 하고, 못 살아남아도 자료는 남깁니다.”
도현은 둘째 항목을 짚었다. 향토자료 디지털화.
“폐관되면 3층 자료가 시립 수장고로 갑니다. 수장고에 자리가 없습니다. 상자째 창고로 가거나, 분류해서 일부는 버려집니다. 디지털로 떠 두면 버려져도 남습니다.”
한여름은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들고 온 것을 하나 더 꺼냈다. 분관 연혁 자료철이었다. 파란 표지에 모서리가 닳은 것. 그녀는 자료철을 책상에 놓고 한 장을 폈다. 접혀 있던 자국이 선명한 장이었다.
2018년. 이용자 수가 가장 크게 떨어진 해.
“이거 접으신 분, 관장님이죠.”
“네.”
“이 해에 제가 대출 담당이 됐습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여름이 그 침묵을 어떻게 읽을지 알았다. 알면서 바로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먼저 판단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어디까지 혼자 가는지.
“표시해 두신 거예요. 제 해를.”
“아닙니다.”
“그럼요?”
도현은 자료철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해 옆 동네에 시립 큰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이용자가 그리로 갔습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왜 접으셨어요.”
“2018년부터 향토자료 목록이 생겼습니다. 그전에는 상자에 번호도 없었어요. 이용자가 줄기 시작한 해에, 누가 3층에서 상자를 한 해에 백 개씩 열고 있었습니다.”
한여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보려고 접어 뒀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요.”
한여름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한 칸 내려앉았다. 도현은 그걸 봤다. 그리고 그녀가 가방에서 계산지 한 장을 꺼내는 것도 봤다. 볼펜 글씨가 빼곡했다.
“향토자료 사천백팔십 점. 그중에 여기밖에 없는 게 육백이십 점입니다. 한 점 스캔하는 데 오 분이면 오백십칠 시간. 하루 세 시간씩 하면 백칠십이 일. 심사까지 백이십 일입니다. 모자랍니다.”
“누가 하는 걸로 계산하셨습니까?”
“…저요.”
“혼자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한여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이 한 번 움직였다가 닫혔다.
“팔 년 동안 혼자 하셨죠.”
“…제 자료실이니까요.”
그녀는 말하고 나서 그 문장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얼굴이 되었다. 도현은 그 얼굴을 오래 보지 않으려고 창밖을 봤다. 매미가 울었다.
“스캐너 한 대 더 빌려 오겠습니다. 시립에 한 대 놀고 있습니다. 사람은 제가 모아 보겠습니다.”
“어디서요?”
“아직 모릅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도현은 서랍 속 1998년 서명부 복사본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천이백 명. 거기서 몇 명이 아직 이 동네에 살까.
화요일 오후 두 시, 새봄문화개발이 3층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셋이었다. 작업복 둘, 그리고 베이지색 재킷을 입은 오십 대 남자 하나. 곽정일이었다. 금목걸이가 셔츠 깃 사이로 보였다. 배문수 의원실 비서 하나가 뒤에 서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곽정일은 자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막았다.
“아이고, 냄새. 이거 곰팡이죠. 다 이렇게 두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작업복 하나가 상자 옆면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티커에는 인쇄된 글씨가 있었다. 「이관·폐기 검토.」 한 상자에 한 장. 턱, 턱. 도현은 그 소리를 세 번 들었다.
“잠깐만요.”
도현이 말하기 전에 문간에서 목소리가 났다. 한여름이었다. 숨이 조금 차 있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온 사람의 숨이었다.
“그거 떼세요.”
곽정일이 돌아봤다.
“누구세요.”
“이 자료실 담당 사서입니다.”
“아, 사서 선생님. 이건 실사예요. 공문 있어요.”
“공문에 스티커 붙여도 된다는 말 있습니까?”
곽정일은 비서 쪽을 봤다. 비서는 휴대폰을 내리지 않았다. 한여름은 가장 가까운 상자로 가서 스티커 모서리를 손톱으로 들었다. 스티커가 반쯤 떨어지다가 종이 상자 겉면을 같이 뜯어냈다. 상자 속 1974년 초등학교 졸업 문집 표지가 살짝 보였다. 한여름의 손이 거기서 멈췄다.
도현은 그 멈춘 손을 봤다. 그리고 곽정일 앞으로 걸어갔다.
“곽 대표님. 이 자료실 자료는 아직 보존 등급이 매겨지지 않았습니다. 등급 미분류 자료는 관장 승인 없이 표시·반출·훼손 금지입니다. 도서관 자료 관리 규정 십이 조입니다. 스티커는 표시에 들어갑니다.”
“관장님, 그건—”
“지금 붙이신 세 장 떼 주십시오. 떼실 때 상자가 안 뜯어지게 헤어드라이어로 데워서 떼세요. 일층 휴게실에 있습니다.”
곽정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비서를 향해 턱을 들었다. 비서가 휴대폰을 도현 쪽으로 돌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찰칵 소리가 서가 사이에서 울렸다.
“의원님께 말씀드리죠.”
“하십시오.”
도현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 목소리가 평평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오랜만이었다.
곽정일 일행은 스티커를 떼고 갔다. 헤어드라이어는 민지가 들고 올라왔다. 작업복 남자 하나가 드라이어 바람에 스티커를 데우면서, 한여름 눈치를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모서리를 들었다. 스티커는 깨끗하게 떨어졌다. 한여름은 떨어진 스티커 세 장을 받아 들고 한참 봤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수첩 사이에 끼웠다.
일행이 계단을 다 내려간 뒤에도 한여름은 자료실에 남아 있었다. 도현도 남았다. 드라이어 열기가 아직 공기 중에 떠 있었고, 뜯겨 나간 상자 겉면 조각이 바닥에 한 점 떨어져 있었다. 한여름이 그 조각을 주워 문집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주에는 들여보내셨잖아요.”
“지난주에는 복도였습니다.”
“이번에는요.”
“이번에는 상자였고요.”
한여름은 도현을 봤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고맙다는 말이 목까지 왔다가 도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도현은 그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면 그녀가 억지로 할 것 같았다.
“십이 조는 언제 외우셨어요.”
“어젯밤에요. 스티커 붙일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요.”
“배 위원장이 보는 사람 많으면 좋다고 했거든요. 사람 많은 데서 뭘 붙이는 사람들은 대개 스티커를 씁니다.”
한여름은 그 말에 아주 조금 웃었다. 웃고 나서 자기가 웃었다는 걸 알고, 서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현은 그녀가 상자 번호를 손끝으로 하나씩 짚으며 세는 소리를 들었다. 백구십일, 백구십이, 백구십삼. 스티커가 붙었던 상자 셋이었다.
세 시 사십 분에 오세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현은 받지 않았다. 네 시에 한 번 더 왔다. 받았다.
“관장님, 뭐 하시는 겁니까?”
“규정대로 했습니다.”
“규정대로 하는 게 제일 곤란하다는 거 아시잖아요.”
오세진은 오 분 동안 말했다. 도현은 사십 초쯤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손바닥에 휴대폰 모서리 자국이 나 있었다. 사십 초 가운데 삼십 초는 규정 조항 번호였다.
저녁 일곱 시, 도현은 매곡시장 뒤 골목에 있었다. 간판에 「미숙 수선」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게는 세 평쯤이었다. 재봉틀 두 대와 다리미판 하나, 천장까지 닿는 옷걸이. 다리미 김 냄새가 문 밖까지 나왔다. 옷걸이마다 번호표가 달린 옷이 걸려 있었고, 번호표 뒷면에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 여사 바지 두 치, 김 사장 재킷 소매. 선풍기 하나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옷자락을 번갈아 흔들었다. 재봉틀 앞 여자가 안경을 코끝으로 내리고 도현을 봤다. 짧은 파마머리는 희끗해졌지만 소매는 여전히 걷어붙이고 있었다.
“뭐 줄이러 왔어요.”
“아닙니다.”
도현은 고개를 숙였다. 왼쪽으로 조금 기울여서.
한미숙은 그 기울기를 봤다. 안경을 벗었다. 재봉틀 페달에서 발을 뗐다. 바늘이 멈췄다.
“…도현이냐.”
“네.”
“순례 아들.”
“네. 어머니가 고맙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름에 아줌마 아니었으면 맨날 혼자였다고.”
한미숙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리미판 위 김이 천천히 식었다. 그러다 물었다.
“분관에 새로 온 관장이 너냐.”
“네.”
“그럼 여름이 봤겠네.”
“봤습니다. 사진도 봤습니다. 1998년 개관 사진.”
한미숙은 안경을 다시 썼다. 재봉틀 위에 걸린 바지 밑단을 손으로 쓸었다.
“도현아. 부탁 하나 하자.”
“네.”
“여름이한테 서명 얘기, 하지 마라.”
“왜요.”
“그 삼 년 동안 나는 남의 동네 대문을 두드렸다. 남의 집 애 손을 잡고. 내 딸은 할머니 등에 두고. 그 애가 울 때 나는 서명판 들고 있었다.”
한미숙은 페달에 발을 다시 올렸다. 재봉틀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그 애가 그 도서관에 취직했다고 했을 때, 말할까 했다. 못 했다. 네 엄마가 그 도서관 세웠다고 하면, 그 애가 뭘 물을지 알아서. 그때 엄마는 어디 있었냐고.”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약속해라.”
“…네.”
도현은 미숙 수선에서 나왔다. 골목 끝 가로등 아래서 걸음을 멈췄다. 이달 들어 세 번째였다. 검토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약속. 셋 다 한여름과 상관이 있었고, 셋 다 한여름은 몰랐다.
관장실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 구석에 「매곡분관 기능 조정 방안(초안)」이 그대로 있었다. 도현은 그 파일을 열지 않았다. 그 옆에 새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제목 칸에 한 줄을 쳤다.
「매곡분관 존치 근거.」
첫 줄에 마을버스 7번 막차 시각을 적었다. 21시 30분. 실제 출발 21시 2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