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06자) · 검토하겠습니다

1998년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1998년 여름, 서도현은 여덟 살이었고 날마다 오후 한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매곡분관 3층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섬유 공장 야간조였다. 오후 두 시에 출근해서 새벽 한 시에 퇴근했다. 아버지는 없었다. 없다는 것을 도현은 이유 없이 알았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분관으로 갔다. 개관한 지 두 달 된 건물이라 3층 복도에서 아직 페인트 냄새가 났다. 창가 자리 의자는 그때도 다리 하나가 짧았다. 도현은 그 의자가 좋았다. 기운 채로 앉아 있으면 창밖 버스 정류장이 비스듬하게 보였다. 비스듬한 정류장에 어머니가 내리는 일은 없었지만, 도현은 버스가 설 때마다 그쪽을 봤다.

사서는 쉰 살 여자였다. 정 선생이라고 불렸다. 정 선생은 오후 네 시가 되면 우유 한 팩을 창가 책상에 놓고 갔다. 말은 하지 않았다. 도현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그 우유 한 팩이 여름 내내 오갔다.

그리고 미숙 아줌마가 있었다.

미숙 아줌마는 어머니 공장 동료의 언니였고, 이 분관을 세우자고 삼 년 동안 서명을 받으러 다닌 사람이었다. 개관한 뒤에도 서명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분관 옆에 마을버스 정류장을 하나 더 놓아 달라는 서명이었다. 미숙 아줌마는 토요일마다 도현을 데리고 다녔다.

“너는 목소리가 커서 좋아. 네가 두드리면 사람이 나와.”

도현은 대문을 두드렸다. 미숙 아줌마는 서명판을 내밀었다. 서명 열 개마다 아이스크림 하나. 도현은 그 셈을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여름 내내 아이스크림을 스물세 개 먹었다. 이백삼십 명이 도현의 주먹 소리를 듣고 대문을 열었다.

개관식 날 사진을 찍을 때, 미숙 아줌마가 도현 손을 잡아 앞줄 맨 오른쪽에 세웠다. 「여기 서. 너 없었으면 삼백 명은 모자랐어.」 도현은 그 말이 과장인 줄 알았다. 과장이 좋아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오월 볕이 따가웠고, 현수막 천이 바람에 부풀 때마다 머리 위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미숙 아줌마 손바닥은 땀에 젖어 있었다. 사진사가 셋을 세는 동안 그 손이 도현 손을 두 번 꽉 쥐었다. 도현은 나중에야 그게 떨림이라는 걸 알았다. 삼 년을 두드려 세운 건물 앞에서 어른 손도 떨린다는 걸.

그해 팔월 마지막 날, 도현은 창가 의자 바닥에 연필로 이름을 썼다. 서도현, 1998, 여름. 떠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공장을 옮겼고, 이사를 갔다.

그 뒤로 이십팔 년 동안 도현은 이 분관 앞을 지나간 적이 없었다.

그날 아침, 분관 카운터의 한여름은 도현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고개를 까딱하는 것까지만 했다. 반납 도서를 바코드에 대는 삐 소리가 평소보다 촘촘했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참에서 정 선생과 마주쳤다. 정 선생은 카트를 세우고 도현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관장님, 어제 여름이랑 3층에서 싸웠다며.”

“안 싸웠습니다.”

“싸운 얼굴인데.”

정 선생은 카트를 다시 밀었다. 한 시간 뒤 도현은 이층 복도에서 민지가 다른 직원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관장님이 어젯밤에 3층에서 우셨대요.」 도현은 그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정 선생 입에서 민지 입으로 가는 사이 무엇이 어떻게 기울었는지 짐작이 갔다. 우는 쪽이 누구였는지, 소리 없이 계단을 내려간 쪽이 누구였는지.

시청 문화체육국 도서관정책과는 삼층 복도 끝에 있다. 칠월 둘째 주 목요일 오전, 과장실 소파는 인조 가죽이라 앉으면 쉭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오세진 과장은 도현보다 네 살 위였고, 한때 같은 팀 선배였다. 책상 위에 명패가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관장님, 실측 막으셨다면서요.”

“자료실만 따로 잡자고 했습니다.”

“같은 거죠.”

오세진은 서류를 도현 쪽으로 밀었다. 「매곡분관 기능 조정 방안 — 보고 일정.」 맨 아래 칸에 날짜가 있었다. 구월 삼십일.

“연착륙 보고서, 구월 말까지입니다. 향토자료 이관 계획 들어가야 되고요. 시립 수장고로.”

“수장고에 자리 없는 거 과장님도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분류를 하시라는 거죠. 보존할 것, 디지털로 남길 것, 정리할 것.”

「정리할 것」이라는 말을 오세진은 조금 빠르게 지나갔다. 도현은 그 속도를 들었다.

“과장님. 마을버스 7번이 아홉 시 반에 끊깁니다. 이 분 일찍 갑니다.”

“그게 뭐요.”

“분관이 없어지면 그 동네 어르신들은 본관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탑니다. 사십 분 걸립니다. 안 가실 겁니다.”

오세진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등받이가 삐걱거렸다.

“관장님. 분관 운영비 한 해 사억이에요. 그 돈이면 이동도서관 세 대를 굴립니다. 세 대가 시 전역을 돌아요. 아홉 시 반 버스 끊기는 동네까지 차가 직접 갑니다. 저는 그 동네를 버리자는 게 아니에요. 건물을 버리자는 거지.”

도현은 반박할 말을 찾았다. 찾지 못했다. 오세진의 셈은 틀리지 않았다. 틀린 데가 있다면 그 셈에 3층 창가 자리가 안 들어간다는 것뿐이었다. 창가 자리는 셈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과장 개인으로 드리는 말인데요.”

오세진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배 위원장님이 이 건에 관심이 많으세요. 예산 심의가 도시건설위원회 거 아시죠. 내년 도서관 예산이 거기서 잘립니다. 분관 하나 붙들다가 본관 전체 예산이 날아가요.”

“부지 얘기는요.”

“부지 얘기는 제 소관 아닙니다.”

오세진은 그 말을 하고 도현의 눈을 피했다. 명패를 손가락으로 반듯하게 돌려놓았다.

“관장님, 정리 잘하시면 본청 팀장 자리 드리기로 했잖아요. 그 약속은 제가 지킵니다. 제 약속은 제가 지켜요.”

도현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인조 가죽이 다시 쉭 소리를 냈다.

“검토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하면서 도현은 자기 목소리가 평평하다는 걸 알았다. 첫 회의에서 「열아홉」을 되풀이할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평평한 목소리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편했다. 편해서 나빴다.

시청 일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배문수가 서 있었다. 비서 둘이 양옆에 있었다. 배문수는 도현을 보고 먼저 웃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아, 매곡 관장님. 과장님 만나고 오시나.”

“네.”

“실측 막으셨다면서.”

배문수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고 로비로 한 걸음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그대로 닫혔다. 비서 하나가 버튼을 다시 눌렀다.

“곽 대표가 섭섭해하더라고. 3층 날 다시 잡자네요. 다음 주 화요일 어때요.”

“자료실은 관장 입회로 합니다.”

“입회하세요, 그럼. 보는 사람 많으면 좋지.”

배문수는 도현 어깨에 손을 한 번 얹었다가 뗐다. 손바닥이 두껍고 뜨거웠다.

“관장님은 본청 사람이잖아. 본청 사람이 분관 사람처럼 굴면 곤란해요. 둘 다 곤란해. 관장님도, 분관도.”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배문수는 이번에는 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다.

“넉 달 금방 갑니다.”

문이 닫혔다. 층수 표시가 올라갔다. 도현은 어깨에 남은 온기를 털어 내지 않았다. 털어 내면 그 손이 거기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로비 안내 데스크 직원이 도현을 힐끔 봤다가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오후에 도현은 분관 관장실에서 법인 등기부를 뗐다. 새봄문화개발. 설립 삼 년. 대표이사 곽정일. 주소는 신도시 상가 이층. 도현은 곽정일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신문 인터넷판을 검색했다. 이 년 전 기사 한 줄이 걸렸다. 배문수 위원장 부인 곽씨의 부친상. 상주 명단 셋째 줄에 곽정일이 있었다.

도현은 등기부와 기사를 한 장씩 인쇄해서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컸다.

저녁 일곱 시, 도현은 신도시 끝 요양병원 사층에 있었다. 어머니 박순례는 일흔 살이었고, 이 년 전부터 시간이 조금씩 거꾸로 흘렀다. 오늘 어머니는 1998년에 있었다.

“도현아, 미숙 언니는 잘 있냐. 서명 다 받았대?”

“다 받았대요.”

“그 언니 고생이다. 딸내미는 할머니한테 맡겨 놓고 맨날 남의 동네 대문 두드리고 다니고. 그 집 딸이 할머니 등에 업혀서 맨날 울었어. 엄마 어디 갔냐고.”

도현은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다.

“그 딸 이름이 뭐였어요.”

“여름이. 여름에 낳았다고 여름이. 너보다 네 살 어려.”

사과 껍질이 칼끝에서 끊어져 무릎으로 떨어졌다. 도현은 그걸 줍지 않았다. 어젯밤 3층에서 1998년 사진을 보던 한여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앞줄 맨 오른쪽 아이 옆, 소매를 걷어붙인 여자를 보던 얼굴. 한여름은 그 여자가 누구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한 칸 한 칸 무거웠다.

그 여자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도현이었다. 그 여자의 딸은 그 사진에 없었다. 할머니 등에서 울고 있었다.

“도현아.”

어머니가 불렀다.

“미숙 언니한테 고맙다고 해라. 너 그 여름에 그 언니 아니었으면 맨날 혼자였다.”

“네.”

도현은 사과를 여덟 조각으로 잘라 접시에 놓았다. 어머니는 한 조각을 먹고, 창밖을 보다가, 도현이 누구냐고 물었다. 도현은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우리 도현이는 여덟 살인데」라고 했다.

밤 열 시, 도현은 관장실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 칸에 「매곡분관 기능 조정 방안(초안)」이라고 쳤다. 그리고 목차를 썼다. 현황, 이용 추이, 향토자료 분류안, 인력 재배치, 부지 활용. 목차만 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목차는 잘 썼다. 도현은 이런 문서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본청에서 팔 년 동안 이런 문서를 썼다. 셋째 줄 「향토자료 분류안」 아래에 소제목 셋이 저절로 따라 나왔다. 보존, 디지털 보관, 정리.

「정리」에서 커서가 깜박였다.

도현은 문서를 저장했다. 보내지 않았다. 지우지도 않았다. 파일 이름이 바탕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작게 떠 있었다. 그는 그 파일을 한참 보다가 모니터를 껐다.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갔다. 복도에 불을 켜지 않았다. 향토자료실 문을 열고 창가 의자에 앉았다. 짧은 다리 밑에 접은 종이가 괴어져 있어서 의자가 기울지 않았다. 도현은 몸을 조금 비틀어 일부러 기울게 앉았다. 창밖 정류장이 비스듬하게 보였다. 아홉 시 반이 한참 지나서 정류장은 비어 있었다.

그 비어 있는 정류장을 여덟 살짜리가 보던 각도로 보면서, 도현은 오늘 두 번 거짓말을 한 것을 셌다.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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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5.14· 3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종이배2026.05.15

      완전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