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두 번째 인상
오해는 두 번 반복된다 · 유하람
기획안은 A4 두 장이었다.
1. 밤의 도서관 — 매주 금요일 밤 열 시까지 개관 2. 첫 책 프로젝트 — 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책 한 권 3. 서가 개방 — 3층 향토자료실 상시 개방
여름은 세 번째 줄에서 멈췄다.
“3층을 열자고요?”
“네.”
“거기 온도 조절 안 되는 거 아시죠. 1970년대 자료 있습니다.”
“압니다.”
“열면 상합니다.”
“그래서 스캔부터 하려고요.”
여름은 자료를 내려놓았다.
“예산은요.”
“신청했습니다.”
“승인 안 날 겁니다.”
“안 나면 제가 냅니다.”
이 대목에서 여름은 이 사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인정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여름은 그 차이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의견서 준비하겠습니다.”
“반대 의견서요?”
“네.”
도현은 잠깐 여름을 봤다.
“이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금요일 밤 열 시까지 열면, 여기 오는 어르신들이 못 옵니다.”
“왜요.”
“버스가 아홉 시 반에 끊깁니다.”
도현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름은 그것을 반박 못 한 것으로 읽었다. 정 선생이 카운터에 와서 물었다.
“싸웠어?”
“안 싸웠어요.”
“싸운 얼굴인데.”
정 선생은 반납 카트를 밀어 놓고 앉았다.
“여름아.”
“네.”
“저 관장, 어릴 때 여기 살다시피 했어.”
여름은 고개를 들었다.
“네?”
“3층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어. 초등학생 때.”
“...어떻게 아세요.”
“내가 그때도 여기 있었으니까.”
정 선생은 그러고 나서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여름이 물으려고 했을 때는 이미 서가 쪽으로 가고 있었다. 여름은 그날 밤 늦게까지 남았다. 옛 대출 대장을 꺼냈다. 종이 대장은 2003년까지 있다.
1998년 것부터 넘겼다. 3층 향토자료실 대출 기록은 한 해에 스무 건도 안 됐다. 1998년, 스물세 건. 그중 열아홉 건이 한 사람이었다. 여름은 그 이름을 봤다. 어제 반납함에서 나온 카드의 이름과 같았다.
여름은 대장을 덮었다. 덮고 나서 창밖을 봤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버스는 이미 끊겼을 시각이었다. 3층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유리에 비쳤다. 여름은 그것을 보면서, 오늘 자기가 한 말을 다시 생각했다.
‘금요일 밤 열 시까지 열면 어르신들이 못 옵니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을, 상대를 이기려고 쓴 것이 문제였다. 여름은 대장을 덮고 3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었다. 도현이 축쇄판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직 계셨네요.”
“버스 끊겼습니다.”
여름은 문가에 섰다.
“오늘 제가 한 말이요.”
“어느 거요.”
“어르신들 못 오신다는 거요.”
“맞는 말인데요.”
“맞는 말인데.”
여름은 거기서 잠깐 멈췄다. 준비한 문장이 아니었다.
“이기려고 했습니다.”
도현은 축쇄판을 덮었다.
“저도요.”
“뭐가요.”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셨다는 말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에 대출 기록 봤습니다. 독서 모임 열 개 만드신 것도 봤고요.”
“근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말해야 회의가 짧게 끝나니까요.”
여름은 그 말을 한참 생각했다.
“저도 비슷한 걸 합니다.”
“뭘요.”
“숫자를 먼저 말해요. 그러면 아무도 안 물어보거든요.”
도현이 웃었다.
“우리 둘 다 회의를 싫어하는군요.”
여름은 축쇄판 쪽을 봤다.
“1998년 자료에서 뭘 찾으세요.”
“기사 하나요.”
“무슨 기사요.”
도현은 잠깐 망설였다.
“이 분관 개관 기사요.”
“그건 시청 자료에 있는데요.”
“그 기사 사진에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축쇄판을 다시 폈다. 여름은 옆으로 가서 봤다. 흑백 사진이었다. 개관식. 사람이 스무 명쯤 서 있었다. 앞줄 맨 오른쪽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 아이가.”
“저입니다.”
여름은 사진을 더 봤다. 아이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여름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분.”
“아세요?”
여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여름의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