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1자) · 도현

4.2킬로미터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4.2킬로미터. 리버힐 정문에서 마포 병원 정문까지. 윤채 씨가 지난주에 걸어서 쟀다. 쉴 자리는 원래 일곱이었다. 오늘 아침에 둘이 늘었다. 리버힐 정문 밖 한 걸음 반, 윤채 씨가 서 있던 자리. 그리고 이상철 사장이 보리차를 들고 서 있던 자리. 둘 다 사람이었다. 사람도 쉴 자리가 된다는 걸 나는 오늘 알았다.

손목이 쓰렸다. 오른쪽 손목에 빨간 자국이 두 줄. 젊은 직원 손가락 자국이었다. 윤채 씨 오른쪽 손목은 더 부어 있었다. 윤채 씨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들고 걸었다. 어머니는 한 걸음 뒤에서 걸었다. 어머니는 오늘 한 번도 내 앞으로 오지 않았다. 삼 년 동안 늘 내 앞에서 창을 막던 사람이.

편의점 파라솔에서 앉았다. 이 사장이 먼저 와 있었다. 알바한테 가게를 맡기고 우리보다 빨리 골목으로 돌아온 거였다. 파라솔 의자 세 개가 닦여 있었다. 서리가 앉았을 의자를 누가 닦아 놓았다. 어머니가 의자를 한참 보다가 앉았다. 어머니는 이 골목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 십 년을 살았는데.

세탁소 평상에는 윤순덕 할머니가 없었다. 추워서. 대신 세탁소 주인이 평상에 방석을 세 개 깔아 두었다. 할머니가 어제 부탁했다고 했다. 내일 그 총각이 병원 간다고. 이 골목에서 소문은 22층보다 빨리 올라간다. 나는 방석에 앉아서 세탁소 주인 이름을 물었다. 강말순. 할머니 며느리였다. 아홉째.

큰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초록불은 삼십 초였다. 나는 신호등 옆 숫자를 봤다. 삼십, 이십구. 건너편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불이 바뀌자 양쪽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걸어왔다. 부딪치지 않고 서로 비켜 갔다. 22층에서 내려다보면 이게 점들이 섞이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어깨와 어깨가 스치는 장면이었다. 누가 내 어깨에 부딪치고 죄송합니다, 했다. 나도 죄송합니다, 했다. 삼 년 만에 모르는 사람한테 한 말이었다. 건너편에 닿았을 때 숫자는 칠이었다.

강 계단에 도착한 것은 열 시 사십 분이었다. 화요일이었다.

김영배 씨가 계단 중간에 앉아 있었다. 등산 점퍼. 보온병. 오늘은 모자를 썼다. 귀까지 덮는 털모자. 영하 삼 도에 강바람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그 사람은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나는 계단 맨 위에서 멈췄다. 쉴 자리. 앉지 않았다. 윤채 씨가 옆에 섰다. 어머니가 뒤에 섰다. 나는 어머니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김영배 씨를 몰랐다. 나는 어머니한테 삼 년 동안 그 사람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어머니가 아는 건 신문 기사였다. 구조대원 한 명이 사표를 냈다는 것. 아이 아버지가 현장에서 구조대원한테 소리를 질렀다는 것.

“저분이야.”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알아들었다. 어머니 손이 코트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쥐었다. 박용길 씨 사탕 봉지.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한 칸씩. 스무 칸. 김영배 씨 두 칸 위에서 멈췄다. 그 사람이 돌아봤다. 나를 봤다. 그러고는 내 뒤 계단 맨 위의 두 여자를 봤다. 손목을 받쳐 든 여자와 코트 단추를 안 채운 여자.

“왔네.”

그 사람이 말했다. 지난주에 오라고 했다. 오라는 말인지, 오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인지 몰랐다. 둘 다라고 윤채 씨가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김영배 씨 눈이 좁아졌다.

“하람이 얘기를 하겠습니다. 삼 년 늦었습니다. 늦은 건 제 탓입니다. 그래도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온병 뚜껑을 쥐었다. 나는 그걸 대답으로 알았다.

“교각 두 번째 기둥 아래입니다. 저기요.”

나는 손으로 가리켰다. 다리 아래 두 번째 기둥. 여기서 이백 미터쯤.

“수심 사 미터. 그날 시야는 삼십 센티였습니다. 손을 뻗으면 손끝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줄을 잡고 들어가서 손으로 더듬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바닥만 만졌습니다. 네 번째에 폐그물이 손에 걸렸습니다. 그 안에 운동화 끈이 감겨 있었습니다. 하람이 오른쪽 운동화였습니다. 제가 끈을 풀었습니다. 손으로. 그물이 발목까지 감겨 있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풀고 나서 하람이 손을 잡았습니다. 손이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잡고 올라왔습니다. 얼굴은 못 봤습니다. 물 밖에서 처음 봤습니다. 아버님이 보신 것보다 일 초 먼저.”

김영배 씨가 보온병을 내려놓았다. 계단 위에. 손이 떨렸다. 그 사람은 떨리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눌렀다.

“발목에.”

그 사람이 말했다.

“발목에 그물이 감겨 있었다고.”

“네.”

“그럼 걔가 헤엄쳐서 못 나온 게 아니네. 걸려서 못 나온 거네.”

“네. 하람이는 헤엄 잘 쳤을 겁니다. 팔을 보면 압니다. 걸렸습니다.”

그 사람이 강을 봤다. 두 번째 기둥을. 삼 년 동안 백오십 번 본 물을 오늘 처음 본다는 얼굴로.

“나는 삼 년 동안 걔가 헤엄을 못 쳐서 그런 줄 알았어. 내가 수영을 안 가르쳐서. 걔 엄마가 가르치자고 할 때 내가 돈 아깝다고 해서.”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무릎을 짚었다. 고개를 숙였다. 털모자가 눈을 가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강 소리만 났다.

나는 두 칸을 내려갔다. 그 사람 옆에 앉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윤채 씨가 삼 주 전에 찍어 둔 쉴 자리보다 스무 칸 아래.

한참 뒤에 김영배 씨가 고개를 들었다. 보온병 뚜껑을 열어 보리차를 따랐다. 뚜껑 컵 하나. 나한테 내밀었다.

“넌 왜 살아 나왔냐고 했던 거.”

“네.”

“취소 안 한다.”

나는 컵을 받았다.

“살아 나와서 이 얘기 해 줬잖아. 그러니까 살아 나온 게 맞아. 그 말은 그대로 둔다. 대답이 됐으니까.”

보리차는 뜨거웠다. 이 사장 편의점 보리차보다 진했다. 보리를 오래 볶은 맛이 혀 뒤쪽에 남았다. 삼 년 동안 매주 화요일 이 보온병에 담겨 온 보리차였다. 나는 그걸 다 마셨다. 목이 데었다. 괜찮았다.

계단 맨 위에서 어머니가 내려왔다. 한 칸씩. 윤채 씨가 그 옆에서. 어머니가 김영배 씨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다. 아이를 물가에 세워 둔 부모와 아이를 창가에서 끌어 내린 부모. 어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김영배 씨도 일어나서 숙였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머니가 코트 주머니에서 사탕 봉지를 꺼냈다. 박하사탕 한 움큼을 김영배 씨 손에 쥐여 줬다. 김영배 씨가 그걸 내려다봤다. 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경비 아저씨가 준 거라고. 오늘은 문 밖으로 나간 날이라서.

윤채 씨가 계단 위에서 다리 쪽을 보고 있었다. 두 번째 기둥보다 더 아래. 눈을 감지 않고. 김영배 씨가 그걸 봤다. 저 아가씨는 뭘 저렇게 보냐고 나한테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윤채 씨가 말했다. 저 다리 조금 아래서 친구를 잃었다고. 십사 년 전에. 김영배 씨가 한참 윤채 씨를 봤다. 그 애는 누가 건졌냐고 물었다. 윤채 씨가 모른다고 했다. 그날 거기 없었다고. 김영배 씨가 보리차를 한 컵 더 따라 윤채 씨한테 줬다. 윤채 씨가 왼손으로 받았다. 김영배 씨가 말했다. 누가 건졌는지 모르면 여기 와서 그 사람 대신 물을 봐 주면 된다고. 자기는 삼 년 동안 그렇게 했다고.

김영배 씨는 이름을 말해 줬다. 내가 묻기 전에. 김영배. 하람이 아비. 열째.

강에서 병원까지 2.3킬로미터. 쉴 자리가 둘 더 있었다. 강변 산책로 벤치, 병원 앞 약국 의자. 다리 밑 자전거 쉼터는 지나쳤다. 앉을 필요가 없었다. 약국 의자에서 약사가 나와 윤채 씨 손목을 봤다. 그러고는 반깁스 붕대를 하나 꺼내 임시로 감아 줬다. 병원 가시는 길이면 이건 선물이라고. 약사 이름표에 나은숙. 열한째.

마포 병원 정문. 쉴 자리 열둘째는 병원 로비 의자였다. 우리는 거기 앉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쉬지 않고 들어가야 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삼 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거울을 봤다. 나와 윤채 씨와 어머니. 사십 초. 윤채 씨가 셌다. 이번에는 내가 안 셌다.

한수정 선생님은 사십 대 여자였다. 진료실 창에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그 사이로 마포대교 난간이 보였다. 선생님은 내 손목을 먼저 봤다. 빨간 자국. 그다음 내 운동화를 봤다. 두 번 묶은 끈.

“걸어서 오셨어요?”

“4.2킬로요. 쉴 자리 열두 군데.”

“세셨어요?”

“이름도 셌어요. 열한 명. 선생님 이름까지 하면 열둘.”

선생님이 웃었다. 그러고는 서류를 한 장 꺼냈다. 입원 동의서. 보호입원이 아니라 자의입원. 본인 서명란. 선생님은 그 종이를 내 앞에 놓았다. 어머니 앞이 아니라.

“이 주 동안 여기 계시면서 약도 맞추고 상담도 하실 거예요. 나가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본인이 들어오신 거니까요.”

나는 볼펜을 들었다. 서도현. 삼 년 만에 쓰는 내 이름이었다. 소방서 사직서 이후 처음. 글씨가 조금 떨렸다. 두 번 묶은 끈처럼 풀리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진료실 문 옆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고. 나는 서명을 마치고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열두 시 사 분. 예약보다 사 분 늦었다.

“엄마, 늦었네.”

“걸어왔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고는 복도로 나갔다. 복도 창가에 섰다. 거기서도 강이 조금 보였다. 어머니는 그 앞에 섰다. 두 걸음 떨어져서가 아니라, 바로 앞에. 손을 유리에 댔다. 허리 높이가 아니라 어깨 높이. 나는 진료실 문틈으로 그걸 봤다.

입원 수속은 어머니가 했다. 보호자 연락처 칸에 어머니 번호를 쓰고, 그 아래 비상 연락처 칸에서 펜을 멈췄다. 한참. 그러고는 윤채 씨 번호를 적었다. 나한테 묻지 않고. 이번에는 나도 괜찮았다. 그건 어머니가 정해도 되는 칸이었다.

윤채 씨는 일 층 응급실로 갔다. 간호사가 윤채 씨한테 보호자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고 했다. 윤채 씨가 삼 층에 입원 중이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한참 이상한 얼굴을 했다고. 손목 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반깁스 사 주. 오후에 문자가 왔다.

같은 병원이네요. 저는 일 층, 도현 씨는 칠 층. 위에서 내려다보면 저 보여요?

병실은 칠 층이었다. 창에 손잡이가 있었다. 열리는 폭은 십 센티. 나는 병실 창으로 내려다봤다. 병원 정문 앞 광장. 사람들이 오갔다. 점이었다. 그중 하나가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른팔에 흰 깁스. 점이 아니었다.

보여요. 윤채 씨요.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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