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91자) · 윤채

12층에서 내려다보면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십이월 이십이일 화요일. 한솔아파트 3동 앞에 열한 명이 서 있었다. 조합 안내문에 적힌 대로였다. 철거 가림막을 치기 전 마지막 개방일. 옛날 살던 사람은 신청하면 관리인 동행으로 한 시간 올라갈 수 있다. 신청은 도현 씨가 했다. 병원에서. 입원 이 주 동안 병실 창에서 문자로. 3동 1204호 서도현, 4동 1204호 오윤채. 조만식 관리인이 명단을 보고 우리 둘을 알아봤다. 공룡 집 사람들이라고.

열한 명은 우리 둘만이 아니었다. 도현 씨가 문자를 돌렸다. 쉴 자리가 되어 준 사람들한테. 박용길 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그대로 왔다. 사복에 사탕 봉지. 최정호 씨는 비번이었다. 장현수 씨는 넥타이를 안 맸다. 넥타이핀도 없었다. 그 사람 목이 이렇게 가는 줄 몰랐다. 이상철 사장은 삼각김밥 열두 개를 봉지에 담아 왔다. 유통기한 세 시간짜리라고 했다. 미리 버리는 게 아니라 이번엔 산 거라고. 윤순덕 할머니는 며느리 강말순 씨 팔을 잡고 왔다. 12층은 못 올라간다고, 밑에서 올려다보기만 하겠다고 했다. 김영배 씨가 왔다. 보온병을 들고. 화요일이었다. 그 사람은 오늘 강 계단에 안 가고 여기 왔다고 했다. 강은 내일 가도 된다고.

서경숙 씨가 마지막에 왔다. 코트 단추를 다 채우고. 손목의 시계. 그 사람은 사람들 뒤에 섰다. 아들 뒤에.

도현 씨는 퇴원한 지 엿새였다. 이 주 입원. 약을 맞췄고, 매주 한 번 한수정 선생님한테 간다고 했다. 걸어서. 4.2킬로미터. 쉴 자리 열둘. 이제 혼자 간다. 지난주 화요일에 혼자 갔다 왔다. 강 계단에서 김영배 씨와 보리차를 마셨다고 했다.

내 손목은 반깁스가 풀렸다. 사 주라던 것을 삼 주에 풀었다. 아직 걸레를 못 짠다. 성산동 집 사모님이 한 달 쉬라고 했다. 급여는 준다고. 아이 손자국은 그동안 안 지워도 된다고. 아이가 좋아한다고. 나는 그 집에서 구 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값을 받았다.

조만식 관리인이 3동 현관문을 열었다. 자물쇠가 세 개였다. 이주가 끝난 동은 그렇게 잠근다고 했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전기가 끊겼다. 층마다 열여섯 단. 12층까지 백칠십육 단. 도현 씨가 셌다. 나는 세지 않았다. 손목이 아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세니까.

김영배 씨가 6층에서 앉았다. 무릎. 서경숙 씨가 그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지난 삼 주 동안 세 번 만났다고 했다. 강 계단에서. 도현 씨 없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둘 다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안 물어보는 게 내 일이었고, 이제는 일이 아니어도 그렇게 한다.

1204호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이주할 때 떼어 갔는지 문짝이 없었다. 빈 집. 벽지가 뜯긴 자리, 장판 밑 시멘트, 붙박이장 자국. 누가 살던 집인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거실 스위치 옆 벽에 연필로 그은 금이 있었다. 열 개쯤, 옆에 숫자. 제일 위가 152. 도배를 두 번은 했을 텐데 그 자리만 누가 오려 내고 남겼는지, 종이가 한 겹 다른 색이었다. 도현 씨는 그쪽을 안 봤다. 나는 봤고, 말하지 않았다. 도현 씨가 거실 한가운데 섰다. 한참. 그러고는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 창에 공룡이 있었다. 안쪽에서 보면 뒤집혀 있었다. 초록 등이 이쪽을 보고. 도현 씨가 그 앞에 섰다. 창에서 두 걸음이 아니라 바로 앞에. 손을 댔다. 공룡 옆에. 유리가 차가웠을 것이다.

“떼요?”

내가 물었다.

“두고 갈래요. 조 관리인님이 그러셨잖아요. 떼면 자국 남는다고. 자국 남을 바에 그냥 두는 게 낫대요. 가림막 치고 부수면 창이랑 같이 없어지는 거니까.”

그는 그 말을 하고 창을 열었다. 이 집 창은 손잡이가 있었다. 삼십 년 된 알루미늄 창틀이 끽 소리를 냈다. 십 센티가 아니라 끝까지. 찬 바람이 들어왔다. 12월 바람.

“내려다봐요.”

그가 말했다. 나는 창가로 갔다. 그 사람 옆에. 열두 살 이후로 처음 12층에서 내려다보는 거였다. 4동 12층이 아니라 3동 12층. 이십 미터 건너편에서.

맞은편에 4동이 있었다. 이십 미터. 열두 살 때 내 방이던 창은 다른 창들과 똑같이 비어 있었다. 커튼도 없고 화분도 없고, 창틀에 붙였던 스티커 자국만 오후 햇빛에 하얗게 떠 있었다. 저기서 이쪽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늘 밑만 봤다.

밑에 사람이 있었다. 3동과 4동 사이 공터. 열한 명 중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 윤순덕 할머니와 강말순 씨. 이상철 사장이 삼각김밥 봉지를 들고 옆에 서 있었다. 박용길 씨가 올라오다가 8층에서 포기하고 도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 사람이 공터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손을 흔들었다. 사탕 봉지를 든 손.

점이었다. 12층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은 점이다. 그건 그대로였다. 키 이 밀리미터. 손톱보다 작다.

“누가 누군지 알아요?”

도현 씨가 물었다.

“알아요.”

“어떻게요?”

“저 점은 사탕 봉지 들었잖아요. 저 점은 삼각김밥. 저 점은 며느리 팔 잡고 있고. 저 점은.”

나는 멈췄다. 공터 한쪽에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와 같이 올라오지 않은 사람. 서경숙 씨. 6층에서 김영배 씨와 앉은 뒤 안 올라오고 내려갔다고 했다. 그 사람은 공터 가운데 서 있었다. 위를 보지 않고. 손목을 보고 있었다. 시계를.

“저 점은 시계 보고 있어요.”

도현 씨가 창틀을 잡았다. 손잡이가 있는 창틀.

“이 년 전에 어머니가 나를 봤을 때, 나는 저기서 점이었을까요. 창틀에 앉은 점.”

“아니요. 어머니한테는 한 번도 점인 적 없었을 거예요. 점이면 새벽 네 시에 못 깨요.”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몸을 조금 내밀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사람은 두 발을 바닥에 두고 있었다. 그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공터의 점이 위를 올려다봤다. 시계에서 눈을 뗐다.

“서경숙!”

그 이름이 3동과 4동 사이 공터에 울렸다. 빈 동 사이라 소리가 두 번 튕겼다. 박용길 씨가 웃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점이 웃는 게 보였다. 어깨가 흔들려서.

“박용길!”

도현 씨가 다음 이름을 불렀다. 사탕 봉지가 흔들렸다.

“이상철! 윤순덕! 강말순!”

점 셋이 손을 들었다. 삼각김밥 봉지, 부채 대신 장갑 낀 손, 며느리 손.

그가 돌아서서 나를 봤다. 나머지는 나한테 부르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지 않았다. 창틀에 손을 얹었다. 왼손. 깁스 풀린 오른손은 아직 힘이 없었다.

“김영배!”

내가 불렀다. 계단을 다 못 올라와 중간 층 창에서 내다보고 있던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보온병을 들고. 8층 창이었다.

“장현수! 최정호!”

두 사람은 우리 뒤에 있었다. 1204호 거실에. 그래서 소리쳐 부를 필요가 없었는데 불렀다. 장현수 씨가 넥타이 없는 목을 만졌다. 최정호 씨가 부스에서 하던 대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조만식!”

관리인이 현관 문틀에 기대 있다가 놀랐다. 자기 이름이 왜 나오냐고 했다. 도현 씨가 일곱째라고 했다. 관리인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웃었다.

아홉이었다. 우리 둘까지 열하나. 도현 씨가 손가락을 폈다. 열 개로 하나가 모자랐다. 서도현. 오윤채. 마지막 둘은 부르지 않았다. 부르지 않아도 됐다.

나는 공터를 다시 내려다봤다. 점이 다섯. 8층 창에 하나. 열두 살 때 나는 이 높이에서 점을 보는 게 좋았다. 누가 누군지 몰라도 되니까. 다 비슷해서. 오늘은 하나도 비슷하지 않았다. 사탕 봉지와 삼각김밥과 시계와 보온병. 점마다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있으면 점이 아니다. 높이는 같은데.

“이제 알겠어요.”

도현 씨가 말했다.

“12층에서 내려다보면 점인 거, 그게 무서운 게 아니었어요. 이름을 모르는 게 무서운 거였어요. 저 밑에 하람이가 있었을 때 나는 이름을 알았어요. 그래서 네 번 들어갔어요. 이름을 아니까 점이 아니었어요. 삼 년 동안 22층에서 본 건 이름 모르는 점들이었고요.”

“그럼 22층은요.”

“거기 창에도 이제 이름이 있잖아요. 열하나.”

우리는 창을 닫았다. 공룡을 그대로 두고. 조만식 관리인이 한 시간이 다 됐다고 했다. 백칠십육 단을 내려갔다. 도현 씨가 셌다. 6층에서 김영배 씨를 만났다. 8층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내려온 거였다. 세 사람이 같이 내려갔다.

공터에서 서경숙 씨가 아들을 봤다. 시계를 보지 않고.

“왜 소리는 질러.”

“엄마가 안 올려다보니까.”

“올려다봤어.”

“이름 부르니까 봤지.”

서경숙 씨가 아들 패딩 깃을 세워 줬다. 그러고는 나한테 왔다.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았다. 깁스 풀린 손목을. 가볍게.

“걸레 짜지 마요. 한 달 더. 우리 집 창은 내가 닦아요.”

“사모님 손자국은요.”

“이제 안 눌러요. 새벽에 안 깨요. 엿새째.”

그 사람이 손을 놓았다. 손목에 시계가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시계를 풀었다.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왜 푸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안 묻는 게 내 일이니까.

이상철 사장이 삼각김밥을 돌렸다. 열두 개. 열한 명이라 하나가 남았다. 도현 씨와 나는 남은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참치마요. 김이 찢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은 1.8킬로미터였다. 쉴 자리 일곱. 아무도 앉지 않았다. 열한 명이 골목을 걸었다. 세탁소 앞에서 윤순덕 할머니가 빠졌다. 편의점에서 이상철 사장이. 강 계단에서 김영배 씨가. 내일 온다고 하고. 리버힐 로비에서 박용길 씨와 최정호 씨와 장현수 씨가. 남은 셋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 사십사 초. 아무도 세지 않았다.

거실 창 앞에 셋이 섰다. 손잡이 없는 창. 나사 머리 두 개. 창에 손자국이 있었다. 어깨 높이 하나, 허리 높이 넷. 삼 주 동안 아무도 안 닦았다. 서경숙 씨가 그 앞에 섰다. 나사 머리에 손가락을 댔다. 누르지 않았다. 그 옆, 어깨 높이 손자국 옆에 자기 손바닥을 댔다. 새 자국.

폭 삼십 미터의 물이 보였다. 12월 오후의 물. 가운데는 어둡고 가장자리는 밝고, 다리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었다. 움직였다. 여기서도 움직이는 게 보였다. 22층에서도 물은 움직인다. 이름을 알면 점도 사람인 것처럼.

도현 씨가 창 앞에 섰다. 두 걸음이 아니라 바로 앞에. 손을 댔다. 어머니 손 옆에. 나는 그 옆에 섰다. 왼손을 댔다. 오른손은 아직 아파서. 유리가 차가웠다. 셋 다 그 자리에 오래 있었다. 대고 있으면 괜찮아진다. 누가 그랬는지 이제 다들 안다.

나는 그 창을 다음 주 화요일에 닦을 것이다. 손자국 셋만 남기고.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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