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40자) · 윤채

아홉 시 반, 문은 안에서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십이월 일일 화요일. 여덟 시 사십 분에 나는 리버힐 정문 밖에 섰다. 유리문 센서가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거리. 문 밖 한 걸음 반. 도현 씨가 정한 자리였다. 막는 사람 말고 쉴 자리로.

영하 삼 도. 해가 났는데도 바람이 차가웠다. 입김이 나왔다. 장갑을 안 가져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 박하사탕이 두 개 있었다. 어제 박용길 씨가 줬다. 내일 아침에 드시라고. 무슨 규칙이냐고 물었더니 이번 건 규칙이 아니라고 했다.

아홉 시에 골목 쪽에서 이상철 사장이 걸어왔다. 앞치마 위에 점퍼를 걸치고. 손에 편의점 종이컵 둘. 하나를 나한테 줬다. 뜨거운 보리차. 하나는 자기가 들고 내 옆에 섰다. 도현 씨가 오늘 아침에 편의점에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쉴 자리가 오늘은 정문 밖이라고. 사장님은 가게를 알바한테 맡기고 나왔다고 했다. 나는 도현 씨가 편의점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간판에 적혀 있다. 그 사람은 적혀 있는 것을 다 읽는다.

로비 안에 사람이 많았다. 평소보다. 박용길 씨는 야간 근무가 여덟 시에 끝났는데 부스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복 차림으로. 낮 경비 최정호 씨가 부스 안에 있었다. 관리소장 장현수 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넥타이핀. 세 사람 다 나를 봤다. 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손을 흔들면 오늘이 평소 같은 날이 될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셋 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았다.

아홉 시 이십 분에 흰 승합차가 정문 앞에 섰다. 옆면에 작은 글씨. 안심케어. 차에서 셋이 내렸다. 맨 앞의 남자는 목이 굵었다. 팔뚝에 파스. 서경숙 씨가 말한 사람이었다. 마동철. 뒤의 두 사람은 젊었다. 한 사람은 가방을 멨다. 가방 옆으로 벨크로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손목과 발목에 감는 것.

마동철 씨가 나를 봤다. 정문 앞에 서 있는 여자. 무슨 사람인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입주민이세요?”

“아니요.”

“그럼 좀 비켜 주시겠어요. 저희 들어가야 돼서.”

나는 한 걸음 옆으로 섰다. 막지 않았다. 도현 씨와 한 약속이었다. 마동철 씨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막는 사람을 많이 봤을 것이다. 비켜서는 사람은 적었을 것이다.

“보호자분은 아니시죠?”

“아니에요. 여기 서 있을 거예요. 쉴 자리예요.”

“네?”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세 사람은 유리문을 지나 로비로 들어갔다. 장현수 씨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들을 맞았다. 규정대로. 방문 목적과 세대를 확인했다. 2214호. 세대주 요청. 장현수 씨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 손이 버튼 앞에서 일 초쯤 멈췄다. 누르긴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사십사 초. 나는 셌다. 밖에서. 이상철 사장이 옆에서 같이 셌다.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 유리문 너머로 엘리베이터 층 표시가 보였다. 숫자가 올라갔다. 21에서 멈췄다.

휴대폰이 울렸다.

초인종 울렸어요.

네.

어머니가 현관에 서 계세요. 안 여시고.

네.

제가 열게요.

그다음 문자는 오지 않았다. 일 분. 이 분. 층 표시는 21에 멈춰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 사탕을 쥐었다. 포장지가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을 끄지 않았다. 십사 년 전 밤에 나는 휴대폰을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진동이 세 번 울렸는데 몰랐다. 오늘은 손에 쥐고 있었다. 진동이 오면 손바닥이 먼저 알도록. 이 분 동안 진동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진동을 손바닥으로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박용길 씨가 부스 옆 의자에서 일어섰다. 유리문 쪽으로 와서 안에서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라고.

육 분 뒤에 층 표시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21, 20, 19. 사십사 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도현 씨가 나왔다. 걸어서. 양옆에 젊은 남자 둘. 한 사람이 도현 씨 왼쪽 손목을, 한 사람이 오른쪽 팔꿈치를 잡고 있었다. 도현 씨는 패딩을 입고 있었다. 운동화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 마동철 씨가 뒤따랐다. 그 뒤로 서경숙 씨. 코트를 입었는데 단추를 하나도 안 채웠다.

도현 씨가 로비 가운데서 멈췄다. 양옆 사람들도 멈췄다.

“손 놓으세요.”

도현 씨가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로비가 조용해서 유리문 밖까지 들렸다.

“걸어서 갈게요. 병원까지. 제가 문 열었잖아요.”

마동철 씨가 도현 씨 앞으로 왔다.

“아드님, 문 열어 주신 거 감사합니다. 오늘 아주 협조적이세요. 그런데 규정상 차로 모셔야 합니다. 이동 중에 무슨 일 생기면 저희 책임이라서요.”

“4.2킬로예요. 쉴 자리 알아요.”

“차로 가면 십오 분입니다.”

“차는 닫히잖아요.”

도현 씨가 그 말을 하고 로비 따뜻한 의자 쪽으로 걸었다. 장현수 씨가 말한 의자. 난방 배관 위. 양옆 사람들이 따라 끌려갔다. 도현 씨가 의자에 앉았다. 손목을 잡힌 채로. 앉아서 숨을 골랐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저항한 적 없는 사람이 하는 저항이었다. 앉는 것.

마동철 씨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드님, 일어나시죠. 이렇게 되면 저희가 좀 불편하게 모셔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방 멘 직원한테 눈짓을 했다. 직원이 가방 지퍼를 열었다. 벨크로 끈. 도현 씨 손목을 잡은 직원이 손에 힘을 줬다. 도현 씨 팔이 비틀렸다. 얼굴이 하얘졌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센서가 나를 알아챘다. 문이 열렸다. 약속을 어겼다. 쉴 자리가 움직였다.

“손 놓으세요.”

나는 도현 씨 손목을 잡은 직원의 손목을 잡았다. 걸레를 구 년 짠 손이다. 악력은 있다. 직원이 놀라서 나를 봤다. 마동철 씨가 내 어깨를 밀었다. 세게. 나는 뒤로 넘어졌다. 유리문 옆 유리벽에 등이 부딪쳤다. 손을 짚었다. 오른쪽 손목에서 뚝 하는 느낌이 났다. 아프기 전에 먼저 소리가 났다.

로비가 움직였다. 박용길 씨가 나한테 뛰어왔다. 예순 넘은 사람이 뛰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최정호 씨가 부스에서 나왔다. 무전기를 들고. 장현수 씨가 마동철 씨 앞을 막아섰다. 넥타이핀이 흔들렸다.

“여기서 폭행은 안 됩니다. 관리 구역이에요. CCTV 네 대가 다 보고 있습니다.”

마동철 씨가 두 손을 들었다. 웃었다.

“폭행은요. 이분이 저희 직원 손목을 먼저 잡으셨어요.”

“봤습니다. 그 전에 직원분이 입주민 팔을 비트는 것도 봤고요.”

그때 서경숙 씨가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금까지 한 발도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 도현 씨 앞으로 갔다. 아들 손목을 잡은 직원 앞에 섰다. 손목에 시계. 그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았다.

“손 떼요.”

직원이 마동철 씨를 봤다.

“손 떼라고요. 제 아들이 걷는다잖아요.”

서경숙 씨 목소리가 로비 천장에 부딪쳤다. 직원이 손을 뗐다. 반대쪽 직원도 뗐다. 도현 씨가 손목을 쥐었다. 빨갛게 자국이 나 있었다.

“어머님, 이러시면 계약 위반입니다. 계약금은.”

“가져가요.”

“오늘 취소하시면 다음에 부르실 때는.”

“다음은 없어요.”

서경숙 씨가 핸드백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접힌 종이. 찢지 않았다. 마동철 씨 손에 쥐여 줬다.

“그 오십으로 팔에 파스나 더 사 붙이세요.”

마동철 씨가 계약서를 받았다. 잠깐 서경숙 씨를 봤다. 그러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직원들한테 턱짓을 했다. 세 사람이 유리문으로 나갔다. 흰 승합차가 떠났다. 누구도 배웅하지 않았다.

박용길 씨가 내 손목을 보고 있었다. 이미 붓고 있었다. 최정호 씨가 부스에서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파스가 들어 있었다. 모두가 그걸 보고 잠깐 조용해졌다. 그러다 박용길 씨가 먼저 웃었다. 파스라니, 하고. 장현수 씨도 웃었다. 넥타이핀을 만지면서. 나는 웃다가 손목이 울려서 얼굴을 찡그렸다.

서경숙 씨가 나를 봤다. 유리벽에 기대 앉은 나를. 부은 손목을. 그 사람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코트 자락이 로비 바닥에 닿았다. 그 사람은 내 손목을 만지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그 손으로 우리 집 창 닦으셨죠. 두 달 동안.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그러고는 일어섰다. 그게 사과인지 인사인지 나는 몰랐다. 둘 다였을 것이다.

도현 씨가 따뜻한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한테 왔다. 쪼그려 앉았다. 내 손목을 봤다. 구조대원이 다친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손가락 두 개로 손목 뼈를 따라 눌렀다. 아프다고 하자 멈췄다.

“금 갔을 수도 있어요. 병원 가야 돼요.”

“어차피 가는 길이잖아요.”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서경숙 씨를 봤다.

“엄마, 걸어서 가도 돼?”

서경숙 씨는 한참 아들을 봤다. 아들 손목의 빨간 자국. 두 번 묶은 운동화 끈. 로비 유리문. 그 너머 햇빛. 그 사람은 시계를 봤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시계를 보는 게 시간을 재려는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열 시 예약이야. 늦겠네.”

“전화하면 돼. 한 선생님이 본인이 걸어서 오면 치료가 다르게 시작된다고 했다면서.”

서경숙 씨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어젯밤에 엄마가 이모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22층까지 다 들려.”

서경숙 씨가 입을 막았다. 손으로. 그러다 손을 내렸다. 휴대폰을 꺼내 병원에 전화했다. 열두 시로 바꿔 달라고. 걸어서 간다고. 본인이 걸어서요, 하고 한 번 더 말했다.

이상철 사장이 정문 밖에서 종이컵 두 개를 더 들고 서 있었다. 그새 편의점에 다녀왔다. 보리차 셋. 하나는 서경숙 씨 몫이었다. 서경숙 씨가 받았다. 뜨겁다고 했다. 이 사장이 뜨거워야 보리차라고 했다.

우리는 로비를 나섰다. 셋이. 도현 씨가 앞, 나는 손목을 감싸 쥐고 옆, 서경숙 씨가 한 걸음 뒤. 유리문 센서가 셋을 차례로 알아챘다. 박용길 씨가 부스 옆에서 사탕 봉지를 통째로 서경숙 씨 손에 쥐여 줬다. 서경숙 씨가 뭐냐고 물었다. 박용길 씨가 말했다. 오늘은 세 사람이 문 밖으로 나가는 날이라 한 봉지씩이라고. 봉지는 하나뿐이라 셋이 나눠 먹으라고.

정문을 나서면서 도현 씨가 뒤를 돌아봤다. 한 걸음 뒤의 어머니를. 그러고는 입술로 말했다. 소리 내지 않고. 나는 그 입술을 읽었다. 서경숙. 그다음에 손가락을 여덟 개 폈다. 삼 년 동안 그 사람한테 어머니는 이름이 아니라 규칙이었다. 손잡이 없는 창, 잠긴 서랍, 벽을 보는 식탁. 오늘 처음 이름이 됐다. 여덟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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