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6자) · 윤채

공룡 창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십일월 이십칠일 금요일. 한솔아파트까지는 1.8킬로미터다. 강 계단에서 골목을 거꾸로 올라가 큰길을 한 번 건너고, 초등학교 담을 끼고 돌면 나온다. 열두 살까지 나는 그 길을 하루 두 번 걸었다. 학교 가는 길, 학원 가는 길. 그때는 멀었다. 어제 혼자 다시 걸어 보니 이십육 분이었다. 쉴 자리를 찾으면서.

날이 추웠다. 십일월 끝의 바람은 강 쪽에서 불어와 골목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도현 씨는 어머니가 사 둔 패딩을 입고 나왔다. 가격표 끈 자국이 목덜미에 남아 있었다. 삼 년 동안 옷장에서 기다린 패딩이었다.

쉴 자리는 일곱이 됐다. 로비 따뜻한 의자, 편의점 파라솔, 강 계단 맨 위. 그리고 넷이 늘었다. 세탁소 앞 평상. 귤 던지던 할머니들 자리. 할머니 이름은 모른다. 도현 씨가 다음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큰길 버스 정류장 의자. 초등학교 정문 옆 화단 턱. 한솔아파트 정문 경비 초소 옆 벤치. 그 벤치는 이제 경비가 없다. 초소는 비었고 유리창에 재건축 조합 안내문이 붙어 있다. 12월 20일부터 철거 가림막 설치. 출입 통제.

도현 씨는 세탁소 평상에서 오 분 앉았다. 할머니 한 분이 오늘도 있었다. 귤 대신 군고구마를 줬다. 반으로 갈라서. 도현 씨가 이름을 물었다. 할머니가 웃었다. 이 나이에 이름 물어보는 총각은 처음이라고. 윤순덕. 도현 씨가 따라 말했다. 윤순덕. 여섯째라고 나한테 속삭였다. 할머니는 그걸 들었다. 여섯째 마누라는 안 된다고 했다. 도현 씨가 사레들렸다. 군고구마가 목에 걸렸다. 할머니가 등을 두드렸다. 세게.

버스 정류장에서는 앉지 않고 지나갔다. 그가 먼저 괜찮다고 했다. 학교 앞 화단 턱에서는 앉았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찼다. 소리가 컸다. 그가 그 소리를 오래 들었다. 22층에서는 운동장 소리가 안 들린다고 했다.

한솔아파트는 비어 있었다. 1988년에 지은 오 층부터 십오 층까지의 동 여섯 개. 이주가 끝난 단지는 창이 전부 검다. 커튼이 없어서. 단지 안 놀이터 그네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탈 수 없게. 미끄럼틀 밑에 낙엽이 무릎 높이로 쌓여 있었다. 이 놀이터에서 나는 3동 애들과 편을 갈라 놀았다. 그 애들 중에 누가 공룡 집 애였는지는 모른다. 베란다마다 누가 두고 간 것들이 있었다. 빨래 건조대, 화분, 아이 자전거. 누구는 다 가져갔고 누구는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두고 갔다.

3동과 4동 사이 공터에 섰다. 이십 미터. 3동 1204호와 4동 1204호가 마주 보는 끝 집. 우리는 고개를 들었다. 12층을 세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래에서 세면 층이 자꾸 헷갈린다. 도현 씨가 두 번 셌다. 나도 두 번 셌다. 같은 창에서 멈췄다.

나는 먼저 4동 1204호를 봤다. 우리 집이었던 창. 베란다에 아무것도 없었다. 빨간 대야도 없었다. 열세 살 봄에 우리는 급하게 이사했다. 아버지 가게가 문을 닫았고, 집을 팔았다. 대야는 이삿짐 트럭에 안 실렸다. 엄마가 버리라고 했다. 나는 그걸 베란다에 두고 나왔다. 누가 버렸는지 모른다. 그 뒤로 이 단지에 온 적이 없다. 어제 다시 걷기 전까지 1.8킬로미터를 이십 년 동안 안 걸었다.

3동 1204호 베란다 창에 초록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목이 긴 공룡. 햇빛에 바래서 연두색이 됐다. 이십몇 년. 누가 떼지 않았다. 그 뒤에 산 가족들이 그걸 그냥 뒀다.

“저거예요.”

그가 말했다.

“제가 붙였어요. 여덟 살 때. 창에 대면 공룡이 밖을 보는 것 같아서.”

“저는 그걸 매일 봤어요. 4동에서. 공룡이 우리 집 보는 줄 알았어요.”

“우리 집 보는 거 맞아요. 그쪽으로 붙였어요. 4동 12층 빨간 대야 집 애가 매일 발 담그는 거 공룡도 보라고.”

나는 웃었다. 그러다 멈췄다. 그는 그 말을 하고도 웃지 않았다. 공룡이 아니라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윤채 씨, 어머니가 수요일에 찾아가셨다면서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용길 씨가 말해 줬어요. 사모님이 수요일에 관리소장님한테 윤채 씨 일하는 데 물어보셨다고. 장 소장님이 알려 줬다고. 봉투 들고 가셨을 거라고요. 박용길 씨는 사탕 주면서 그런 얘기까지 해 줘요.”

“돈은 안 받았어요.”

“알아요. 그게 아니라.”

그가 공룡에서 눈을 내렸다. 나를 봤다. 22층에서 창을 볼 때의 눈이 아니었다. 화난 눈이었다. 이 사람이 화내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왜 말 안 했어요? 수요일에 어머니가 오셨다는 거. 화요일 아침에 사람들이 온다는 거, 윤채 씨도 알았잖아요. 몇 시에 몇 명이 오는지. 그리고 그 문 앞에 윤채 씨가 서 있겠다고 어머니한테 말했다는 거.”

“그건.”

“다들 저를 두고 정해요. 어머니는 병원을 정했고, 이모는 도장을 찍었고, 이송업체는 몇 시에 올지 정했고, 윤채 씨는 그 문 앞에 서 있을지 정했어요. 저만 몰라요. 삼 년 동안 그랬어요. 식탁 방향도, 손잡이도, 칼 서랍도. 저 모르게 정해지고 저는 그 안에서 두 걸음 떨어져 있었어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이 맞았다. 십사 년 전 밤에 소연이는 나한테 세 번 전화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받지 않았고, 소연이는 나 없이 정했다. 무엇을 정했는지 영영 모른다. 그 뒤로 나는 누가 나 없이 무언가를 정하는 게 제일 무서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를 빼고 정했다. 나는 수요일에 서경숙 씨 봉투를 밀어내면서 내가 그 집 규칙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도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그가 모르는 규칙.

“그리고 하나 더요.”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윤채 씨가 22층을 고른 건 물 때문이잖아요. 멀리서 보려고. 저도 그랬어요. 22층에서 멀리서만 봤어요. 그런데 윤채 씨는 저를 데리고 강까지 갔어요. 저는 윤채 씨 덕분에 갔는데, 윤채 씨는 제 덕분에 간 거잖아요. 제가 열네 번 해서. 그러면 저는 윤채 씨가 강에 가려고 쓴 다리예요, 아니면.”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공터에 바람이 불었다. 빈 동 사이로 부는 바람은 소리가 크다. 창이 다 비어서 울린다.

“아니면요.”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원래 나는 남의 집에서 말을 먼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기는 남의 집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살던 데였다.

“둘 다예요. 도현 씨 덕분에 갔고, 도현 씨를 데리고 갔어요. 둘 다 맞아요. 그게 나빠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럼 뭐예요.”

“말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정하기 전에. 저도 정하는 데 끼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십 미터 공터 한가운데 서 있었다. 3동 공룡과 4동 빈 창 사이. 어릴 때 우리는 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대야와 공룡으로 봤다. 점으로 보지 않고. 지금은 한 걸음 거리에서 서로를 봤다. 가까우니까 오히려 잘 안 보였다.

그때 3동 현관에서 누가 나왔다. 조끼를 입은 남자. 재건축 조합 현장 관리인이라고 했다. 빈 동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는 안 들어갔다고 했다. 관리인은 우리가 올려다보던 12층 창을 따라 올려다보더니, 공룡을 봤다. 아, 저거, 하고 웃었다. 이주 조사하러 올라갔을 때 저 스티커 보고 떼려다 말았다고. 떼면 창에 자국 남아서. 그러고는 말했다. 십이월 이십이일이 가림막 치기 전 마지막 개방일이라고. 옛날 살던 사람들 신청하면 관리인 동행해서 한 시간 올라가 볼 수 있다고.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도현 씨가 그 날짜를 따라 말했다. 십이월 이십이일. 관리인 이름은 조만식이었다. 도현 씨는 그 이름도 외웠다. 일곱째.

관리인이 가고 나서 그가 말했다.

“화요일 아홉 시 반이요.”

“문은 제가 열어요. 윤채 씨가 막거나 어머니가 열거나 그 사람들이 따는 게 아니라. 제가 안에서 열어요. 윤채 씨는 밖에 서 계세요. 쉴 자리로요. 막는 사람 말고.”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은 혼자 돌아갈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1.8킬로미터. 쉴 자리 일곱. 삼 년 동안 현관 밖에 안 나간 사람이 혼자.

“뒤에서 따라가도 돼요?”

“세지 마세요. 제가 셀게요.”

그가 먼저 걸었다. 나는 스무 걸음 뒤에서 걸었다. 스무 걸음 뒤에서 보는 사람은 점이 아니었다. 어깨가 조금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오른쪽 운동화 끈이 한 번 풀렸다가, 그가 쪼그려 앉아 다시 묶었다. 두 번 감는 매듭. 물에서 안 풀린다는 매듭. 그는 묶고 나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등이었다. 그가 경비 초소 옆 벤치에 앉았다. 나는 멈췄다. 다가가지 않았다. 그가 일어서자 나도 걸었다. 초등학교 화단 턱에서 앉았다. 나는 멈췄다. 운동장 공 소리가 들렸다. 버스 정류장은 지나갔다. 세탁소 평상. 윤순덕 할머니가 아직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도현 씨를 봤다. 둘이 싸웠냐고 소리쳤다. 도현 씨가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가 그럼 왜 따로 걷냐고 했다. 도현 씨가 연습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이상한 연습도 다 있다고 했다.

편의점 파라솔에서 이상철 사장이 나와서 그한테 삼각김밥을 줬다. 그러고는 스무 걸음 뒤의 나를 보고 하나를 더 들고 와서 줬다. 두 사람한테 따로. 싸운 사람들한테 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강 계단 맨 위에서 그는 앉지 않았다. 물을 봤다. 김영배 씨는 없었다. 금요일이니까. 그는 서서 오 분을 봤다. 나는 세지 않았다. 그가 셌을 것이다.

로비 따뜻한 의자. 그가 앉았다. 나는 정문 밖에 섰다. 유리문 센서가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거리에. 로비 안에서 박용길 씨가 그에게 사탕을 줬다. 그가 사탕을 받아 들고 유리문 쪽을 봤다. 나를. 손을 들었다. 한 번. 그러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그날 밤 문자가 왔다.

1.8킬로. 쉴 자리 일곱. 이름 일곱. 조만식 관리인까지. 싸워서 미안해요. 싸운 건 안 미안해요. 화요일 아홉 시 반.

나는 답장을 썼다. 한 줄.

문 밖에 있을게요.

보내고 나서 한참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답장이 올까 봐. 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할 말을 다 하면 더 안 보내는 사람이었다. 창을 봤다. 내 원룸 창은 작다. 옆 건물 벽만 보인다. 나는 그 창에 손바닥을 댔다. 어깨 높이. 차가웠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대고 있으면 조금 괜찮아진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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