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41자) · 경숙

새벽 네 시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진다. 알람은 없다. 이 년 전부터 몸이 그렇게 됐다. 네 시에 깨서 거실로 나간다. 불은 켜지 않는다. 불을 켜면 아들이 깬다. 거실 창 앞으로 간다. 손잡이를 뗀 자리, 나사 머리 두 개. 손가락으로 누른다. 잠겨 있다. 잠겨 있을 수밖에 없다. 손잡이가 없으니까. 그래도 누른다. 네 손가락으로. 그다음 22층 계단 밑에 서서 위를 올려다본다. 서재 문틈으로 빛이 새는지. 새지 않으면 잔다. 새면 앉아서 기다린다. 빛이 꺼질 때까지.

삼 년 전 팔월, 아들은 소방서에서 돌아와 욕실에 두 시간 있었다. 샤워기 소리가 두 시간 났다. 나와서도 강물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에서, 손톱 밑에서. 나는 그 냄새를 빨래로 빼려고 그 주에 세탁기를 열한 번 돌렸다. 냄새는 빠졌다. 아들은 그다음 주에 사표를 냈고 그다음 달부터 현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강물 냄새 대신 섬유유연제 냄새가 집에 가라앉았다.

이 년 동안 칠백 번쯤. 나는 시계를 차고 사는 사람인데 이건 세지 않았다. 세면 무서워질 것 같아서.

이 년 전 칠월 새벽 네 시 십이 분. 그날은 빛이 22층이 아니라 거실에서 새고 있었다. 창이 열려 있었다. 그때는 손잡이가 있었다. 아들이 창틀에 앉아 있었다. 등을 안쪽으로, 다리를 바깥쪽으로 두지 않고, 창틀 위에 모로. 한쪽 발은 거실 바닥에 닿아 있었다. 나는 그걸 나중에 알았다. 그 순간에는 창틀에 앉은 등만 봤다. 이십이 층 밤바람에 셔츠가 부풀어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놀라서 떨어질까 봐. 한 걸음씩 갔다. 네 시 십이 분부터 네 시 십칠 분까지. 오 분 동안 다섯 걸음. 팔을 잡았다. 아들이 돌아봤다. 엄마, 물이 너무 멀어. 그 말만 했다.

다음 날 손잡이를 뗐다. 관리실에 드라이버를 빌려 달라고 하지 않고 철물점에서 샀다. 누가 알까 봐. 주방에 자물쇠를 달았다. 칼 서랍에도. 식탁을 돌렸다. 약 상자를 차 트렁크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 매일 새벽 네 시에 깼다.

십일월 이십오일 수요일 오전 열 시. 마포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실. 한수정 선생님. 세 번째 상담이었다. 선생님은 내 서류를 넘기다가 멈췄다.

“어머님, 지난주에 아드님이 로비까지 내려오셨다고요.”

“관리소장이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어제는 밖에 나가셨고요.”

“강까지요. 1.2킬로.”

나는 그 숫자를 말하면서 목소리를 조절했다. 병원에서는 흥분한 보호자가 제일 안 믿긴다. 선생님이 펜을 내려놓았다.

“보호입원은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 쓰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제가 두 번째 상담 때도 말씀드렸지요. 입원 필요성이 있다는 제 소견은 그대로입니다. 삼 년 은둔, 이 년 전 창틀 일. 다만 지금 아드님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면, 본인 동의로 오시는 자의 입원이나 외래도 고려할 수 있어요. 본인이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시는 거랑 누가 문을 따고 데려오는 거랑은 치료가 다르게 시작됩니다.”

“본인이 동의 안 하면요.”

“그러면 예약대로 하시는 거고요. 결정은 보호의무자 두 분이 하세요.”

상담실 창에는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그 사이로 마포대교 난간이 조금 보였다. 이 병원도 강이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나는 거기서 눈을 돌렸다. 선생님은 결정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부드럽게. 나는 그 결정을 삼 주 전에 이미 했다. 도장을 찍었다. 동생한테도 찍게 했다. 그 결정을 다시 드는 일이 도장 찍는 일보다 무거웠다.

오후 한 시. 안심케어 이송 사무실. 망원역 근처 상가 이 층. 문에 붙은 스티커. 정신과 이송 전문 · 24시 · 가족의 마지막 선택. 마지막이라는 말을 광고에 쓰는 회사였다. 마동철 실장. 마흔다섯. 목이 굵었다. 반팔 셔츠 아래 팔뚝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지난주 현장에서 한 명한테 물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계약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오전 아홉 시 반에 방문합니다. 세 명. 아드님이 문 안 열면 보호의무자 동의서 보여 드리고 들어갑니다. 비밀번호 알려 주시면 되고요. 저항하시면 안전하게 제압합니다. 손목하고 발목. 다치게는 안 합니다. 저희 십 년 동안 다친 사람 없어요. 저희 직원 빼고.”

그 사람은 파스를 가리키며 또 웃었다.

“아드님이 요즘 밖에 나가요. 걸어서. 병원까지 걸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동철 실장의 웃음이 조금 작아졌다.

“어머님들이 마지막에 다 그러세요. 요즘 좋아졌다고. 그러고 취소하시면 한 달 뒤에 저희 다시 부르세요. 그때는 더 힘들어요. 애들이 우리가 온다는 걸 알거든요. 그리고 계약금 오십은 환불이 안 됩니다. 저희도 날짜 비워 두는 거라서요.”

“돈 말하는 거 아니에요.”

“알죠. 그런데 어머님, 흔들리시면 아드님이 더 고생해요. 흔들리지 마세요. 이런 일은 한 번에 끝내는 게 서로한테 좋습니다.”

그 사람은 친절하게 말했다.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걸 나는 그날 배웠다. 그 사람한테 내 아들은 손목과 발목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접어 핸드백에 넣었다. 취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했다. 이 년 동안 새벽 네 시가 내 입을 막았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계단에서 다른 여자와 마주쳤다. 나보다 조금 젊었다. 계약서를 가슴에 안고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그 여자는 나를 보고 눈물을 닦지도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같은 문에서 나온 사람끼리는 물을 게 없었다.

차에서 동생한테 전화했다. 보호의무자 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둘째. 경미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언니 또 새벽에 깼지. 목소리가 쉬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미가 말했다. 언니, 나 그 도장 찍을 때 언니가 불쌍해서 찍었지 도현이가 미워서 찍은 거 아니다. 그러니까 언니가 빼자면 나도 빼. 언니 편이야. 경미는 늘 그렇게 두 편을 다 들어 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싸우면 둘 다 편들다 둘 다한테 혼났다.

오후 세 시. 나는 성산동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오윤채 씨가 월수목 일한다는 집. 관리소장이 알려 줬다. 개인 정보라며 망설이다가, 사모님이 이러시는 건 처음 봐서요, 하면서. 17층. 벨을 눌렀다. 그 집 주인은 없었다. 오윤채 씨가 문을 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았던 얼굴이었다. 내 아들이 시월 삼십일에 그 사람을 봤을 때도 이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이 집 사모님 허락이 없어서요. 현관까지만요.”

그 사람은 이 집 규칙을 지켰다. 내 집 규칙은 어겼으면서. 나는 현관에 섰다. 그 사람 뒤로 거실이 보였다. 레고 블록이 바닥 한쪽에 색깔별로 모여 있었다. 치우다 만 것이 아니라 색깔별로 치운 것이었다. 창이 작았다. 창 아래쪽 유리에 작은 손자국이 여러 개. 아이 손. 오윤채 씨는 그 손자국을 닦고 있던 중이었다. 걸레가 창틀에 걸쳐 있었다.

나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냈다. 삼백만 원. 아침에 은행에서 찾았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안 오시면 좋겠어요. 이건 그동안 도현이 봐 주신 값이에요. 일하신 건 일하신 거니까.”

오윤채 씨는 봉투를 보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았다.

“화요일이 십이월 일일이죠.”

“네.”

“그날 아침에 사람들이 오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었다.

“사모님, 그 사람들 만나 보셨어요?”

“오늘요.”

“어떠셨어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친절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손목과 발목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오윤채 씨가 고무장갑을 한쪽 벗었다. 맨손으로 봉투를 내 쪽으로 밀었다. 가볍게. 내 핸드백 쪽으로.

“이건 못 받아요. 받으면 제가 화요일에 안 가는 값이 되잖아요. 저는 화요일에 갈 거예요. 아홉 시 반 전에. 그 문 앞에.”

“막으시려고요?”

“아니요. 도현 씨가 걸어 나오는 거 보려고요. 걸어 나오면 쉴 자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한 군데는 될 수 있어요.”

나는 봉투를 도로 넣었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핸드백 지퍼를 천천히 닫았다. 오윤채 씨가 그걸 봤다. 그러고는 이상한 말을 했다.

“사모님, 거실 창 손잡이 뗀 자리요. 나사 옆에 손가락 자국 네 개. 매일 밤 누르시는 거죠.”

나는 지퍼를 닫다가 멈췄다.

“두 달 동안 제가 창 닦을 때마다 그것도 지웠어요. 그때는 누구 건지 몰랐어요. 지난주부터는 안 지웠어요. 도현 씨 손바닥 자국도 안 지우고요. 둘이 같은 창에 있어요. 도현 씨 건 어깨 높이, 사모님 건 허리 높이. 둘 다 창을 붙잡고 있어요. 하나는 열려고, 하나는 안 열리게.”

나는 그 사람을 봤다. 고무장갑을 한 짝만 낀 여자. 남의 집 창을 닦다가 나온 여자. 그 사람 뒤 거실 창에 아이 손자국이 아직 몇 개 남아 있었다.

“그 집 아이 손자국은 안 지우세요?”

내가 물었다. 왜 물었는지 모르겠다.

“지워요. 그 애는 창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창에 뽀뽀하는 거라서요. 매일 새로 해요.”

그 말에 나는 웃을 뻔했다. 웃지 않았다. 대신 현관 신발장에 손을 짚었다. 이 년 동안 새벽 네 시에 창틀 나사를 누르던 손가락이 신발장 모서리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핸드백을 열었다. 봉투 옆에 접힌 계약서. 안심케어. 아홉 시 반. 세 명. 계약서를 꺼내지 않았다. 찢지도 않았다. 이 년 동안의 새벽이 그 종이를 붙잡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계란말이를 했다. 대파를 썰었다. 칼은 서랍에서 꺼내고 쓰고 나서 다시 잠갔다. 접시 두 개. 하나는 식탁, 하나는 거실 바닥. 아들은 거실 바닥에서 먹었다. 나는 식탁에서 먹었다. 벽을 보고. 이 년 동안 내가 돌려놓은 방향이었다. 먹다가 뒤를 돌아봤다. 아들이 창을 보고 계란말이를 먹고 있었다. 창에 아들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어깨 높이. 그 아래 내 손가락 자국 네 개. 허리 높이.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갔다. 창 앞에 섰다. 나사 머리에 손가락을 댔다. 이번에는 누르지 않았다. 대고만 있었다. 차가웠다. 아들 말이 맞았다. 대고 있으면 유리가 차가워서 조금 괜찮아진다.

22층 문틈으로 빛이 새고 있었다. 나는 앉아서 기다렸다. 이번에는 빛이 꺼지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다.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모르겠다. 다섯 시에 빛이 꺼졌다. 나는 다시 누웠다. 십이월 일일까지 닷새가 남아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