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38자) · 도현
쉴 자리 셋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일주일 동안 열네 번 했다.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21층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열네 걸음, 엘리베이터 사십사 초, 로비에서 정문까지 열두 걸음. 정문 앞에서 멈춘다. 센서가 나를 알아채고 문을 연다. 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여덟 걸음 자리에서 다시 여덟 걸음을 돌아간다. 따뜻한 의자에 앉는다. 장현수 씨가 말한 의자. 난방 배관 위. 거기 앉아서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간다.
밤 경비 박용길 씨는 사흘째부터 내가 내려오면 사탕을 하나씩 줬다. 나흘째에는 두 개. 문 앞에서 돌아선 날은 두 개라고 했다. 규칙이 뭐냐고 물었더니 방금 만들었다고 했다. 윤채 씨가 말한 그대로였다. 이 사람은 규칙을 그 자리에서 만든다. 사탕을 더 주기 위해서만.
낮 경비 최정호 씨는 사탕 대신 날씨를 알려 줬다. 오늘은 바람이 세서 문 앞이 춥다고. 오늘은 햇빛이 로비 안까지 든다고. 최정호 씨는 내가 돌아설 때마다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못 본 척해 주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 일주일 동안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매일 저녁 계란말이를 두 접시 했다. 하나는 식탁에, 하나는 거실 바닥에. 내가 거실 바닥에서 먹는다는 걸 어머니는 알았다. 두 번째 접시는 윤채 씨가 없는 날에도 나왔다. 나는 그 접시를 다 먹었다. 두 접시 다.
십일월 이십사일 화요일. 윤채 씨가 두 시에 왔다. 로비까지 올라오지 않고 정문 밖에서 전화했다. 밖에 있을게요. 문 밖에. 나는 21층에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사십사 초. 거울을 봤다. 어제 머리를 잘랐다. 어머니가 잘라 줬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이 년 만에 어머니가 가위를 들고 내 앞에 선 거였다. 어머니 손이 떨려서 앞머리가 조금 비뚤었다. 어머니는 자르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다 자르고 나서 거울을 들어 보여 주면서 한마디 했다. 밖에 나가려면 머리는 해야지. 그 말이 허락인지 아닌지 나는 몰랐다.
로비에서 정문까지 열두 걸음. 여덟 걸음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유리 너머 보도에 윤채 씨가 서 있었다. 문 밖 한 걸음 자리에. 손에 사탕 봉지. 박하. 박용길 씨한테 한 봉지를 통째로 얻어 왔다고 나중에 말했다.
“아홉 걸음이요.”
윤채 씨가 말했다. 유리문 너머로 들렸다. 문이 열려 있어서.
“여덟 다음은 아홉이에요.”
나는 아홉 걸음째를 디뎠다. 열. 열하나. 열두 걸음에 문턱을 넘었다. 보도블록. 발바닥이 딱딱했다. 대리석이 아닌 것을 삼 년 만에 밟았다. 바람이 얼굴을 쳤다. 차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22층에서는 하나로 뭉쳐서 들리던 소리가 여기서는 다 따로였다. 버스 브레이크, 오토바이, 누가 부르는 이름, 비둘기 날개.
나는 뒤를 돌아봤다. 문이 닫히고 있었다. 로비 안에서 최정호 씨가 모니터를 보는 척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먹을 쥐어 보였다.
“쉴 자리 세 군데 봐 뒀어요.”
윤채 씨가 말했다. 휴대폰 메모를 보여 줬다.
1. 로비 따뜻한 의자 2. 골목 편의점 앞 파라솔 3. 강 계단 맨 위
“일주일 동안 혼자 걸어 봤어요. 집에서 강까지 1.2킬로. 큰길은 차 소리가 커서 골목으로. 앉을 데 있는 데만 골랐어요.”
“어르신 모시는 집에서 배운 거예요?”
“오래 걸으면 앉아야 되니까요. 누구든.”
우리는 골목으로 갔다. 골목은 눈높이에 있었다. 22층에서 내려다보면 지붕과 차 지붕만 보이던 동네가 여기서는 간판과 얼굴이었다. 세탁소 유리문 안에서 다리미 김이 올라왔다. 철물점 앞에 빗자루가 크기순으로 꽂혀 있었다. 할머니 둘이 평상에 앉아 귤을 까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새댁이냐고 물었다. 윤채 씨가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가 귤을 하나 던졌다. 내가 받았다. 삼 년 만에 무언가를 받아 든 손이었다. 귤은 차가웠다. 나는 멈추고 싶을 때마다 멈췄다. 윤채 씨도 멈췄다. 먼저 가자고 하지 않았다. 물속에서 느린 쪽에 맞추듯이. 이번에는 윤채 씨가 나한테 맞췄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오 분 앉았다. 편의점 사장이 나왔다. 오십 대. 앞치마에 이름표. 이상철. 이 사장은 윤채 씨를 알았다. 지난주 매일 이 파라솔에 혼자 앉았다 간 사람이라고. 우리 둘을 보고 삼각김밥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유통기한 한 시간 남은 거. 버리는 거니까 드세요.”
“한 시간이면 아직 파는 거 아니에요?”
윤채 씨가 물었다. 이 사장이 웃었다.
“한 시간 뒤면 버리는 거죠. 미리 버리는 거예요.”
참치마요. 나는 포장을 뜯는 법을 잊어버려서 김이 다 찢어졌다. 이 사장이 그걸 보고 하나를 더 가져왔다. 이번에는 자기가 뜯어서 줬다. 번호 순서대로. 1, 2, 3. 나는 그 이름을 외웠다. 이상철. 다섯째.
강에 도착한 것은 두 시 사십 분이었다. 강 계단. 망원 한강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계단. 맨 위에서 멈췄다. 윤채 씨가 찍어 둔 세 번째 쉴 자리.
물이 있었다.
22층에서 폭 삼십 미터였던 물이 여기서는 끝이 없었다. 건너편이 멀었다. 물이 움직였다. 22층에서도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여기서는 소리가 났다. 계단 맨 아래 돌에 물이 부딪치고 빠지는 소리. 강물 냄새. 비린내와 흙냄새와 차가운 냄새. 오 년 동안 이 냄새 속에 들어가서 일했다. 삼 년 동안 잊었다. 한 번 들이쉬자 다 돌아왔다.
“안 비슷한데요.”
내가 말했다.
“22층에서 본 거랑요?”
“전혀 다른데요. 위에서는 회색 길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회색이 아니었다. 가운데는 어둡고 가장자리는 밝고 햇빛이 닿는 데는 하얬다. 계단 아래쪽은 흙탕물이었다. 어제 비가 왔다. 여기 시야는 오늘 이십 센티쯤일 것이다. 손을 뻗으면 손목까지만 보이는 물.
계단 중간쯤에 남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등을 보이고. 예순쯤. 등산 점퍼. 옆에 보온병. 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등을 알았다. 삼 년 전 이 계단 맨 아래에 서서 나한테 소리치던 등. 그때는 등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그 남자가 돌아봤다. 사람이 뒤에 서면 돌아보게 된다. 나를 봤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다 알았다. 얼굴이 굳었다. 그 사람이 일어섰다. 보온병이 넘어져 계단을 두 칸 굴렀다.
“당신.”
김영배 씨였다. 김하람의 아버지. 이름은 그때 신문에서 봤다. 나는 그 이름을 삼 년 동안 한 번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당신, 그 구조대원.”
“네.”
“삼 년 동안 어디 있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계단을 올라왔다. 한 칸씩.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의 걸음이었다. 윤채 씨가 내 옆으로 한 걸음 왔다.
“나는 매주 화요일에 여기 와. 우리 애 그날이 화요일이었어. 삼 년 동안 백오십 번 왔어. 당신은 한 번을 안 왔어. 한 번을.”
그 사람 목소리가 강 소리보다 컸다. 공원을 걷던 사람들이 돌아봤다.
“그날 나는 당신한테 소리쳤어. 넌 왜 살아 나왔냐고. 그 말 하고 나서 삼 년 동안 그 말 취소하려고 여기 왔어. 당신이 한 번은 올 줄 알았어. 구조대원이니까. 우리 애 마지막으로 만진 사람이니까. 한 번은 와서 우리 애가 어디 있었는지, 어떻게 있었는지 말해 줄 줄 알았어. 안 왔어. 그만뒀다는 소리만 들었어.”
나는 서 있었다. 계단 맨 위. 물이 보였다. 이 사람 뒤로.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그 사람이 말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삼 년 늦게 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듣기 싫어. 할 말이 그거면 가.”
나는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 굴러간 보온병을 주웠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보리차 냄새가 났다. 그 사람은 보온병을 들고 계단 끝, 물이 닿는 돌 위에 섰다. 우리를 등지고. 그러고는 더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계단 맨 위에 앉았다. 윤채 씨가 찍어 둔 자리.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김영배 씨의 등이 물 앞에 있었다. 그 사람은 거기서 백오십 번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나는 22층에서 백오십 번 창 앞 두 걸음에 서 있었다. 같은 물을 보고. 한 사람은 가까이서, 한 사람은 멀리서. 그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나는 안다. 교각 두 번째 기둥 아래, 수심 사 미터, 바닥에 걸린 폐그물. 아이 운동화 끈이 거기 감겨 있었다. 손으로 풀었다. 시야는 삼십 센티였다. 아이 얼굴은 못 봤다. 손으로만 알았다. 그걸 말하려면 그 사람 앞에 한 번 더 서야 했다.
“하나 여쭤도 돼요?”
내가 물었다. 김영배 씨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왜 저희 집 면접에서 물 얘기를 하셨어요?”
윤채 씨가 한참 물을 봤다.
“열아홉 살 때 이 강에서 친구를 잃었어요. 저기 다리 조금 아래서요. 소연이. 정소연. 밤이었고, 소연이가 저한테 세 번 전화했는데 제가 안 받았어요. 아르바이트 중이었어요. 부재중 셋. 그다음 날 아침에 소식 들었어요.”
그 사람은 숫자처럼 말했다. 십사 년 동안 여러 번 센 숫자처럼.
“그 뒤로 십사 년 동안 강 근처에 안 왔어요. 지하철로 강 건널 때는 눈 감았어요. 삼십 초. 그런데 멀리서는 보고 싶었어요. 가까이는 못 가고. 그래서 22층을 골랐어요. 폭 삼십 미터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그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은 나를 안 봤다. 물을 봤다. 눈을 감지 않고.
“오늘은 눈 안 감으시네요.”
“안 감았어요. 도현 씨가 열네 번 했다고 해서요. 저는 열네 번이 아니라 십사 년 걸렸어요. 그 사람이 한 번에 나오면 저도 한 번에 와야죠.”
해가 지는 데 오십 분쯤 걸렸다. 그동안 김영배 씨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해가 다 지자 보온병을 들고 계단 옆 길로 올라갔다. 우리 옆을 지나갈 때 걸음을 한 번 멈췄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도 와.”
그 말을 하고 갔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오라는 말인지, 오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인지. 윤채 씨가 말했다. 둘 다일 거라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쉴 자리 셋을 거꾸로 지났다. 강 계단 맨 위, 편의점 파라솔, 로비 의자. 로비 의자에 앉자 난방 배관의 온기가 엉덩이로 올라왔다. 박용길 씨가 야간 교대로 들어오다가 나를 봤다. 밖에서 들어오는 나를. 사탕 봉지를 통째로 부스 창틀에 올려놓았다.
“오늘은 문 밖에서 들어온 날이라 한 봉지.”
그 규칙은 방금 만든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주일 전에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