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73자) · 도현

사백사십 단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십일월 십칠일 화요일에 첫눈이 왔다. 십일월에 서울에 눈이 오는 것은 드물다. 22층에서 눈을 보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옆으로 간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바람이 빠르게 지나가서, 눈송이가 창 앞을 수평으로 긋고 간다. 삼 년 동안 나는 눈을 그렇게만 봤다. 옆으로 가는 것.

“눈이 옆으로 가네요.”

내가 말했다. 윤채 씨는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창을 보고. 우리 둘 다 이제 식탁에 안 앉는다. 식탁은 여전히 벽을 보고 있다. 어머니가 돌려놓은 방향 그대로. 우리가 그 방향을 바꾸지 않은 것은 그게 어머니 것이라서였다.

“여기는 그래요.”

“아래에서는요?”

“아래로 떨어져요. 당연히.”

당연히. 그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 삼 년 동안 나한테 당연한 것은 없었다. 현관 밖이 당연하지 않았고, 배달 음식이 당연하지 않았고, 창에서 두 걸음이 당연하지 않았다. 눈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도 나는 확인해 본 지 삼 년이 됐다.

수난구조대에서는 물속 시야를 미터로 말한다. 한강 망원 구간 여름 시야는 삼십 센티. 손을 뻗으면 손끝이 안 보인다. 그래서 줄을 잡고 들어가고, 손으로 더듬는다. 눈은 소용없다. 나는 오 년 동안 눈을 감고 일했다. 그러다 나와서 삼 년 동안 눈만 뜨고 살았다. 22층에서는 다 보이는데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나는 일어섰다. 22층으로 올라갔다. 윤채 씨가 따라왔다. 계단참에 작은 창이 있다. 환기창. 손잡이가 있다. 어머니가 떼지 않은 유일한 손잡이. 안전 고리가 걸려 있어서 십 센티까지만 열린다. 십 센티로는 사람이 못 나간다. 어머니는 그걸 재 보고 남겨 두었을 것이다.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삼 년 만이었다. 뻑뻑했다. 창이 십 센티 열렸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눈이 한 송이 들어와서 계단참 바닥에 떨어졌다. 아래로. 나는 그 한 송이가 녹는 것을 봤다. 이 초쯤 걸렸다.

“아래로 떨어지네요.”

“당연하죠.”

윤채 씨가 말했다. 나는 창을 닫지 않았다. 이 분쯤 그대로 서 있었다. 바깥 소리가 들어왔다. 차 소리, 어디선가 공사장 망치 소리, 바람이 건물 모서리를 긁는 소리. 22층에서도 소리는 올라온다. 창을 닫고 살면 그걸 잊는다.

“일 층에 내려가 볼까요?”

내가 말했다. 윤채 씨가 창틀을 잡았다.

“지금요?”

“네.”

“삼 년 만인데요.”

“그러니까 지금요. 눈 오는 날에요. 아래로 떨어지는 거 보고 싶어서요.”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신발장 맨 아래 칸의 운동화. 삼 년 전 어머니가 사 온 것. 밑창이 새것이다. 신어 보니 발이 조금 커졌는지 작아졌는지 모르겠다. 끈을 두 번 묶었다. 구조대에서 배운 매듭으로. 물에서 안 풀리는 매듭. 윤채 씨가 그걸 보고 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갔다. 멈췄다.

복도가 넓었다. 기억보다. 기억 속 복도는 좁았다. 삼 년 전 마지막으로 이 복도를 걸을 때 나는 소방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무엇이든 좁았다. 오늘 복도는 끝이 멀었다. 엘리베이터까지 열네 걸음. 나는 셌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십 초쯤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에 삼 년 동안 안 자른 머리를 한 남자가 있었다. 나는 안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다시 눌렀다. 또 열렸다. 또 안 들어갔다. 거울 때문이 아니었다. 상자였다. 닫히는 상자. 문이 닫히면 이 분 동안 나갈 데가 없다. 물속도 그렇다. 들어가면 올라올 때까지 나갈 데가 없다. 삼 년 전 여름 망원 구간 교각 밑. 네 번째로 들어갔을 때. 열일곱 살. 김하람. 친구들과 강가에서 놀다가 발이 미끄러졌다고 했다. 신고부터 입수까지 십이 분. 나는 네 번 들어갔다. 네 번째에 손끝에 운동화 끈이 걸렸다. 올라왔을 때 강 계단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이 아버지였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소리쳤다. 넌 왜 살아 나왔냐고.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삼 년 동안 대답을 찾았다. 22층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에 윤채 씨가 말했다.

“계단으로 갈까요?”

“스물한 층인데요.”

“내려가는 건 괜찮아요.”

“무릎이요.”

“천천히 가면 돼요. 저 쉬는 자리 알아요.”

비상계단은 어둡다. 층마다 센서등이 있는데 절반쯤 안 들어온다. 윤채 씨가 그걸 알았다. 청소 용역은 계단을 안 쓰는데 자기는 가끔 썼다고. 엘리베이터가 이삿짐으로 붐비는 날에. 층마다 스물두 단. 21층에서 1층까지 스무 번 꺾는다. 사백사십 단.

십구 층과 십팔 층 사이에서 센서등이 안 들어왔다. 어두웠다. 나는 난간을 잡았다. 난간이 차가웠다. 발이 다음 단을 못 찾았다. 물속 같았다. 시야 삼십 센티. 손을 뻗었다. 손끝에 무언가 닿았다. 천. 윤채 씨 소매였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나는 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 뒤로 사백 단 가까이 놓지 않았다. 물속에서 줄을 놓지 않는 것처럼.

윤채 씨가 셌다. 소리 내어가 아니라 입술로. 나는 그 입술 모양을 어두운 데서 봤다. 백십. 백십일. 센서등이 켜질 때마다 숫자가 보였다.

십오 층에서 앉았다. 계단참에 창이 없었다. 비상계단에는 창이 없다. 벽만 있다. 그래서 편했다.

“절반 왔나요?”

“절반 조금 안 됐어요. 백삼십이 단.”

“어떻게 세요, 어두운데.”

“발로 세요. 발은 안 어두워요.”

십일 층에서 또 앉았다. 윤채 씨가 가방에서 사탕을 꺼냈다. 박하. 경비 박용길 씨 사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름을 두 번째로 들었다. 사탕을 입에 넣었다. 입 안이 차가워졌다. 계단에서 박하사탕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이 년 동안 나는 22층에서 무엇을 입에 넣어도 맛을 잘 몰랐다. 박하는 알았다.

“여기서 몇 층이에요?”

“십일 층이요.”

“한 층만 더 가면 12층이네요.”

“12층에서 쉴까요?”

“창 없는데요.”

“그래도요. 우리 층이잖아요.”

우리는 12층 계단참에 섰다. 창은 없었다. 벽에 12라는 숫자만 있었다. 빨간 페인트. 나는 그 숫자를 봤다. 윤채 씨도 봤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여기서 내려다볼 창은 없었다. 그래서 둘 다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칠 층쯤에서 윤채 씨 발소리가 달라졌다. 조금 느려졌다. 나는 소매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끌려가는 게 아니라 같이 내려가는 속도로. 물속에서 둘이 한 줄을 잡고 올라올 때 느린 쪽에 맞춘다. 그걸 오 년 했다. 몸이 먼저 기억했다.

일 층에 도착한 것은 삼십팔 분 뒤였다. 엘리베이터로는 사십사 초다. 윤채 씨가 마지막 단을 밟으며 말했다. 사백사십. 나는 그 숫자를 내 노트에 적고 싶었다. 노트가 없었다. 삼 년 동안 적을 게 없었으니까.

방화문을 열자 로비였다. 대리석. 빛. 사람. 로비에는 사람이 있었다. 택배 기사, 유모차, 우편함 앞의 노인. 그 사람들이 나를 봤다. 아무도 나를 몰랐다. 경비 부스의 낮 경비가 일어섰다. 사십 대. 모니터를 보고 나를 봤다. 입주민 사진이 모니터에 있을 것이다. 삼 년 전 사진이.

“2214호시죠?”

“네.”

“여기 사 년 근무했는데 처음 뵙습니다. 최정호입니다.”

그가 명찰을 가리켰다. 나는 그 이름을 외웠다. 넷째. 오윤채, 장현수, 박용길, 최정호. 최정호 씨가 부스 옆 의자 두 개를 가리켰다. 앉으라고. 우리는 앉았다. 로비 의자는 차가웠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셌다. 십 분 동안 여덟 명. 전부 달랐다. 택배 상자의 크기가 달랐고, 걷는 속도가 달랐고, 신발 소리가 달랐다. 위에서는 전부 같은 점이었다.

“여기서 보니까 어때요?”

윤채 씨가 물었다.

“다 안 비슷하네요.”

유리문 밖으로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그때 지하 주차장 쪽 문이 열렸다. 어머니였다. 코트 단추를 다 채우지 못했다. 한쪽 손에 휴대폰. 관리소장이 뒤따라 나왔다. 장현수 씨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는 고개였다. 규정대로 세대주에게 알렸다는 고개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내 앞에 섰다. 숨이 찼다. 지하 주차장 계단을 뛰어 올라온 숨이었다. 어머니는 윤채 씨를 보지 않았다. 나만 봤다. 내 신발을 봤다. 두 번 묶은 끈.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계단으로. 사백사십 단.”

어머니 입술이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이 화인지 다른 것인지 몰랐다. 어머니 코트 어깨에 눈이 녹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뛰어오느라 털지 못한 눈이었다.

“엄마, 나 십이월 일일에 안 가.”

로비가 조용했다. 최정호 씨가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우편함 앞 노인이 우리를 봤다. 어머니가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유리문을 가리켰다. 로비 정문. 그 너머에 눈이 떨어지는 길.

“그럼 나가 봐. 저 문 밖으로. 지금.”

나는 일어섰다. 정문까지 열두 걸음. 나는 걸었다. 여덟 걸음에서 멈췄다.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센서가 나를 알아챘다. 문이 열렸는데 나는 서 있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눈 한 송이가 로비 안으로 들어와 대리석에 떨어졌다. 아래로. 녹았다. 문이 기다리다가 닫혔다. 나는 그 여덟 걸음 자리에 서 있었다.

“봐.”

어머니가 말했다. 작게.

“여기까지야, 도현아. 로비까지. 삼 년 걸려서 로비까지.”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 입을 막았다. 손으로. 그러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버튼을 눌렀다.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올라갔다.

장현수 씨가 다가왔다. 넥타이핀을 만지면서. 세대주님께 알리는 게 규정이라 알렸다고, 그래도 그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로비 의자 옆 화분을 가리켰다. 다음에 내려오시면 거기 앉으시라고. 그 의자가 로비에서 제일 따뜻하다고. 난방 배관이 밑으로 지나간다고. 삼 년 동안 관리소장을 하면 그런 것을 안다고 했다. 나는 그 의자를 외웠다. 쉴 자리 하나.

윤채 씨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여덟 걸음 자리에. 아무 말도 안 했다. 문 센서가 윤채 씨를 알아채고 다시 열렸다. 눈이 들어왔다. 윤채 씨가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이 닫혔다.

“다음 주에 저 문 나가 볼게요.”

내가 말했다.

“같이 갈까요?”

“네. 어머니 말이 맞아서요. 로비까지는 삼 년이 걸렸어요. 문 밖까지는 일주일에 해 볼게요.”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혔다. 거울 속에 나와 윤채 씨가 있었다. 사십사 초.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윤채 씨가 숫자를 셌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사십삼에서 문이 열렸다. 일 초가 빨랐다. 윤채 씨가 웃었다. 틀린 걸 처음 본다고 했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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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배2026.05.09· 4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