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72자) · 윤채
벽을 보는 식탁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금요일에 나는 로비에 들어가지 않았다.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 섰다. 리버힐 정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 두 시에서 이십 분이 지났다. 들어갈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십칠 조는 화요일에 한 번 썼다. 관리소장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건 미안했다. 서경숙 씨의 검은 승용차가 화요일 오후에 지하 주차장으로 꺾여 들어가던 장면이 아직 눈에 남아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올라오세요.
나는 위를 봤다. 이십이 층. 여기서는 몇 층인지 세어지지 않는다. 창이 전부 같은 유리다.
어떻게 아셨어요 창에서 보여요 점인데요 이십 분 동안 안 움직이는 점은 하나예요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웃었다. 정류장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버스가 두 대 지나갔다. 나는 둘 다 안 탔다. 기사가 문을 열었다가 나를 한 번 보고 닫았다.
출입 제한 그대로예요 알아요. 관리소장님이 로비에 계실 거예요
로비에 들어가자 관리소장 장현수 씨가 정말로 서 있었다. 넥타이핀. 그 사람이 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렀다.
“세대원분이 저한테 직접 전화하셨어요. 오늘도. 오늘은 이십칠 조가 아니라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장 소장님, 하고.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냐고 여쭤봤더니 관리비 고지서 맨 밑에 있다고.”
“죄송해요.”
“아닙니다. 사모님이 화요일에 오셔서 저를 삼십 분 혼내셨는데요. 그 삼십 분 동안 세대원분이 인터폰으로 저를 세 번 부르셨어요. 저 소장 삼 년 하면서 한 세대에서 양쪽으로 혼나 본 건 처음입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관리소장은 타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말했다.
“저는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거주자 확인은 세대원분이 하신 거고요.”
그날 그는 현관에서 이름 하나를 말했다. 장현수. 삼 년 만에 처음 외운 남의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그 전에 이름 하나를 알려 준 적이 있다. 오윤채. 그러니까 둘째였다. 그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하나는 나, 하나는 관리소장. 그러고는 경비 박 씨 이름을 물었다. 나도 몰랐다. 사탕을 주는 사람이라고만 알았다. 다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두 시 반에 그가 물었다.
“점심 안 드셨죠.”
“네.”
“시켜 먹을까요?”
“배달이요?”
“네.”
“그럼 사람이 올라오는데요.”
그가 휴대폰을 든 채 멈췄다. 삼십 초쯤. 삼 년 동안 이 집에 배달이 온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두 달 동안 분리수거를 하면서 배달 용기를 한 번도 못 봤다. 서경숙 씨가 장을 봐 와서 잠긴 주방에서 요리했다. 아들은 22층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벽을 보고 먹었다.
“제가 1층에서 받아 올게요.”
내가 말했다. 그가 그 제안을 한참 생각했다. 밥 하나 시키는 데 그렇게 오래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럼 부탁드려요.”
김밥 두 줄과 라면 두 개. 라면은 끓여야 하는데 주방이 잠겨 있었다. 그가 22층에서 전기 포트를 들고 내려왔다. 서재 정수기 옆에 있던 것. 우리는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 라면을 포트에 끓였다. 스프를 넣자 거실에 라면 냄새가 퍼졌다. 삼 년 동안 이 거실에서 난 적 없는 냄새라고 그가 말했다. 포트 하나에 한 봉지씩, 두 번. 포트 바닥에 면이 눌어붙었다. 그는 그걸 보고 웃다가 기침을 했다. 삼 년 동안 웃을 일이 적으면 웃다가 사레가 든다.
식탁에 앉으려다 그가 멈췄다. 식탁은 창을 등지고 있었다. 앉으면 벽이 보인다. 그는 식탁 의자를 빼지 않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창을 보고. 나도 바닥에 앉았다. 라면 냄비 대신 포트를 가운데 놓고.
“식탁이 왜 저쪽을 보고 있는지 아세요?”
그가 물었다.
“어머님이 그렇게 놓으셨다고.”
“이 년 전 새벽이었어요.”
그는 김밥을 하나 집었다. 먹지 않고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새벽에 물 마시러 나오셨는데 제가 저기 있었대요. 창틀에. 그때는 창이 열렸어요. 손잡이가 있었으니까. 저는 창틀에 앉아 있었어요. 발은 안쪽으로. 뛰려던 게 아니에요. 그건 확실해요. 그냥 창틀에 앉아서 물을 보고 있었어요. 여기선 물이 너무 멀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 보려고. 그런데 어머니 눈에는 그게 뛰려는 사람이었대요.”
“…당연하죠.”
“네. 당연하죠. 그다음 날 창 손잡이를 뗐어요. 주방을 잠갔고요. 식탁을 돌렸어요. 밥 먹을 때라도 밖을 보지 말라고. 저는 그 뒤로 창에서 두 걸음 떨어졌어요. 제가 정한 거예요. 어머니가 무서워하는 걸 저도 무서워하기로 했어요.”
그는 김밥을 먹었다. 천천히. 나는 포트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창에 김이 서렸다가 금방 사라졌다. 창은 에어컨 바람에 늘 차갑다.
“그 창틀 자리, 거기예요?”
나는 손자국이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는 창을 닦지 않았다. 손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그 대신 다른 손자국을 봤다. 두 달 동안 닦으면서도 못 본 것. 창틀 아래쪽, 손잡이를 떼어 낸 나사 머리 두 개 옆에 작은 손가락 자국이 네 개 찍혀 있었다. 내 허리 높이. 누가 매일 밤 그 나사를 손가락으로 눌러 확인하는 자국이었다. 잠겨 있는지. 손잡이가 없는 창이 열릴 리 없는데도. 그 손가락 자국은 그의 손바닥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그것도 닦지 않았다.
그다음 화요일에도 갔다. 관리소장이 버튼을 눌러 줬다. 그날 그는 내가 일한 여덟 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이름 대신 규칙으로 말했다. 서재를 건드리지 말라는 집, 수건을 삼등분으로 접으라는 집, 금붕어 밥은 반드시 세 알만 주라는 집. 금붕어는 내가 그만둘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하자 그가 진심으로 안도했다. 세 알로 버티는 금붕어가 남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 금붕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몰랐다. 규칙은 기억하고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다음 금요일에도 갔다. 그 금요일에 나는 경비 박 씨 이름을 알아 왔다. 박용길. 그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세 번째.
십일월 십삼일 금요일, 그날 네 시에 현관문 번호 자물쇠가 울렸다. 띠, 띠, 띠, 띠. 누가 번호를 누르는 소리. 이 집 번호를 아는 사람은 둘이다. 하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서경숙 씨가 들어왔다. 양손에 장바구니. 현관에서 내 신발을 봤다. 실내화가 아니라 양말로 들어온 내 흔적. 그 사람은 장바구니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대로 거실까지 왔다. 바닥에 앉은 아들을 봤다. 창을 보고 앉은 아들. 바닥에 놓인 전기 포트. 김밥 은박지.
“어머, 왜 여기 계세요?”
그 사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차가웠다. 나는 일어섰다.
“제가 불렀어요.”
그가 먼저 말했다. 앉은 채로.
“관리실에 제한 걸어 두셨잖아요.”
“이십칠 조요.”
“뭐?”
“거주자 확인이요. 저도 거주자예요, 엄마.”
서경숙 씨가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대파가 비닐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 사람은 아들을 보지 않고 나를 봤다.
“청소하러 오신 게 아니면 뭐 하러 오세요?”
나는 그 질문에 답할 문장이 없었다. 구 년 동안 남의 집에 무엇 하러 왔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청소하러, 빨래하러, 반찬 하러. 답이 늘 있었다. 오늘은 없었다.
“물 보러요.”
내가 말했다. 입에서 나오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서경숙 씨가 창을 봤다. 그 사람이 이 년 동안 가려 온 창. 그러고는 다시 나를 봤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무서운 걸 본 얼굴이었다.
“그 창 앞에 제 아들이 이 년 전에 앉아 있었어요. 새벽 네 시에. 들었어요?”
“들었어요.”
“그런데 물을 보러 와요? 제 아들을 데리고 저 창 앞에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이 집에서 제일 위험한 것을 나는 매주 두 번 보러 왔다. 그리고 그 옆에 제일 위험한 사람을 앉혔다.
“엄마.”
그가 일어섰다. 두 주 동안 내가 본 그의 동작 중에 제일 빨랐다.
“내가 창을 본 거야. 내가 먼저 봤어. 이 년 전에도 내가 본 거고.”
서경숙 씨가 아들을 봤다. 한참. 그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핸드백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접힌 A4. 펴서 식탁 위에 놓았다. 창을 등진 식탁.
“십이월 일일 화요일 오전 열 시. 마포 병원. 입원 예약이야. 선생님이랑 두 번 상담했어. 네 이모가 보호의무자 동의서에 도장 찍었어. 나도 찍었고. 그날 아침에 사람들이 데리러 와. 네가 현관 밖으로 못 나가니까, 나가게 도와주는 사람들.”
그가 종이를 봤다. 읽지 않았다. 종이 맨 위의 병원 로고만 봤다.
“나 안 물어봤잖아.”
“삼 년 동안 네가 정한 건 창 앞 두 걸음뿐이야. 나는 그 두 걸음을 믿고 이 년을 잤어. 매일 새벽 네 시에 깨서.”
서경숙 씨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사람은 흔들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다음 말을 빨리 했다.
“그날까지는 오시든 말든 상관 안 할게요. 관리실 제한도 풀게요. 그 대신 그날 이후엔 오실 데가 없어요.”
그 사람은 장바구니를 들고 주방 앞으로 갔다. 번호 자물쇠를 눌렀다. 띠, 띠, 띠, 띠. 주방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안에서 대파를 써는 소리가 났다. 규칙적인 소리. 도마 위의 칼. 이 년 동안 이 집에서 그 칼을 만지는 사람은 하나였다. 이십 분 뒤에 주방 문이 열렸다. 서경숙 씨가 접시 두 개를 들고 나왔다. 대파 계란말이. 하나를 식탁에 놓고, 하나를 거실 바닥 포트 옆에 놓았다. 말없이. 그러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접시가 두 개였다. 나는 그 계란말이를 먹었다. 대파가 달았다. 이 년 동안 한 사람을 위해 썰던 칼이 오늘 두 사람 몫을 썰었다.
그는 식탁 위 종이를 들지 않았다. 창 앞으로 갔다. 두 걸음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더 갔다. 손바닥을 유리에 댔다. 내 어깨 높이. 오늘 내가 안 닦은 자리.
“십팔 일 남았네요.”
그가 말했다. 창을 보면서. 나는 달력을 셀 필요가 없었다. 그가 셌으니까. 오늘부터 십이월 일일까지. 화요일과 금요일로 치면 다섯 번.
여섯 시에 로비를 지나는데 박용길 씨가 부스에서 손을 흔들었다. 야간 교대 시간이었다. 사모님이 방금 전화로 제한을 푸셨다고 했다. 그리고 사탕을 하나 줬다. 오늘은 제한 풀린 날이라 하나라고 했다. 나는 그 규칙도 방금 만든 거냐고 물었다. 박 씨가 그렇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