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07자) · 윤채

이십칠 조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십일월 삼일 화요일. 한 시 오십팔 분에 나는 리버힐 로비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이 분을 일찍 왔다. 구 년 동안 남의 집 약속에 늦은 적이 없다. 오늘은 약속이 아니었다. 그래도 몸이 이 분 먼저 왔다.

로비는 대리석이다. 입주민용 엘리베이터 네 대, 화물용 한 대. 경비실은 유리 부스다. 박 씨는 야간이라 없고, 낮 경비가 앉아 있었다. 사십 대 남자. 두 달 동안 화요일과 금요일에 얼굴은 봤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보고 모니터를 봤다. 모니터를 다시 봤다. 그러고는 부스에서 나왔다.

“저기, 2214호 가시는 분이죠.”

“네.”

“죄송한데 출입이 안 되세요.”

그 사람이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방문객 관리 화면. 이름 칸에 오윤채. 옆에 빨간 글씨로 출입 제한. 요청 세대 2214. 요청일 시월 삼십일. 그날 밤이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박하사탕을 먹는 동안.

“관리소장님 부를게요.”

관리소장은 이 분 만에 내려왔다. 장현수. 오십 대 초반. 넥타이를 맸고, 넥타이핀이 건물 로고였다. 그 사람은 나한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예의 바른 사람이 나쁜 말을 할 때 하는 순서였다.

“세대주님 요청이라서요. 저희는 규정대로 해야 합니다. 세대주 요청으로 등록된 출입 제한은 세대주가 풀어야 풀려요.”

“저 청소하러 온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안 됩니다. 업무상 출입이면 사정이라도 들어 볼 텐데.”

그 말은 맞았다. 나는 이 건물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두 달 동안은 걸레가 이유였다. 오늘은 걸레가 없었다. 가방 안에 든 것은 지갑과 휴대폰과 박 씨가 준 사탕 하나. 사탕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구 년 동안 나는 화요일 두 시에 늘 어딘가의 현관 안에 있었다. 누군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누군가의 수건을 개고 있었다. 화요일 두 시에 현관 밖에 서 있는 것은 구 년 만이었다. 밖에서 보니 로비 대리석이 이렇게 반들거리는 줄 몰랐다. 안에서는 닦을 것만 보였으니까.

“그럼 가겠습니다.”

나는 돌아섰다. 돌아서는 게 이 일에서 제일 쉬운 동작이다. 구 년 동안 수백 번 했다. 문 앞까지 세 걸음. 두 걸음째에 경비 부스 인터폰이 울렸다. 낮 경비가 받았다. 네, 네. 표정이 바뀌었다. 수화기를 관리소장에게 내밀었다.

“2214호 세대원분이요.”

관리소장이 수화기를 받았다. 나는 문 앞에서 멈췄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관리소장의 얼굴만 보였다. 처음에는 공손했다. 그러다 눈썹이 올라갔다. 그러다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나를 한 번 봤다. 그리고 말했다.

“세대원이신 건 압니다. 그런데 세대주님이.”

수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했다. 길게.

“아, 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또 뭐라고 했다. 짧게.

“…몇 조요?”

관리소장이 수화기를 막고 낮 경비한테 물었다. 관리규약 방문객 조항 몇 조냐고. 낮 경비가 서랍에서 파일을 꺼내 넘겼다. 이십칠 조. 관리소장이 그 조항을 읽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방문객의 출입은 해당 세대 거주자의 확인으로 한다. 거주자. 세대주가 아니라.

관리소장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숨을 쉬었다. 넥타이핀을 한 번 만졌다.

“올라가세요. 세대원분이 확인하셨습니다. 제한 등록은 그대로 두고, 오늘은 거주자 확인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세대주님께는 제가 말씀드려야 해요. 그건 아셔야 합니다.”

“네.”

“그리고.”

관리소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2214호 아드님이 관리실에 전화하신 거, 제가 여기 삼 년 있으면서 처음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층 버튼 옆 거울을 봤다. 사십사 초. 오늘은 셌다. 셀 수밖에 없었다. 손이 떨려서.

문은 열려 있었다. 22층이 아니라 21층, 아래층 현관이. 그가 현관에 서 있었다. 회색 운동복이 아니라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림질이 안 된 셔츠. 오래 옷장에 접혀 있던 주름이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오셨네요.”

“관리실에 전화하셨어요?”

“이십칠 조요. 어제 밤새 관리규약 찾아 읽었어요. 어머니 서랍에 있더라고요.”

“어머니 서랍을 여셨어요?”

“잠겨 있지 않은 서랍은 그거 하나였어요.”

그가 웃었다. 두 달 동안 창 너머로만 들리던 목소리가 현관에서 웃었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두 달 동안 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는 늘 실내화를 신었다. 청소용. 오늘은 실내화를 꺼내지 않았다. 양말로 들어갔다. 대리석이 차가웠다.

거실 공기는 두 달 동안 알던 그 공기였다. 창이 열리지 않는 집의 공기.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번갈아 돌아서 먼지는 없는데 바람도 없다. 섬유유연제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한 겹으로 가라앉아 있다. 나는 두 달 동안 그 냄새를 청소의 냄새로 알았다. 오늘은 삼 년의 냄새로 맡았다.

거실에 들어서자 그가 소파를 가리켰다. 나는 앉지 않았다.

“왜 안 앉으세요?”

“여기서는 안 앉아 봐서요.”

두 달 동안 나는 이 집에서 앉은 적이 없다. 청소하는 사람은 남의 집 소파에 안 앉는다. 소파는 닦는 물건이다.

“그럼 저도 설게요.”

그가 일어섰다. 우리는 거실에 서 있었다. 이 분쯤. 거실 창까지 여섯 걸음. 두 달 동안 청소기를 밀면서, 걸레를 들고 수백 번 걸은 여섯 걸음. 서 있기만 한 것은 처음이었다. 창에는 손자국이 있었다. 내 어깨 높이. 금요일에 지웠는데 사흘 사이에 또 생겼다. 나는 그 손자국과 그의 어깨를 번갈아 봤다. 같은 높이였다.

“앉으시죠.”

내가 말했다.

“같이 앉으면요.”

우리는 앉았다. 소파 양 끝에. 창이 정면에 있었다. 물이 보였다.

“왜 잘렸는지 아세요?”

그가 물었다.

“22층에 올라가서요.”

“그건 이유가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제가 창 앞에 서 있어서요.”

그는 소파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세 번.

“저 이 집에서 삼 년 안 나갔어요. 현관 밖으로요. 삼 년 전 여름에 그만둔 다음부터.”

“소방서요?”

그가 나를 봤다.

“책에 적혀 있었어요. 줄 두 번 그어진 거.”

“아.”

그는 그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다른 말을 했다.

“어머니가 그 뒤로 이 집을 잠갔어요. 주방이랑 서랍이랑 창. 제가 뭘 할까 봐. 저도 제가 뭘 할지 몰랐으니까 어머니가 틀린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창 앞에서 두 걸음 떨어져 서 있어요. 그게 제 규칙이에요. 어머니 규칙 말고.”

“그런데 저 손자국은요.”

내가 창을 가리켰다. 그가 그쪽을 봤다. 오래.

“가끔 한 걸음 가요. 손만 대요. 대고 있으면 유리가 차가워서 괜찮아져요.”

나는 두 달 동안 그 손자국을 열여섯 번 지웠다. 한 사람이 괜찮아지려고 댄 손을.

“화요일이랑 금요일에 제가 지웠네요.”

“알아요. 걸레 소리 들렸어요. 지워지면 다음 날 또 댔어요. 깨끗한 데다 대야 차가워서요.”

나는 웃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른 걸 물었다.

“한솔 3동 12층이면 몇 호였어요?”

“1204호요. 끝 집.”

“저는 4동 1204호요.”

그가 팔걸이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3동 1204호와 4동 1204호는 마주 보는 끝 집이다. 이십 미터. 창과 창.

“베란다에 빨간 고무 대야 있었던 집이요? 여름마다 거기 물 받아 놓고 발 담그던 애.”

“…그거 저예요.”

“저는 그 대야 보면서 수영장 있는 집인 줄 알았어요. 부러워서 엄마한테 우리도 사 달라고 했다가 혼났어요.”

“대야였는데요.”

“열 살한테는 수영장이죠.”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대야를 기억했고 나는 그 집 베란다 창에 붙어 있던 공룡 스티커를 기억했다. 초록색. 목이 긴 것. 그게 이 사람 창이었다. 점이 아니라 대야와 공룡으로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다가 창을 봤다. 물이 움직였다. 오후 두 시의 물은 밝다. 햇빛이 가운데까지 들어가서 어두운 데가 좁아진다.

“지난주 금요일에 22층 유리 닦으실 때요.”

“닦은 적 없는데요. 22층은.”

“계단참 작은 창이요. 22층 문 옆에. 거기서 물 보셨잖아요.”

생각났다. 금요일에 계단 청소를 하다가 계단참 작은 창을 닦았다. 거기서도 물이 보였다. 조금 오래 봤다.

“오 분 보셨어요.”

“…그걸 어떻게.”

“제가 셌어요. 문틈으로.”

그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 앞으로 갔다. 여섯 걸음. 그가 따라오지 않았다. 소파에서 나를 봤다. 창에서 여섯 걸음, 그의 규칙보다 네 걸음 먼 자리에서.

“지금도 보실 거예요?”

“봐도 돼요?”

“여기 제 집인데요.”

“그러니까요. 어머니 집이기도 하고요.”

그가 웃었다.

“보세요.”

나는 오 분을 봤다. 이번에는 그가 세지 않았다. 내가 셌다. 속으로. 삼백까지. 오 분은 생각보다 길었다. 물이 삼백 번 움직였다. 그중 몇 번은 반짝였고, 한 번은 새가 내려앉았다가 날아갔다. 삼백을 세고 나서 돌아봤다. 그는 소파에 없었다. 창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규칙 자리.

“한 걸음 더 오실래요?”

내가 물었다. 그는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한 걸음 왔다. 손을 들었다. 유리에 댔다. 내 어깨 높이. 금요일에 내가 지운 자리.

“차가워요.”

그가 말했다.

“오늘은 괜찮아서 대는 거예요, 안 괜찮아서 대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처음으로 모르겠어요.”

그날 나는 여섯 시에 나왔다. 현관에서 그가 말했다.

“금요일에도 오세요?”

“관리소장님이 세대주님께 말씀드린다고 했어요. 금요일엔 이십칠 조가 안 통할 수도 있어요.”

“그럼 이십팔 조를 찾아볼게요.”

그가 문을 닫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를 돌아봤다. 닫힌 문. 두 달 동안 나는 그 문을 안에서 열고 나오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밖에서 닫히는 걸 보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나는 가방에서 박 씨 사탕을 꺼내 먹었다. 박하. 사십사 초 동안 입 안이 차가웠다. 손바닥도 차가웠다. 유리에 댄 적은 없는데.

로비에 내려가자 관리소장이 경비 부스 앞에 서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나를 보더니 네, 네, 지금 막 나가십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관리소장은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나쁜 말을 하기 전의 순서가 아니었다. 미안한 사람의 고개였다. 유리문 밖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지하 주차장 쪽으로 급하게 꺾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운전석 사람 손목에 얇은 시계가 반짝였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한화만더2026.05.07· 2화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