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2시 14분, 정전

12층에서 내려다보면 · 오세림

22층 14호에서는 한강이 보인다. 정확히는 한강의 일부가 보인다. 왼쪽 아파트 단지와 오른쪽 오피스텔 사이, 폭 삼십 미터쯤의 물. 나는 그 물을 보려고 이 집에 왔다.

“청소는 화요일, 금요일 두 번이에요.”

집주인이 말했다. 오십대 여자였고, 손목에 얇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침구는 목요일에 갈고요.”

“네.”

“주방은 안 쓰셔도 됩니다. 저희가 씁니다.”

“네.”

“그리고.”

집주인이 잠깐 멈췄다.

“22층은 제가 씁니다. 21층까지만 하시면 돼요.”

이 건물은 12층까지가 아니라 22층까지 있다.

‘12층에서 내려다보면’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게 아니다. 그건 내가 살던 곳 이야기다.

나는 열두 살까지 12층에 살았다. 12층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이 점으로 보였다. 점으로 보이면 다 비슷해 보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열세 살에 그 집을 나왔다. 가사 도우미 일은 삼 년째다.

이 집은 여덟 번째다. 앞의 일곱 집에서 나는 아무 일도 없이 나왔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일에서 사건은 대부분 나쁜 쪽으로 생긴다.

첫날 나는 21층까지 청소하고 여섯 시에 나왔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그랬다. 넷째 날, 22층에서 소리가 났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22층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십대 후반쯤. 바닥에 앉아서 벽을 보고 있었다.

“저기.”

남자가 돌아봤다.

“아, 안녕하세요.”

“22층은 청소 안 하기로 했는데요.”

“알아요.”

남자가 일어섰다.

“제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서요.”

그는 집주인의 아들이었다. 이 년 만에 집에 왔다고 했다. 왜 이 년 만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물 한 잔 드릴까요.”

“주방은 안 쓰기로 했는데요.”

“그건 어머니 규칙이고요.”

그는 웃었다.

“저는 그 규칙 안 지킨 지 오래됐어요.”

그날부터 나는 22층에 매일 올라갔다. 청소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벽을 보고 있었고, 나는 매일 그를 지나쳐 창가로 갔다. 창가에서 보면 한강이 보인다.

폭 삼십 미터쯤의 물.

“뭐 보세요.”

닷새째에 그가 물었다.

“물이요.”

“저기 그거 물이에요? 저는 회색인 줄 알았는데.”

“물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움직이니까요.”

그는 매일 조금씩 더 말했다. 여드레째에 그가 물었다.

“12층에 살아 보신 적 있어요?”

나는 걸레를 놓았다.

“왜요.”

“저기 저 건물.”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제가 열두 살까지 저기 12층에 살았거든요.”

나는 창밖을 봤다. 그가 가리킨 건물은 내가 살던 건물이었다.

“몇 동이요.”

“3동이요.”

나는 4동이었다.

“12층에서 내려다보면요.”

그가 말했다.

“사람이 점으로 보이잖아요. 저는 그게 무서웠어요.”

“저는 좋았는데요.”

“왜요.”

“다 비슷해 보이니까요.”

그가 나를 봤다.

“저는 그래서 무서웠어요.”

그날 저녁 여섯 시에 나는 나가지 않았다. 여덟 시까지 22층에 있었다. 여덟 시에 집주인이 올라왔다.

“여기서 뭐 하세요.”

나는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22층은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

“네.”

집주인은 아들을 봤다. 아들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내일부터 안 오셔도 됩니다.”

나는 그날 밤 지하철에서 창밖을 봤다. 지하 구간이라 아무것도 안 보였다. 유리에 내 얼굴만 비쳤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22층입니다. 내일 저녁 여섯 시에 그 자리에서 물 보고 있을게요. 안 오셔도 됩니다. 근데 저는 있을 거예요.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여섯 시에 나는 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올라갈지 말지 정하지 못한 채로.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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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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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배2026.05.09· 1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 달밤에책2026.05.08· 1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 종이배2026.05.09

      저도 그 장면에서 멈췄어요.

  • 한화만더2026.05.07· 1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

  • 겨울차2026.05.06· 1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오세림2026.05.07

      끊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