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33자) · 윤채
걸레 소리, 열여섯 번
이 집의 규칙: 22층은 열지 말 것 · 오세림
22층 14호에서는 한강이 보인다. 정확히는 한강의 일부가 보인다. 왼쪽 아파트 단지와 오른쪽 오피스텔 사이, 폭 삼십 미터쯤의 물. 나는 그 물 때문에 이 집에 왔다. 면접 때 그렇게 말했다. 창밖으로 물이 보이는 집에서 일하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뽑힌다. 가사도우미는 창밖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창을 닦는 사람이니까.
집주인은 뽑았다. 쉰아홉 살 서경숙 씨. 손목에 얇은 시계를 차고 있었고, 말하기 전에 그 시계를 한 번 봤다. 구월 팔일 화요일이었다.
“청소는 화요일, 금요일 두 번이에요. 침구는 목요일에 따로 사람이 와요.”
“네.”
“주방은 안 쓰셔도 됩니다. 잠가 둬요. 제가 씁니다.”
“네.”
“그리고.”
서경숙 씨가 시계를 한 번 더 봤다.
“22층은 제가 씁니다. 21층까지만 하시면 돼요.”
리버힐은 꼭대기 두 층이 복층인 주상복합이다. 2214호는 현관이 21층에 있고, 안에서 계단으로 22층과 이어진다. 아래층이 거실과 주방과 방 둘, 위층이 방 하나와 창 넓은 서재. 위층 계단참에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이 늘 닫혀 있었다. 21층까지만. 나는 구 년 동안 여덟 집에서 일하면서 그런 규칙을 여러 번 들었다. 서재는 건드리지 마세요, 안방 서랍은 열지 마세요, 아이 방은 아이가 할 거예요. 규칙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는 안 물어본다. 물어보면 오래 못 다닌다.
그래도 이 집 규칙은 조금 이상했다. 주방 문에 번호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싱크대 서랍에도 작은 자물쇠가 하나씩. 거실 창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손잡이 자리에 은색 나사 머리 두 개만 남아 있었다. 창은 열리지 않고 닦이기만 했다. 식탁은 창을 등지고 놓여 있었다. 앉으면 벽을 보게 되는 식탁.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벽을 보고 밥을 먹는 식탁이었다.
나는 그 창을 닦았다. 두 달 동안 화요일과 금요일에 열여섯 번. 창은 가로 사 미터, 세로 이 미터 삼십. 안쪽만 닦는다. 바깥은 건물이 한 달에 한 번 곤돌라를 내려 닦는다. 안쪽 유리에는 먼지보다 손자국이 많았다. 어른 손바닥 하나가 늘 같은 높이에 찍혀 있었다. 내 어깨쯤. 누가 매일 그 자리에 손을 대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닦을 때마다 그 손자국을 먼저 지웠고, 다음 화요일이면 또 있었다. 서경숙 씨의 손은 그보다 작았다.
닦으면서 물을 봤다. 오래는 아니다. 걸레가 한 번 왕복하는 동안. 가운데는 어둡고 가장자리는 밝고, 햇빛이 닿는 데는 하얗게 부서졌다. 움직였다. 이 높이에서도 물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걸 보려고 이 집에 왔고, 보면서도 오래 보지는 않았다. 오래 보면 안 되는 이유가 나한테 있었다.
열두 살까지 나는 12층에 살았다. 여기서 1.8킬로미터쯤 떨어진 한솔아파트 4동 12층. 12층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이 점으로 보였다. 점으로 보이면 다 비슷해 보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누가 누군지 몰라도 되니까.
시월 삼십일 금요일. 두 시 반이었다. 21층 청소를 다 끝내고 걸레를 빨고 있는데 위에서 소리가 났다.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조용했다. 22층에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 서경숙 씨는 오후에 나간다고 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참의 작은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두 달 동안 한 번도 열려 있던 적이 없는 문. 안은 서재였다. 창이 아래층보다 넓었다. 창 앞 바닥에 책이 한 권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벽에 등을 대고. 서른 초중반. 회색 운동복. 머리가 길었다. 오래 안 자른 머리였다. 남자는 떨어진 책을 줍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저기.”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내가 올 줄 알았던 얼굴이었다.
“22층은 청소 안 하기로 했는데요.”
“알아요.”
남자가 책을 주웠다. 표지에 수영 교본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된 책이었다.
“제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서요. 이 집 아들이에요. 서도현.”
나는 두 달 동안 이 집에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신발장에 남자 신발이 두 켤레 있었다. 한 켤레는 운동화였는데 밑창이 새것이었다. 신은 적 없는 신발. 나는 그게 이 집 누군가의 선물로 사 놓은 신발인 줄 알았다.
“화요일이랑 금요일마다 오시는 분이죠. 두 시에 거실 창 닦으시고.”
“어떻게.”
“여기 소리가 다 들려요. 걸레가 유리에서 삑 하는 소리. 두 달 동안 열여섯 번.”
그는 그 숫자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걸레를 쥔 손을 뒤로 감췄다. 왜 감췄는지 모르겠다. 남의 집에서 잘못한 게 있는 사람처럼.
“물 한 잔 드릴까요?”
“주방은 잠겨 있는데요.”
“저 위에 정수기 있어요. 여기는 어머니 규칙이 좀 덜해요.”
그가 웃었다. 아주 짧게. 서재 구석 작은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 내게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으려다 받았다. 남의 집에서 물을 얻어 마시는 것도 규칙 위반이다. 오늘은 규칙을 이미 하나 어겼으니 하나 더 어겨도 셈은 같았다.
그는 창가로 가지 않았다. 창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딱 그 거리에서 멈추는 사람처럼. 나는 그 두 걸음을 넘어 창 앞에 섰다. 여기서는 물이 더 넓게 보였다. 두 건물 사이 폭 삼십 미터가 아래층보다 조금 더 길게 흘렀다.
“뭐 보세요?”
그가 물었다.
“물이요.”
“저기 그거 물이에요? 저는 회색 길인 줄 알았는데.”
“물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움직이니까요.”
그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 걸음 다가왔다. 두 걸음이 한 걸음이 됐다. 창에서 한 걸음. 그는 거기서 다시 멈췄다. 손이 올라가다가 내려갔다. 유리에 손을 대려다 만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보고 아래층 거실 창의 손자국을 생각했다. 내 어깨 높이. 이 사람 어깨 높이였다.
“12층에 살아 보신 적 있어요?”
그가 물었다. 나는 종이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왜요?”
“저기 저 단지. 한솔아파트요. 여기서 지붕만 보이는.”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물 왼쪽, 아파트 단지들 너머로 낡은 흰 지붕 몇 개가 보였다. 나는 그 지붕을 안다. 두 달 동안 창을 닦으면서 일부러 안 봤던 지붕이었다.
“제가 열두 살까지 저기 3동 12층에 살았거든요.”
“…저는 4동이요.”
“12층?”
“12층이요.”
그는 나를 오래 봤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했다. 3동과 4동 사이는 이십 미터쯤이다. 12층 창과 12층 창이 마주 본다. 어린 나는 그 창을 매일 봤을 것이고, 그 안의 아이도 나를 봤을지 모른다. 점으로.
“12층에서 내려다보면요.”
그가 말했다.
“사람이 점으로 보이잖아요. 저는 그게 무서웠어요.”
“저는 좋았는데요.”
“왜요?”
“다 비슷해 보이니까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래서 무서웠어요.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저 점 하나가 무슨 일을 당해도 여기서는 모르잖아요.”
그 말을 할 때 그는 창을 보지 않고 바닥을 봤다. 바닥에는 아까 떨어진 수영 교본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주워 책상에 올려놓았다. 청소하는 사람의 손은 떨어진 것을 그냥 두지 못한다. 표지 안쪽에 볼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도현. 그 아래 소속. 마포소방서 수난구조대. 줄이 두 번 그어져 있었다.
“물에 들어가 보셨어요?”
“여러 번요. 저기요.”
그가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폭 삼십 미터의 물.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날 나는 여섯 시에 나가지 않았다. 여덟 시까지 22층에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말을 조금 했고 나는 대답을 조금 했다. 대부분은 창을 봤다. 해가 지면서 물이 먼저 어두워졌다. 건물들보다 먼저. 가로등이 켜지자 물 위에 불빛이 길게 누웠다. 그가 저건 뭐냐고 물었고 나는 다리 불빛이라고 했다. 그는 삼 년 동안 그게 뭔지 몰랐다고 했다. 삼 년. 나는 그 숫자를 되묻지 않았다. 안 물어보는 게 이 일이다.
여덟 시에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서경숙 씨였다. 문간에 서서 나를 봤다. 그리고 아들을 봤다. 아들이 창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서경숙 씨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이 보였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여기서 뭐 하세요?”
나는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소리가 나서 올라왔어요.”
“22층은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
“네.”
“여덟 시예요.”
“네.”
서경숙 씨는 창과 아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아들 앞에 섰다. 창을 등지고. 그 사람이 가린 것은 아들이 아니라 창이었다. 나는 그때 그 식탁을 이해했다. 벽을 보고 앉는 식탁. 손잡이 없는 창. 잠긴 주방과 서랍. 이 집의 규칙은 모두 한 방향을 막고 있었다.
“엄마, 내가 물었어.”
그가 말했다.
“물 보냐고. 내가 먼저 물었어.”
서경숙 씨는 아들을 보지 않고 나를 봤다.
“내일부터 안 오셔도 됩니다. 이번 달 급여는 보내 드릴게요.”
“어머니.”
“도현아, 들어가.”
그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서경숙 씨가 한 번 더 말했다. 도현아. 그는 옷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에서 1층까지 사십사 초. 두 달 동안 열여섯 번 쟀다. 재는 버릇이 있다. 청소하는 집은 다 재게 된다. 이번에는 재지 않았다. 대신 거울에 비친 내 손을 봤다. 걸레를 쥐던 손. 두 달 동안 열여섯 번 지운 손자국.
1층에서 문이 열리자 경비 박 씨가 나를 불렀다. 육십 대. 이 건물에서 사 년째 야간을 선다.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나한테 사탕을 하나씩 주는 사람이다.
“오늘 늦으셨네. 2214호 사모님이 무섭게 올라가시던데.”
“잘렸어요.”
“에이.”
박 씨는 사탕 하나를 내밀다가 주머니에서 하나를 더 꺼내 둘을 내 손에 쥐여 줬다. 잘린 날은 두 개라고 했다. 그런 규칙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방금 만들었다고 했다.
그날 밤 지하철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22층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 두 시에 창 앞에 있을게요. 안 오셔도 됩니다. 근데 저는 있을 거예요.
지하 구간이라 창에는 내 얼굴만 비쳤다.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박하였다. 입 안이 차가워졌다. 지하철이 당산 철교로 올라서자 창밖이 갑자기 트이면서 물이 나타났다. 밤의 강은 검었고 다리 불빛이 그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눈을 감았다. 강을 건너는 삼십 초 동안. 십사 년 동안 그렇게 건넜다. 눈을 뜨고 그 문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창 앞에 있겠다고 했다. 창에서 한 걸음 떨어져 멈추던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