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53자)

늑대가 우는 밤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내가요⁠.⁠”

나는 대장간 바닥에 뻗은 왼다리를 끌어당기지도 못하고 말했다⁠. 일어서려면 모루를 짚어야 했는데⁠, 모루 앞에 대장장이가 서 있었다⁠.

“⁠내가 쥐여 줬어요⁠. 이틀 동안⁠. 쇠 넣어 주고⁠, 빵 넣어 주고⁠. 깨우지 않았어요⁠. 깨우면 놓을 것 같아서⁠.⁠”

대장장이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부은 팔이 떨렸다⁠. 숯불이 대장장이의 턱 밑만 붉게 비췄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다리가 없었다⁠. 망치가 내려왔다⁠.

팡⁠.

모루였다⁠. 내 머리 옆 한 뼘⁠. 모루가 울려서 내 등뼈가 같이 울렸다⁠. 대장장이는 망치를 모루 위에 내려놓고 손을 폈다⁠. 터진 손바닥이 자루에서 떨어지며 살갗이 같이 뜯겨 나갔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꿈을 꿨어⁠.⁠”

대장장이가 말했다⁠. 목이 갈라져 말이 자꾸 끊겼다⁠.

“⁠더운 꿈⁠. 계속 뭘 두드리는 꿈⁠. 두드리면 누가 입에 빵을 넣어 줘⁠. 그러면 또 두드려⁠. 끝이 없어⁠. 끝을 내 맘대로 못 내⁠.⁠”

대장장이는 부은 손을 숯불 쪽으로 내밀어 보다가 거두었다⁠.

“⁠열세 해가 다 그랬던 것 같은데⁠, 이틀이 제일 길었어⁠.⁠”

*

새벽에 대장장이는 대장간 문을 열고 우물가로 나왔다⁠. 베르타가 빵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고⁠, 깨어난 사람들이 아침 몫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줄이 조용해졌다⁠.

“⁠창날은 내가 만든다⁠.⁠”

대장장이가 말했다⁠.

“⁠다만 세 가지⁠. 깨어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다시 안 부린다⁠. 누가 그러면 내가 그 사람 손을 모루에 올린다⁠. 둘⁠. 창날 하나에 빵 하나⁠. 내가 정한 만큼만 만든다⁠. 셋⁠.⁠”

대장장이가 나를 보았다⁠.

“⁠저 양반은 오늘부터 하루에 다섯 사람을 깨운다⁠. 그게 저 양반 일이다⁠. 깨우는 것도 일이니까 빵은 준다⁠.⁠”

베르타가 대장장이를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그리고 바구니에서 빵 사분의 삼을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흘 만에 받는 내 몫이었다⁠. 그동안 나는 짚돌이가 가슴 짚 속에 숨겨 온 부스러기와 항아리의 절인 무로 버텼다⁠.

“⁠먹을 것과 쇠는 이제 나랑 대장장이 양반이 나눠요⁠. 일은 일할 사람이 정하고요⁠. 유저 양반은 깨우세요⁠.⁠”

“⁠촌장은요⁠?⁠”

닭 할머니가 물었다⁠.

“⁠촌장은 대사 하는 사람이죠⁠.⁠”

베르타가 말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 받은 빵을 반으로 갈랐다⁠. 반은 품에 넣었다⁠. 대장장이가 이것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우물가를 도는 늙은 목수였다⁠. 사흘 전 밤 내가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준 사람이었다⁠. 대장장이의 대사는 「⁠지붕이 또 새는구먼⁠」 하나였다⁠. 나는 대장장이의 걸음을 따라 우물을 돌며 대답했다⁠. 지붕은 이제 새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지붕 위로 불이 날아온다고⁠, 마을에 성벽이 필요한데 돌을 쌓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무릎이 굽지 않는 다리로 우물을 스무 바퀴 돌았을 때⁠, 대장장이가 멈춰 서서 내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지팡이⁠, 내가 깎아 준 거요⁠.⁠”

목수가 깨어나서 한 첫말이었다⁠.

“⁠진짜 촌장 양반 거⁠. 십삼 년 전에⁠. 왼손잡이라 손잡이를 왼쪽으로 굽혀 깎았지⁠. 근데 왜 오른손으로 쥐고 있소⁠?⁠”

베르타에게 듣고 왼손으로 쥐어 본 날도 있었지만⁠, 손은 자꾸 버릇대로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지팡이를 다시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굽은 손잡이가 손바닥에 꼭 맞았다⁠. 이후로 내 손은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목수는 이날 오후 성벽 동쪽 모퉁이로 가서 사람들이 쌓은 돌을 하나하나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더니⁠, 절반을 도로 빼게 했다⁠. 아래에 큰 돌⁠, 위로 갈수록 작은 돌⁠, 돌과 돌 사이에는 쐐기돌⁠. 모퉁이가 무릎 높이에서 멈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날 나는 다섯을 깨웠다⁠. 여섯 번째를 깨우다 해가 졌다⁠. 깨어난 사람은 쉰둘이 되었다⁠. 성벽은 북쪽 금을 따라 허리 높이로 이백 걸음이 올라가 있었다⁠. 동쪽으로 꺾이는 모퉁이는 아직 무릎 높이였다⁠.

*

늑대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단추였다⁠. 해 질 녘⁠, 돌을 내려놓던 단추가 동쪽 숲을 향해 귀를 세웠다⁠.

“⁠왕이 숲에 갔다⁠.⁠”

“⁠늑대한테⁠?⁠”

“⁠늑대는 대사가 없다⁠. 울음만 있다⁠. 울음은 짧다⁠. 그래서 금방 바뀐다⁠.⁠”

숲 쪽에서 울음이 올라왔다⁠. 게임에서 동쪽 숲의 늑대는 초보 다음 단계 사냥감이었다⁠. 울음은 아우우⁠, 하고 길게 끌다가 끝이 꺾였다⁠. 이날 저녁의 울음은 끝이 꺾이지 않았다⁠. 길게 끌다가 끝에서 무언가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두 번째 울음에서 확실히 들었다⁠.

아우우우⁠, 경험⁠—치⁠.

성벽 금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돌을 내려놓았다⁠. 대장장이가 모루 옆에서 막 식힌 창날 열두 개를 들고 나왔다⁠.

*

늑대는 자정에 왔다⁠. 스물쯤이었다⁠. 북쪽 성벽이 아니라 동쪽 모퉁이⁠, 무릎 높이 돌담으로 곧장 왔다⁠. 쿠르곤은 우리가 돌을 어디까지 쌓았는지 알았다⁠. 들판 언덕에서 우리 돌담 길이를 걸음으로 재던 고블린이 생각났다⁠.

“⁠짚돌이⁠.⁠”

나는 모퉁이 뒤에서 말했다⁠. 짚돌이가 짚을 곤두세웠다⁠.

“⁠불 없죠⁠?⁠”

“⁠없어⁠. 늑대는 불 안 들어⁠.⁠”

“⁠그럼 오케이⁠.⁠”

계산은 이번에도 내가 했다⁠. 다만 이번에는 다들 들었다⁠. 늑대는 냄새로 온다⁠. 짚돌이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안 난다⁠. 짚 냄새와 빵 부스러기 냄새만 난다⁠. 그런데 짚돌이는 움직이고⁠, 소리를 낸다⁠. 늑대는 움직이는 것을 문다⁠. 짚돌이가 모퉁이 돌담 밖에서 뛰며 늑대들을 돌담 틈 한 군데로 끌어오면⁠, 이 틈 양쪽에 창을 든 사람들이 선다⁠. 노미가 틈의 정면에 섰다⁠. 대장장이가 이 왼쪽⁠, 우물가 아저씨가 오른쪽⁠.

짚돌이가 돌담을 넘어 통통 뛰어나갔다⁠.

“⁠야⁠, 여기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때려 보세요⁠! 아 버튼 없지 참⁠!⁠”

늑대들이 짚돌이를 물었다⁠. 짚 팔이⁠, 짚 다리가⁠, 짚 머리가 늑대 이빨 사이에서 끌려갔다⁠. 짚돌이는 끌려가면서 웃었다⁠.

“⁠간지러워⁠! 아 진짜 간지럽다고⁠!⁠”

짚돌이가 돌담 틈으로 굴러 들어왔고⁠, 늑대 셋이 뒤를 따라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노미의 창이 나갔다⁠. 숨은 한 번이었다⁠. 창날이 첫 늑대의 목 밑으로 들어가 등 뒤로 나왔다⁠. 늑대가 창에 꿰인 채 버둥거렸고⁠, 이 무게가 창 자루를 타고 노미의 팔로 왔다⁠. 노미는 창을 놓지 않았다⁠. 굳은 무릎으로 버티다가 함께 넘어졌다⁠. 대장장이가 두 번째 늑대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둔한 소리가 났다⁠.

세 번째 늑대는 오른쪽으로 왔다⁠. 우물가 아저씨는 쇠스랑을 똑바로 쥐고 있었다⁠. 연습장에서 짚돌이 머리를 날려 버리던 날부터 똑바로 쥐었다⁠. 대장장이는 늑대의 옆구리를 찔렀다⁠. 찔린 늑대가 몸을 비틀어 대장장이의 팔을 물었다⁠. 대장장이는 쓰러지면서도 쇠스랑을 놓지 않았고⁠, 그래서 틈이 막혔다⁠. 네 번째 늑대가 이 위로 넘어왔다⁠.

나는 돌담 뒤에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지팡이로는 늑대를 칠 수 없었다⁠. 다리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왼쪽⁠, 오른쪽⁠, 틈⁠, 아래⁠.

*

울음이 멎은 것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늑대 여섯이 돌담 틈 앞에 쓰러져 있었다⁠. 나머지는 숲으로 돌아갔다⁠.

쿠르곤은 이때 왔다⁠. 늑대들이 물러나는 길을 거슬러⁠, 혼자 동쪽 모퉁이 돌담 위에 올라섰다⁠. 허벅지의 가죽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쌓은 돌담을 발로 밟아 보았다⁠. 돌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성벽 쌓네⁠.⁠”

쿠르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둑 반만 하네⁠. 사흘 밤에 쌓은 거 반⁠.⁠”

“⁠늑대는 왜 깨웠어⁠?⁠”

“⁠늑대도 배고프다⁠. 숲에 먹을 게 없다⁠. 너희가 십 년 동안 다 잡아먹었다⁠. 가죽 다섯 장 가져오라는 퀘스트 있었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있었다⁠. 모리의 다섯 번째 줄이었다⁠.

“⁠눈 오면 들어간다⁠. 그때는 늑대 말고 우리 다⁠.⁠”

쿠르곤은 돌을 하나 더 차서 떨어뜨리고 돌아섰다⁠. 노미가 창을 들어 올렸다⁠. 창날에 늑대 피가 말라 있었다⁠. 쿠르곤은 이 창날을 보고⁠, 노미의 떨리는 팔을 보고⁠, 크크 웃고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미는 쿠르곤이 사라진 뒤에야 창을 내렸다⁠. 그리고 돌담 뒤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토했다⁠. 굳은 무릎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열세 해 만에 처음 꿇은 무릎이었다⁠.

*

우물가 아저씨는 해가 뜰 때 숨이 멎었다⁠. 늑대에게 물린 팔이 아니라 넘어질 때 돌담 모서리에 부딪친 머리였다⁠. 아저씨는 숨이 멎기 전에 한 번 눈을 떠서 나를 보았고⁠, 말을 했다⁠.

“⁠와⁠. 개배고프네⁠.⁠”

아저씨가 처음 깨어나서 한 말이었다⁠. 짚돌이에게서 배운 말이었다⁠. 짚돌이는 늑대에게 뜯겨 반쯤 줄어든 몸으로 이 옆에 앉아 있었다⁠. 품에서 납작한 빵 조각을 꺼내 아저씨의 입에 넣으려다 그만두었다⁠.

우리는 짚돌이를 빨래터 위 언덕⁠, 아낙 옆에 묻었다⁠. 무릎 높이 돌담에 쓰던 납작한 돌 하나를 이 위에 올렸다⁠. 짚돌이가 바위터에서 처음 골라 온 돌과 닮았다⁠.

이날 아침 빵을 나눌 때 베르타는 아저씨의 몫을 바구니에서 꺼내 잠깐 들고 있다가⁠,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 몫 쪽으로 옮겼다⁠.

*

단추가 없어진 것은 이날 밤이었다⁠. 짚돌이가 처음 알았다⁠. 단추는 밤마다 연습장 말뚝 옆⁠, 짚돌이가 서던 자리에서 짚돌이와 등을 맞대고 잤다⁠. 짚 냄새가 굴 냄새보다 낫다고 했다⁠.

“⁠촌장님⁠. 단추 없어요⁠. 남쪽 울타리 틈 쪽에 발자국 있어요⁠. 짧은 거⁠.⁠”

“⁠돌아갔네⁠.⁠”

대장장이가 말했다⁠.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은 고블린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늑대들이 정확히 동쪽 모퉁이로 온 것이 생각났다⁠. 무릎 높이 돌담의 자리를 쿠르곤은 어떻게 알았는가⁠.

나는 이날 밤 연습장 말뚝 옆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짚돌이가 옆에서 통통 뛰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뛰었다⁠.

*

새벽에 북문에서 노미가 불렀다⁠. 목소리가 낮았다⁠.

북문 앞 들판에 단추가 서 있었다⁠. 뒤에 고블린 열하나가 있었다⁠. 늙은 것들⁠, 다리를 저는 것들⁠, 귀가 찢어진 것들⁠, 내 무릎께에 머리가 오는 어린것들⁠. 다 말라 있었다⁠. 갈비뼈가 가죽 밑으로 줄을 그었다⁠. 무기를 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맨 뒤의 늙은 고블린 하나는 다른 고블린 둘에게 업혀 있었다⁠.

성벽 위와 북문 양쪽에 깨어난 사람들이 섰다⁠. 대장장이가 만든 창날이 스무 개쯤 이들을 향했다⁠. 이 창날 가운데 몇에는 아직 늑대 피가 묻어 있었다⁠. 어제 우물가 아저씨를 묻은 손들이었다⁠.

단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두 걸음 앞이 아니었다⁠. 대장장이는 내 입이 대사를 시작하지 않는 거리를 알았다⁠. 연습장에서 내가 서던 자리를 보고 배웠다⁠.

“⁠받아 줘⁠.⁠”

단추가 말했다⁠.

“⁠굴에서 제일 많이 굶는 것들이다⁠. 왕은 센 놈부터 먹인다⁠. 이것들은 맨 끝이다⁠. 일한다⁠. 돌 나른다⁠. 숲에서 도토리 어디 떨어지는지 안다⁠.⁠”

“⁠늑대를 동쪽 모퉁이로 보낸 게 너희 왕이야⁠.⁠”

대장장이가 말했다⁠. 창끝이 내려오지 않았다⁠.

“⁠알아⁠. 그래서 나 갔다⁠. 이것들 데리러⁠.⁠”

성벽 위에서 누군가 돌을 들었다⁠. 노미가 창을 쥔 채 나를 보았다⁠. 베르타도 나를 보았다⁠. 먹을 것은 정했다⁠. 일은 일할 사람이 정했다⁠. 문은 누가 정하는지 아무도 정해 두지 않았다⁠.

어린 고블린 하나가 「⁠키에엑⁠」 하고 울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이 울음이 배 속에서 나는 소리와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북문 문턱으로 나갔다⁠. 창날 스무 개가 내 등 뒤에 있었고⁠, 고블린 열하나가 내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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