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65자)

넓은 세상으로 떠나세요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농부의 발이 다리 첫 판자 위에 있었다⁠. 판자가 농부의 무게에 삐걱 소리를 냈다⁠. 열세 해 동안 이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온 사람은 수십만이었고⁠,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나간 NPC는 하나도 없었다⁠.

“⁠남쪽으로 이틀이에요⁠.⁠”

나는 다리 어귀에서 말했다⁠. 지팡이를 판자 틈에 박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말 타면 사 분이었어요⁠. 걸으면 이틀⁠. 가는 길에 숲이 둘 있고⁠, 두 번째 숲 개울가에서 산적이 나와요⁠. 다섯 무리⁠. 그 사람들도 깨어 있는지 아닌지 몰라요⁠. 그리고 길 끝에 있는 항구 도시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낯선 사람한테 빵 줄 사람도 없고⁠, 빵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어요⁠.⁠”

“⁠여기도 없잖아요⁠.⁠”

농부가 말했다⁠. 이 말은 내 말투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기 말로 한 말 같았다⁠.

「⁠먼저 광장의 촌장인데 인사드리세요⁠!⁠」

모리가 두 번째 줄을 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여기는 하루에 빵 사분의 삼이 있어요⁠. 거기는 영이에요⁠.⁠”

“⁠사분의 삼은 촌장님이 들판 내주고 남은 거잖아요⁠. 다음엔 뭘 내줄 건데요⁠? 우물이요⁠? 우리요⁠?⁠”

뒤에 선 젊은 여자가 이마의 딱지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여자는 이날 돌을 안고 성벽 금까지 걸어간 사람이었다⁠.

“⁠촌장님은 우리 이름도 몰라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몰랐다⁠. 열세 해 동안 여자는 「⁠바구니 든 아가씨⁠」였다⁠. 게임 화면에서 NPC의 머리 위에는 이름이 아니라 그렇게 떠 있었다⁠.

“⁠물어보면 알려 줄게요⁠. 근데 안 물어볼 거잖아요⁠.⁠”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아가씨는 돌아서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한 가지를 했다⁠. 내가 아는 것을 줬다⁠.

“⁠두 번째 숲 개울에서는 길로 가지 말고 강둑으로 가요⁠. 산적이 나오는 자리는 길 위예요⁠. 그리고 숲에서 불 피우지 마요⁠. 고블린 밤눈이 어두워도 불은 봐요⁠.⁠”

농부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여섯이 다리를 건넜다⁠. 판자가 여섯 번 삐걱거렸다⁠. 모리가 이들의 등에 대고 활짝 웃으며 일곱 번째 줄을 했다⁠.

「⁠축하해요⁠! 이제 들판은 없어요⁠, 넓은 세상으로 떠나세요⁠!⁠」

모리는 손을 거두고 다시 첫 줄을 시작했다⁠. 여섯이 숲길로 사라진 뒤에도 모리는 다리 너머를 향해 「⁠환영해요⁠」를 되풀이했다⁠.

나는 다리 난간에 지팡이를 걸치고 이 앞에 남았다⁠. 모리의 대사는 일곱 줄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길었다⁠. 모리가 다 깨어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지막 줄 하나만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떠나라고 하지 마요⁠. 거기 아무것도 없어요⁠.⁠”

「⁠축하해요⁠! 이제 넓은 세상은 영이에요⁠, 떠나세요⁠!⁠」

“⁠영이라는 말은 빼고⁠.⁠”

「⁠축하해요⁠! 이제 넓은 세상은 빼고⁠, 떠나세요⁠!⁠」

“⁠아니⁠, 떠나세요를 빼라고⁠.⁠”

「⁠축하해요⁠! 이제 넓은 세상은 빼고⁠, 아니에요⁠!⁠」

모리는 활짝 웃으며 다리 너머를 가리켰다⁠. 손짓은 그대로였다⁠. 말만 엉뚱한 데서 엉뚱한 마디로 바뀌어 붙었고⁠, 나는 이 손짓을 바꾸는 법을 몰랐다⁠. 대사는 대답으로 바뀌었다⁠. 손은 무엇으로 바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웃었는지 한숨을 쉬었는지 모를 소리를 내고 마을로 돌아섰다⁠.

*

망치 소리가 멎은 것을 안 것은 점심때였다⁠.

이틀 동안 마을 어디에 있어도 팡⁠, 팡 소리가 들렸다⁠. 밤에도 새벽에도 같은 박자였고⁠, 사람들은 이 소리에 맞춰 돌을 날랐다⁠. 이 소리가 없어지자 마을이 갑자기 넓어진 것 같았다⁠. 바위터에서 돌을 안고 오던 단추가 고개를 들고 귀를 쫑긋 세웠다⁠.

“⁠팡 소리 안 난다⁠.⁠”

내가 대장간에 닿았을 때 베르타가 먼저 와 있었다⁠. 대장장이는 모루 옆에 모로 쓰러져 있었다⁠. 망치를 쥔 오른손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바닥 굳은살이 터져 망치 자루에 검게 눌어붙었고⁠, 팔뚝이 허벅지처럼 부어 있었다⁠. 숨은 쉬었다⁠. 얕았다⁠. 입가에 내가 넣어 준 빵 부스러기가 말라붙어 있었다⁠.

화덕 옆에 창날이 쌓여 있었다⁠. 마흔 개가 넘었다⁠. 물통 옆에 고블린 창에서 뽑은 쇠⁠, 울타리 못⁠, 창고 문짝 경첩이 아직 달궈지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내가 이틀 동안 넣어 준 것들이었다⁠.

베르타는 창날 무더기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터진 손바닥을 보았다⁠. 계산을 끝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셈이 빨랐다⁠.

대장간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돌을 나르다 온 사람들⁠, 우물에서 물을 긷다 온 사람들⁠. 노미가 창을 들고 왔고⁠, 짚돌이가 이 옆에서 통통 뛰었다⁠.

“⁠대장장이 양반 대사가 몇 줄이죠⁠?⁠”

베르타가 물었다⁠. 나를 보지 않고⁠, 문 앞의 사람들에게⁠.

“⁠한 줄이요⁠.⁠”

닭 할머니가 대답했다⁠. 다들 알았다⁠. 열세 해 동안 이 앞을 지나다녔다⁠.

「⁠쇠는 달궈야 휜다네⁠.⁠」

쓰러진 대장장이가 입술만 움직여 이 줄을 했다⁠.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유저 양반이 그랬죠⁠. 대장장이 양반은 대사가 길어서 나중에 깨운다고⁠.⁠”

베르타가 나를 보았다⁠.

“⁠한 줄이에요⁠. 이 마을에서 제일 짧아요⁠. 짚돌이보다 짧아요⁠. 반나절이면 깨워요⁠. 이틀 동안 왜 안 깨웠어요⁠?⁠”

사람들의 눈이 나에게 왔다⁠. 나는 지팡이를 쥔 손을 바꿔 잡았다⁠. 왼손으로⁠. 베르타가 말한 촌장의 손으로⁠.

“⁠깨우면 망치를 놓으니까요⁠.⁠”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화덕에서 숯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깨어나지 않은 손은 안 쉬어요⁠. 먹여 주면 먹고⁠, 쇠를 넣어 주면 두드려요⁠. 깨어나면 쉬고⁠, 먹고⁠, 왜 이걸 만드느냐고 물어요⁠. 그리고 고블린은 백스물이에요⁠. 우리는 창이 없었어요⁠. 저 창날 마흔 개가 없으면 다음에 쿠르곤이 왔을 때 노미 씨 하나만 창을 들어요⁠.⁠”

“⁠등불지기 때랑 똑같네요⁠.⁠”

베르타가 말했다⁠.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당신은 사람을 깨어 있는 쪽이랑 아닌 쪽으로 나눠요⁠. 아닌 쪽은 걷게 두고⁠, 두드리게 둬요⁠. 당신한테는 그게 다 화면이죠⁠.⁠”

“⁠그럼 창 없이 싸워요⁠?⁠”

“⁠그 창을 누가 만들지는 대장장이 양반이 정했어야죠⁠.⁠”

우물가 아저씨가 창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저씨는 창날을 손에 쥐고 무게를 달아 보았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어떤 사람은 창날 무더기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의 손을 보았다⁠. 둘로 갈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짚돌이가 막대 다리로 땅을 짚고 내 옆으로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

나는 이날 해가 지도록 대장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이 굽지 않아 왼다리를 바닥에 뻗고⁠, 등은 모루에 기댔다⁠. 대장장이는 사람들이 깔아 준 거적 위에 누워 있었다⁠. 노미가 대장장이의 손에서 망치를 빼내려 했지만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쇠는 달궈야 휜다네⁠.⁠」

“⁠알아요⁠.⁠”

「⁠쇠는 달궈야 휜다네⁠.⁠」

“⁠내가 이틀 동안 달궜어요⁠. 당신을⁠.⁠”

나는 대답했다⁠. 한 줄짜리 대사는 금방 바뀌었다⁠. 바뀐 마디는 내 말에서 왔다⁠. 이것이 무엇이 될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대장장이에게 한 말이 그대로 대장장이의 입으로 돌아올 것이다⁠.

해가 질 무렵 베르타가 빵 반쪽을 들고 왔다⁠. 대장장이 몫이었다⁠. 내 앞을 지나 거적 옆에 앉아 빵을 뜯어 대장장이 입에 넣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오늘부터 마을에 일 시키는 건 당신 혼자 정하지 마요⁠.⁠”

“⁠누가 정해요⁠?⁠”

“⁠일할 사람이요⁠.⁠”

베르타는 빵을 다 먹이고 나갔다⁠. 나는 베르타가 문간에서 잠깐 멈추는 것을 보았다⁠. 화덕 옆 창날 무더기 앞이었다⁠. 베르타는 거기서 창날 하나를 집어 들고 날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더니⁠,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갔다⁠.

*

자정이 넘어 북문에서 노미가 외쳤다⁠. 남쪽 다리가 아니라 북문이었다⁠.

넷이 돌아와 있었다⁠. 남쪽 길로 나간 사람들이 마을 둘레를 반 바퀴 돌아 북문으로 들어왔다⁠. 남쪽 다리로 돌아오는 길이 막혀 있었다고 했다⁠. 농부가 바구니 아가씨를 업고 있었다⁠. 아가씨의 왼다리 정강이에 화살이 박힌 자리를 천으로 감았고⁠, 천이 검게 젖어 있었다⁠. 나머지 둘은 걸을 수는 있었다⁠. 하나는 얼굴 반쪽이 부어 눈이 감겨 있었다⁠.

“⁠둘은요⁠?⁠”

“⁠하나는 죽었어요⁠. 첫 번째 숲에서⁠. 하나는 끌려갔어요⁠.⁠”

농부가 아가씨를 우물가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산적이 아니었어요⁠. 첫 번째 숲에서 벌써 고블린이 나왔어요⁠. 길 양쪽 나무 위에서⁠. 우리 불도 안 피웠어요⁠. 촌장님 말대로 했어요⁠.⁠”

“⁠고블린이 남쪽 숲에 있어요⁠?⁠”

“⁠스물은 됐어요⁠. 숲 어귀에 돌을 쌓고 있었어요⁠. 다리 쪽으로⁠.⁠”

나는 우물 돌 테두리를 짚었다⁠. 쿠르곤은 들판을 받고⁠, 개울을 받고⁠, 남쪽 길까지 받았다⁠. 마을은 사방이 막혀 가고 있었다⁠. 우리가 돌담 마흔 걸음을 쌓는 동안 마을 둘레에 제 담을 쌓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뭐라고 했어요⁠?⁠”

농부가 아가씨의 다리를 감은 천을 조이며 말했다⁠.

“⁠왕이 그랬대요⁠. 넓은 세상 같은 거 없다고⁠. 여기가 끝이라고⁠.⁠”

바구니 아가씨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베르타가 빵 대신 물약 병을 하나 들고 왔다⁠. 게임에서 체력을 채워 주던 붉은 물약이었다⁠. 이것을 바구니 아가씨의 입에 부었다⁠. 바구니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렸다⁠. 시럽에 녹슨 쇠를 섞은 맛이라는 것을 나는 첫날 알았다⁠. 상처는 닫히지 않았다⁠. 게임에서처럼 체력 칸이 차오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잠시 뒤 숨을 고르게 쉬었다⁠. 물약에 독한 술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농부가 일어나 내 앞에 섰다⁠. 두 걸음 앞이었다⁠. 내 입이 「⁠어서 오게⁠」를 시작했고⁠, 농부는 이 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농부의 얼굴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둑으로 갔어요⁠. 불도 안 피웠어요⁠. 촌장님이 아는 건 다 했어요⁠. 그래도 하나 죽었어요⁠.⁠”

“⁠알아요⁠.⁠”

“⁠촌장님이 아는 건 다 게임이잖아요⁠.⁠”

농부는 이 말을 하고 우물가로 돌아가 바구니 아가씨 옆에 앉았다⁠. 나는 이 말에 대답할 것이 없었다⁠. 게임에서 산적은 길 위에서 나왔다⁠. 고블린은 들판에서 나왔다⁠. 이제 이들은 아무 데서나 나왔다⁠.

단추가 우물 그늘에서 나왔다⁠. 단추는 끌려간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물었고⁠, 농부가 북쪽 바위산 쪽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굴로 갔다⁠. 왕은 그거 안 죽인다⁠.⁠”

“⁠어떻게 알아⁠?⁠”

“⁠왕은 계산한다⁠. 깨어난 인간은 왕이 대답해도 왕 말투 안 된다⁠. 그러니까 바꿀 거다⁠. 뭐랑 바꿀지는 왕이 정한다⁠.⁠”

단추는 그렇게 말하고 짧은 다리로 성벽 금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날 밤 단추는 돌을 하나 더 날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

나는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등불지기가 「⁠밤은 끝났어요⁠」라고 반쯤 바뀐 대사를 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대장간 안이 어두웠다⁠. 화덕의 숯이 붉게 숨만 쉬었다⁠. 거적 위에 아무도 없었다⁠.

대장장이는 모루 앞에 서 있었다⁠. 부은 팔로 망치를 쥐고⁠. 터진 손바닥이 망치 자루에 눌어붙은 그대로였다⁠. 숯불이 대장장이의 얼굴 아랫부분만 비췄다⁠.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나는 팡 소리를 기다렸다⁠. 망치는 모루로 내려오지 않았다⁠. 망치를 든 채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쉰쯤 된 얼굴이었다⁠. 눈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보았다⁠. 나를 보았다⁠.

“⁠이 망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틀 동안 대사 한 줄 말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목이었다⁠.

“⁠누가 쥐여 줬어⁠?⁠”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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