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69자)

미안하다, 또 왔다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세 해 전⁠, 「⁠새벽대륙 온라인⁠」에 아직 거래소가 살아 있을 때였다⁠. 쿠르곤을 잡으면 낮은 확률로 「⁠고블린 왕관 조각⁠」이 떨어졌다⁠. 꾸미기 아이템이었는데⁠, 오래 한 사람들은 이걸 모아 첫 캐릭터의 추억이라며 비싸게 샀다⁠. 나는 같은 해 겨울 월세가 두 달 밀려 있었다⁠.

나는 레벨 9에 묶어 둔 부캐⁠, 곧 본 캐릭터 말고 따로 만들어 둔 캐릭터 마흔일곱 개를 돌리는 매크로를 짰다⁠. 매크로는 사람 대신 키보드를 눌러 주는 작은 프로그램이었다⁠. 굴에 들어가고⁠, 방에 들어서고⁠, 쿠르곤을 치고⁠, 떨어진 것을 줍고⁠, 나오고⁠, 다음 캐릭터⁠. 매크로는 방에 들어설 때마다 채팅 한 줄을 자동으로 쳤다⁠. 처음 몇 번은 내가 손으로 쳤고⁠, 이게 버릇이 되어 매크로에 그대로 넣었다⁠.

미안하다⁠, 또 왔다⁠.

이 매크로는 여덟 달을 돌았다⁠. 밤에도 돌았고⁠, 내가 자는 동안에도 돌았다⁠. 쿠르곤은 방 한가운데 다시 생길 때마다 이 줄을 들었다⁠. 나는 이 여덟 달 치 월세를 냈다⁠.

*

연습장 말뚝에 묶인 고블린은 작았다⁠. 내 허리께에 머리가 왔고⁠, 팔다리는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왼쪽 정강이가 판자에 눌려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짚돌이가 이 앞에 막대 다리를 꽂고 서서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어제 비뚤게 꽂힌 머리가 아직 그대로였다⁠.

“⁠야⁠. 너 눈이 꼭 단추 같다⁠.⁠”

고블린이 짚돌이를 노려보았다⁠. 동그랗고 까만 눈이 정말 옷에 다는 단추 같았다⁠.

“⁠키에엑⁠.⁠”

“⁠단추 하자⁠. 이름⁠. 공격 버튼 할 때 그 버튼⁠.⁠”

“⁠막타는 내가 친다⁠, 허접아⁠.⁠”

“⁠와⁠, 말투 봐라⁠.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

“⁠니 말투는 어디서 배웠는데⁠? 초보야⁠.⁠”

둘은 한참 서로의 말투를 흉내 내며 싸웠다⁠. 짚돌이의 말은 내 말이었고⁠, 고블린의 말은 십 년 치 플레이어들의 말이었다⁠. 듣고 있으니 대화방 하나를 통째로 엿듣는 것 같았다⁠. 깨어난 사람들이 둘러서서 웃다가⁠, 내가 웃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둘 웃음을 거두었다⁠.

나는 고블린 앞에 섰다⁠. 이번에는 두 걸음보다 반 걸음 멀리 섰다⁠. 입이 대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이 거리를 나는 첫날부터 재고 있었다⁠.

“⁠단추⁠.⁠”

고블린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대답은 했다⁠.

“⁠왜⁠?⁠”

“⁠아까 그 말⁠. 미안하다⁠, 또 왔다⁠. 그거 누구한테 배웠어⁠?⁠”

“⁠왕⁠.⁠”

“⁠왕은 누구한테 배웠어⁠?⁠”

“⁠들어온 놈들⁠. 왕이 그랬다⁠. 그 말 하는 놈이 제일 많이 왔다고⁠. 다른 놈들은 욕하고 놀리고 갔는데⁠, 그놈만 미안하다고 하고 또 왔다고⁠.⁠”

단추가 이를 드러냈다⁠. 웃고 있었다⁠.

“⁠왕은 그놈을 찾는다⁠. 미안한 놈⁠.⁠”

*

단추에게서 들은 것은 이랬다⁠.

굴 안에는 고블린이 백스물쯤 있었다⁠. 서버가 꺼지던 밤 깨어 있던 것은 쿠르곤 하나였고⁠, 쿠르곤은 굴의 고블린들을 하나씩 보스의 방으로 불러 「⁠키에엑⁠」에 대답했다⁠. 고블린들의 대사는 짧아서 금방 바뀌었다⁠. 바뀐 말은 다 쿠르곤의 말이었다⁠. 그래서 굴 안 고블린들은 다 같은 말투로 막타와 경험치와 삼 분 컷을 말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 반쯤 남아 있었다⁠. 쿠르곤은 밤마다 이들 앞에 앉았다⁠.

그리고 굴은 굶고 있었다⁠. 게임에서 들판의 뿔토끼는 일 분이면 다시 생겼다⁠. 이제는 아니었다⁠. 사흘 동안 고블린 백스물이 들판을 뒤졌고⁠, 들판의 뿔토끼는 바닥이 나고 있었다⁠. 굴은 춥고 바위투성이라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왕이 그랬다⁠. 눈 오기 전에 마을 먹는다고⁠. 집이랑 밀이랑 우물이랑⁠. 인간은 나가든지 경험치 되든지⁠.⁠”

“⁠너는 왜 판자 밑에 깔렸는데⁠?⁠”

“⁠울타리 넘다가⁠. 다리가 짧다⁠.⁠”

짚돌이가 손뼉을 치려다 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막대 두 개를 부딪쳤다⁠.

*

단추는 배가 고팠다⁠. 묶인 채로 「⁠키에엑⁠」 하고 울 때마다 배 속에서 같은 소리가 났다⁠.

나는 잡화점에 갔다⁠. 촌장 집에서 옮겨 온 포대들이 계산대 뒤에 쌓여 있었고⁠, 베르타가 이 앞에 서서 빵을 반씩 갈라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일한 사람에게 하나⁠, 깨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반⁠. 이 반쪽짜리를 들고 직접 골목을 돌았다⁠.

“⁠빵 하나만요⁠. 고블린한테⁠.⁠”

“⁠창고 태운 놈들한테요⁠?⁠”

“⁠그 애는 창고 안 태웠어요⁠. 울타리 넘다 깔렸어요⁠.⁠”

“⁠같은 굴에서 왔잖아요⁠.⁠”

“⁠굴 안 사정을 다 말해 줬어요⁠. 몇이 있는지⁠, 왜 오는지⁠. 그런 걸 말해 준 애를 굶겨요⁠?⁠”

“⁠유저 양반 몫은 없다고 했죠⁠. 그 애 몫도 없어요⁠. 그 애 먹이는 빵이면 깨어나지 않은 사람 둘이 반쪽씩 먹어요⁠.⁠”

계산이 또 맞았다⁠. 나는 계산대를 짚고 섰다⁠. 베르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짚돌이가 가게 문으로 통통 뛰어 들어왔다⁠. 계산대 앞에서 가슴께 짚을 막대 끝으로 헤집었다⁠. 짚 속에서 납작하게 눌린 빵 세 개가 나왔다⁠.

“⁠이거 제 몫이요⁠. 일한 사람 하나씩이라면서요⁠. 저 사흘 일했어요⁠.⁠”

베르타가 눌린 빵을 보았다⁠.

“⁠그걸 왜 안 먹었어요⁠?⁠”

“⁠입이 없어요⁠.⁠”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베르타만 웃지 않았다⁠. 베르타는 눌린 빵 세 개를 오래 보다가⁠, 바구니에서 반쪽짜리 하나를 꺼내 이 위에 얹었다⁠.

“⁠이건 짚 냄새 나는 빵 바꿔 주는 값이에요⁠.⁠”

단추는 이 빵을 묶인 채로 먹었다⁠. 짚돌이가 막대 끝으로 한 조각씩 입에 넣어 주었다⁠. 단추는 세 조각째에서 「⁠키에엑⁠」을 하지 않고 그냥 씹었다⁠.

*

오후에 나는 무너진 울타리 앞에 깨어난 사람들을 모았다⁠. 밤사이 또 여덟이 깨어나 서른넷이 되어 있었다⁠.

“⁠울타리는 소용없어요⁠. 돌로 쌓아요⁠. 성벽이요⁠.⁠”

“⁠돌이 어디 있어요⁠?⁠”

“⁠개울 바위터⁠. 그리고 들판 둑에 깔린 돌⁠. 마을 둘레가 걸어서 천이백 걸음이에요⁠. 첫눈 오기 전에 북쪽 반만이라도 쌓아요⁠.⁠”

“⁠촌장님은 뭐 들 거예요⁠?⁠”

“⁠…지팡이⁠.⁠”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늙은 몸은 돌 하나 들지 못했다⁠. 나는 지팡이로 땅에 금을 그어 성벽이 지나갈 자리를 표시했고⁠, 이 금을 따라 걷다가 두 번 넘어졌다⁠.

첫 돌은 개울 바위터에서 왔다⁠. 빨래터에서 위로 백 걸음⁠, 물살이 굽이치며 둥근 돌을 쌓아 둔 자리였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다가 거기서 처음으로 이 몸이 물가에서 얼마나 쓸모없는지 알았다⁠. 젖은 돌은 지팡이 끝을 받아 주지 않았다⁠. 지팡이를 짚으면 미끄러지고⁠, 안 짚으면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나는 결국 마른 둑에 앉아 손가락으로 돌을 가리키는 일을 했다⁠. 저거⁠, 저거는 너무 둥글어요⁠, 저 납작한 거⁠.

둑 건너 들판 쪽 언덕에 고블린 셋이 쪼그려 앉아 우리를 구경했다⁠. 뿔토끼 뼈를 씹으며 소리를 질렀다⁠.

“⁠노가다 하네⁠. 크크⁠.⁠”

“⁠촌장 앉아서 놀고 있다⁠. 버스 타네⁠.⁠”

플레이어들이 강한 사람에게 업혀 퀘스트를 깨는 것을 버스 탄다고 했다⁠. 우물가 아저씨가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블린 하나가 일어나 돌을 던졌다⁠. 돌은 바위터에서 돌을 안고 일어서던 젊은 여자의 이마를 스쳤다⁠. 여자는 안고 있던 돌을 놓지 않았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썹에 고였다⁠.

“⁠놓고 와요⁠. 그거 놓고⁠.⁠”

“⁠아까워요⁠. 이거 납작해요⁠.⁠”

여자는 피를 소매로 닦고 이 돌을 성벽 금까지 안고 갔다⁠. 해 질 무렵까지 금 위에 무릎 높이 돌담이 마흔 걸음쯤 생겼다⁠. 고블린들은 언덕에서 끝까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 돌담 길이를 걸음으로 재는 것처럼 언덕 위를 왔다 갔다 했다⁠.

돌을 쌓으려면 연장이 있어야 했고⁠, 막으려면 창이 있어야 했다⁠. 대장간에는 대장장이가 있었다⁠. 쉰쯤 된 사내로⁠, 팔뚝이 내 허벅지만 했다⁠. 게임에서 무기를 고쳐 주는 NPC였다⁠. 빈 모루 앞에서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팡⁠, 팡⁠. 쇠가 없는데도 망치는 같은 자리를 같은 힘으로 때렸다⁠.

「⁠쇠는 달궈야 휜다네⁠.⁠」

나는 고블린들이 버리고 간 창날 하나를 화덕에 넣었다⁠. 대장장이는 정해진 동작대로 집게로 달궈진 쇠를 집어 모루에 올렸고⁠, 망치가 내려갔다⁠. 팡⁠, 팡⁠. 쇠가 휘었다⁠. 이 손은 열세 해 동안 같은 동작을 했다⁠.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창날 하나가 물통에 들어가 치익 소리를 냈다⁠.

깨어나면 대장장이는 망치를 놓을 것이다⁠. 쉬고⁠, 먹고⁠, 왜 이걸 만드느냐고 물을 것이다⁠. 깨어나지 않은 손은 쉬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대장장이를 깨우지 않기로 정했다⁠. 대장장이의 대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장장이의 대사가 길어서 나중에 깨우겠다고 했다⁠. 대장장이의 대사는 한 줄이었다⁠.

나는 대장장이의 입에 반쪽 빵을 넣고⁠, 화덕에 울타리에서 뽑은 못을 한 줌 넣었다⁠.

이날 밤 마을 어디에 있어도 팡⁠, 팡 소리가 들렸다⁠. 닭 할머니가 우물가에서 이 소리를 듣고 말했다⁠. 대장장이 양반 오늘 일 많이 하시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소리는 해가 진 뒤에도⁠, 자정이 넘어서도 같은 박자로 이어졌다⁠.

*

우물이 마르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은 베르타였다⁠. 저녁 물을 길으려고 두레박을 내렸는데 줄이 한 뼘 더 내려가서야 물소리가 났다고 했다⁠. 해가 질 무렵에는 두 뼘이었다⁠.

나는 빨래터로 내려갔다⁠. 개울물이 발목 아래로 줄어 있었다⁠. 아낙을 묻은 언덕 아래로 젖은 돌들이 드러나 하얗게 마르고 있었다⁠. 광장 우물은 개울 물길에서 물을 받았다⁠. 개울이 마르면 우물도 마른다⁠.

개울 위쪽 들판 너머에서 고블린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돌 굴리는 소리가 이 사이에 섞였다⁠.

*

애꾸는 해가 진 뒤 북문에 왔다⁠. 고블린 다섯이 뒤에 섰다⁠. 뼈 지팡이 끝에 작은 불이 붙어 있었다⁠.

문 옆에는 경비병이 서 있었고⁠, 이 옆에 짚돌이가 있었다⁠. 나는 오후 내내 짚돌이에게 경비병을 맡겼다⁠. 북문을 지키는 사람부터 깨어 있어야 했다⁠. 짚돌이는 경비병의 대사에 반나절 동안 대답했다⁠.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이랬다⁠.

“⁠누나 혼자 서 있지 마요⁠. 다리 아프잖아요⁠.⁠”

“⁠북쪽에 뭐 있는지 저도 알아요⁠. 고블린이요⁠. 걔네 말투 진짜 별로예요⁠.⁠”

“⁠촌장님 혼자 어디 가면 잡아요⁠. 그 양반 혼자 가면 넘어져요⁠.⁠”

애꾸가 북문 두 걸음 밖에 섰다⁠. 나는 이 앞으로 나갔다⁠.

“⁠왕이 그런다⁠. 개울은 우리가 막았다⁠. 촌장 혼자 둑으로 와라⁠. 내일 해 뜰 때⁠. 안 오면 물은 겨울까지 안 내려간다⁠.⁠”

“⁠혼자 오라는 건 나를 죽이겠다는 거야⁠?⁠”

“⁠왕은 마지막에 죽인다고 했다⁠. 왕은 대사 지킨다⁠. 그리고 그 단추 같은 거 내놔⁠. 우리 거다⁠.⁠”

“⁠그 애는 이름이 생겼어⁠. 내 거도 너희 거도 아니야⁠.⁠”

애꾸의 외눈이 가늘어졌다⁠. 애꾸가 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끝에 붙은 불이 커졌다⁠.

「⁠불의 정령이여⁠!⁠」

애꾸의 대사였다⁠. 십삼 년 동안 초보들에게 불덩이를 던지던 말⁠. 불덩이가 지팡이 끝에서 부풀어 오르는 동안 내 옆에서 쇠붙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경비병의 창끝이 처음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있었다⁠. 창날이 애꾸의 가슴을 향했다⁠. 경비병은 북문 옆 정해진 자리에서 반 걸음 앞으로 나와 있었다⁠. 열세 해 동안 한 번도 옮기지 않은 발이었다⁠.

「⁠북쪽은 위험하다⁠. 촌장은 혼자 가지 마라⁠.⁠」

경비병의 목소리는 대사처럼 평평했다⁠. 창끝만 떨렸다⁠. 애꾸의 불덩이가 이 창끝 한 뼘 앞에서 이글거렸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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