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38자)

세 번째 밤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내 입이 베르타에게 그렇게 말했다⁠. 베르타가 쥔 밧줄 고리가 반 뼘 내려갔다⁠. 마당에 선 열아홉 가운데 몇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고⁠, 닭 할머니는 대놓고 웃었다⁠. 혀가 다음 대사로 넘어가려는 것을 나는 어금니로 끊었다⁠.

“⁠묶을 필요 없어요⁠. 내 발로 갈게요⁠. 북문에⁠.⁠”

베르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신 오늘 하룻밤은 다들 내 말대로 해요⁠. 해 질 때부터 해 뜰 때까지⁠. 그리고 내가 내일 아침에 살아 있으면⁠, 먹을 것은 그때부터 당신이 정해요⁠. 이 집도 창고로 써요⁠. 마을에서 제일 크고⁠, 언덕이라 불이 늦게 붙어요⁠.⁠”

“⁠살아 있으면요⁠.⁠”

“⁠살아 있으면⁠.⁠”

베르타는 밧줄을 둘둘 감아 어깨에 걸었다⁠. 내려놓지는 않았다⁠.

*

해가 지기까지 반나절이 있었다⁠. 나는 십 년 동안 외운 것부터 꺼냈다⁠.

“⁠고블린은 북문으로만 들어와요⁠. 게임에서는 울타리가 안 부서졌어요⁠. 문만 막으면 돼요⁠.⁠”

짚돌이가 울타리 앞으로 통통 뛰어가 막대 다리로 판자를 걷어찼다⁠. 판자가 반으로 부러져 날아갔다⁠.

“⁠이거 원래 안 부서지던 거 아님⁠?⁠”

“⁠…원래는⁠.⁠”

“⁠원래는 나도 말 안 했잖아요⁠.⁠”

깨어난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나는 지팡이로 땅을 두 번 두드리고 다음 것을 꺼냈다⁠. 하나는 맞아야 했다⁠.

게임에는 「⁠고블린의 횃불⁠」이라는 잡동사니 아이템이 있었다⁠. 고블린 졸개를 잡으면 떨어지는 것으로⁠, 잡화점에 동전 한 닢에 팔렸다⁠. 설명 글은 한 줄이었다⁠. 밤눈이 어두운 고블린들이 어디를 가든 들고 다니는 횃불⁠.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었다⁠. 나는 테스터 시절 아이템 설명 글의 오타를 찾느라 이 줄을 백 번은 읽었다⁠.

첫날 밤 쿠르곤은 횃불 넷을 앞세우고 왔다⁠. 어젯밤 창고에 불을 놓은 놈들도 횃불을 들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마을에 불을 하나도 안 켜요⁠. 집집마다 등잔 끄고⁠, 아궁이 불도 덮어요⁠. 그리고 골목마다 두레박을 세 개씩 놔요⁠. 고블린 횃불이 들어오면 그 횃불에 물을 끼얹어요⁠. 불만 꺼지면 걔들은 장님이에요⁠.⁠”

“⁠우리도 안 보이잖아요⁠.⁠”

농부가 말했다⁠.

“⁠우리는 이 마을 골목을 열세 해 동안 걸었잖아요⁠. 눈 감고도 걸어요⁠.⁠”

이 말에 깨어난 사람들이 서로를 보았다⁠. 깨어나지 않았던 열세 해가 처음으로 쓸모 있는 것이 되었다⁠.

오후에는 연습장을 열었다⁠. 깨어난 사람들 가운데 무엇을 휘둘러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물가 아저씨는 쇠스랑을 거꾸로 쥐었고⁠, 닭 할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왔다⁠. 짚돌이가 말뚝 자리에 막대 다리를 꽂고 섰다⁠. 남은 허수아비 셋은 깨어나지 않아 아직 「⁠때려 보세요⁠」만 되풀이했다⁠.

“⁠자⁠, 때려 보세요⁠. 공격 버튼 같은 건 없고 그냥 세게⁠.⁠”

우물가 아저씨가 쇠스랑 자루로 짚돌이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아저씨⁠, 그건 어깨를 두드려 준 거예요⁠. 안마예요⁠.⁠”

“⁠아니 미안해서⁠.⁠”

“⁠십삼 년 동안 나 때린 애들 중에 미안해한 애는 없었어요⁠. 세게⁠.⁠”

두 번째는 조금 셌다⁠. 세 번째에 아저씨는 짚돌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짚 뭉치 머리가 울타리 너머로 굴러가는 동안 몸통이 말했다⁠.

“⁠오⁠, 그거야⁠. 그거 딜 좋다⁠.⁠”

닭 할머니가 머리를 주워 와 막대 위에 도로 꽂아 주었다⁠. 비뚤게 꽂혀서 짚돌이는 이날 밤까지 고개를 갸웃한 채로 다녔다⁠. 저녁이 되자 열아홉이 다 한 번씩 짚돌이를 때려 보았다⁠. 쇠스랑 끝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열아홉으로 늘었고⁠, 짚돌이는 가슴 쪽 짚이 한 움큼 줄었다⁠.

*

계산의 나머지는 짚돌이에게만 말했다⁠.

마을에는 등불지기가 셋 있었다⁠.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해가 지면 기름 등불을 들고 정해진 골목을 밤새 돌았고⁠, 무엇이 앞을 막아도 걸음을 바꾸지 않았다⁠. 마을의 불을 다 꺼도 이 등불 셋은 꺼지지 않는다⁠. 고블린은 빛을 쫓는다⁠. 등불이 도는 골목에 두레박을 든 사람들을 숨겨 두면⁠, 고블린들은 제 발로 이 골목에 들어온다⁠.

“⁠그럼 등불 아저씨들은요⁠?⁠”

짚돌이가 물었다⁠.

“⁠오늘 하루에 셋을 다 못 깨워⁠. 깨워도 그 사람들은 등불 들고 도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럼 그 아저씨들은요⁠?⁠”

짚돌이가 한 번 더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대답을 해 질 때까지 미뤘고⁠, 해가 진 뒤에는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계산이라고 불렀다⁠. 게임에서 몬스터를 끌고 다니는 것을 우리는 어그로를 끈다고 했다⁠. 미끼가 되는 캐릭터는 대개 체력이 가장 많은 놈이었다⁠. 등불지기들은 체력이 없었다⁠.

베르타는 등불 골목의 맨 끝 집 처마 밑에 두레박을 들고 섰다⁠. 이 골목에 무엇이 들어올지 몰랐다⁠.

*

나는 해가 진 북문에 혼자 섰다⁠. 혼자는 아니었다⁠. 문 옆에서 경비병이 창을 세우고 있었다⁠.

「⁠북쪽은 위험하다⁠. 초보자는 조심해라⁠.⁠」

“⁠알아요⁠. 오늘은 진짜 위험해요⁠.⁠”

나는 경비병에게도 대답했다⁠. 바뀐 마디는 아직 없었다⁠. 경비병의 대사는 짧았지만 내가 북문을 지날 일이 드물었다⁠.

들판 저편에서 횃불이 일어났다⁠. 하나⁠, 넷⁠, 열⁠, 그리고 셀 수 없었다⁠. 서른 남짓한 횃불이 둑을 넘어 북문으로 다가왔다⁠. 가운데에 녹슨 왕관이 불빛을 받아 붉게 번득였다⁠.

쿠르곤이 두 걸음 앞에 섰다⁠.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나는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대사가 끝나자 내 말을 붙였다⁠.

“⁠들어와⁠.⁠”

쿠르곤이 고개를 기울였다⁠.

“⁠촌장이 마중을 나왔네⁠. 문까지 열어 주고⁠. 유저는 늘 뭘 계산하지⁠.⁠”

“⁠계산할 게 뭐가 있어⁠. 너는 서른이고 나는 다리 하나 반이야⁠.⁠”

쿠르곤은 웃지 않았다⁠. 횃불을 높이 들어 내 등 뒤의 마을을 비추었다⁠. 창문마다 까맸다⁠. 개 짖는 소리 하나 없었다⁠. 저 멀리 골목 사이로 등불 셋이 천천히 움직였다⁠.

“⁠불 다 껐네⁠.⁠”

“⁠고블린 왕한테 마을 구경시켜 줄 것까지는 없잖아⁠.⁠”

“⁠말 많네⁠. 촌장은 말 안 많았는데⁠.⁠”

쿠르곤이 허벅지만 한 팔을 뻗어 내 지팡이 끝을 발로 밟았다⁠. 지팡이가 땅에 박힌 채로 움직이지 않자⁠, 나는 거기 매달린 몸을 어디로도 옮기지 못했다⁠.

“⁠아까 대사⁠, 끝까지 안 했지⁠. 어서 오게까지만 하고⁠. 그다음 말은 언제 할 거야⁠? 물리쳐 주게⁠. 그거 듣고 들어가야 맛이 나는데⁠.⁠”

“⁠안 해⁠.⁠”

“⁠할 거야⁠. 몸이 하게 돼 있어⁠.⁠”

쿠르곤이 손을 들었다⁠. 고블린들이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울타리 양쪽으로 갈라졌다⁠. 판자 부서지는 소리가 마을 둘레를 따라 번져 나갔다⁠. 그리고 횃불들이 하나씩⁠, 등불을 향해 꺾여 들어갔다⁠.

*

나는 이날 밤 골목 안을 보지 못했다⁠. 소리만 들었다⁠.

물 끼얹는 소리⁠. 치익 하고 불이 죽는 소리⁠. 다음에는 고블린의 비명이 아니라 헛손질이었다⁠. 창 자루가 담벼락을 때리는 소리⁠, 서로를 찌르고 욕하는 소리⁠. 쇠스랑이 무언가에 박히는 둔한 소리⁠. 깨어난 사람들은 열세 해 동안 걸은 골목을 눈 감고 달렸다⁠.

쿠르곤은 문 앞에서 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늙은 몸은 무게중심을 통째로 잃었다⁠. 지팡이가 손에서 빠져 돌바닥에 굴렀다⁠.

“⁠어디다 숨겼어⁠?⁠”

“⁠다 저 안에 있어⁠.⁠”

쿠르곤은 나를 짐짝처럼 옆구리에 끼고 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물가에서 누가 두레박을 던졌다⁠. 쿠르곤의 횃불이 꺼졌다⁠. 광장이 새까매졌다⁠.

쿠르곤은 어둠 속에서 쇠뭉치를 휘둘렀다⁠. 바람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두 번째는 무언가를 맞혔다⁠. 짚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 이건 좀 아픈데⁠.⁠”

짚돌이였다⁠. 세 번째 휘두름이 끝나기 전에 쿠르곤이 짐승처럼 울었다⁠. 나를 끼고 있던 팔이 풀렸다⁠. 나는 돌바닥에 떨어져 어깨부터 굴렀고⁠, 이 위로 쿠르곤의 무릎이 휘청 꺾이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쇠스랑으로 쿠르곤의 허벅지를 찔렀다⁠. 나중에 들으니 어제 빨랫줄에 묶여 있던 농부였다⁠.

“⁠인간 놈들⁠, 내 마을에서 나가라⁠!⁠”

쿠르곤이 외쳤다⁠. 열세 해 동안 하던 대사에서 한 마디가 바뀌어 있었다⁠. 굴이 마을로⁠. 절뚝이며 북문으로 물러났고⁠, 들판 쪽에서 남은 횃불들이 쿠르곤을 따라 둑을 넘어갔다⁠. 몇은 꺼진 채였다⁠.

*

해가 뜨고 등불 골목에 갔다⁠.

등불지기 둘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는 골목 어귀에⁠, 하나는 맨 끝 집 처마 아래에⁠. 등불은 둘 다 깨지지 않고 옆에 놓여 있었는데⁠, 기름이 다 타서 꺼져 있었다⁠. 깨어나지 않은 사람은 찔려도 피하지 않았다⁠. 등불을 든 채로 정해진 걸음을 디디다 쓰러졌을 것이다⁠. 세 번째 등불지기는 살아서⁠, 꺼진 등불을 든 채 아침 골목을 여전히 돌고 있었다⁠. 등불지기가 내 앞을 지나며 「⁠밤길 조심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이 걸음을 따라 골목을 한 바퀴 돌며 대답했다⁠. 밤은 끝났다고⁠, 당신 둘이 죽었다고⁠, 내가 그렇게 두었다고⁠. 다음 바퀴에서 등불지기의 대사 첫 마디가 「⁠밤은⁠」으로 바뀌어 있었다⁠.

베르타가 처마 밑에 서 있었다⁠. 베르타의 앞치마 앞자락이 젖어 있었다⁠. 두레박 물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고블린들이 처음에 저 사람 등불만 보고 들어왔어요⁠. 저 사람한테 먼저 갔어요⁠.⁠”

나는 지팡이를 짚고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걔들을 걷게 뒀죠⁠.⁠”

“⁠그래요⁠.⁠”

“⁠알고 뒀죠⁠. 등불 꺼 달라고 한 번도 안 했으니까⁠.⁠”

“⁠끄면 고블린이 집으로 들어가요⁠. 문 하나하나로⁠. 그러면 둘이 아니에요⁠.⁠”

베르타가 나를 오래 보았다⁠. 열세 해 동안 광장 건너편에서 보던 촌장은 한 번도 이런 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옛 촌장은 셈을 할 줄 몰랐다⁠.

“⁠살아 있네요⁠, 유저 양반⁠. 약속대로 오늘부터 먹을 건 내가 정해요⁠.⁠”

베르타는 쓰러진 등불지기 옆에 무릎을 꿇고 꺼진 등불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에 손때가 반질반질했다⁠. 열세 해 동안 같은 손이 같은 자리를 쥐었다⁠.

“⁠당신 몫은 없어요⁠. 이 사람들 몫으로 돌릴 거예요⁠.⁠”

*

울타리 서쪽 끝이 통째로 무너져 있었다⁠. 고블린 서른이 한꺼번에 넘다가 기둥이 꺾인 자리였다⁠. 짚돌이가 이 판자 더미 위에서 통통 뛰며 나를 불렀다⁠. 짚돌이의 가슴께 짚이 한 움큼 뜯겨 나가 있었다⁠.

“⁠촌장님⁠, 이거 봐요⁠. 하나 깔렸어요⁠.⁠”

판자 밑에 작은 고블린 하나가 끼어 있었다⁠. 다리가 기둥에 눌려 빠지지 않았고⁠, 우리가 판자를 들어내는 동안 이를 드러내고 「⁠키에엑⁠!⁠」 하고 울었다⁠. 고블린 졸개의 대사였다⁠. 우리는 이 고블린을 연습장으로 끌고 가 첫날 밤 불탄 허수아비의 말뚝에 묶었다⁠. 이 자리밖에 묶을 데가 없었다⁠.

깨어난 사람들이 둘러섰다⁠. 누가 돌을 들었다⁠. 농부는 쇠스랑을 들었다⁠. 등불지기 둘을 잃은 아침이었다⁠.

나는 고블린 앞 두 걸음에 섰다⁠. 입이 열리려는 것을 깨물어 막고 농부를 내려다보았다⁠. 고블린은 「⁠키에엑⁠」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노란 눈이 내 얼굴 위에서 오래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사가 아닌 말을 했다⁠.

“⁠미안하다⁠. 또 왔다⁠.⁠”

나는 지팡이를 쥔 손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말은 고블린의 말이 아니었다⁠. 십 년 동안 이 굴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치던 말이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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