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4자)

보스의 방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짚돌이를 끈 것은 단추였다⁠. 짚돌이는 불붙은 짚돌이를 끌어안고 성벽 안쪽으로 굴렀다⁠. 성벽 공사에 쓰려고 줄지어 세워 둔 물통이 거기 있었다⁠. 단추는 짚돌이를 통째로 첫 물통에 거꾸로 처박았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흰 김이 솟았다⁠. 단추의 팔뚝에서도 김이 났다⁠. 짚돌이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성벽 아래에서 쿠르곤이 이것을 보았다⁠. 애꾸에게 활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끌려온 사내를 도로 고블린들에게 넘겼다⁠.

“⁠첫눈⁠. 그날 다 같이 바꾸자⁠.⁠”

횃불 마흔이 들판으로 물러났다⁠.

*

짚돌이는 물통에서 꺼냈을 때 반이었다⁠. 왼팔이 어깨부터 없었다⁠. 가슴 짚이 타서 까만 숯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졌고⁠, 이 사이로 몸통을 엮은 막대가 드러났다⁠. 머리는 반쯤 그슬려 단추 눈 하나가 녹아 있었다⁠.

“⁠촌장님⁠.⁠”

목소리가 작았다⁠. 짚이 줄어든 만큼 목소리도 줄어 있었다⁠.

“⁠나 불 진짜 안 된다고 했잖아요⁠.⁠”

“⁠알아⁠.⁠”

“⁠근데 단추가 저 앞에 있었잖아요⁠. 내가 맞는 건 전문인데⁠.⁠”

“⁠불은 맞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실화냐⁠?⁠”

짚돌이는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이 기침 소리는 마른 짚단을 발로 밟는 소리 같았다⁠.

아침이 되자 짚돌이는 막대 다리로 서지 못했다⁠. 몸이 가벼워져서 균형을 잡지 못했다⁠. 늙은 몸으로 열흘을 산 나는 이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무게가 있어야 무게중심이 생긴다⁠. 짚돌이는 무게를 잃었다⁠. 단추가 짚돌이를 연습장 말뚝에 도로 꽂아 주었다⁠. 말뚝에 꽂히자 짚돌이는 겨우 섰다⁠. 열세 해 동안 짚돌이를 묶어 두던 말뚝이 이제 짚돌이를 세워 주었다⁠.

“⁠이거 원래 자리네⁠. 실화냐⁠?⁠”

짚돌이는 그렇게 말하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짚이요⁠. 짚만 있으면 돼요⁠. 다시 엮으면 돼요⁠.⁠”

목수가 말했다⁠. 목수는 짚돌이의 막대 뼈대를 손으로 더듬으며 어디를 다시 엮어야 하는지 보았다⁠.

“⁠짚이 어디 있는데요⁠?⁠”

다들 알았다⁠. 마을의 지붕은 나무 널이었다⁠. 게임에서 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짚은 밀밭에 있었다⁠. 밀을 베고 남은 밀대가 짚이었다⁠. 그리고 밀밭은 들판에 있었고⁠, 들판은 쿠르곤의 것이었다⁠. 내가 물과 바꿨다⁠.

*

나는 우물가에서 말했다⁠.

“⁠굴에 갈게요⁠.⁠”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몇 사람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끌려간 사람 데려오고⁠, 들판 얘기 다시 하고⁠, 첫눈 얘기도 해 볼게요⁠. 쿠르곤은 말한 건 지켜요⁠. 지금까지 다 지켰어요⁠. 그럼 말로 정할 수도 있어요⁠.⁠”

“⁠말로 뭘 정할 건데요⁠?⁠”

대장장이가 물었다⁠.

“⁠마을을 같이 쓰자고요⁠.⁠”

우물가가 조용해졌다⁠. 고블린 열하나는 연습장 쪽에 있어서 이 말을 듣지 못했다⁠. 사람들만 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굳어 갔다⁠. 돌을 같이 든 농부가 맨 먼저 고개를 돌렸다⁠.

베르타가 빵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가는 건 당신 일이에요⁠. 우리 일은 아니고요⁠. 빵은 이틀 치만 줄게요⁠. 돌아오면 그다음 거 줘요⁠.⁠”

“⁠나도 간다⁠.⁠”

노미가 창을 들었다⁠.

“⁠문 지키는 사람이 문을 떠나면 안 돼요⁠. 첫눈 오면 그 문으로 와요⁠.⁠”

노미는 창을 쥔 채 한참 서 있다가 내 지팡이 손잡이를 보았다⁠. 왼손에 쥔 손잡이였다⁠.

“⁠넘어지지 마라⁠. 거기서는 일으켜 줄 사람 없다⁠.⁠”

길잡이는 단추였다⁠. 단추는 붕대 감은 팔뚝을 흔들며 말했다⁠. 이거 굴 앞에 가면 다 알아본다⁠, 왕 배신한 놈⁠. 그러면서도 앞장섰다⁠.

*

바위산까지는 들판을 가로질러야 했다⁠. 들판에는 고블린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굴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밀은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도 베지 않은 밀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고랑 사이를 걸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바람에 무언가 쇠붙이 같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눈 냄새다⁠.⁠”

단추가 코를 킁킁거렸다⁠.

바위산 비탈은 내 몸이 걸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지팡이는 바위 틈에서 미끄러졌고⁠, 굽지 않는 왼 무릎은 높은 바위를 넘지 못했다⁠. 단추가 앞에서 바위를 기어올라 손을 내밀었다⁠. 단추의 손은 작고 단단했다⁠. 나는 이 손에 몸무게를 반쯤 맡겼다⁠. 비탈을 다 오르기까지 해가 반 뼘 기울었다⁠.

굴 입구는 게임에서 본 그대로였다⁠. 바위 사이로 입을 벌린 검은 구멍⁠, 입구 양옆에 꽂힌 횃불 자리⁠. 나는 이 입구를 수천 번 지났다⁠. 매크로로 지날 때는 보지도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냄새가 왔다⁠. 젖은 돌⁠, 그을음⁠, 그리고 굶은 것들의 냄새⁠. 통로 양쪽 벽에 고블린들이 기대 앉아 있었다⁠. 무기를 쥔 것도 있었고⁠, 그냥 무릎을 끌어안은 것도 있었다⁠. 다들 단추를 보았다⁠. 누가 이를 드러냈고⁠, 누가 키에엑 하고 울었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일어설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꺾임에서 어린 고블린 하나가 내 품을 보았다⁠. 베르타가 준 이틀 치 빵이 거기 있었다⁠. 냄새였다⁠. 이 어린것은 기어 와서 내 옷자락을 쥐었다⁠. 단추가 쫓으려 했고⁠, 나는 단추의 어깨를 짚어 막았다⁠.

나는 빵 하나를 꺼내 어린것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린것은 이것을 먹지 않고 옆의 늙은 고블린에게 넘겼다⁠. 늙은 것은 반을 떼어 먹고 반을 다음으로 넘겼다⁠. 빵은 손에서 손으로 통로 안쪽으로 건너갔다⁠. 나는 두 번째 빵을 꺼냈다⁠. 이것도 건너갔다⁠. 세 번째 빵이 세 번째 꺾임 앞에서 마지막 부스러기가 되었다⁠. 이 너머 벽에 기댄 것들은 빵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이틀 치였는데⁠.⁠”

단추가 말했다⁠.

“⁠알아⁠.⁠”

“⁠계산 안 했네⁠.⁠”

“⁠했어⁠. 해도 이렇게 됐어⁠.⁠”

나는 빈 품을 여몄다⁠. 배 속이 쓰렸다⁠. 이 몸은 첫날 밤부터 늘 배가 고팠다⁠. 굴 안의 것들도 그랬을 것이다⁠. 서버가 꺼진 자정부터 다 같이⁠.

통로는 세 번 꺾였다⁠. 첫째 꺾임에서 왼쪽 벽 아래⁠, 바위 그림자 속에 사람 하나 겨우 기어드는 틈이 있었다⁠. 보스의 방 뒤쪽으로 바로 이어지는 틈이었다⁠. 빨리 깨려는 사람들만 아는 길이었고⁠, 나는 이 길로 이 굴을 삼 분 만에 지나다녔다⁠. 이 틈이 그대로 있었다⁠. 게임 지식이 처음으로 맞았다⁠. 나는 이 틈을 지나쳤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들어가야 했다⁠.

세 번째 꺾임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쿠르곤의 목소리였다⁠. 깨어나지 않은 고블린 하나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낮고⁠, 느리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

보스의 방은 둥글었다⁠. 천장이 높았고⁠, 벽에는 열세 해 동안 초보들이 쏜 불꽃 자국이 검게 겹쳐 있었다⁠. 바닥 한가운데가 우묵하게 패어 있었다⁠. 돌이 반들반들했다⁠. 쿠르곤이 쓰러지고 다시 생기던 자리였다⁠. 수만 번 이 자리에 쓰러지고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 돌이 쿠르곤의 몸 모양대로 닳아 있었다⁠.

쿠르곤은 이 우묵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에 어린 고블린 하나가 쪼그려 「⁠키에엑⁠」을 하고 있었다⁠. 방구석에 남쪽 길에서 끌려온 사내가 묶여 앉아 있었다⁠. 쿠르곤은 나를 보고 몸을 일으키려다 밧줄에 걸려 주저앉았다⁠.

나는 방 문턱에서 멈췄다⁠. 그리고 십 년 동안 이 문턱에서 치던 말을 했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아니라 입으로⁠.

“⁠미안하다⁠. 또 왔다⁠.⁠”

쿠르곤의 어깨가 굳었다⁠. 어린 고블린이 「⁠키에엑⁠」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쿠르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란 눈이 문턱의 나를 보았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일어서지 않고 말했다⁠.

“⁠칼은⁠?⁠”

“⁠없어⁠.⁠”

“⁠처음이네⁠.⁠”

나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 쿠르곤이 앉은 자리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두 걸음이 아니었다⁠. 다리가 떨렸다⁠. 바위산을 오른 다리였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바닥에 앉았다⁠. 굽지 않는 왼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쿠르곤이 이 다리를 보았다⁠.

“⁠마을을 같이 쓰자⁠.⁠”

나는 말했다⁠.

“⁠성벽 안에 집이 서른한 채야⁠. 반은 비어 있어⁠.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한 집에 몰아서 재우면 돼⁠. 들판은 같이 일궈⁠. 밀 베고⁠, 짚 나누고⁠. 숲에서 도토리 줍는 건 너희가 알고⁠, 우리는 우려 먹는 걸 알아⁠. 겨울 하나만 같이 넘기자⁠. 그다음은 그다음에 정해⁠.⁠”

“⁠우리가 들어가면 너희가 우리를 안 친다고⁠.⁠”

“⁠안 쳐⁠.⁠”

“⁠왜⁠?⁠”

“⁠이제 경험치가 없으니까⁠. 쳐도 아무것도 안 올라⁠.⁠”

쿠르곤이 웃었다⁠. 처음으로 크크가 아니라 소리 없이 웃었다⁠.

“⁠그건 계산이네⁠. 유저는 늘 계산하지⁠.⁠”

쿠르곤은 일어섰다⁠. 반들반들한 자리에서 한 걸음 나와⁠, 내 앞 두 걸음에 섰다⁠. 나는 앉은 채로 쿠르곤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는 몸에 박혀 있다⁠. 우리 보면 친다⁠. 너도 그렇다⁠. 네 몸도⁠.⁠”

내 입이 열렸다⁠.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나는 어금니를 맞물리려 했다⁠. 혀가 이 사이로 가지 않았다⁠. 둑에서 깨문 자리가 아물지 않아 혀가 저 혼자 물러났다⁠. 턱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위산을 오르는 동안 몸의 힘을 다 썼다⁠. 나는 지팡이를 쥔 왼손에 힘을 줬다⁠. 손가락만 하얘졌다⁠.

「⁠북쪽 굴의 고블린 왕을 물리쳐 주게⁠. 그놈 때문에 마을이 편할 날이 없다네⁠.⁠」

대사는 끝까지 나왔다⁠. 둥근 방의 벽이 이 말을 받아 한 번 더 돌려주었다⁠. 물리쳐 주게⁠. 편할 날이 없다네⁠. 통로 쪽에서 고블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구석의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쿠르곤은 이 말이 다 울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봐라⁠.⁠”

쿠르곤이 말했다⁠.

“⁠네가 아무리 같이 쓰자고 해도⁠, 네 몸은 아직 나를 물리치라고 한다⁠. 이 방에서 수없이 들었다⁠. 오늘 한 번 더 들었다⁠.⁠”

쿠르곤은 허리를 숙여 내 지팡이를 빼앗았다⁠.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나는 반들반들한 바닥에 두 손을 짚었다⁠. 손바닥 밑의 돌이 차가웠다⁠. 쿠르곤이 수만 번 누웠던 돌이었다⁠.

“⁠너는 마지막에 죽는다고 했지⁠. 약속 지킨다⁠. 마을 타는 거 보여 준다⁠. 오늘 밤⁠.⁠”

쿠르곤이 고블린 둘을 불렀다⁠. 고블린들이 내 손목을 등 뒤로 묶었다⁠. 단추가 방 문턱에서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 쿠르곤을 벽으로 밀쳤다⁠.

“⁠왕⁠! 촌장이 칼 없이 왔잖아⁠!⁠”

“⁠그래서 안 죽였다⁠.⁠”

*

굴 밖으로 나왔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고블린 백 남짓이 굴 입구 아래 비탈에 늘어서 있었다⁠. 창을 든 것들⁠, 횃불을 든 것들⁠. 동쪽 숲 쪽 능선에 늑대들이 앉아 있었다⁠. 쿠르곤은 나를 앞세웠다⁠. 묶인 손 때문에 몸이 더 앞으로 쏠렸고⁠, 고블린 하나가 내 등 뒤 밧줄을 쥐고 내가 엎어지지 않게 당겼다⁠. 짐을 끌듯이⁠.

비탈 아래로 들판이 펼쳐졌고⁠, 들판 너머에 새싹마을이 있었다⁠. 반쯤 쌓인 성벽이 저녁 빛 속에 회색 띠로 보였다⁠. 북문 위에 작은 사람 하나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하얀 것이 내려오고 있었다⁠. 게임의 새싹마을에는 열세 해 동안 한 번도 눈이 오지 않았다⁠. 늘 맑았다⁠. 하얀 것이 내 수염 끝에 내려앉아 녹았다⁠.

쿠르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횃불을 높이 들었다⁠. 뒤로 고블린 백 남짓의 횃불이 하나씩 따라 올라갔다⁠.

“⁠첫눈⁠.⁠”

쿠르곤이 들판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디뎠다⁠. 내 등 뒤의 밧줄이 팽팽해졌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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