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06자)

거름

졸혼 선언 아내 옆집에 이사 온 첫사랑 · 석담율

공동 텃밭의 깻묵 퇴비 더미에서 김이 올라왔다⁠. 수요일 아침 일곱 시⁠, 느티울 입구 공동 텃밭 서른 고랑 가운데 스무 고랑에 사람이 붙어 있었다⁠. 손영란은 열일곱 번째 고랑에 쪼그려 앉아 감자 싹을 솎았다⁠. 단지에서 마당이 좁은 집들이 고랑을 하나씩 분양받았고⁠, 마당이 넓은 영란도 감자만은 여기 심었다⁠. 감자는 여럿이 같이 캐야 재미있었다⁠.

옆 고랑에서 6호 할머니가 호미질을 하다가 허리를 폈다⁠.

“⁠7호 사모님⁠, 단톡방 봤어⁠? 커플이래⁠, 커플⁠.⁠”

“⁠회장님이 붙이신 말이에요⁠.⁠”

“⁠사진 잘 나왔드만⁠. 입을 이렇게 크게 벌리고⁠.⁠”

6호 할머니가 입을 쩍 벌려 보였다⁠. 건너편 고랑의 12호 아주머니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영란은 감자 싹 하나를 뽑아 퇴비 더미에 던졌다⁠.

“⁠노래를 입 다물고 하면 그게 콧노래죠⁠.⁠”

“⁠근데 집 내놨다며⁠? 급매라던데⁠.⁠”

“⁠급매요⁠?⁠”

“⁠회장이 그러던데⁠. 빨리 팔린대⁠.⁠”

영란이 대답할 말을 찾기도 전에 고랑 끝에서 목포 말씨가 들렸다⁠. 봉옥단이 장화를 신고 물뿌리개를 든 채 다가왔다⁠. 옥단은 첫 번째 고랑을 분양받은 사람이었다⁠. 회관에서 제일 가깝고 수도에서도 제일 가까운 고랑이었다⁠.

“⁠사모님⁠, 일찍 나오셨네⁠. 감자 잘 크요⁠?⁠”

“⁠회장님 사진보다는 잘 커요⁠.⁠”

옥단은 웃으며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주변 고랑의 호미질 소리가 슬그머니 줄었다⁠.

“⁠그 사진은 좋은 뜻으로 올린 것이요⁠. 잔치 홍보⁠.⁠”

“⁠커플이라고 쓰신 것도 홍보예요⁠?⁠”

“⁠아따⁠, 옛날 동아리믄 커플 비슷한 거 아니당가⁠.⁠”

옥단이 쪼그려 앉아 영란과 눈높이를 맞췄다⁠. 목소리를 조금 낮췄지만 옆 고랑까지는 다 들렸다⁠.

“⁠사모님⁠, 집 팔리는 거 순리대로 두시오⁠. 부장님이 서른 몇 해 벌어서 산 집 아니요⁠. 단지가 조용해야 집값이 안 떨어져라⁠. 졸혼집이네 커플이네 소문나믄 젊은 사람들이 이 단지 안 와⁠.⁠”

“⁠소문은 회장님이 내셨잖아요⁠.⁠”

“⁠나는 있는 걸 올렸제⁠. 사모님⁠, 나도 사십 년 참고 살았어라⁠. 시어머니 모시고⁠, 바깥양반 술주정 받고⁠. 참는 것이 사랑이여⁠. 우리 때는 다 그렇게 살았당께⁠.⁠”

영란은 호미를 고랑에 꽂았다⁠. 흙이 호미 날을 따라 갈라졌다⁠.

“⁠회장님이 참으신 건 회장님 몫이에요⁠. 왜 남이 안 참는 것까지 챙기세요⁠?⁠”

옥단의 입이 잠깐 다물렸다⁠. 옆 고랑의 12호 아주머니가 호미질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옥단은 물뿌리개를 들고 일어났다⁠.

“⁠토요일에 집 보러 또 와요⁠. 분당 사는 은퇴하신 부부⁠. 마당 좀 치워 놓으시오⁠.⁠”

옥단이 첫 번째 고랑으로 돌아갔다⁠. 영란은 감자 싹을 하나 더 뽑았다⁠. 뽑은 싹에서 풋감자 냄새가 났다⁠. 퇴비 더미의 김이 아침 햇살에 하얗게 흩어졌다⁠.

*

목요일 오후⁠, 면 소재지 농약사 주인이 계산대 너머로 영란을 다시 보았다⁠.

“⁠사모님⁠, 계분 열 포대요⁠? 밭이 몇 평인데요⁠?⁠”

“⁠스무 평이요⁠.⁠”

“⁠스무 평이면 세 포대도 남아요⁠. 열 포대 뿌리면 상추가 아니라 사람이 못 살아요⁠.⁠”

“⁠냄새가 필요해서요⁠.⁠”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마스크 한 장을 덤으로 얹어 주었다⁠. 영란은 포대를 트렁크와 뒷좌석에 나눠 싣고 창문을 다 연 채 단지로 돌아왔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옆 차 운전자가 코를 막고 이쪽을 보았다⁠.

목요일 밤 영칠에게서 문자가 왔다⁠. 「⁠토요일 열 시 집 보러 또 온다⁠. 마당 좀 치워 놔⁠」 영란은 「⁠네⁠」 한 글자를 보냈다⁠. 서른두 해 동안 영칠에게 보낸 문자의 절반이 「⁠네⁠」였다⁠. 처음으로 「⁠네⁠」 한 글자가 다른 뜻이었다⁠.

금요일 해 질 녘⁠, 영란은 트렁크에서 계분 포대를 하나씩 내려 수돗가 뒤에 쌓았다⁠. 포대 열 개가 쌓이자 담 너머까지 냄새가 넘어갔다⁠. 8호 현관문이 열리고 기백이 코를 찡그리며 나왔다⁠.

“⁠영란 씨⁠, 내일 집 보러 온다면서요⁠.⁠”

“⁠그러니까요⁠.⁠”

기백은 포대 더미를 한 번 보고⁠, 영란을 한 번 보았다⁠. 무언가를 알아챈 얼굴이었다⁠. 기백은 담에 두 팔을 얹고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남의 집 일에 안 낍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이건 혼잣말인데요⁠. 계분은 뿌리고 나서 물을 줘야 올라와요⁠. 해 뜨고 두 시간쯤 지나면 제일 세고요⁠. 장미 뿌리에서는 두 뼘 떨어뜨려요⁠. 진한 거름이 닿으면 뿌리가 데어요⁠.⁠”

“⁠혼잣말이 길어요⁠.⁠”

“⁠화원을 오래 했더니 혼잣말이 늘었어요⁠.⁠”

기백은 현관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를 더 보탰다⁠.

“⁠마스크는 두 장 사 두세요⁠. 형님 것도⁠.⁠”

영란은 포대 위에 손을 얹은 채 웃었다⁠. 남의 집 일에 안 낀다는 사람이 계분 뿌리는 시간까지 일러 주고 갔다⁠.

*

토요일 아침 여덟 시⁠, 영란은 마스크를 쓰고 계분 포대를 뜯었다⁠. 묵은 닭장 냄새가 포대 입구에서 확 터졌다⁠. 영란은 상추 이랑 사이사이⁠, 고추 이랑 둘레⁠, 현관 앞 화단까지 거름을 뿌렸다⁠. 마지막 포대는 대문 안쪽 디딤돌 옆에 두툼하게 깔았다⁠. 그러고 나서 호스로 물을 흠뻑 뿌렸다⁠. 젖은 거름이 햇볕을 받자 냄새가 한 번 더 피어올랐다⁠.

담 밑의 장미 둘레에만은 거름을 뿌리지 않았다⁠. 어젯밤 기백이 시킨 대로 장미 뿌리에서 두 뼘을 비웠다⁠.

아홉 시 반⁠, 은색 중형차가 대문 앞에 멈췄다⁠. 영칠이 문을 열고 내리다가 그대로 굳었다⁠. 한 손으로 코를 막고 한 손으로 차 문을 붙들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거름이요⁠.⁠”

“⁠당신 지금 집을 똥으로 지키냐⁠?⁠”

“⁠거름이에요⁠. 상추한테는 밥이고요⁠. 4월에 웃거름 주는 거 몰랐어요⁠? 서른두 해 동안 상추를 먹기만 해서 모르는 거예요⁠.⁠”

“⁠오늘 손님 온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오늘 줬죠⁠. 상추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요⁠.⁠”

영칠은 코를 막은 채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디딤돌 옆 거름 더미를 밟을 뻔하고 깡충 뛰었다⁠. 등산화 앞코에 거름이 묻었다⁠. 영칠은 수돗가로 달려가 신발을 씻으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담 너머에서 8호 현관문이 열렸다⁠. 기백이 마스크 두 장을 들고 나왔다⁠. 기백은 한 장을 자기가 쓰고⁠, 다른 한 장을 담 너머로 내밀었다⁠. 영칠에게였다⁠.

“⁠형님⁠, 이거 쓰세요⁠. 계분은 해 들면 더 올라옵니다⁠.⁠”

“⁠필요 없소⁠.⁠”

“⁠한 시간 지나면 필요해집니다⁠.⁠”

영칠은 담 앞을 지나 현관 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와 마스크를 낚아챘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스크 끈을 귀에 거는 데 두 번 실패했다⁠. 기백은 아무 말 없이 현관으로 들어갔다⁠. 영란은 마스크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새어 나오면 지는 싸움이었다⁠.

열 시 정각⁠, 회장이 분당 부부를 데리고 대문을 열었다⁠. 예순 후반의 부부였다⁠. 남편은 골프 모자를 썼고 아내는 흰 바지를 입었다⁠. 아내가 대문을 넘자마자 손수건을 꺼냈다⁠.

“⁠어머⁠, 이 근처에 축사 있어요⁠?⁠”

“⁠아니어라⁠, 아니어라⁠. 오늘만 이래요⁠. 사모님이 거름을 좀⁠.⁠”

회장이 영란을 돌아보았다⁠. 영란은 마스크를 쓴 채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유기농이에요⁠. 해마다 봄가을로 두 번 이렇게 해요⁠.⁠”

흰 바지 아내가 남편 팔을 잡았다⁠. 부부는 거실 문턱까지 들어갔다가 신발도 벗지 않고 돌아 나왔다⁠. 회장이 대문 밖까지 쫓아가며 다른 매물 이야기를 꺼냈다⁠. 영칠은 마스크 위로 영란을 노려보았다⁠. 영란은 호스를 감았다⁠.

영칠은 오후 내내 마스크를 쓰고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벽돌 두 단째를 올렸다⁠. 냄새 때문에 허리를 펼 때마다 숨을 참았다⁠. 숨을 참으면 줄이 비뚤어졌다⁠. 두 단째는 첫 단보다 더 출렁거렸다⁠.

단지 단톡방은 점심 전에 들끓었다⁠. 「⁠7호 거름 냄새 회관까지 와요ㅠㅠ⁠」 「⁠빨래 다시 걷었어요⁠」 「⁠유기농은 좋은 거예요⁠~⁠」 마지막 글은 12호 아주머니였다⁠. 회장은 한참 뒤에 한 줄만 올렸다⁠. 「⁠거름은 이웃 배려하며 저녁에 뿌려 주세요♡⁠」 하트가 하나뿐이었다⁠. 영란은 화면을 내리며 마스크 속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거름 냄새 사이로 담 밑 장미의 새순 냄새가 가늘게 섞여 왔다⁠.

*

열두 시⁠, 대문 밖에서 딸 보담의 비명이 들렸다⁠.

“⁠엄마⁠! 이거 뭐야⁠! 동네에 닭 공장 생겼어⁠?⁠”

보담이 치킨 두 마리를 들고 코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서울에서 첫 차로 내려왔다고 했다⁠. 영란이 사정을 말하자 보담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웃다가 거름 냄새를 크게 들이마시고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면서도 웃었다⁠.

“⁠엄마⁠, 진짜 킹받는다⁠. 이거 동영상 채널 올리면 백만 조회 나와⁠.⁠”

“⁠올리지 마⁠.⁠”

“⁠제목은 ‘⁠졸혼 엄마의 거름 작전⁠’⁠. 아빠는 분홍 장갑 끼고 담 쌓고⁠.⁠”

보담은 휴대전화를 꺼내다가⁠, 화면을 보고 웃음을 거뒀다⁠. 부동산 앱이었다⁠. 오는 길에 아빠 집이 어떻게 올라왔는지 찾아봤다고 했다⁠. 보담이 화면을 영란 앞에 내밀었다⁠.

「⁠용인 처인구 전원주택 급매 5억 · 텃밭 완비 · 입주 협의⁠」

바로 밑에 같은 단지 실거래가가 떠 있었다⁠. 지난가을 4호가 팔린 값은 6억 5천이었다⁠. 7호는 4호보다 마당이 넓었다⁠.

“⁠엄마⁠, 아빠 왜 이렇게 싸게 내놨어⁠? 일억 오천이나 빼고⁠.⁠”

영란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영칠은 계산에 밝은 사람이었다⁠. 건재상에서 시멘트 한 포대 값을 깎으려고 삼십 분을 버티는 사람이 일억 오천을 그냥 뺄 리 없었다⁠.

보담이 치킨 상자를 수돗가 의자에 내려놓고 담 앞으로 갔다⁠. 영칠은 마스크를 턱에 걸고 벽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빠⁠, 급매 왜 해⁠?⁠”

“⁠빨리 팔려고⁠.⁠”

“⁠빨리 팔아서 뭐 하게⁠?⁠”

“⁠어른 일이야⁠.⁠”

“⁠나 서른하나야⁠. 어른이야⁠.⁠”

영칠은 흙손을 대야에 꽂았다⁠. 시멘트가 튀어 분홍 장갑에 회색 점이 박혔다⁠.

“⁠네 엄마 서울로 오면 다 끝나는 일이야⁠.⁠”

“⁠급매 이유 말 안 하면 나 엄마 편 확실히 할 거야⁠.⁠”

“⁠엄마 편 해라⁠. 집은 판다⁠.⁠”

보담은 아빠를 한참 보다가 몸을 돌렸다⁠. 치킨 상자를 다시 들고 현관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빠 몫 다리는 내가 먹을게⁠.⁠”

영칠은 대답하지 않았다⁠. 벽돌을 한 장 더 얹었다⁠. 담 너머에서 기백의 창이 조용히 닫혔다⁠.

*

저녁 일곱 시⁠, 거름 냄새가 이슬에 눌려 낮게 깔렸다⁠. 보담은 거실 소파에서 아빠 몫까지 치킨을 먹고 잠들어 있었다⁠. 영칠은 손님방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회장과 통화했다⁠. 스피커로 해 둔 통화가 부엌까지 다 들렸다⁠.

“⁠회장님⁠, 오늘 분당 양반들은 안 되겠지요⁠?⁠”

“⁠분당은 틀렸어라⁠. 근디 좋은 소식이 있당께⁠. 지난주 젊은 부부 있잖소⁠, 애기 딸린⁠. 그 집 애 아빠가 시골 출신이라 거름 냄새가 오히려 좋대요⁠. 마당 보고 마음 굳혔다고 계약하자고 허네⁠.⁠”

“⁠날짜는요⁠?⁠”

“⁠처음 말한 대로 오월 십오일 토요일⁠. 계약금은 오천⁠.⁠”

부엌에서 영란은 설거지하던 손을 멈췄다⁠. 고무장갑 끝에서 물이 똑똑 떨어졌다⁠. 통화가 끝나고 손님방 문이 닫혔다⁠. 영란은 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쳐 놓고⁠, 소파에서 자는 딸의 어깨를 흔들었다⁠.

“⁠보담아⁠.⁠”

“⁠으음⁠, 왜⁠.⁠”

“⁠다음 주에 상계동 아빠 집 좀 가 봐라⁠.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우편함에 뭐가 쌓였는지⁠.⁠”

보담이 눈을 떴다⁠. 엄마 얼굴을 보고⁠, 손님방 문을 보고⁠, 다시 엄마 얼굴을 보았다⁠.

“⁠엄마⁠, 첩보 영화 찍어⁠?⁠”

“⁠거름은 내가 뿌렸으니까⁠, 이번엔 네가 냄새 맡아 와⁠.⁠”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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