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25자)

느티울 잔치

졸혼 선언 아내 옆집에 이사 온 첫사랑 · 석담율

멸치 대가리를 떼어 낸 손끝에서 비린내가 났다⁠. 봉옥단은 큰 들통에 멸치와 다시마를 털어 넣고 불을 올렸다⁠. 9월 11일 토요일 새벽 다섯 시⁠, 느티울 마을회관 부엌이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고 창밖은 아직 검었다⁠. 추석을 나흘 앞둔 단지 잔치 날이었다⁠. 잔치 국수 육수는 해마다 옥단이 끓였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멸치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옥단은 국자로 거품을 걷어 냈다⁠. 거품을 걷는 사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화면에 「⁠바깥양반⁠」이 떠 있었다⁠.

“⁠여보시오⁠.⁠”

“⁠나여⁠. 추석에 못 가것네⁠. 배가 들어와야 허는디 날이 궂어서⁠.⁠”

“⁠알았소⁠.⁠”

“⁠오징어 한 축 보냈응께 받으시오⁠. 말린 거⁠.⁠”

“⁠알았소⁠.⁠”

통화는 일 분이 안 됐다⁠. 옥단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거품을 걷었다⁠. 바깥양반이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방을 얻어 나간 지 십 년이었다⁠. 처음 세 해는 명절마다 왔고⁠, 다음 세 해는 설에만 왔고⁠, 요즘은 오징어가 대신 왔다⁠. 단지 사람들에게는 낚시를 좋아해서 바닷가에 가 있다고 했다⁠. 십 년 동안 낚시 이야기만 했다⁠.

부엌 문이 열리고 6호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잔치 때마다 옥단 다음으로 일찍 왔다⁠. 소매를 걷으며 들통을 들여다보았다⁠.

“⁠회장⁠, 국물 좋네⁠. 영감님은 이번 추석에 오셔⁠?⁠”

“⁠아따⁠, 우리 영감은 이번에도 고기가 잘 잡힌다네⁠. 바다가 놔주들 않는갑소⁠.⁠”

“⁠그려⁠. 고성 바다가 고기가 많지⁠.⁠”

할머니는 더 묻지 않고 파를 다듬었다⁠. 옥단은 할머니의 등을 잠깐 보았다⁠. 할머니의 손이 파 뿌리를 똑똑 끊었다⁠.

*

아홉 시⁠, 옥단은 회관 창고에서 천막 기둥을 꺼내다가 전화를 받았다⁠. 우영칠의 변호사였다⁠. 헤어젤 바른 머리가 목소리에서도 번들거렸다⁠.

“⁠회장님⁠, 10월 증언 날짜 잡혔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알지라⁠. 연습도 했소⁠.⁠”

옥단은 천막 기둥을 벽에 기대 놓고 목을 가다듬었다⁠. 창고 안의 묵은 천막 냄새가 코를 찔렀다⁠.

“⁠7호 사모님이 옆집 남자 이사 온 날부터 담 너머로 매일 뭘 주고받았어라⁠. 노래 교실에서는 둘이 눈을 못 떼고⁠, 텃밭에서는 손을 잡고⁠. 단지 사람들이 다 봤당께요⁠.⁠”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매일이라는 말⁠, 꼭 넣어 주세요⁠.⁠”

변호사가 전화를 끊었다⁠. 옥단은 매일이라는 말을 입속으로 한 번 더 굴렸다⁠. 옥단이 실제로 본 것은 화분 하나와 노래 교실 사진과 고추 고랑이었다⁠. 매일은 본 적이 없었다⁠. 단지를 생각하면 매일이라고 해야 했다⁠. 졸혼집이 이혼집이 되고⁠, 이혼집에 첫사랑이 드나들면 젊은 사람들이 이 단지를 고르지 않았다⁠. 옥단은 천막 기둥을 다시 들었다⁠.

*

열한 시⁠, 느티나무 아래에 흰 천막 세 동이 올라갔다⁠. 트로트가 스피커에서 쿵짝거렸다⁠. 노래 강사가 반짝이 조끼를 입고 탬버린으로 박자를 쳤다⁠. 잔치 국수 줄이 회관 문 앞까지 늘어졌고⁠,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천막 사이를 뛰어다녔다⁠. 회관 벽에 옥단이 손으로 쓴 순서표가 붙어 있었다⁠.

「⁠1⁠. 회장 인사 2⁠. 노래 교실 합창 3⁠. 윷놀이 4⁠. 듀엣 — 7호·8호 5⁠. 경품 추첨⁠」

1번 순서에 옥단이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가 삐익 울었다⁠. 옥단은 마이크를 입에서 한 뼘 떼었다⁠.

“⁠아따⁠, 올해도 우리 느티울은 화목허고⁠, 텃밭은 풍년이고⁠, 고라니는 여전허요⁠.⁠”

천막 아래에서 웃음이 났다⁠. 옥단은 해마다 하던 인사를 이어 갔다⁠. 집값 이야기가 나올 차례에서 옥단의 눈이 천막 맨 앞줄에 닿았다⁠. 7호 영란과 8호 기백이 한 줄 건너 따로 앉아 있었다⁠. 둘 다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옥단은 집값 이야기를 건너뛰고 국수 많이 드시라는 말로 인사를 끝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나서야 건너뛴 것을 알았다⁠.

인사를 마치고 옥단은 매직을 꺼내 4번에 두 줄을 그었다⁠. 강사가 탬버린을 멈추고 달려왔다⁠.

“⁠회장님⁠, 듀엣을 왜 빼세요⁠? 석 달을 연습했는데⁠.⁠”

“⁠시간이 없어라⁠. 경품 추첨이 길어져서⁠.⁠”

“⁠경품이 휴지 열두 롤이잖아요⁠.⁠”

“⁠휴지도 정성이여⁠.⁠”

강사는 입을 삐죽거리며 천막으로 돌아갔다⁠. 옥단은 매직 뚜껑을 닫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

열두 시⁠, 부엌으로 손영란이 들어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하늘색 리넨 셔츠에 흙 묻은 앞치마를 둘렀다⁠. 손에 든 소쿠리에 상추와 풋고추가 수북했다⁠. 영란은 소쿠리를 싱크대 옆에 내려놓았다⁠.

“⁠국수 고명에 쓰세요⁠. 고추는 안 매워요⁠.⁠”

“⁠아따⁠, 고맙소⁠.⁠”

영란은 나가지 않았다⁠. 싱크대 앞에 서서 옥단을 보았다⁠. 국수 삶는 물이 들통에서 펄펄 끓었다⁠.

“⁠순서표 봤어요⁠. 듀엣 빼셨더라고요⁠.⁠”

“⁠시간이 없어서⁠.⁠”

“⁠휴지 열두 롤 때문에요⁠?⁠”

옥단은 국수 다발을 끓는 물에 풀었다⁠. 김이 확 올라와 얼굴을 덮었다⁠. 옥단은 김 속에서 말했다⁠.

“⁠사모님⁠, 소송까지 걸어 놓고 무대에서 첫사랑이랑 노래허믄 단지 꼴이 뭐가 되것소⁠. 내가 사십 년을 참고 살았어라⁠. 참는 것이 사랑이여⁠. 참는 사람이 있어야 집이 서고 동네가 서는 것이여⁠.⁠”

“⁠언니⁠.⁠”

영란이 처음으로 옥단을 언니라고 불렀다⁠. 옥단의 젓가락이 국수 속에서 멈췄다⁠.

“⁠언니 바깥양반 십 년째 고성에 계신 거⁠, 단지 사람들 다 알아요⁠.⁠”

부엌이 조용해졌다⁠. 들통의 물만 끓었다⁠. 창밖의 트로트가 멀게 들렸다⁠.

“⁠낚시 가셨다는 거⁠, 아무도 안 믿어요⁠. 근데 아무도 말 안 해요⁠. 단톡방에도 안 올리고⁠, 텃밭에서도 안 물어요⁠. 6호 할머니도⁠, 12호 아주머니도⁠. 언니가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니까 다들 그렇게 들어 준 거예요⁠.⁠”

옥단은 젓가락을 들통 가장자리에 걸쳤다⁠. 국수 가닥이 물속에서 풀어졌다⁠. 손등에 김이 서려 축축했다⁠.

“⁠…다 알았다고⁠?⁠”

“⁠다 알아요⁠.⁠”

“⁠그라믄 내가 참은 건 뭣이여⁠. 십 년을⁠.⁠”

“⁠언니는 참은 게 아니라 혼자 잘 산 거예요⁠.⁠”

영란은 소쿠리에서 풋고추 하나를 집어 꼭지를 땄다⁠.

“⁠노래 교실 하고⁠, 부동산 하고⁠, 단톡방 하고⁠, 첫 번째 고랑에 물 주고⁠. 혼자서 이 단지를 다 돌렸잖아요⁠. 나도 그거 하려는 거예요⁠. 언니처럼 혼자 잘 살아 보려고요⁠. 다른 거 하나만 빼고요⁠.⁠”

“⁠뭘 빼⁠?⁠”

“⁠거짓말이요⁠.⁠”

옥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국수가 다 익어 물이 넘치려 했다⁠. 영란이 다가와 찬물 한 바가지를 들통에 부었다⁠. 끓던 물이 가라앉았다⁠. 영란은 바가지를 내려놓고 부엌을 나갔다⁠. 소쿠리는 두고 갔다⁠.

옥단은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궜다⁠. 헹구는 손이 오래 물속에 있었다⁠. 이윽고 손을 털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매직을 꺼냈다⁠. 부엌을 나와 회관 벽의 순서표 앞으로 갔다⁠. 4번에 그은 두 줄 옆에 큼직하게 적었다⁠. 「⁠다시 함⁠」

*

두 시⁠, 듀엣 순서가 되자 천막 아래가 술렁였다⁠. 도기백이 기타를 메고 나왔다⁠. 새 줄을 맨 기타였다⁠. 은발을 빗어 넘기고 베이지 카디건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영란이 밀짚모자를 벗어 의자에 내려놓고 마이크 앞으로 나갔다⁠. 강사가 탬버린을 내려놓고 박수를 쳤다⁠.

기백이 전주를 쳤다⁠. 노트북 반주가 아니라 기타였다⁠. 담장 밑에 앉은 봄을⁠, 나는 모른 척 지나왔네⁠. 이번에는 영란도 기백도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둘째 소절에서 기백이 위로 화음을 얹었다⁠. 국수를 먹던 사람들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풍선을 든 아이들이 천막 기둥 옆에 멈췄다⁠.

노래가 후렴에 이르렀을 때 단지 입구로 연두색 경차 한 대가 들어왔다⁠. 운전석에서 보담이 내렸고⁠, 조수석에서 우영칠이 내렸다⁠. 영칠은 두 손으로 커다란 수박을 안고 있었다⁠. 목에 걸린 안경 줄 끝에서 돋보기가 흔들렸다⁠. 여름 동안 살이 빠져 등산 조끼가 헐렁했다⁠.

단지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영칠은 천막 맨 뒤에 수박을 안고 멈췄다⁠. 보담은 경차 옆에서 더 다가오지 않았다⁠. 무대의 영란은 영칠을 보았지만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기백의 기타도 멈추지 않았다⁠.

노래가 끝났다⁠. 천막 아래가 조용했다⁠. 맨 뒤에서 수박을 안은 영칠이 수박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크고 느린 박수였다⁠. 6호 할머니가 따라 쳤고⁠, 12호 아주머니가 따라 쳤고⁠, 강사가 탬버린을 흔들었다⁠. 옥단은 국수 솥 옆에서 박수를 치지 않고 영칠을 보았다⁠.

영칠은 수박을 다시 안고 천막 사이를 걸어 무대 앞까지 갔다⁠. 무대 끝에 수박을 올려놓았다⁠.

“⁠잔치에 빈손으로 올 수 있나⁠.⁠”

영칠은 무대 위의 두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국수 솥 옆의 옥단에게로 왔다⁠. 목소리를 낮췄다⁠.

“⁠회장님⁠, 10월에 증언 잘 부탁하오⁠.⁠”

“⁠…부장님⁠.⁠”

“⁠사실대로만 해 주시오⁠. 나도 그걸 들어야 정하겠소⁠.⁠”

영칠은 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고 천막 구석 자리에 앉았다⁠. 고명으로 얹은 풋고추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오래 보다가 먹었다⁠. 보담은 경차에 기대 서서 끝까지 다가오지 않았다⁠.

옥단은 국수 한 그릇에 고명을 넉넉히 얹어 들고 경차 앞으로 갔다⁠. 보담이 기대 있던 몸을 세웠다⁠.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단톡방 사진 밑에 「⁠커플⁠」이라고 적은 사람을 딸은 알고 있었다⁠.

“⁠아가씨⁠, 국수 한 그릇 허시오⁠. 서울서 오느라 배고프것소⁠.⁠”

“⁠괜찮아요⁠.⁠”

“⁠우리 육수는 멸치를 대가리 떼고 우려서 안 써요⁠.⁠”

보담은 그릇을 받았다⁠. 받고 나서 옥단을 똑바로 보았다⁠.

“⁠회장님이 우리 엄마 사진 올리셨죠⁠. 커플이라고⁠.⁠”

옥단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닦은 손을 또 닦았다⁠.

“⁠…올렸지라⁠. 미안허요⁠.⁠”

옥단이 단지에 이사 온 뒤로 미안하다는 말을 누구에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담은 대답하지 않고 국수를 한 젓가락 먹었다⁠. 두 젓가락 먹었다⁠. 그릇을 비울 때까지 경차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

밤 아홉 시⁠, 옥단의 집 거실 탁자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열자 마른 오징어 스무 마리가 한 축으로 묶여 있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옥단은 오징어 한 마리를 떼어 가스 불에 구웠다⁠. 오징어 다리가 불 위에서 오그라들었다⁠.

옥단은 구운 오징어를 손으로 찢어 한 가닥 씹으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변호사의 번호를 눌렀다⁠.

“⁠변호사님⁠, 봉옥단이요⁠. 10월 증언 말이요⁠.⁠”

“⁠네⁠, 회장님⁠. 매일⁠, 그 말씀 꼭⁠.⁠”

“⁠나는 본 대로만 말할라요⁠.⁠”

변호사가 말이 없었다⁠. 옥단은 오징어를 꿀꺽 삼켰다⁠.

“⁠이사 온 날 담 너머로 장미 화분 하나 넘긴 거⁠, 노래 교실에서 노래한 거⁠, 텃밭에서 고추 심은 거⁠. 그것밖에 못 봤소⁠. 매일은 못 봤어라⁠. 매일이라고 허믄 내가 거짓말허는 것이여⁠.⁠”

“⁠회장님⁠, 단지를 생각하셔야죠⁠.⁠”

“⁠단지가 다 알고 있었당께요⁠. 나만 몰랐어⁠.⁠”

옥단은 전화를 끊었다⁠. 손끝에서 오징어 냄새와 멸치 냄새가 한꺼번에 났다⁠. 새벽부터 맡은 냄새가 다 바다 냄새였다⁠. 옥단은 고성 바닷가의 바깥양반이 지금쯤 무슨 냄새를 맡고 있을지 처음으로 궁금했다⁠. 탁자 위에 오징어 열아홉 마리가 남아 있었다⁠. 옥단은 휴대전화로 단지 단톡방을 열었다⁠. 한참 화면을 보다가 「⁠고성 오징어 한 축 왔어요⁠. 내일 회관에서 나눠 먹읍시다♡⁠」라고 적었다⁠. 하트를 지우지 않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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