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8자)

심장내과 칠 층

졸혼 선언 아내 옆집에 이사 온 첫사랑 · 석담율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소독약 냄새가 얼굴을 덮쳤다⁠. 우보담은 잠옷 위에 바람막이 하나만 걸치고 뛰어 들어왔다⁠. 6월 20일 일요일 새벽 세 시 사십 분이었다⁠. 한 걸음 뒤에서 남편이 슬리퍼 한 짝을 손에 든 채 따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벗겨진 슬리퍼였다⁠.

“⁠우영칠 씨 보호자요⁠. 딸이에요⁠.⁠”

접수대 간호사가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내과 시술실로 올라가셨어요⁠. 칠 층이요⁠. 아버님이 직접 119 부르셨대요⁠. 구급대원분들이 관리사무소랑 같이 문 열고 들어갔더니 부엌 바닥에 계셨대요⁠. 가스 불은 대원분들이 끄셨고요⁠.⁠”

보담은 칠 층 버튼을 세 번 눌렀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잠옷 바지의 곰돌이 무늬가 비쳤다⁠. 남편이 슬리퍼를 신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혼자 전화하셨대⁠. 대단하시다⁠.⁠”

“⁠대단한 게 아니라 혼자였다는 거야⁠.⁠”

시술실 앞 대기 의자는 차가웠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보담은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 단톡방 「⁠우리 셋⁠」을 열었다⁠. 마지막 대화는 지난주 아빠가 보낸 엄지 이모티콘 사십 개였다⁠. 보담은 입력 칸에 「⁠아빠 쓰러졌어⁠」라고 썼다⁠. 엄마도 읽는 방이었다⁠. 보담은 글자를 지우고 엄마에게 따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잠긴 목소리가 받았다⁠.

“⁠엄마⁠, 아빠 병원이야⁠.⁠”

전화기 너머에서 이불 걷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어디냐고 한 번만 물었다⁠.

여섯 시가 넘도록 시술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남편이 자판기에서 바나나 우유 두 개를 뽑아 왔다⁠. 하나는 보담에게⁠, 하나는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왜 두 개야⁠?⁠”

“⁠장인어른 거⁠. 깨시면 드리려고⁠. 바나나 우유 좋아하시잖아⁠.⁠”

“⁠아빠가⁠?⁠”

“⁠우리 결혼 전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장인어른이 냉장고에서 꺼내 주셨잖아⁠. 바나나 우유⁠. 남자는 이거 먹고 크는 거라고⁠.⁠”

보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편은 기억하고 있었다⁠. 보담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지 않고 손에 쥐었다⁠. 차가운 종이 팩에 물방울이 맺혀 손바닥이 젖었다⁠.

*

아침 일곱 시⁠, 심장내과 교수가 대기실로 나왔다⁠. 머리가 희끗한 여자 교수였다⁠. 교수는 보담에게 화면 속 혈관 사진을 보여 주며 볼펜으로 한 자리를 짚었다⁠.

“⁠여기가 거의 막혀 있었어요⁠. 스텐트를 넣어서 넓혔습니다⁠. 혈관 안에 작은 철망 기둥을 세운 거예요⁠. 이제 피는 잘 돌아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따님⁠.⁠”

교수가 볼펜 끝으로 화면 위쪽의 날짜를 가리켰다⁠.

“⁠아버님⁠, 지난겨울에 저희 외래에 오셨었어요⁠. 협심증 진단받으시고 그때 시술 권해 드렸는데⁠, 집안일 정리하고 오겠다고 하셨어요⁠. 약만 받아 가셨고요⁠.⁠”

보담은 아빠 차 조수석 서랍의 갈색 약병을 떠올렸다⁠. 「⁠가슴 통증이 있을 때 혀 밑에 한 알⁠」 체해서 받은 약이라던 갈색 병이었다⁠. 아빠가 정리하겠다던 집안일이 무엇이었는지 보담은 이제 알았다⁠.

*

칠 층 병실 창가 침대에서 아빠가 눈을 떴다⁠.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코에 산소 줄이 꽂혀 있었다⁠. 아빠는 보담을 보자마자 이마를 더듬었다⁠. 돋보기를 찾는 손이었다⁠.

“⁠아빠⁠, 돋보기 없어⁠. 집에도 없고 버스에서 잃어버렸대⁠. 구급대원 아저씨가 그랬어⁠.⁠”

“⁠…심장에 철사 넣었다더라⁠.⁠”

“⁠철망이야⁠.⁠”

“⁠철망이나 철사나⁠. 이제 아빠가 철인이다⁠.⁠”

보담은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눈물이 같이 터졌다⁠. 보담은 아빠 손등을 찰싹 때렸다⁠. 손등이 거칠었다⁠. 시멘트 독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빠⁠, 이제 다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안 하면 산소 줄 뺀다⁠.⁠”

영칠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숨이 차서 한 번에 세 마디 이상을 잇지 못했다⁠. 총무의 오리고기 식당⁠, 일억 오천⁠, 석 달 만에 닫은 가게⁠, 서울 집 담보 대출⁠, 밀린 이자⁠, 엄마가 건 가처분⁠, 젊은 부부에게 돌려준 일억⁠, 팔아 버린 은색 차⁠, 무릎이 끼는 연두색 경차⁠. 말이 끝날 때마다 아빠는 산소 줄 너머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보담은 침대 난간을 쥐고 끝까지 들었다⁠.

“⁠차까지 팔았어⁠?⁠”

“⁠경차가 연비는 좋아⁠.⁠”

“⁠아빠⁠.⁠”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벌써 했어⁠. 새벽에⁠.⁠”

영칠이 고개를 돌려 보담을 보았다⁠. 산소 줄이 코에서 비뚤어졌다⁠. 보담은 줄을 바로 꽂아 주었다⁠.

*

열 시⁠, 병실 문이 열리자 된장 냄새가 소독약 냄새를 밀어냈다⁠. 손영란이 보온병과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밀짚모자는 없었고⁠, 흰머리 섞인 단발이 새벽 첫 버스 바람에 헝클어져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상추가 바스락거렸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코를 킁킁거렸다⁠.

영칠이 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아빠를 보았다⁠. 보담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의자를 뒤로 뺐다⁠.

“⁠왜 왔어⁠. 졸혼한 사람이⁠.⁠”

“⁠보호자 서명하러요⁠. 법으로는 아직 부부라면서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엄마는 침대 옆 탁자에 보온병을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김이 올라왔다⁠. 냉이는 철이 지나 애호박이 들어 있었다⁠. 간호사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보호자분 성함 여기 적어 주세요⁠. 관계는 배우자로요⁠.⁠”

“⁠손영란이요⁠.⁠”

엄마가 볼펜을 받아 쥐었다⁠. 아빠가 엄마 이름을 귀로 듣는 모습을 보담은 보았다⁠. 서른두 해 동안 아빠는 엄마를 「⁠어이⁠」나 「⁠보담 엄마⁠」나 「⁠집사람⁠」으로 불렀다⁠. 간호사 앞에서 엄마 입으로 나온 이름 석 자에 아빠의 눈꺼풀이 한 번 떨렸다⁠.

“⁠국은 식기 전에 드세요⁠. 상추는 간호사님이 드셔도 된대요⁠.⁠”

“⁠병원 밥 나와⁠.⁠”

“⁠병원 밥 냄새 맡아 보고 하는 소리예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숟가락을 보온병 뚜껑에 걸쳐 두고 병실을 나갔다⁠. 보담은 엄마를 따라 나갔다⁠.

문을 나서기 전에 보담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가 산소 줄을 귀 뒤로 넘기고 보온병 뚜껑을 열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떠서 입에 넣었다⁠. 두 번 떠서 넣었다⁠. 애호박을 건져 씹었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아빠의 숟가락을 보고 침을 삼켰다⁠.

“⁠영감님⁠, 국 냄새 좋네⁠.⁠”

“⁠애호박이 들어가면 국이 달아요⁠.⁠”

아빠는 남의 집 국 설명하듯 말했다⁠. 보담은 아빠가 애호박 된장국이 달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는지 궁금했다⁠. 서른한 해 동안 아빠가 국 맛을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복도 끝 창가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 쓰러져도 연락할 사람이 없다⁠」 화면에 낯선 남자의 텅 빈 부엌이 비쳤다⁠. 엄마는 텔레비전 앞을 지나 창가에 멈췄다⁠. 보담은 엄마 앞으로 가서 길을 막았다⁠.

“⁠엄마⁠, 엄마가 집 묶어서 아빠가 일억 물었어⁠. 차도 팔았어⁠. 그러고 쓰러졌어⁠.⁠”

“⁠아빠 심장은 지난겨울부터라며⁠. 교수님이 그러시더라⁠.⁠”

“⁠엄마는 지난겨울에 뭐 했는데⁠? 졸혼 준비했잖아⁠. 용인 집 커튼 고르고⁠.⁠”

엄마의 눈이 커졌다가 가라앉았다⁠. 엄마는 창틀을 한 손으로 짚었다⁠.

“⁠그래⁠, 커튼 골랐어⁠. 서른두 해 만에 처음으로 내 방 커튼⁠. 연두색으로⁠.⁠”

“⁠그동안 아빠는 혼자 약 먹고 있었어⁠.⁠”

“⁠그 약 먹는 거 나한테 말 안 한 사람도 아빠야⁠. 너도 안 했고⁠.⁠”

보담의 입이 다물렸다⁠. 엄마 말이 맞았다⁠. 우편함 앞에서 사진만 찍고 봉투를 도로 꽂은 사람이 보담이었다⁠. 맞는 말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엄마는 맨날 맞는 말만 해⁠.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아무 말도 못 한 거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속 남자의 부엌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날씨 예보가 나왔다⁠. 다음 주부터 장마였다⁠. 엄마는 창틀에서 손을 떼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상추 비닐봉지는 병실에 두고 갔다⁠.

*

오후 두 시⁠, 병원 일 층 카페에서 아빠의 변호사가 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십 대 후반의 남자로⁠, 머리에 바른 헤어젤 냄새가 커피 냄새보다 셌다⁠. 손목의 금시계가 탁자 모서리에 탁탁 부딪혔다⁠. 아빠가 동창 반장에게 소개받았다는 사람이었다⁠.

“⁠따님⁠, 아버님 일은 정말 안됐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소송에는 유리하게 갑니다⁠.⁠”

“⁠아빠가 쓰러진 게 유리해요⁠?⁠”

“⁠말이 좀 그렇습니다만⁠.⁠”

변호사는 서류철을 열어 사진을 한 장씩 탁자에 펼쳤다⁠. 노래 교실 사진⁠, 담 너머로 장미를 묶는 엄마 사진⁠, 공동 텃밭의 엄마와 옆집 아저씨⁠. 단지 단톡방에서 회장이 모은 사진들이었다⁠.

“⁠어머님이 옆집 남자와 가까워지신 정황이 여럿 있습니다⁠. 여기에 따님 증언 하나만 보태 주시면 됩니다⁠. 어머님이 집을 지키겠다고 가처분을 거는 동안 아버님은 혼자 쓰러지셨다⁠. 따님 말씀이 제일 무겁습니다⁠. 가족이니까요⁠.⁠”

보담은 사진들을 내려다보았다⁠. 맨 끝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 8호 현관 계단에 남자 둘이 막걸리 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아래 칸에 아빠⁠, 위 칸에 옆집 아저씨⁠. 두 사람 다 웃고 있었다⁠.

“⁠이 사진은요⁠?⁠”

변호사가 사진을 집어 들고 안경을 올렸다⁠. 금시계가 덜컥 소리를 냈다⁠.

“⁠아⁠, 이건 회장님이 같이 보내 주신 건데⁠. 섞였네요⁠.⁠”

변호사는 막걸리 사진을 서류철 맨 뒤로 넣었다⁠. 보담은 사진이 들어간 자리를 오래 보았다⁠.

“⁠생각해 볼게요⁠.⁠”

*

오후 다섯 시⁠, 보담은 아빠 속옷과 칫솔을 챙기러 상계동 702호에 들렀다⁠. 현관문을 열자 탄내가 아직 남아 있었다⁠. 라면 스프가 눌어붙어 까맣게 탄 냄새였다⁠. 구급대원들이 가스 불을 끄고 냄비를 싱크대에 옮겨 두었는데⁠, 냄비 바닥이 숯처럼 까맸다⁠.

부엌 바닥 타일에 감자 다섯 알이 흩어져 있었다⁠. 비닐봉지는 찢어져 냉장고 밑에 끼어 있었다⁠. 감자마다 용인 흙이 묻어 있었다⁠. 엄마가 캔 감자였다⁠. 보담은 무릎을 꿇고 감자를 하나씩 주웠다⁠. 다섯 번째 감자는 냉장고 밑으로 굴러 들어가 있었다⁠. 바닥에 뺨을 대고 팔을 뻗어서야 손끝에 닿았다⁠.

바닥에 뺨을 댄 채로 보담은 냉장고 문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메모지가 눈높이에 있었다⁠. 「⁠물 조금씩⁠」 지난밤 아빠도 이 자리에서 이 메모지를 보았을 것이었다⁠. 보담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타일이 차가웠다⁠. 엄마는 이 집에서 서른두 해 동안 매일 아침 이 바닥을 닦았다⁠.

보담은 감자 다섯 알을 새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 채소 칸에 넣었다⁠. 탄 냄비는 버리지 않고 물을 받아 불려 두었다⁠. 메모지는 떼지 않았다⁠.

*

저녁 일곱 시⁠, 보담은 병원 옥상 정원 벤치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옥상 화단의 페튜니아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아래로 상계동 아파트 단지들의 불이 하나씩 켜졌다⁠. 아빠 집도 저 어딘가에 있었다⁠. 불이 꺼진 채로⁠.

“⁠엄마⁠.⁠”

“⁠응⁠.⁠”

“⁠소송 취하해⁠.⁠”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흙 파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저녁에도 마당에 있었다⁠.

“⁠엄마가 안 하면⁠, 나 아빠 편 증인으로 설 거야⁠. 변호사가 오늘 그러래⁠. 엄마는 집 지키고 아빠는 혼자 쓰러졌다고⁠. 그 말 내가 할 거야⁠.⁠”

흙 파는 소리가 멈췄다⁠. 보담은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댔다⁠.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다⁠. 짧고 고른 숨이었다⁠.

“⁠엄마⁠, 대답해⁠.⁠”

“⁠토요일에 내려와⁠. 아빠 짐 챙기러⁠.⁠”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보담은 꺼진 화면을 보았다⁠. 옥상 정원의 스프링클러가 돌기 시작해 벤치 끝을 적셨다⁠. 보담은 일어나지 않았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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