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4자) · 유압 호스
하강
시간을 빌린 사람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기지 시각 03:10 · 지상 2175년 1월 · 수심 6,000m · 1 : 80
산소 설비실은 요양동 맨 끝, 격리실 두 칸 옆에 있다. 요양동 출입 금지는 복도까지다. 설비실은 복도가 아니라 배관 통로로도 갈 수 있다. 정비사는 그 통로를 안다. 청소부도.
나는 배관 통로를 무릎으로 기었다. 무게가 등을 눌렀다. 요양동 층은 기지에서 제일 무거운 층이다. 중력정에 제일 가까우니까. 통로 바닥 이음매마다 무릎이 걸렸다. 예비 산소 전지는 선반 셋째 칸에 있었다. 벽돌 두 장만 한 무게. 등에 메고 돌아 나오다가 격리실 1호 환기구 앞에서 멈췄다.
환기구 창살 너머로 은채가 보였다.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잠을 안 잔다고 한지오가 말했다. 은채가 고개를 들었다. 환기구 쪽을.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은채가 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리고 하나를 접었다. 셋 중 둘. 아니면 두 시계. 나는 창살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은채가 침대에서 내려와 까치발을 들고 그 손가락을 잡았다. 차가웠다. 손톱이 푸르렀다.
“아저씨, 기어 다니는 거 웃겨.”
“쉿.”
“기지 내려간대. 방송 나왔어. 새벽 다섯 시.”
“알아.”
“내려가면 은서 언니 더 빨리 늙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은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럼 나 빨리 올라가야 되겠네.”
은채가 손가락을 놓았다. 나는 전지를 메고 다시 기었다.
기지 시각 04:55 · 지상 2175년 1월 · 수심 6,000m · 1 : 80
윈치실 문 앞에 곽 반장이 서 있었다. 청소부의 출근을 기다리는 얼굴로.
“하란 씨는 오늘 윈치실 청소 없습니다. 기지장님 지시.”
“하강 중에 드럼 윤활은 누가 봅니까?”
“자동입니다.”
“자동 윤활 펌프 이 번은 지난주에 고장 났습니다. 제가 보고서 올렸습니다. 청소부 명의로.”
곽 반장의 눈이 흔들렸다. 그 틈에 기지 전체 방송이 울렸다.
“벽해 기지, 하강 시작. 목표 수심 육천팔백. 전원 고정 위치로.”
바닥이 기울었다. 아주 조금. 몸이 먼저 알았다. 발바닥이 무거워지고, 귀가 먹먹해지고, 식당 쪽에서 식판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윈치 드럼이 풀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왔다. 낮고 긴 소리. 줄 네 가닥이 한꺼번에 풀리며 기지를 아래로 내려보내는 소리.
곽 반장이 방송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윈치실 안에서는 드럼 넷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줄이 풀리는 방향으로. 제어판에 기지장 권한 표시가 떠 있었다. 하강 속도, 분당 오 미터. 육천팔백까지 백육십 분. 두 시간 사십 분 뒤면 이 기지는 수송정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다.
제어판은 기지장 권한이었다. 비상 정지는 열쇠 두 개가 필요하다. 기지장과 부기지장. 부기지장 자리는 이 년 전부터 비어 있다. 기지장이 채우지 않았다.
드럼 옆 유압 제동 장치. 브레이크 패드를 누르는 유압 호스가 드럼마다 하나씩. 호스를 끊으면 제동이 풀리는 게 아니라 잠긴다. 안전 설계다. 유압이 빠지면 스프링이 패드를 눌러 드럼을 멈춘다. 멈추면 풀리지도 감기지도 않는다. 기지가 그 자리에 매달린다.
나는 공구 벨트에서 절단기를 꺼냈다.
“하란 씨!”
곽 반장이 들어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몸을 틀었다. 절단기가 첫 번째 호스를 물었다. 곽 반장이 내 손목을 비틀었다. 절단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곽 반장의 팔이 내 목을 감았다. 숨이 막혔다. 무게가 목에 얹혔다. 하강하는 기지 안에서 무게는 조금씩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제어판 창에 수심이 떠 있었다. 6,040. 6,050.
나는 곽 반장의 팔에 매달린 채로 발을 뻗었다. 발끝에 절단기가 닿았다. 끌어당겼다. 곽 반장이 무릎으로 내 옆구리를 찼다. 갈비뼈 쪽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절단기를 쥐었다.
기지 시각 05:40 · 지상 2175년 1월 · 수심 6,180m · 1 : 88
오른쪽 시계가 빨라졌다. 식당 벽에서 그걸 본 사람은 소 영감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분침이 한 바퀴 도는 속도가 눈에 보이게 달라졌다고. 영감은 바둑판을 밀어 두고 시계 앞에 서서 말했다고 한다. 「저놈이 우리 손주들을 빨리 늙게 한다.」
윈치실 바닥에 유압유가 번졌다. 두 번째 호스였다. 첫 번째 드럼이 비명을 지르며 멈췄다. 나머지 셋은 계속 돌았다. 기지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기울어진 채로 내려갔다. 곽 반장이 유압유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의 머리가 드럼 받침에 부딪혔다.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세 번째 호스로 기었다. 갈비뼈가 숨 쉴 때마다 찔렀다. 무게가 등을 눌렀다. 수심 6,200. 절단기가 호스를 물었다. 끊었다. 두 번째 드럼이 멈췄다.
윈치실 문이 열렸다. 기지장이었다.
그는 뛰어오지 않았다. 문턱에 서서 유압유와 곽 반장과 나와 멈춘 드럼 둘을 봤다. 그리고 제어판 앞으로 걸어갔다. 구두가 유압유를 밟았다. 미끄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 방 바닥이 어떤지 아는 사람처럼 걸었다.
“하란 씨. 드럼 두 개로도 내려가.”
그는 제어판을 두드렸다. 남은 두 드럼의 속도가 올라갔다. 기지가 더 기울었다. 식당 쪽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요양동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기울어지면 요양동 배관이 먼저 터집니다. 환자들이…”
“그러니까 네 번째 호스는 자르지 마. 하나 남은 드럼까지 멈추면 기지가 반쯤 뒤집혀. 그 상태로 매달리면 요양동 산소 배관이 꺾이지. 서른여덟 명. 자네가 한 일이 되겠지.”
나는 세 번째 드럼 옆에 주저앉았다. 절단기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기지장이 제어판에서 손을 뗐다. 남은 두 드럼이 돌았다. 기울어진 기지가 천천히, 확실하게 내려갔다. 6,230. 6,240. 제어판 옆 작은 창에 비율이 떴다. 1 : 91.
“육천사백까지 삼십이 분. 그 아래로는 수송정이 못 와. 지상에서 누가 서두른다던데. 삼십이 분이면 지상에서 얼마지, 하란 씨. 자네 후배는 그걸 잘 세던데.”
나는 세지 않았다. 셀 수 없었다. 비율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그때 세 번째 드럼이 멈췄다.
네 번째 호스가 끊겨 있었다. 절단기는 내 발밑에 있었다. 나는 자르지 않았다. 호스 옆에 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근신실 작업복. 이틀 치 밥을 못 먹은 얼굴. 봄이었다. 손에 주방 가위를 쥐고 있었다.
“선배. 배관 두드림 들었어요. 윈치실. 제가 근신실 환기구로 왔어요. 통계적으로 근신실 환기구는 윈치실이랑 제일 가까워요.”
드럼 넷이 다 멈췄다. 기지가 기울어진 채로 흔들렸다. 요양동 쪽에서 경보가 울렸다. 산소 배관 압력 이상. 한지오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나왔다. 「요양동, 휴대용 산소 전원 착용. 전원.」
기지장이 천천히 돌아섰다. 봄을 봤다. 나를 봤다. 제어판 수심 창을 봤다. 6,251.
“기울어진 채로 멈췄군.”
그는 손목 단말을 들어 올렸다. 기지 전체 방송.
“벽해 기지 전원에게 알린다. 오늘 새벽 하강 중 정비과 하란과 봄이 윈치 유압 계통을 고의로 절단했다. 기지가 기울고 요양동 산소 배관이 손상됐다. 두 사람을 기지 파괴 및 환자 생명 위협 혐의로 구금한다. 복구는 내가 직접 지휘한다.”
방송이 끝났다. 기지장은 쓰러진 곽 반장을 내려다보고, 무전을 눌러 다른 보안 인력을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란 씨, 오늘 자네가 제일 잘한 게 뭔지 아나.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이유를 나한테 줬어. 육십이 년 전 그 넷도 그랬지. 무단 이탈. 이번엔 기지 파괴.”
보안 인력 둘이 우리를 끌고 식당을 지나갔다. 기울어진 식당에서 사람들이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식판과 의자가 한쪽 벽에 몰려 있었다. 오른쪽 시계가 비스듬히 매달린 채로 돌았다. 모 할머니가 휴대용 산소 마스크를 쓴 채로 우리를 봤다. 무슨 얼굴인지 마스크 때문에 알 수 없었다.
소 영감이 바둑통을 끌어안고 기울어진 식탁 밑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통에서 돌 하나를 꺼내 봄의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검은 돌이었다.
“총각들. 이 기지 멈췄지?”
“멈췄습니다.”
“그럼 판은 아직 안 끝났어.”
요양동 복도 입구에서 한지오가 은채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오고 있었다. 격리실 산소 배관이 꺾였다고 했다. 은채는 코에 산소 줄을 꽂고,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있었다. 담요 위에 네 번 접힌 종이가 있었다. 편지 뒷장. 은채가 나를 봤다. 수갑을 봤다.
“아저씨. 귀 안 빨개.”
“응.”
“그럼 거짓말 아니네. 아저씨가 멈춘 거.”
한지오가 휠체어를 밀고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나를 보지 않았다. 가운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있었다. 그 주머니 안에 뭐가 있는지 나는 알았다.
지상 2175년 1월 · 기지 시각 06:30
부산지검 앞 계단에서 은서가 서류 봉투를 끌어안고 서 있었다. 고소장. 고소인 셋. X 넷 가운데 셋의 유족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아직 못 찾았다. 문가람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접수됐어요. 벽해개발 본사 압수수색 영장 청구. 그리고 회사가 심도 변경 신고를 어제 날짜로 정정했대요. 육천팔백이 아니라 육천이백오십. 기지가 중간에 멈췄대요. 정비 사고로.”
나는 계단에 앉았다. 다리가 가벼웠다. 가벼운 게 무서웠다.
“하란이가 멈춘 거야.”
“어떻게 아세요?”
“정비 사고 같은 건 없어. 그 기지는 백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어. 사고가 났으면 누가 냈어.”
은서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에 볼펜 잉크가 묻어 있었다. 기지 수심 공시 화면. 6,251m. 비율 1 : 92.
“할아버지. 구십이 배면 고모 하루에 제가 석 달 늙어요.”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한 달 뛰면, 저기서는 여덟 시간.”
은서는 고소장 봉투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채웠다. 편의점 조끼는 이제 입지 않았다. 가게를 그만뒀다고 했다. 요금은 밀리고 있었고, 밀린 만큼 은서는 가벼워 보였다.
“여덟 시간 안에 배 띄워요, 감독관님.”
문가람이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단에 앉은 채로 두 사람을 올려다봤다. 백이십 년 동안 나는 기다리는 쪽이 아니었다. 기다리게 하는 쪽이었다. 딸이 부두에 나와 있을 때도, 그 애가 쉰여덟이 되어 있을 때도. 이번에는 내가 여기서 뛸 차례였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가벼운 몸으로 뛰는 법을 나는 다시 배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