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9자) · STO-0419
격납고
시간을 빌린 사람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기지 시각 04:30 · 지상 2174년 11월
봄이 윈치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필터 서버에서 뽑은 것이었다. 얼굴이 빨갰다. 뛰어온 얼굴이었다.
“선배. 지상에서 온 전언이 걸렸어요. 오늘 새벽 필터 켰는데 제일 위에 떠 있었어요. 차단 사유, 정서 보호.”
종이에는 세 줄이 있었다.
하란이. 달력 봤다. 오월 이십칠 일이었어. 은서 찾았다. 해양안전청 문가람. X 넷 유족 찾는 중. 둘 찾았다. 버텨라. 여기서 서두르고 있다.
보낸 날짜는 지상 2174년 9월이었다. 기지 시각으로 어제 오후. 정 노인이 수송정을 탄 지 기지 시각으로 사흘이 채 안 됐다. 그 사흘 동안 지상에서 정 노인은 반년 가까이 살았다. 달력을 봤고, 은서를 찾았고, 유족을 둘 찾았다. 나는 그 사흘 동안 윈치 드럼을 닦았다.
“봄아. 이거 필터 통과시켰어?”
“아니요. 뽑기만 했어요. 통과시키면 기록이 남아요.”
“뽑은 것도 기록이 남아.”
봄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어깨를 폈다.
“알아요. 그래서 뛰어왔어요. 기록 남기 전에 선배한테 먼저 보여 주려고. 통계적으로 뛰면 기록보다 빨라요.”
기지 시각 22:40 · 지상 2175년 1월
한지오는 그날 밤 열 시 오십 분에 윈치실로 왔다. 가운 위에 작업용 점퍼. 손에 은채의 오늘 치 기록지.
“손톱 색이 어제보다 한 단계 올라갔어요. 입술도. 격리실로 옮기고 나서 밤에 잠을 안 자요. 블라인드 틈으로 복도를 봐요. 누가 쪽지 밀어 넣으러 오나 하고.”
“섬유화는 마음을 따라가는 병이라고 기지장이 그러던데요.”
한지오가 나를 노려봤다.
“그건 의학이 아니라 기지장 말이에요. 섬유화는 시간을 따라가요. 여기 느린 시간도 시간이에요. 은채는 느리게 나빠지고 있을 뿐이에요.”
그는 기록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격납고 문은 내가 열어요. 의료 비상 접근은 기록이 남아요. 남으면 기지장이 와요. 오 분이면 올 거예요. 오 분 안에 찾을 걸 찾아요.”
“오 분이면 지상 일곱 시간입니다.”
“봄 씨 말투 옮았네요.”
한지오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탈출정 격납고는 기지 동쪽 끝, 윈치실 바로 아래층에 있다. 2112년 이후로 봉인돼 있다. 문 앞에 노란 줄이 세 겹 쳐져 있고, 전자 잠금에 기지장 권한이 걸려 있다. 정비사 권한으로는 안 열린다. 청소부 권한으로는 더더욱.
한지오가 자기 단말을 잠금판에 댔다. 의료 비상 접근. 기지 어느 구역이든 의사는 응급 환자가 있으면 연다. 문이 열렸다. 한지오가 중얼거렸다.
“응급 환자 있어요. 육십이 년 된.”
격납고 안은 차가웠다. 기름 냄새가 났다. 육십이 년 동안 가라앉은 기름 냄새. 탈출정 네 대 자리 가운데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한 자리에만 탈출정이 남아 있었다. 2112년 이후로 교체하지 않은 구형. 나머지 세 대는 그해에 네 사람을 태우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한 대가 네 사람을 태웠다. 나머지 둘은 그 뒤 회사가 치웠다.
첫 계약 때 이 격납고를 점검했다. 해제 레버, 압력 밸브, 잠금 장치. 몸이 먼저 기억했다. 레버의 고무 손잡이, 밸브의 반 바퀴 뻑뻑한 자리. 나는 남은 탈출정 해제 장치 덮개를 열었다. 안쪽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기록 칩이 박혀 있었다. 해제 장치는 기지 전체가 공유한다. 한 대의 기록에 네 대의 기록이 다 남는다.
봄이 칩을 자기 손목 단말에 꽂았다. 목록이 떴다.
2112-08-14 10:20 정기 점검. 잠금 상태 해제 가능. 점검자 하란. 2112-08-19 23:21 수동 잠금 설정. 권한 부기지장. 코드 STO-0419. 2112-08-19 23:40 탈출정 2번 이탈 시도. 해제 신호 거부. 2112-08-19 23:40 부터 23:58 까지 해제 신호 거부 열일곱 회. 2112-08-19 23:58 탈출정 2번 압력 경보. 통신 두절.
내 점검은 닷새 전이었다. 그때는 풀려 있었다. 잠근 사람은 닷새 뒤, 네 사람이 타기 십구 분 전에 잠갔다. 네 사람이 십팔 분 동안 열일곱 번 해제 신호를 보냈다. 열일곱 번 다 거부됐다.
봄이 목록 맨 아래 파일 하나를 눌렀다. 음성 기록. 탈출정 2번 통신.
지직거리는 소리. 숨소리. 남자 목소리.
“관제, 관제. 탈출정 2번. 해제가 안 됩니다. 기지에서 잠갔습니다. 들립니까?”
여자 목소리. 낮고, 숫자를 또박또박 읽는 목소리.
“2번, 관제 윤서경입니다. 들립니다. 기지, 여기 관제. 탈출정 2번 해제 신호 보내세요. 기지, 들립니까. 기지.”
한참 지직거림. 그리고 다른 남자 목소리. 지금보다 젊은, 그러나 틀림없는 목소리.
“관제, 여기 기지. 2번은 무단 이탈 중이다. 해제하지 않는다. 관제 통신 종료.”
윤서경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끊기기 직전.
“2번, 무게 조심하세요. 제가 여기 있어요. 제가 여기…”
끊겼다.
봄이 손목을 내렸다. 한지오가 벽에 손을 짚었다. 나는 해제 장치 덮개를 쥔 채로 서 있었다.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첫 계약 때 이 격납고 문 앞에서 부기지장이 점검표를 받아 들고 한 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칸은 내가 확인하지. 그 손가락이 닷새 뒤에 이 코드를 눌렀다. STO-0419.
“이 칩 두 개예요.”
한지오가 말했다. 해제 장치 옆 비상 기록함을 열고 있었다. 같은 크기의 칩이 하나 더 나왔다.
“이중 기록. 의료 비상 장비랑 같은 규정이에요. 하나가 망가져도…”
격납고 문이 열렸다.
기지장이 서 있었다. 그 뒤에 곽 반장. 격납고 비상등이 기지장 얼굴에 주황색으로 떨어졌다.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문턱에서 격납고 안을 둘러봤다. 비어 있는 세 자리를. 육십이 년 동안 안 들어온 방을.
“의료 비상 접근 기록이 떴어. 응급 환자는 어디 있나, 한 선생.”
한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칩 하나를 쥔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기지장은 그걸 봤는지 안 봤는지, 눈을 나에게 옮겼다.
“하란 씨. 손에 든 거 이리 줘.”
“육십이 년 전에 잠그셨습니다. 네 사람이 타기 십구 분 전에.”
“그 사람들은 무단 이탈자였어. 탈출정은 회사 자산이고. 자산 유출을 막는 게 부기지장 일이었지.”
“의사가 귀환해도 된다고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기지장님이 반려하셨고요.”
기지장은 한지오를 한 번 봤다. 그 눈길 하나로 누가 그 기록을 꺼냈는지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하란 씨. 그 칩, 증거가 되려면 지상에 가야 해. 지상에 가려면 수송정이 필요하고, 수송정은 내 결재로 움직여. 그리고 하나 더.”
기지장은 손목 단말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 격리실 설비 창이 떠 있었다. 산소 배분, 온도, 조명. 격리실 1호, 환자 오은채.
“정서 안정 격리실의 산소 배분은 기지장 권한이야. 기지 비상시에는 조정할 수 있게 돼 있지. 지금은 비상시가 아니야. 자네가 그 칩을 들고 이 문을 나가면 비상시가 되고.”
봄이 숨을 삼켰다. 한지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환자 산소를 협박에 쓰는 겁니까?”
“한 선생, 협박이 아니라 규정이에요. 규정대로 하는 게 협박처럼 들리면 그건 규정 쪽 문제고.”
나는 손바닥의 칩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한 마디. 열일곱 번의 거부와 윤서경의 마지막 목소리가 이 안에 있었다. 이걸 쥐고 있으면 은채의 산소가 줄어든다. 육십이 년 전 이 방에서 네 사람이 십팔 분 동안 해제를 기다렸다. 기지장은 그때도 기다리게 했다.
나는 칩을 내밀었다. 곽 반장이 받아 기지장에게 넘겼다. 기지장은 칩을 손가락으로 튕겨 제복 주머니에 넣었다.
“현명하군. 그리고 봄 군.”
봄이 차렷 자세를 했다.
“필터 운영자가 차단 전언을 뽑아 청소부한테 가져다준 기록이 있어. 오늘부로 필터 권한 회수, 근신실 이틀. 곽 반장.”
곽 반장이 봄의 팔을 잡았다. 봄은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봤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선배, 뛰었는데.
기지장이 문턱에서 돌아섰다.
“하강은 앞당긴다. 모레 아침이 아니라 내일 새벽 다섯 시. 지상에서 누가 서두른다면서. 여기서도 서둘러야지.”
문이 닫혔다. 전자 잠금이 다시 걸리는 소리가 났다. 격납고에 한지오와 나만 남았다. 비상등이 주황으로 돌았다.
한지오가 가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바닥에 칩 하나가 있었다. 이중 기록의 두 번째.
“하란 씨. 나 아직 삼십일 퍼센트 믿어요.”
그는 칩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에게 주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저 사람이 은채 산소를 손목에 들고 있는 걸 봤어요. 의사로서 그건 못 믿겠어요.”
한지오는 남은 탈출정 한 대를 한참 봤다. 육십이 년 된 구형. 해제 레버에 감긴 고무 손잡이가 삭아 갈라져 있었다.
“이거, 아직 떠요?”
“모르겠습니다. 점검해 봐야 압니다.”
“그럼 점검해요. 이번엔 칸 전부, 하란 씨 손으로.”
한지오가 나간 뒤 나는 탈출정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점검표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칸을 그렸다. 스무 칸. 해제 레버, 압력 밸브, 선체 이음매, 산소 전지, 추진 가스, 통신기, 그리고 열일곱 번째, 해제 잠금 장치.
한 칸씩 손으로 확인했다. 이음매는 멀쩡했다. 육십이 년 동안 아무도 안 탔으니까. 산소 전지는 죽어 있었다. 교체해야 했다. 예비 전지는 요양동 산소 설비실에 있다. 추진 가스는 절반. 오르는 데는 모자라지 않았다. 통신기는 살아 있었다. 전원만 넣으면.
열일곱 번째 칸. 해제 잠금 장치. 덮개 안쪽 작은 창에 코드가 떠 있었다. STO-0419. 육십이 년 동안 풀리지 않은 잠금이었다. 기지장은 그날 밤 이 코드를 걸어 놓고, 한 번도 풀지 않았다. 풀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여기 안 들어오니까.
나는 그 창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먼지가 닦였다. 잠금을 푸는 방법은 둘이다. 코드를 넣거나, 장치를 통째로 뜯어내거나. 뜯어내면 경보가 기지 전체에 울린다.
근신실 쪽 배관에서 똑, 똑똑, 똑 소리가 났다. 규칙이 있었다. 봄이었다. 정비사 연수 때 배우는 배관 두드림 신호. 짧게 긴 게 섞인. 나는 귀를 댔다. 선. 배. 밥. 안. 줘. 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배관을 두 번 두드렸다.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산소 설비실까지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쟀다. 요양동 출입 금지 구역 한가운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