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33자) · 점검표

하강 공지

시간을 빌린 사람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기지 시각 09:00 · 지상 2174년 9월

전체 집회는 식당에서 열린다. 기지에서 쉰두 명이 한꺼번에 설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다. 근무자 열네 명이 벽 쪽에 섰고, 걸을 수 있는 환자 스물아홉 명이 식탁에 앉았다. 걷지 못하는 아홉 명은 요양동 병실에서 화면으로 봤다. 은채는 격리실에서 봤을 것이다. 오른쪽 시계가 기지장 머리 위에서 회색으로 돌고 있었다.

기지장은 단상 없이 식당 한가운데 섰다. 손에 태블릿 하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높이지 않아도 들리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좋은 소식이 왔습니다.”

그는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 갱 단면도가 떴다. 기지가 매달린 자리에 빨간 선, 그 아래 팔백 미터 지점에 파란 선.

“벽해 기지는 기지 시각 사흘 뒤 하강합니다. 현 수심 육천에서 육천팔백으로. 중력정 채굴 이 단계와 연계된 조치입니다. 시간 비율은 일 대 팔십에서 일 대 백이십으로 바뀝니다.”

식당이 술렁였다. 소 영감이 바둑통을 무릎에 올린 채 옆 사람에게 물었다. 「백이십이면 한 수에 선거 두 번인가?」

“환자 여러분께 이게 무슨 뜻인지 말씀드리죠. 여러분의 하루가 지상의 백이십 일이 됩니다. 지상에서 치료법이 더 빨리, 더 많이 쌓입니다. 여러분은 더 적게 늙고 더 많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회사는 이번 하강에 맞춰 요금 체계를 정비합니다. 계약 약관 십사조 이항에 따라, 심도 변경 시 모든 계약은 기지 기준으로 자동 연장됩니다. 추가 서명은 필요 없습니다.”

자동 연장. 기지 기준으로. 지상 가족에게 그 말은 요금이 한 번에 오십 퍼센트 오르고, 끝나는 날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모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기지장님. 우리 손주가 요금을 더 내야 돼요?”

“가족 부담이 늘지 않도록 회사가 할인 제도를 마련할 겁니다.”

“할 거예요, 했어요?”

“할 겁니다.”

모 할머니는 손을 내렸다. 내린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봄이 벽 쪽에서 손을 들었다. 다들 봄을 봤다.

“기지장님. 요금은 지상 기준으로 받잖아요. 그럼 저희 월급도 백이십 배로 올라요? 지상 기준으로?”

“월급은 기지 기준입니다.”

“아, 역시.”

누군가 웃음을 참다 터뜨렸다. 소 영감이었다. 봄은 진지한 얼굴로 손을 내렸다. 억울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웃음이 식당에 번지다가, 기지장이 태블릿을 한 번 두드리자 멎었다.

한지오가 벽 쪽에서 앞으로 나섰다.

“육천사백 아래는 갱 라이닝이 없습니다. 수송정이 도킹 못 해요. 하강하면 환자 귀환은 어떻게 합니까?”

“귀환은 치료 안전성이 확인된 뒤에 합니다. 한 선생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삼십일 퍼센트.”

기지장은 한지오를 보며 웃었다. 한지오는 그 숫자 앞에서 입을 닫았다. 자기 입으로 수십 번 되뇌었을 숫자였다.

나는 벽에서 떨어졌다. 봄이 내 소매를 잡았다. 나는 그 손을 풀었다.

“치료제는 구 년 전에 승인됐습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스물아홉 개의 얼굴이 나를 봤다. 벽 쪽 근무자 열세 명도.

“지상 보건청 최종 승인. 완치율 구십이 퍼센트. 소아 우선. 필터 서버 차단 보관함에 있습니다. 기지장 권한으로 차단됐습니다. 제가 그 서버를 관리했습니다. 넉 달 동안 매일 아침 켰습니다.”

소 영감의 바둑통이 무릎에서 미끄러졌다. 돌이 바닥에 쏟아졌다. 흰 돌 검은 돌이 식당 바닥을 굴렀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그리고 하강하면 수송정이 못 내려옵니다. 사흘 뒤부터 이 기지는 위로 가는 길이 없는 곳이 됩니다. 요금만 올라가는 길 하나만 남습니다.”

환자 몇이 일어섰다. 누군가 「약이 있다고?」 하고 소리쳤고, 누군가 「그걸 왜 이제 말해」 하고 소리쳤다. 두 번째 소리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맞는 소리였다.

기지장은 태블릿을 내리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 넘겼다. 그리고 태블릿을 돌려 식당 쪽으로 들어 보였다.

오래된 문서 사진이었다. 칸이 스무 개인 점검표. 맨 위에 2112년 8월, 탈출정 격납고 정기 점검. 칸마다 정상, 정상, 정상. 열일곱 번째 칸, 해제 잠금 장치. 거기에 적힌 글씨. 잠금 확인. 그리고 맨 아래 서명. 하란.

“하란 씨가 방금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따지죠. 대신 이건 사실입니다. 2112년 8월, 네 사람이 허가 없이 탈출정을 탔습니다. 탈출정 해제 잠금은 그 주에 점검을 마친 상태였어요. 점검자는 하란 씨고. 잠금 확인, 본인 서명. 그 넷이 죽은 탈출정의 잠금을 확인한 사람이 지금 여러분 앞에서 회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식당의 공기가 뒤집혔다. 스물아홉 개의 얼굴이 다시 나를 봤다. 이번에는 다른 얼굴이었다. 모 할머니가 입을 가렸다. 봄이 내 뒤에서 작게 「선배」 하고 불렀다.

“그 칸은 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서명은 했지.”

“부기지장님이 그 칸은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서명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증명할 사람이 있나.”

기지장은 식당을 둘러봤다. 2112년에 여기 있던 사람. 정 노인은 이틀 전 수송정을 탔다. 윤서경은 육십 년 전에 죽었다. 나머지는 계약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가 흩어졌거나, 네 사람처럼 X가 됐다.

“없군.”

기지장은 태블릿을 내렸다.

“하란 씨. 자네는 두 번째 계약이야. 사람이 두 번 들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어. 지상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라고들 하지. 난 다르게 봐. 여기서 한 일을 지상에 두고 올 수가 없어서야.”

그 말은 식당 전체에 들렸다. 나에게는 한 문장씩 박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첫 계약을 마치고 지상에서 넉 달을 버텼다. 넉 달 동안 한 번도 격납고 꿈을 꾸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강은 예정대로 합니다. 사흘 뒤. 이의가 있는 근무자는 계약 해지를 신청하세요. 다음 수송정은 하강 전 마지막입니다. 기지 시각 이틀 뒤에 내려와서 해지자만 태우고 올라갑니다. 환자는 해당 없습니다. 의료진 판단 없이 환자를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는 한지오를 봤다. 한지오는 눈을 내리깔았다.

집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식당을 빠져나갔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깨를 비켜 갔다. 소 영감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둑돌을 줍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같이 주웠다. 소 영감은 나를 보지 않고 흰 돌을 통에 넣었다.

“총각. 그 칸, 진짜 안 적었나.”

“안 적었습니다. 그런데 서명은 했습니다.”

소 영감은 검은 돌 하나를 집어 한참 손바닥에서 굴렸다.

“바둑에선 그걸 뭐라는지 아나. 남의 수에 도장 찍었다고 해. 판 끝나면 그 수도 자네 거야.”

그는 돌을 통에 넣었다. 딱 소리가 났다.

“그래도 판은 아직 안 끝났지.”

식당에 봄과 나만 남았다. 봄은 오른쪽 시계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농담을 하지 않았다.

“선배. 정 어르신은 벌써 부두에 닿으셨어요. 닿은 지 지상으로 백 일쯤 됐어요. 하강까지 사흘이면 이백사십 일 더. 그 동안 어르신이 지상에서 뭘 할 수 있어요?”

“모르지.”

“그리고 하강하면 백이십 배잖아요. 그럼 지상이 더 빨리 가요. 우리 하루에 넉 달. 그러면 어르신이 뭘 해도 우리한테는 금방 오는 거예요. 금방 오는데, 올 길이 없어요.”

봄은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다가 멈췄다.

“선배. 저 해지 신청할까요. 마지막 수송정 타고 올라가서, 어르신 도울까요?”

나는 봄을 봤다. 스물여섯. 첫 계약 열나흘째. 여기서 나가면 지상은 이십 년 가까이 흘러 있을 것이다. 봄이 아는 사람들은 마흔, 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봄은 아직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사십 년이 아니라 이십 년이니까.

“타.”

“선배는요.”

“나는 여기 필요해. 필터는 네가 켜지만, 윈치실 청소는 내가 하니까.”

봄은 한참 나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타요. 선배가 윈치실 청소하는데 제가 없으면 누가 망봐요. 통계적으로 청소부는 혼자 있을 때 잡혀요.”

그는 식당 바닥에 굴러다니던 마지막 흰 돌 하나를 주워 내 손에 쥐여 줬다. 소 영감이 놓친 것이었다.

기지 시각 22:30 · 지상 2174년 10월

그날 밤, 요양동 화면마다 점검표 사진이 떴다. 정서 안정 공지라는 제목으로. 2112년 8월, 잠금 확인, 서명 하란. 요양동 출입 금지라 나는 그 화면을 보지 못했다. 봄이 보고 와서 말해 주었다. 소 영감이 자기 병실 화면을 수건으로 덮어 놓았다고.

윈치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한지오였다. 의사 가운 위에 작업용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 오래된 기록 칩 하나.

“첫 계약 때 의사 기록이에요. 2112년. 전임자 거. 의무실 금고 맨 밑에 있었어요. 저도 오늘 처음 열었어요.”

그는 칩을 내 단말에 꽂았다. 환자 기록 네 장. X 코드 넷 가운데 요양동 두 사람. 두 장 다 맨 아래 같은 소견이 적혀 있었다. 지상 귀환 가능. 당시 지상에 나온 치료법으로 관리 가능. 귀환 권고. 그리고 그 아래 붉은 도장. 부기지장 반려. 사유, 운영상 판단.

“귀환해도 된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었어요. 의사가 올려 보내라고 했는데 부기지장이 막았어요. 그 주에 그 사람들이 탈출정을 탔어요.”

한지오는 칩을 빼서 내 손에 쥐여 주지 않았다. 자기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하란 씨 주려고 온 거 아니에요. 확인하려고 온 거예요. 하란 씨가 그 칸 안 적었다는 말. 적었으면 이 기록은 하란 씨한테 불리하고, 안 적었으면 기지장한테 불리해요. 어느 쪽인지 알기 전에는 아무한테도 안 줘요.”

“어떻게 확인하시게요.”

“격납고요. 탈출정 해제 장치에는 잠금 코드 기록이 남아요. 육십 년 지났어도 장치를 갈지 않았으면. 거기 들어가려면 정비사가 있어야 돼요. 청소부 말고.”

한지오는 나를 똑바로 봤다. 그날 아침 의무실에서처럼 키가 커 보였다.

“나는 아직 삼십일 퍼센트를 믿어요. 은채를 올려 보내는 데 찬성하는 거 아니에요. 다만 그 숫자를 쓴 사람이 누굴 막아 왔는지는 알아야겠어요.”

그가 나간 뒤 나는 손바닥을 폈다. 봄이 쥐여 준 흰 바둑돌이 땀에 젖어 있었다. 윈치 드럼 옆 창틀에 그 돌을 올려놓았다. 격리실 쪽 복도에서 누가 블라인드 아래로 쪽지를 밀어 넣는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요양동 출입 금지는 복도까지였다. 나는 드럼 옆에 앉아, 줄이 감긴 굵기를 손바닥으로 한 번 더 재고, 사흘을 셌다. 기지 시각 사흘. 오른쪽 시계로는 여덟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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