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19자) · 셋 중 둘

조카 언니

시간을 빌린 사람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기지 시각 06:20 · 지상 2174년 6월

요양동은 기지 맨 아래층에 있다. 중력정에 제일 가까운 층. 기지에서 시간이 제일 느리게 가는 곳이다. 차이는 아주 작다. 위층보다 한 시간에 몇 초 느린 정도. 그래도 회사는 그 몇 초를 계약서에 적어 두었다. 환자에게 가장 느린 층을 드립니다. 요양동 입구 벽에 그 문장이 금속판으로 박혀 있다.

환자는 서른여덟 명이다. 대부분 칠팔십 년 전 지상에서 고칠 수 없던 병을 안고 내려왔다. 섬유화, 퇴행, 이름도 긴 유전병. 지상에서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시간을 빌려 기다린다. 가족은 지상 일 년마다 요금을 낸다. 환자가 여기서 하루를 사는 동안 가족은 팔십 일 치를 낸다. 그 빚은 가족이 죽으면 자식에게 넘어간다. 회사 안내서는 이걸 시간 채무라고 부른다. 안내서 표지에는 모래시계를 두 손으로 받쳐 든 그림이 있다.

윈치실 청소 당번은 아침 여섯 시에 끝난다. 나는 걸레를 걸어 두고 요양동으로 내려갔다. 작업화 깔창 밑에 종이 두 장이 있었다. 편지 뒷장, 그리고 필터 서버에서 마지막으로 뽑은 기사 한 장.

요양동 휴게실에서는 새벽부터 바둑돌 소리가 났다. 소 영감과 모 할머니. 둘 다 여든 해 넘게 여기 있었다. 몸 나이로는 일흔 남짓. 두 사람은 오른쪽 시계를 바둑판 옆에 세워 두고 둔다. 한 수 두는 데 지상으로 몇 시간이 가는지 세면서. 소 영감이 돌을 놓았다.

“이 수 두는 동안 지상에서 선거 한 번 끝났네.”

“누가 됐대요.”

“몰라. 필터가 안 알려 줘. 알려 주면 흥분한다고.”

모 할머니가 돌을 들었다가 놓지 않고 나를 봤다. 「정비 총각, 우리 요금 올랐어? 요새 우리 손주가 편지를 안 해.」 편지는 필터에 걸리면 오지 않는다. 손주가 안 한 것인지 필터가 막은 것인지 할머니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모르는 게 거짓말보다 더 나빴다.

소 영감이 판을 두드렸다. 「할멈, 두어. 두는 동안 손주 장가간다.」 모 할머니는 그제야 돌을 놓았다. 딱. 그 소리가 요양동 복도 끝까지 갔다.

의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한지오는 책상에서 환자 서른여덟 명의 심전도 띠를 하나씩 넘기고 있었다. 기지 의사. 두 번째 계약. 마흔 살쯤. 머리를 짧게 잘랐고, 청진기를 목에 건 채로 잠드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다. 환자들은 그를 「한 선생」이라고 부르고, 은채는 「한 쌤」이라고 부른다.

나는 기사를 책상 위 심전도 띠 사이에 내려놓았다.

한지오는 제목만 보고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알아요.”

기지장과 같은 대답이었다. 속도는 달랐다. 한지오의 대답은 느렸다. 무거운 것을 내려놓는 속도였다.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구 년 전 승인 소식은 저도 필터에 막혀서 몰랐어요. 기지 시각으로 보름 전에 회사 의료 자문단에서 메모가 왔어요. 의사한테만.”

그는 서랍에서 얇은 서류철을 꺼내 펼쳤다. 회사 로고. 대외비. 제목은 길었다. 장기 중력정 체류자에 대한 섬유화 치료제 투여 위험 평가. 가운데 줄에 굵은 숫자가 있었다.

투여 후 칠십이 시간 내 심정지 위험 삼십일 퍼센트.

“칠십 년 넘게 여기 있은 심장은 지상 심장하고 박동 모양이 달라요. 무게를 오래 받아서 벽이 두꺼워져 있어요. 새 약이 섬유를 녹이는 속도를 그 벽이 못 따라가면 멈춰요. 셋 중 하나는.”

“그 메모 누가 썼습니까?”

“자문단.”

“자문단에 누가 있습니까?”

한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철 맨 뒷장 서명란에 이름이 셋 있었다. 둘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나는 벽해개발 대외협력 전무 채도경. 의사가 아니었다.

“한 선생님. 이 숫자, 확인해 보셨습니까?”

“어떻게요. 여기서.”

한지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지상 자료는 필터를 거쳐서 와요. 제가 요청하면 기지장실 결재가 나야 와요. 결재가 나면 보름 뒤에 캡슐로 와요. 보름이면 지상 삼 년이에요. 그동안 약이 바뀌고 기준이 바뀌고 자문단이 바뀌어요. 저는 여기서 받은 숫자로 일해요. 삼십일 퍼센트면 서른여덟 명 중에 열두 명이에요. 하란 씨는 그 열둘을 고를 수 있어요?”

“그럼 나머지 스물여섯은요.”

“제가 여기서 지키면 서른여덟이 다 살아 있어요. 느리게라도.”

“요금을 내면서요.”

한지오가 서류철을 덮었다. 그 소리가 컸다.

“나는 의사예요. 요금은 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안 물으셨죠. 누가 이 숫자를 썼는지. 의사가 아닌 사람 이름이 왜 거기 있는지.”

한지오가 일어섰다. 키가 나보다 작았는데 그 순간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청진기가 가슴에서 흔들렸다.

“하란 씨는 뭘 알아요? 정비사잖아요. 줄이 끊어지면 다시 이으면 되죠. 심장은 멈추면 안 이어져요. 저는 여기서 두 번 멈추는 걸 봤어요. 둘 다 아이였어요.”

그때 의무실 문 뒤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링거 걸이 바퀴가 바닥 이음매에 걸리는 소리.

은채가 서 있었다. 링거 걸이를 한 손에 잡고, 다른 손으로 문틀을 짚고. 환자복 소매가 세 번 접혀 있었다. 얼굴이 하얬다. 무게 때문이 아니었다.

“나 약 있는 거야?”

한지오가 은채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목소리가 다시 의사 목소리가 됐다.

“은채야, 병실로 가자. 어른들 일하는 중이야.”

“한 쌤, 나 약 있는 거지. 지상에. 방금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잖아.”

한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채는 나를 봤다.

“아저씨. 어제 편지 우리 집 거 아니라며.”

귀가 뜨거워졌다. 은채가 그걸 봤다.

“빨개졌다.”

나는 작업화를 벗었다. 깔창을 들어 올리고 네 번 접힌 종이를 꺼냈다. 펴서 은채에게 내밀었다. 한지오가 손을 뻗어 막으려다 멈췄다. 은채는 링거 걸이를 문틀에 기대 세우고 두 손으로 종이를 받았다.

맨 아래 둥근 글씨를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은채는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었다. 할아버지 대신, 아빠 대신 부칩니다. 치료제는 구 년 전에 나왔습니다. 고모는 왜 안 올라오나요. 오은서.

“고모가 누구야?”

“너.”

“나?”

“오은서는 네 남동생 딸이야. 스무 살.”

은채는 종이를 내려다봤다가 나를 봤다가 한지오를 봤다. 그러다 입을 크게 벌렸다.

“나 조카 있어? 스무 살? 나보다 아홉 살 많은데 내가 고모야?”

한지오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은채는 종이를 가슴에 대고 한 바퀴 돌았다. 링거 줄이 꼬였다. 한지오가 얼른 줄을 풀어 주었다.

“내 동생이 있었구나. 나 내려올 때는 없었는데.”

은채는 한참 조용했다. 그다음 질문은 목소리가 작았다.

“동생은?”

나는 필터 보관함에서 본 부고를 떠올렸다. 2170년. 쉰아홉.

“사 년 전에.”

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았다. 대신 종이를 다시 펴서 오준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반듯한 남자 글씨. 넉 달 동안 당신을 찾았습니다.

“내 동생 글씨 예쁘다.”

한지오가 벽에 등을 기댔다. 청진기를 목에서 벗어 손에 쥐었다.

“은채야. 약이 있어. 그런데 여기 오래 있은 심장한테는 위험할 수도 있대. 셋 중 하나는.”

은채는 한지오를 봤다. 열한 살의 얼굴로, 칠십삼 년을 기다린 얼굴로.

“셋 중 둘은 사는 거지?”

“…응.”

“그럼 나는 둘 쪽 할래. 한 쌤, 나 여기서 칠십 년 기다렸어. 셋 중 하나가 무서워서 또 칠십 년 기다리면, 은서 언니도 죽잖아. 조카 언니.”

의무실이 조용했다. 냉각수 배관이 한 번 울었다. 은채가 방금 만든 말, 조카 언니 때문에 한지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때 의무실 스피커가 지직거렸다.

“의무실. 오은채 환자, 지금 정서 안정 격리실로 옮기도록. 기지장 지시.”

곽 반장이 문간에 나타났다. 보안 담당. 기지장이 첫 계약 때부터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다. 어깨가 문틀에 닿았다. 그는 은채 손에서 종이를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은채가 종이를 환자복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아저씨, 이거 내 거야. 우리 집에서 온 거야.”

곽 반장이 은채 어깨를 잡았다. 나는 그 손목을 잡았다. 곽 반장이 나를 봤다. 정비 등급 삼 단계 하향된 청소부를.

“손 놓으세요, 하란 씨. 환자 이송 방해입니다.”

“아이 손에서 편지 빼앗는 게 이송입니까?”

한지오가 사이로 들어왔다. 은채 앞에 섰다. 곽 반장을 올려다봤다.

“격리실 이송은 의사 판단이에요. 기지장 지시가 아니라. 은채는 제가 옮깁니다. 편지는 환자 개인 물품이고요. 규정 몇 조인지 말씀드려요?”

곽 반장은 한지오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을 뗐다. 한지오는 은채의 링거 걸이를 잡고 복도로 나갔다. 은채가 가다가 돌아봤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조카 언니.

곽 반장이 남아서 나를 봤다.

“하란 씨. 기지장님이 전하랍니다. 오늘부터 요양동 출입 금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첫 계약 때 탈출정 격납고 점검 맡으셨던 거 기억하시냐고요. 점검표 서명하신 거.”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나갔다.

첫 계약 때, 2112년 8월. 나는 탈출정 격납고 정기 점검을 맡았다. 해제 레버, 압력 밸브, 잠금 장치. 점검표 한 장에 칸이 스무 개. 나는 그 칸을 다 채우고 서명했다. 그 주에 네 사람이 탈출정을 타고 나갔고, 기지는 그걸 자의 이탈이라고 불렀다.

그 점검표의 잠금 장치 칸에 나는 무엇이라고 적었던가. 아무리 떠올려도 칸만 떠오르고 글씨는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냄새다. 격납고의 기름 냄새, 해제 레버에 감긴 고무 손잡이의 냄새. 그리고 점검을 마치고 나올 때 격납고 문 앞에서 부기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그가 점검표를 받아 들고 한 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칸은 내가 확인하지. 자넨 서명만 해. 나는 서명했다. 그 칸이 어느 칸이었는지, 그때는 궁금하지 않았다.

격리실 복도 창에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었다. 그 너머에서 은채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나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블라인드에 손바닥을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블라인드 아래 틈으로 작은 종이가 밀려 나왔다. 수첩을 찢은 쪽지였다. 삐뚤빼뚤한 글씨. 아저씨 귀 이제 안 빨개? 그 아래에 시계 두 개. 하나는 빨리, 하나는 느리게. 느린 시계 옆에 화살표가 있고, 화살표 끝에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위. 나는 쪽지를 깔창 밑, 편지 뒷장이 있던 자리에 넣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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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25· 3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 달밤에책2026.05.26

      이 댓글 보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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