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29자) · 하경문 · 섣달 초이레

현감의 발끝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하경문은 스무 겨울 동안 발끝이 따뜻해 본 적이 없었다. 남쪽 들에서 태어나 과거를 보고 북쪽 고을로만 돌았다. 처음 부임한 고을에서 발가락 하나가 얼어 검게 죽었고, 의원이 그것을 잘라 냈다. 그 뒤로 발은 늘 차가웠다. 털버선을 두 겹 신고 화로를 발치에 끌어다 놓아도, 발바닥 한가운데 박힌 얼음 한 점은 녹지 않았다. 하경문은 그 얼음 한 점으로 겨울을 셌다. 올해가 스무 번째였다.

섣달 초이레 밤, 동헌 방에 감영의 글이 펼쳐져 있었다. 이방이 한지 두 장에 읽기 좋게 옮겨 적었다. 유민을 모두 적에 올리고 떠도는 자를 막으라. 고개를 넘는 자는 관문에서 돌려보내라. 목수라 불리는 자가 있거든 그 이름과 사는 곳을 올려 보내라. 마지막 줄이 하경문의 눈에 걸렸다. 감영이 벌써 알고 있었다.

현의 창에는 이천 명분의 곡식이 있었다. 올해 고개를 넘어 올라온 유민이 삼백을 넘었다. 이천에 삼백을 더하면 봄이 오기 전에 창이 빈다. 창이 비면 난이 난다. 난이 나면 감영이 군사를 보낸다. 군사가 오면 이 고을 사람들이 먼저 굶는다. 하경문은 그 셈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셈이 끝나는 자리는 늘 같았다. 적에 없는 사람은 나라가 먹일 수 없다. 나라가 먹일 수 없는 사람은 나라 사람이 아니다.

화로의 숯이 벌겋게 일어 있었다. 이 숯은 노루목에서 왔다. 동짓달 초에 마종술이 인사로 열 가마니를 보냈다. 하경문은 받았다. 현감이 숯을 받는 것은 흉이 아니었다. 겨울마다 받아 온 숯이었다.

“사또, 사람이 왔습니다.”

아전이 문밖에서 말했다.

“이 밤에 누구냐?”

“노루목 객주네 장정이라는데, 덩치가 문짝만 합니다. 사또를 뵙기 전에는 안 간다고 마당에 앉아 버렸습니다.”

*

장정은 방 문지방 앞에서 한참 머뭇거렸다. 발을 들었다가 내리고, 들었다가 내렸다. 하경문이 들어오라고 두 번 말하고 나서야 넘어왔다. 넘어와서도 무릎을 꿇고 화로 쪽을 보지 않았다.

“관아 문지방은 그냥 넘어가지는구나.”

장정은 그 말을 혼잣말처럼 했다. 이름은 두만이라고 했다. 두만은 동짓달 열하루에 노루목 객주 안방에서 들은 말을 옮겼다. 솔재 짝은 내 나무다, 놓아 두게 해 준 거지 준 게 아니다, 잊지 마라. 스무엿새 한밤에 칼쇠가 쇠지레로 짝을 들어낸 것, 들어내기 전에 칼쇠가 한 말, 제가 관솔불을 들고 있었던 것. 두만은 말하다가 몇 번 멈췄지만 한 번도 제 몫을 빼지 않았다.

“너도 거기 있었다면 너도 죄가 있다.”

“압니다.”

“그런데 왜 왔느냐?”

두만은 한참 방바닥을 봤다.

“옥례 누나가 저를 불렀어요. 누나 아버지가 제 앞에서 얼어 죽었는데도요. 그래서 왔어요.”

하경문은 그 말을 셈할 수가 없었다. 셈이 안 되는 말이 이 방에 들어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하경문은 두만을 관아 행랑에 재우라고 이르고, 아전에게 따로 일렀다. 노루목 사람이 저 장정을 찾으러 오거든 없다고 하라.

두만이 나간 뒤 하경문은 화로를 발치에서 밀어냈다. 숯이 여전히 벌겠다. 발은 여전히 차가웠다.

*

초아흐레 아침, 문턱골로 오르는 길에 하경문은 노루목에 들렀다. 객주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달구지로 붐볐다. 마종술은 대문 앞까지 나와 허리를 굽혔다. 여우 털 덧옷 깃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칼쇠는 옥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말이 없습니다.”

“말 많은 사람이 대신 말했소.”

마종술의 눈이 한 번 가늘어졌다가 풀렸다. 두만이 사라진 것을 이미 아는 눈이었다.

“사또,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헛간에 느티가 쉰둘 있습니다. 백 년 넘은 것만입니다. 이걸 현에 바치겠습니다. 목수를 현이 부리십시오. 현이 정한 자리에, 현이 정한 사람을 부르게 하십시오. 적에 올린 사람만. 그러면 현 곡식 셈도 맞고, 떠도는 자도 없어지고, 감영에 올릴 글도 반듯해집니다.”

하경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종술의 말은 하경문이 밤마다 한 셈과 똑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그게 싫었다.

“값은?”

“값이라니요. 저는 나무만 댑니다. 다만 목수들이 자리를 놓을 때, 저도 한 번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만 문지방 밖에 서 있는 게 좀 쓸쓸해서요.”

마종술은 웃었다. 하경문은 말에 올랐다. 등 뒤에서 마종술이 한 마디를 더 했다.

“감영에도 같은 말씀을 올렸습니다. 감영 도사 나리가 느티를 좋아하십니다.”

*

하경문은 노루목에서 곧장 문턱골로 올랐다. 이방과 사령 넷이 따랐다. 솔고개 굽이를 도는 동안 바람이 목도리 틈을 파고들어 귀를 벴다. 말의 콧김이 수염에 얼어붙었다. 어귀에 이르자 하경문은 말에서 내렸다. 문지방 앞에 서자 눈이 발밑에서 멈추고 문지방 안쪽 흙이 검게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안에서 밀려 나온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따뜻했다. 하경문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발은 넘어가지 않았다.

발이 문지방 위 한 치에서 멈췄다. 누가 막는 것이 아니었다. 넘어야 할 까닭이 발끝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하경문은 발을 거두었다. 사령 하나가 따라 해 보려다 엉덩방아를 찧었고, 이방이 그 사령의 뒤통수를 쳤다.

문지방 안쪽에 노인이 서 있었다. 등이 굽었고 손이 굵었다. 곁에 열 살쯤 된 사내아이가 붙어 있었다. 뒤로 문턱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 목수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어 무어라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쉬어 바람 소리만 났다. 곁의 아이가 노인의 입에 귀를 댔다가 하경문을 향해 크게 말했다.

“맞대요! 목이 쉬어서 제가 대신 말한대요!”

하경문은 웃을 뻔했다. 웃지 않았다.

“목수 이름을 현 적에 올리시오. 새로 누구를 부를지는 현이 정하겠소. 적에 올린 사람에게는 현이 조를 내겠소.”

노인이 아이에게 속삭였다. 아이가 받아 외쳤다.

“부르는 건 나라가 못 한대요! 넘어 본 사람만 한대요!”

“나라가 넘어 보면 되겠소?”

하경문은 반쯤 농으로 말했다. 노인은 오래 하경문을 봤다. 하경문의 털버선을 봤고, 가죽 신을 봤다. 그러고 아이에게 속삭이지 않고 직접 입을 열었다. 쉰 목에서 긁히는 소리가 났다.

“하경문.”

하경문은 제 이름이 불린 줄도 몰랐다. 노인이 어떻게 제 이름을 아는지 생각하는 사이에 두 번째 말이 왔다.

“하경문, 들어오너라.”

발이 넘어갔다. 문지방이 한 번 삐걱했다. 하경문은 문턱골 흙을 밟고 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얼굴이 따뜻했고 귀가 녹으면서 아팠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왔다. 발바닥 한가운데, 스무 겨울 동안 박혀 있던 얼음 한 점이 녹기 시작했다. 털버선 두 겹 안에서 발가락이 하나씩 제 것이 됐다. 잘려 나간 발가락 자리까지 따뜻했다. 하경문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방이 사또, 하고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목소리가 이상할 것 같았다.

노인은 이미 돌아서 가고 있었다. 아이가 노인의 소매를 잡고 따라가다 돌아봤다.

“이제 사또도 불렸어요! 사흘 서면 목수 돼요! 할아버지가 그러면 큰일 난대요!”

노인이 아이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문턱골 사람들이 웃음을 참았다.

좌상이라는 사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하경문 앞에 섰다. 동헌 마당에서 대청 기둥만 쳐다보던 그 사내였다. 버선이 젖어 있었다.

“사또, 이왕 들어오셨으니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소금 좀 풀어 주십시오. 노루목이 끊은 지 한 달입니다. 감자를 맨입에 먹으니 감자가 감자 맛이 안 납니다.”

“소금은 객주 것이오.”

“객주가 사람을 얼렸습니다.”

좌상은 그 말을 하고 제 입을 막았다. 하경문은 좌상의 젖은 버선을 내려다봤다. 제 발은 이제 따뜻했다. 하경문은 이방을 돌아보고, 현 창의 소금 두 섬을 문턱골에 올려 보내라고 일렀다.

*

초열흘, 하경문은 절벽 위로 올랐다. 문턱골 장정들이 얼음 계단에 새끼줄을 걸어 두었다. 올라서자 들이 펼쳐졌다. 눈 덮인 들 위에 검은 흙이 섬처럼 떠 있었다. 섬이 하나가 아니었다. 셋, 넷, 다섯. 섬마다 사람이 있었다. 거적을 깔고, 솥을 걸고, 아이들이 뛰었다.

“사또께서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지요.”

하경문을 맞은 것은 서 목수의 손녀였다. 열아홉이라고 했다. 품에 유리 대롱이 든 나무판을 넣고 있었다. 한서표라고 했다.

“부르지 말라 했소. 그런데 여기 몇이오?”

“백여든이요. 짝 다섯에 서른여섯씩이요. 한 자리가 솔재 여섯 배예요. 서른여섯이 들어도 스물셋이에요.”

“내 말을 어겼구려.”

“네.”

손녀는 피하지 않았다.

“어귀 밖에 사람이 서 있었어요. 노루목 쪽으로 갔던 열이 돌아왔고, 남쪽에서 또 올라왔어요. 사또 적에 올리려면 관아까지 하루 반이에요. 그사이 밤이 두 번이에요.”

하경문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 너른 자리 하나에 들어갔다. 불러 준 사람은 옥례라는 여자였다. 옥례는 망설이지 않고 하경문의 이름을 불렀다. 넘어가자 다시 발끝이 녹았다. 자리 안에서 누군가 조밥을 지었고, 누군가 먹줄을 튕겼고, 거적 위에서 문짝만 한 장정 하나가 아이들에게 엉덩방아 찧는 시늉을 해 보이고 있었다. 두만이었다. 행랑에 재우라고 한 그 장정이 어느새 여기 와 있었다.

“목수가 몇이오?”

“열하나요. 봉수 말고도 문턱골 젊은 사람 넷이 사흘을 섰어요. 솔재에서 온 사람도 한 사람 섰고요.”

열하나. 하경문은 그 수를 머릿속에서 굴렸다. 열하나가 스물씩 부르면 이백이 넘는다. 그 이백 가운데 서는 사람이 또 목수가 된다. 현이 적에 올리는 속도보다 빠르다. 나라가 모르는 곳에서, 나라 모르게,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셈이 끝나는 자리는 늘 같았다. 적에 없는 사람은 나라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발이 따뜻했다. 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부른 이름으로, 나라가 스무 해 동안 못 녹인 발이 녹아 있었다.

“사또.”

손녀가 불렀다.

“발 따뜻하시죠? 어귀 밖에 선 사람들 발도 그래요.”

*

그날 밤 하경문은 관아로 돌아와 붓을 들었다. 감영에 올리는 글이었다. 한 장은 금방 썼다. 노루목 객주 마종술, 부리는 자 칼쇠를 시켜 솔재의 문지방을 밤에 뽑아 넷을 얼어 죽게 한 일. 섣달 보름에 동헌 마당에서 공개로 묻는다. 증인이 있다.

두 번째 장에서 붓이 멈췄다. 목수의 이름. 서만석, 서이랑, 옥례, 종구, 막쇠, 봉수, 그리고 다섯. 하경문은 열하나를 다 적었다. 적지 않으면 감영이 사람을 보내 직접 센다. 그보다는 제 손으로 적는 편이 나았다. 감영에 보내는 글에는 거짓을 쓸 수 없다. 하경문은 마지막 줄을 오래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문지방은 넘어 본 자만 놓는다. 본관도 두 번 불렸음.

화로는 발치에서 먼 데 놓여 있었다. 하경문은 그것을 끌어오지 않았다. 발은 아직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언제까지 갈지 셈해 보려다, 하경문은 붓을 내려놓았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현감의 발끝 · 문지방의 계약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