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88자) · 서이랑 · 섣달 초사흘
나무는 내 것이오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어귀 비탈의 돌은 백스물일곱이 됐다. 새 돌 넷은 모서리가 날카로웠고, 그 위에 앉은 눈이 아직 얇았다. 이랑은 그 넷을 세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이 저절로 셌다. 막순, 강서방, 쇠분, 덕칠. 스무이렛날 아침, 절벽 위에서 옥례가 첫 짝을 놓았다는 기별이 내려왔을 때도 이랑은 그 돌 앞에 서 있었다. 해가 짝을 넘어 들에 닿았고, 넓은 자리 하나가 스물다섯 도로 데워졌다고 했다. 그 자리에 불러 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재 사람들은 전부 문턱골 안에 있었다.
문턱골은 열일곱 도였다. 백예순여섯의 숨이 골짜기에 찼다. 빨래는 반나절이 지나야 겨우 말랐고, 문턱골 사람들은 처음으로 제 집 마루에 남을 재웠다. 길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목이 쉬어 말을 못 했다. 깨금은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오면 따라 나왔고, 할아버지가 대패를 들면 대팻밥을 주웠다.
*
섣달 초사흘, 솔고개현 관아 동헌 마당에 눈이 쓸려 있었다. 대청 위에 현감이 앉았다. 마흔 남짓, 여윈 얼굴에 털 목도리를 둘렀고, 발에는 가죽 신 위에 털버선을 한 겹 더 신고 있었다. 대청 아래 화로가 셋이었다. 현감은 그 화로 가운데 하나를 제 발치 가까이 끌어다 놓게 했다.
마당 한쪽에 마종술이 섰다. 여우 털 덧옷 차림 그대로였고, 곁에 칼쇠가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칼쇠의 손등 덴 자국이 오늘은 장갑에 가려 있었다. 반대쪽에 이랑과 옥례가 섰고, 문턱골 좌상으로 길만이 따라왔다. 길만은 관아가 처음이라 버선이 젖는 것도 잊고 대청 기둥만 쳐다봤다. 도해는 증인으로 불려 와 마당 구석에 앉아 있었다.
“솔재라는 데가 어디요?”
현감이 먼저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문턱골 서쪽 고개 비탈입니다.”
이방이 대답했다.
“거기 마을이 있었소?”
“없었습니다. 동짓달에 생겼습니다.”
“생겼다가 없어졌고?”
“예.”
현감이 이랑을 봤다.
“말해 보시오.”
이랑은 말했다. 마종술의 짝을 받은 것, 약조의 값, 솔재에 쉰을 부른 것, 스무엿새 한밤의 일. 칼쇠가 쇠지레로 짝을 들어낸 것은 깨금이 봤고, 넷이 문턱골 가는 길에 죽었다. 이랑은 네 사람의 이름을 댔다. 이름을 대는 동안 목소리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대청 기둥의 옹이 하나만 보고 말했다.
“객주는 할 말이 있소?”
마종술은 한 걸음 나서서 허리를 굽혔다.
“사또, 그 짝은 제 나무입니다. 약조할 때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무는 제 것이고, 자리는 아가씨 것이라고. 놓아 두게 해 드리는 것이지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저기 도해 어른이 증인입니다.”
현감이 도해를 봤다. 도해는 천천히 일어섰다.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소. 나무는 내 것이오, 자리는 당신 것이고. 그 말 그대로요.”
이랑은 도해를 봤다. 도해는 이랑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저 사람은 약조를 지키오, 그래서 무섭소. 도해가 그날 한 말이 이랑의 귀에 다시 울렸다. 도해도 약조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는 제 나무를 거두었을 뿐입니다.”
마종술이 말을 이었다.
“그 밤에 거둔 것은 칼쇠에게 시켰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 헛간에 들여야 해서요. 사람이 얼어 죽은 것은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만, 그건 제 나무 위에 사람을 쉰이나 불러 놓고 지키지 않은 목수의 일입니다. 저는 사람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부를 수가 없지요. 아무도 저를 안 불러 줬으니까요.”
마종술은 그 말을 하고 웃었다. 마당의 아전 몇이 따라 웃었다.
“자리는 제 거라고 하셨잖아요?”
이랑이 말했다. 목소리가 커졌다.
“자리에 사람이 누워 있었어요. 한밤에, 영하 스물둘에. 그 나무를 들어내면 자리가 없어지는 걸 아셨어요. 아시고 시키셨어요. 그건 나무를 거둔 게 아니라 자리를 뺏은 거예요. 사람을 얼린 거예요.”
“사또, 나무를 거두면 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제가 정한 셈이 아닙니다. 문지방이 원래 그렇습니다.”
옥례가 한 걸음 나섰다. 먹줄통을 쥔 손마디가 하얬다.
“그럼 제 아버지 나무는요? 객주 헛간에 있어요. 남쪽 갈골에서 뜯어 가셨어요. 그때 거기도 사람이 누워 있었어요. 그 나무도 원래 객주 거였어요?”
마종술은 옥례를 보지 않았다.
“갈골 일은 갈골 관아에 물으시오. 빚 문서가 있소.”
현감이 손을 들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현감은 발치의 화로에 손을 쬐며 한참 말이 없었다. 숯이 톡 튀는 소리가 났다.
“하나 묻겠소. 솔재에 든 쉰, 지금 문턱골에 든 마흔여섯은 누구 적에 올라 있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 현 적은 이천 명분이오. 그 이천에 저 사람들은 없소. 적에 없는 사람들이 내 현 땅에 마을을 세웠다가 없어지고, 이제 절벽 위에 또 세운다는 말을 들었소. 목수가 몇이오?”
“여섯이요.”
이랑이 대답했다. 봉수가 어제 사흘 서기를 마쳤다. 문턱골 사람이 목수가 된 것은 할아버지 뒤로 처음이었다.
“여섯이 나 모르게 사람을 부르고, 나 모르게 마을을 세우고, 나 모르게 나무를 주고받다가 사람이 죽었소. 이건 객주 한 사람 일이 아니오.”
현감은 대청 난간을 짚고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정하겠소. 칼쇠는 옥에 가둔다. 그날 밤 무엇을 했는지 다시 묻는다. 객주의 나무가 누구 것인지는 내가 문턱골과 솔재를 보고 정한다. 그때까지 목수 여섯은 새로 부르지 마시오. 절벽 위에 더 놓지도 마시오. 이미 놓은 것은 그대로 두되 사람을 들이지 마시오. 목수는 이름을 현에 올리시오.”
“사또, 밖에 사람이 서 있어요. 노루목 쪽으로 간 열도 돌아오고 있어요.”
“그들도 적에 올리시오. 올리면 현이 조를 내겠소.”
칼쇠는 끌려가면서 한 번 뒤를 봤다. 마종술을 봤다. 마종술은 칼쇠를 보지 않았다. 대청에서 내려오는 현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있었다.
관아 대문 밖에서 마종술이 이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칼쇠가 끌려간 옥 쪽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소달구지에 오르려다 말고 이랑 곁으로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여우 털 끝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봄 약조 잊지 마시오. 한 짝, 노루목에, 내 땅에.”
“사람을 얼려 놓고 약조를 말씀하세요?”
“약조는 약조고 셈은 셈이오. 아가씨도 그날 셈을 끝내고 받겠다고 하지 않았소?”
마종술은 목소리를 더 낮췄다.
“그리고 하나 알려 드리지요. 사또가 목수 이름을 적에 올리라 했소. 적에 오른 목수는 나라 것이 되오. 나라가 목수를 부르는 날이 오면, 그날 나무를 대는 사람이 누구겠소? 헛간에 쉰둘을 가진 사람이오. 솔재 짝도 도로 들어왔소.”
마종술은 달구지에 올랐다. 바퀴가 언 길을 긁으며 노루목 쪽으로 멀어졌다. 이랑은 그 뒷모습을 보며 제 손바닥을 폈다. 염소 길 새끼줄에 벗겨진 살갗이 아직 붉었다.
*
문턱골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하고 반나절이었다. 길만은 노루목을 지나면서 한 번도 입을 열지 않다가, 솔고개 굽이에서 불쑥 말했다.
“그 사또 발 봤냐?”
“털버선 두 겹이요.”
“화로를 발에 끌어다 놓더라. 저 양반 발이 추운 거야. 발 추운 사람은 셈이 박해.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좌상 어른 발은 늘 축축하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셈이 눅눅하지.”
길만은 그 말을 하고 저 혼자 웃었다. 좌상이 웃는 걸 이랑은 오래간만에 봤다. 웃음이 금방 꺼졌다.
“이랑아, 사또 말대로 하자. 부르지 말자. 적에 올리면 조가 나온다잖냐? 소금도 풀리겠지.”
이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또 말대로 하면 칼쇠는 옥에 있고 마종술은 헛간에 나무 쉰둘을 쌓아 두고 기다린다. 사또가 정할 때까지, 봄이 올 때까지. 이랑은 그 셈을 할 줄 알았고,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다.
*
초나흘 밤, 절벽 위에 바람이 없었다. 옥례가 놓은 짝 안쪽 너른 자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흙이 검게 드러나 김을 올렸고 바깥은 온통 눈이었다. 자리 가장자리가 눈과 흙의 경계로 또렷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 선이 솔재보다 너덧 배 넓었다. 이랑은 경계를 따라 걸어 보다가 중간에 그만뒀다. 끝이 멀었다.
옥례는 제 짝 곁에 앉아 있었다. 문지방 바깥 눈 위에는 두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두만은 스무엿새 밤 이후 노루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턱골 어귀 밖에서 이레를 났다. 곰녀가 밤마다 화로를 내다 줬고, 낮에는 봉수가 판 염소 길 계단을 두만이 넓혔다. 등짐으로 짝을 올려다 준 것도 두만이었다. 짝 하나를 지고 얼음 계단을 오를 때마다 두만은 삼백 년이면 좀 가벼워질 때도 됐다고 투덜댔고, 투덜대는 동안에는 무릎이 덜 떨렸다. 봉수는 그 뒤를 따르며 두만의 엉덩이가 제 머리 위에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했다.
“두꺼비.”
옥례가 말했다. 두만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다. 두만 씨.”
옥례는 일어서서 제 짝의 안쪽에 섰다. 사또가 부르지 말라고 했다. 이미 놓은 것은 그대로 두되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이랑은 옥례를 막지 않았다. 옥례가 이랑을 한 번 봤고, 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자가 부른다. 누구를 부를지는 받은 자가 정한다.
“두만 씨, 들어와요.”
두만은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눈 위에 쪼그린 채로 옥례를 올려다봤다.
“저 그날 밤에 관솔불 들었어요.”
“알아요.”
“누나 아버지 돌아가신 날도, 어른이 나무 안 주는 거 봤어요. 말 안 했어요.”
“알아요. 들어와요.”
두만은 일어섰다. 문지방 앞에 섰다. 발을 들었다. 두만의 발은 늘 문지방 위 한 치에서 멈췄고, 두만은 그때마다 뒤로 넘어졌다. 이번에는 발이 멈추지 않았다. 나무가 한 번 삐걱했다. 두만은 넘어오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늘 뒤로 넘어지던 사람이 처음으로 앞으로 넘어졌다. 얼굴이 검은 흙에 박혔다. 흙이 따뜻했다.
두만은 한참 엎드려 있었다. 어깨가 떨렸다. 옥례가 그 곁에 쪼그려 앉아 등을 두드렸다. 먹줄통을 쥔 손으로 두드려서, 실 감긴 소리가 통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갈골 냄새가 나네요.”
두만이 흙에 얼굴을 묻은 채로 말했다.
두만이 몸을 일으켰을 때 얼굴에 흙이 묻어 있었다. 두만은 그 흙을 털지 않고 이랑을 봤다.
“아가씨, 저 사또한테 갈래요. 칼쇠 형님이 뽑은 거, 어른이 시킨 거, 제가 다 들었어요. 어른이 그랬어요. 솔재 짝은 내 나무다, 놓아 두게 해 준 거지 준 게 아니다, 잊지 마라. 칼쇠 형님한테요. 동짓달 열하루에요.”
이랑은 두만의 얼굴에 묻은 흙을 봤다. 사또는 발이 추운 사람이었다. 셈이 박한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무엇을 셈할지 이랑은 알 수 없었다. 저 멀리 절벽 아래 문턱골 어귀 쪽에서, 목이 쉰 할아버지가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기침하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