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10자) · 서이랑 · 섣달 보름
네 사람의 이름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섣달 보름, 솔고개현 관아 담장 밖까지 사람이 찼다. 절벽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새벽부터 하루 반 길을 걸어 왔고, 문턱골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노루목 마당에서 조를 기다리던 유민들도 무슨 일인지 모르고 따라왔다. 고을 사람들은 담장 위에 올라앉았다. 동헌 마당에 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대문 밖 길에 늘어서서 까치발을 들었다. 사백은 넘어 보였다. 입김이 마당 위에 구름처럼 떠 있었다.
이랑은 그 구름 속에 섰다. 곁에 옥례가 섰고, 뒤에 깨금과 두만이 섰다. 할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목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고, 문턱골 어귀를 비울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깨금을 보냈다. 네가 이름을 제일 많이 안다고 했다.
떠나기 전 새벽, 할아버지는 어귀 문지방 안쪽에서 이랑을 불러 세웠다. 목소리는 아직 반쯤 바람이었다. 이랑은 할아버지 입에 귀를 댔다.
“이름을 불러라. 셈하지 말고.”
그 말만 하고 할아버지는 돌아섰다. 이랑은 한참 그 등을 봤다. 마흔한 해 동안 셈만 하던 사람이 셈하지 말라고 했다. 어귀 비탈의 돌 백스물일곱 위에 새벽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마당 구석에 도해가 막대를 짚고 서 있었다. 이랑과 눈이 마주치자 도해가 먼저 다가왔다.
“지난번엔 약조를 증언했소. 약조 증인은 약조만 말하오. 오늘은 내가 본 걸 말하겠소.”
“무얼 보셨는데요?”
“객주 헛간 쉰둘의 셋째 줄. 그걸 긁은 게 누군지.”
도해는 그 말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대청 위에 하경문이 앉았다. 오늘은 발치에 화로가 없었다. 칼쇠가 옥에서 끌려 나왔다. 수염이 자라 있었고 장갑이 없었다. 손등의 덴 자국이 햇빛에 드러났다. 마종술은 칼쇠에게서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여우 털 덧옷 대신 검은 무명 겉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수수하게 입는 것이 셈이 맞았다.
*
“솔재의 짝을 뽑은 자는 칼쇠다. 칼쇠에게 시킨 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하경문의 목소리가 마당 끝까지 갔다.
“증인 두만, 나오너라.”
두만이 마당 가운데로 나갔다. 사백의 눈이 두만의 등에 꽂혔다. 두만의 어깨가 한 번 움츠러들었다가 펴졌다. 두만은 관아 행랑에서 한 말을 다시 했다. 동짓달 열하루 객주 안방, 솔재 짝은 내 나무다, 잊지 마라. 스무엿새 한밤, 쇠지레, 관솔불, 어른 말씀이다.
마종술이 손을 들었다.
“사또, 저 사람은 제게 빚진 사람입니다. 제 어미 약값 빚이 쌀 두 섬입니다. 빚 갚기 싫어서 도망간 사람이 주인을 헐뜯는 건 흔한 일입니다. 저 사람 입 말고 다른 증인이 있습니까?”
두만의 얼굴이 하얘졌다. 두만은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당이 웅성거렸다. 빚진 사람의 말. 그 셈이 사백의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 있어요.”
깨금이 이랑의 뒤에서 튀어나갔다. 깨금발로 두 번 뛰어 두만 곁에 섰다. 아전 하나가 막으려 하자 하경문이 손을 저었다.
“저 그날 밤 오줌 누다가 봤어요. 바위 뒤에서요. 칼쇠 아저씨가 쇠지레를 박으면서 그랬어요. 어른 말씀이다, 내 나무 거둬 간다. 두만 형은 복실이 일곱 살이라고 했어요. 칼쇠 아저씨가 불이나 똑바로 들라고 했어요.”
“아이 말입니다, 사또.”
마종술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이는 저 목수 아가씨가 처음 부른 아이입니다.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말하겠지요.”
“칼쇠.”
하경문이 칼쇠를 불렀다.
“너는 누가 시켰느냐?”
칼쇠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에서 보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칼쇠는 마종술을 봤다. 마종술은 칼쇠를 보지 않았다. 마종술은 대청을 향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사또, 사실을 말씀드리지요. 제가 칼쇠에게 나무를 거두라고 한 건 맞습니다. 봄 전에만 거두라고 했습니다. 한밤에, 사람이 누워 있는데 뽑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칼쇠가 제멋대로 한 짓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성미가 급합니다. 손등의 저 자국도 성미 급해서 불 붙은 장작을 맨손으로 쥐다가 생긴 겁니다.”
칼쇠의 턱이 한 번 굳었다. 손등의 자국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쉬고 낮았다.
“열하루에 어른이 그랬소. 잊지 마라. 스무닷새에 또 그랬소. 문턱골 좌상이 아직 안 무너졌다. 솔재가 버티는 동안은 안 무너진다. 사람이 누워 있을 때 거둬야 좌상이 무너진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담장 위의 고을 사람들까지 숨을 멈췄다.
“쇠지레도 어른이 사 주셨소. 노루목 대장간에서. 대장장이한테 물으면 아오. 이 자국은 장작 쥐다 생긴 게 아니오. 열세 살 때 어른 객주 부엌에서 끓는 솥을 엎어서 생긴 거요. 그때도 어른이 그랬소. 네 성미가 급해서라고.”
마종술의 입꼬리가 처음으로 풀리지 않았다.
하경문이 마당 구석을 봤다. 도해가 막대를 짚고 나왔다.
“해 재는 늙은이 도해요. 객주 헛간 옆방에 여섯 해 얹혀 살았소. 남쪽에서 뜯어 온 느티가 헛간에 들어올 때마다 객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소. 끌을 들고 안쪽 옆면의 셋째 줄을 긁는 거요. 한 도를 받은 자는 스물을 부른다. 그 줄을 쉰두 번 긁었소. 내가 옆에서 등잔을 들었소.”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오?”
마종술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객주는 그 줄이 무슨 뜻인지 알았소. 받은 사람이 부르면 부르는 손이 퍼진다는 걸. 퍼지면 나무 값이 떨어진다는 걸. 그래서 긁었소. 솔재에서 받은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하니, 긁을 수 없는 줄 대신 나무를 뽑은 거요.”
도해는 막대 끝으로 마당의 눈을 한 번 찍었다.
“나는 그날 등잔을 든 값을 오늘 치르오.”
*
“네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해 주세요.”
이랑이 말했다. 하경문이 이랑을 봤다.
“이 마당에서 오늘 죽은 사람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나무 얘기, 빚 얘기, 성미 얘기요. 그런데 이름은 한 번밖에 안 나왔어요. 이 사람들은 나무가 아니었어요.”
하경문은 한참 이랑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랑은 마당 가운데로 나가 섰다. 사백의 입김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이랑은 한서표를 꺼내지 않았다. 셈하지 않고 말하려고 품에 손을 넣지 않았다.
“막순. 예순여덟이에요. 솔재에서 밤마다 관솔불을 켜 뒀어요. 우리가 절벽 위에서 보라고요.”
이랑의 등 뒤에서 누군가 따라 불렀다. 막순. 절벽 위에서 내려온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 곁에서 또 하나가 불렀다.
“강서방. 쉰이에요. 막순 할머니를 업고 삼 리를 걸었어요. 문턱골 어귀 반 리 앞에서 둘이 같이 쓰러졌어요.”
강서방. 이번에는 열이 넘게 따라 불렀다.
“쇠분. 마흔이에요. 딸 복실이한테 털 덧옷을 벗어 줬어요. 복실이는 살았어요.”
쇠분. 옥례의 품에 안긴 복실이 어미 이름이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담장 위에서도 불렀다.
“덕칠. 서른셋이에요. 맨 뒤에서 불을 들었어요. 불이 꺼지면 앞사람들이 길을 못 찾으니까요.”
덕칠. 사백이 불렀다. 마당이 울렸다. 대문 밖 길에 선 사람들까지 따라 불러서, 이름 하나가 관아 담장을 넘어 고을 골목으로 굴러 나갔다.
옥례가 이랑 곁으로 걸어 나왔다. 옥례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말했다.
“팽덕수. 예순일곱이에요. 목수였어요. 제 나무를 달라는 말을 끝까지 안 했어요. 그 말을 하면 저 사람을 불러야 했으니까요.”
옥례가 마종술을 가리켰다. 사백이 팽덕수를 불렀다. 마종술은 그 이름이 제 쪽으로 밀려오는 동안 처음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
하경문은 대청 위에서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종술에게 물었다.
“객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소?”
마종술은 옷깃을 한 번 여몄다.
“사또, 저는 평생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쪽 어느 자리에서도, 이 고개 위 어느 자리에서도요. 문지방 앞에 서면 늘 발이 멈췄습니다. 불리지 않는 사람은 나무라도 가져야 합니다. 나무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문지방 밖에서 문지방을 셀 수는 있으니까요.”
마당의 누구도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랑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서 더 싫었다.
하경문은 한 번 더 말이 없었다. 발을 한 번 옮겼다. 이랑은 그 발이 지금 따뜻한지 궁금했다.
“정한다.”
하경문이 말했다.
“칼쇠는 솔재의 짝을 밤에 뽑아 넷을 얼어 죽게 했다. 마종술은 그것을 시켰다. 둘 다 살인으로 다룬다. 살인은 현이 끝까지 정하지 못한다. 감영에 올려 보낸다. 그때까지 둘 다 옥에 둔다. 마종술의 헛간 느티 쉰둘은 현이 거둔다. 빚 문서는 현이 다시 셈한다. 사람 목숨을 빚에 얹은 것은 빚으로 치지 않는다.”
마당이 터졌다. 누군가 울었고 누군가 웃었다. 두만이 주저앉았다. 깨금이 두만 등에 올라탔다. 곰녀가 담장 위에서 좌상의 어깨를 두드리다 좌상이 담장에서 떨어질 뻔했다.
칼쇠가 먼저 옥으로 끌려갔다. 칼쇠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두만이 그 등에 대고 형님, 하고 한 번 불렀다. 칼쇠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걸음이 한 번 늦어졌다.
사령들이 마종술의 팔을 잡았다. 마종술은 저항하지 않았다. 끌려가면서 이랑 곁을 지나갔다. 이랑과 눈이 마주쳤을 때 마종술의 입꼬리가 다시 풀렸다.
“감영으로 간다니 잘됐소. 도사 나리가 기다리고 계시오. 나리는 느티를 좋아하시고, 목수는 더 좋아하시오.”
마종술은 걸음을 늦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가씨, 목수가 몇이오? 스물이라지요. 사또가 목수 이름을 감영에 올렸소. 나라가 목수를 부르면 목수는 가야 하오. 나라는 부르는 걸 제일 잘하오. 봄 약조는 잊지 마시오.”
마종술이 대문 밖으로 끌려 나갔다.
대청에서 내려온 하경문이 이랑 앞에 섰다. 사람들이 흩어지는 소란 속에서 하경문의 목소리는 낮았다.
“객주 말이 틀리지 않소. 목수 이름을 감영에 올렸소. 안 올리면 감영이 사람을 보내 직접 세었을 거요.”
“알아요.”
“그리고 한 줄 더 적었소. 본관도 두 번 불렸다고.”
하경문은 털버선 신은 발을 내려다봤다.
“감영 도사가 섣달 스무날쯤 고개를 넘을 거요. 이름은 백운필이오. 약조를 잘 지키는 사람이오.” 이랑은 그 뒷모습을 보지 않고 제 손을 봤다. 오늘 아침에도 목수가 둘 늘었다. 절벽 위에서 사흘을 선 사람들이었다. 스물. 하나가 스물을 부르고, 부른 사람 가운데 서는 사람이 또 목수가 된다. 셋째 줄은 그렇게 읽는다. 받은 자가 부른다. 그런데 나라도 벌써 부르고 있었다. 목수들의 이름을, 한지 위에.
깨금이 두만의 등에서 내려와 이랑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누나, 네 사람 이름 불렀는데 대답 안 했어요.”
“응.”
“그래도 불러서 좋았어요.”
이랑은 깨금의 머리를 쓸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쓸었다. 새끼줄에 벗겨진 손바닥이 아직 거칠었다. 대문 밖 골목에서, 누군가 아직도 덕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