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3자) · 서이랑 · 동짓달 스무날
당산 느티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옥례는 사흘째 새벽에 울었다. 솔재 위쪽 비탈, 바위 하나가 눈 속에 어깨만 내놓은 자리에 서서 해가 오르기를 기다리다가, 첫 햇살이 고개를 넘어오는 순간 소리 없이 무릎을 꺾었다. 종구와 막쇠가 양쪽에서 옥례를 부축했는데 둘도 같은 쪽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비탈 아래 작은 웅덩이 같은 땅 위로 김이 올랐다. 손바닥 두 개 너비의 결이 누울 만한 자리였다.
“아버지가 이걸 봤구나.”
옥례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먹줄통을 꺼내 실 끝을 한 번 당겼다가 놓았다. 실이 튕겨 허공에서 떨렸다.
그렇게 해서 동짓달 열아흐레, 문지방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다섯이 됐다. 할아버지, 이랑, 옥례, 종구, 막쇠. 다섯 가운데 나무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
스무날 아침 이랑은 절벽 위로 올라갔다. 문턱골 동쪽 절벽에는 염소가 다니는 길이 하나 있었다. 길이라기보다 바위 틈에 발 디딜 데가 이어진 것이었는데, 문턱골 아이들은 정월 당산에 절하러 갈 때만 그 길을 탔다. 겨울에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랑은 옥례와 함께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 올랐다. 바위는 얼음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어 손으로 짚을 때마다 미끄러졌고, 한 번은 이랑의 발밑에서 얼음 조각이 떨어져 한참 뒤에야 아래서 부서지는 소리가 올라왔다.
절벽 위에 올라서자 숨이 멎었다. 땅이 끝없이 평평했다. 눈 덮인 들이 동쪽으로 한 마장, 두 마장, 끝이 안 보이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막 올라온 해가 가로막는 것 하나 없이 쏟아졌다. 골짜기 바닥에서는 한낮에야 보던 해가 여기서는 동틀 녘부터 들을 쓸었다. 이랑은 제 눈을 의심했다. 들 곳곳에서, 솔재에서 본 것과 같은 김이 올랐다. 한 군데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눈 위에 아지랑이가 섬처럼 떠 있었다.
“몇 군데예요?”
옥례가 물었다. 옥례도 보고 있었다.
이랑은 세기 시작했다. 스물을 넘자 손가락이 모자랐다. 서른을 넘자 셈이 흐려졌다. 들이 넓었다. 자리 하나하나가 솔재의 서너 배는 돼 보였다. 넓은 자리는 사람을 많이 먹고도 안 식는다. 도해의 말이 이제야 몸으로 들어왔다.
들의 서쪽 끝, 절벽 가장자리에 당산 느티가 서 있었다. 밑동이 어른 넷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만큼 굵었고, 껍질이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가지는 반쯤 죽어 하늘을 긁었지만 줄기는 곧았다. 곧은 줄기 한 발 길이마다 짝 하나였다. 이랑은 그 줄기를 눈으로 잘랐다. 스무 짝은 나왔다.
두 사람은 느티 밑에 쪼그려 앉아 셈을 했다. 이랑이 눈 위에 손가락으로 쓰고 옥례가 먹줄로 지웠다. 스무 짝이면 자리가 스물이다. 자리 하나가 솔재 서너 배면, 한 자리에 스물을 들여도 스물세 도 안팎이다. 스무 자리에 스물씩이면 사백이다. 솔재 쉰과 밖에 선 사람들을 다 들이고도 남았다.
“그런데 누가 놓아요?”
옥례가 물었다.
“목수가 다섯이에요. 할아버지는 안 놓으실 테고, 넷이서 다섯 짝씩.”
“그리고 누가 불러요? 놓은 사람이 부르잖아요. 넷이서 사백을 부르면, 그것도 한 손이에요. 손이 넷일 뿐이지.”
이랑은 손가락을 멈췄다. 옥례는 먹줄로 눈 위의 셈을 한 줄 지우고 새로 썼다. 넷이 한 짝씩 놓고 스물씩 부른다. 부른 여든 가운데 사흘을 서는 사람이 목수가 되어 다음 짝을 놓고 또 스물을 부른다. 짝은 모자라지만 손은 모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길이요.”
옥례가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막순 할머니는 염소 길 못 올라와요. 복실이도요. 길을 내야 돼요.”
“문턱골 장정들한테 부탁할게요.”
“좌상이 해 줄까요?”
이랑은 대답 대신 당산을 올려다봤다. 이 나무를 베겠다고 하면 좌상은 길이 아니라 싸움을 낸다.
*
그날 오후 당산 앞에 사람들이 올라왔다. 이랑이 베겠다고 좌상에게 기별한 지 반나절 만이었다. 길만이 앞장섰고 문턱골 장정 열이 뒤따랐다. 곰녀는 장정 둘에게 양쪽 팔을 붙들려 끌려 올라오다시피 했는데, 올라오자마자 두 팔을 뿌리치고 당산 밑동에 가서 나무를 끌어안았다.
“베려면 나부터 베.”
“아주머니는 안 베요.”
“그럼 나 비킬 때까지 못 베지?”
곰녀는 밑동에 볼을 대고 눈을 감았다. 장정 하나가 웃다가 길만에게 한 대 맞았다.
“이랑아.”
길만의 목소리가 낮았다. 마당에서처럼 크지 않았다.
“당산은 문턱골 어른이다. 영감님이 사십 년 전에 고개를 넘어와서 제일 먼저 본 게 저 나무다. 저 나무 밑에 해가 먼저 든다는 걸 보고 이 골짜기에 문지방을 놓았다. 너희 아버지도 저 밑에서 절을 했고 너도 했다. 소금 끊긴 건 참아도 이건 못 참는다.”
“스무 짝이 나와요. 스무 짝이면 절벽 위에 자리가 스물이에요. 자리 하나가 솔재 서너 배고요. 솔재 쉰이 올라오면 한 사람도 안 앓아요. 솔재 밖에 선 열도 들어올 수 있어요. 문턱골은 한 도도 안 식어요.”
“셈은 맞다. 셈이 맞으니까 더 못 참겠다.”
길만이 제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셈이 맞는다고 다 베면, 우리가 무슨 사람이냐?”
장정들 사이에서 봉수가 한 걸음 나섰다. 스물둘, 문턱골에서 제일 젊은 장정이었다. 봉수의 외삼촌이 여섯 해 전 어귀 밖에서 돌이 됐다.
“좌상 어른, 절은 돌한테도 해요. 비탈 돌한테는 아무도 절 안 하지만요.”
길만이 봉수를 돌아봤다. 봉수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장정 둘이 봉수 쪽으로 반걸음 옮겨 섰고, 셋은 길만 쪽에 그대로 섰다. 나머지는 발끝만 봤다. 문턱골이 당산 밑에서 둘로 갈라지는 것을 이랑은 처음 봤다.
그때 뒤에서 도끼 자루가 눈을 짚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였다. 염소 길을 혼자 올라왔는지 무릎께가 눈투성이였고, 숨이 거칠었다.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다. 날이 새로 갈려 해를 받아 번쩍였다. 이랑이 사흘 전에 들은 숫돌 소리가 그 날에 있었다.
사람들이 비켜섰다. 할아버지는 곰녀가 안고 있는 밑동 앞까지 걸어가 섰다.
“곰녀야, 비켜라.”
“영감님이 베시게요?”
곰녀가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느티 껍질에 손바닥을 댔다. 오래 댔다.
“이 나무는 내가 처음 본 게 아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랑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보고 말했다.
“내 스승이 먼저 말했다. 북쪽 절벽 끝에 느티 한 그루가 서 있는 데가 있다고.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데, 심은 사람이 거기 해가 먼저 든다는 걸 알고 심었다고. 스승 말로는 이건 나무가 아니라 문지방 스무 짝이 서 있는 거라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왔다. 와서 골짜기에 하나만 놓고, 이 나무는 안 벴다.”
바람이 들을 쓸고 와 가지를 흔들었다. 죽은 가지 끝에서 눈이 떨어졌다.
“열두 해 전에 네 아비가 이 나무 밑에 섰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한 번 갈라졌다.
“스물을 데리고 와서, 내가 안 부르니까, 이 나무를 베게 해 달라고 했다. 베어서 저 위에 놓게 해 달라고. 자기는 사흘을 서겠다고.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나무를 베면 부르는 손이 둘이 되고, 둘이 되면 무듬골처럼 된다고. 네 아비는 그날 여기서 내려가서 다시 안 올라왔다. 그 겨울에 비탈에 누웠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곰녀가 밑동에서 팔을 풀었다.
“내가 막은 건 나무가 아니었다. 경호였다.”
할아버지는 도끼를 들었다. 날이 해를 받아 한 번 번쩍이고, 느티 밑동에 박혔다. 쩍, 하는 소리가 들 끝까지 퍼져 나갔다. 나무 속살이 누렇게 드러났다. 할아버지는 도끼를 뽑아 한 번 더 내리쳤다. 이번에는 입 안으로 무어라 말했다. 이랑은 그게 아비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경호야. 세 번째 도끼질에서 할아버지의 손이 흔들렸다. 이랑이 다가가 도끼 자루 아래쪽을 같이 잡았다. 할아버지는 뿌리치지 않았다.
*
당산은 해 질 녘에 쓰러졌다. 문턱골 장정 열이 번갈아 도끼를 들었고, 옥례와 종구와 막쇠가 톱을 켰다. 곰녀는 나무가 기울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쓰러진다” 하고 소리쳤는데, 쓰러진 방향이 곰녀 쪽이 아니었는데도 제일 멀리 달아났다. 나무는 들 쪽으로 누웠다. 땅이 한 번 울렸고, 눈이 구름처럼 솟았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길만은 쓰러진 줄기 곁에 쪼그려 앉아 나이테를 손가락으로 셌다. 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줄이 너무 촘촘했다. 그래도 길만은 셌다. 백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셌다.
“좌상, 몇이에요?”
곰녀가 물었다.
“모르겠다. 이백은 넘었다.”
“그럼 됐어. 이백 넘은 거면 문지방 되지?”
길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정들에게 소리쳤다.
“한 발씩 재서 잘라라. 결 안 다치게. 스무 짝 나오면 문턱골이 사흘 품을 판 거다. 품값은 솔재 사람들이 봄에 감자로 갚는다. 곰녀 너는 옆에서 도끼 날 대 주는 척만 해라.”
“내 엉덩이 의자는?”
“가지로 해 줄게.”
*
밤이 되자 절벽 위에는 이랑과 옥례, 종구와 막쇠만 남았다. 줄기를 스무 토막으로 자르고 켜서 짝으로 만들려면 사나흘은 걸렸다. 네 사람은 쓰러진 느티 곁에 가지를 쌓아 불을 피웠다. 들 위의 밤은 골짜기보다 추웠다. 바람을 막아 주는 것이 없어서, 불 쪽을 향한 얼굴은 뜨겁고 등은 얼었다.
할아버지는 내려가기 전에 이랑을 불러 세웠다.
“절벽 위 첫 짝은 옥례가 놓게 해라.”
“왜요?”
“받은 자가 부르는 거다. 셋째 줄이 그렇게 돼 있다. 네가 놓으면 또 한 손이 부르는 거다. 그러면 나랑 똑같다.”
할아버지는 도끼를 어깨에 메고 염소 길 쪽으로 걸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지 않고 한 마디 더 했다.
“솔재 짝은 마종술 나무다. 잊지 마라.”
이랑은 그 말을 불 곁까지 들고 왔다. 옥례가 짐 보따리에서 대패 하나를 꺼내 짝 모서리를 다듬고 있었다. 손잡이가 사람 손바닥 모양으로 파인 대패였다.
“그거 팽덕수 어르신 거 아니에요?”
“비탈 돌 곁에 있었어요. 곰녀 아주머니가 알려 줬어요. 두꺼비가 놓고 갔대요.”
옥례는 대패를 한 번 밀었다. 얇은 대팻밥이 말려 나와 불빛에 금빛으로 비쳤다.
“마 객주는 죽은 인부 연장을 판대요. 그 사람이 팔지 않고 여기 두고 갔어요. 아버지가 그 사람 어릴 때 갈골에서 버들피리를 깎아 줬대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두만 씨는 불리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요.”
옥례는 대패를 멈추고 불을 봤다.
“누구를 부를지는 받은 자가 정한다고 했죠. 저는 벌써 하나 정했어요.” 옥례가 먹줄통 실로 짝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튕길 때마다 검은 줄이 누런 속살 위에 곧게 앉았다. 종구는 막쇠의 톱질이 삐뚤다고 놀렸고 막쇠는 종구의 코가 삐뚤다고 받아쳤다. 솔재에서 올라온 막순 할멈의 조밥 주먹밥이 불 곁에서 데워지고 있었다.
“솔재는 우리가 지킬게. 너희는 여기 나무나 잘 켜.”
낮에 막순 할멈이 그렇게 말하고 내려갔다. 이랑은 절벽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솔재 비탈에 불빛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막순 할멈이 켜 둔 관솔불이었다. 그 불빛 아래 쉰이 잠들어 있었다. 열다섯 도의 축축한 거적 위에서, 곰녀의 소금으로 간을 한 조밥을 먹고. 사나흘만 더 참으면 되었다. 이랑은 불빛을 오래 봤다.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