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62자) · 서이랑 · 동짓달 열엿새

다섯마다 한 도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소문은 소금보다 빨리 고개를 넘었다. 솔재에 부르는 목수가 있다는 말이 노루목 마당의 화톳불 곁에서 돌고, 강을 따라 남쪽 나루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떠나온 사람들의 발에 실려 도로 올라왔다. 동짓달 열사흘부터 솔재 문지방 앞에 사람이 서기 시작했다. 첫날 일곱, 이튿날 열둘, 사흘째에는 서른이 넘었다. 그들은 거적도 없이 눈 위에 서서 문지방 안쪽의 김을 바라봤다. 누구도 먼저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불러 달라는 말을 하면 거절당할 수 있으니까, 그냥 서 있었다.

열나흘 해 질 녘, 이랑은 문지방 안쪽에 서서 바깥의 얼굴들을 봤다. 열흘 전 제가 섰던 자리에 이제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비옷이 해져 솜이 비어져 나온 사내, 등에 아이를 동여맨 여자, 신발 한 짝을 잃고 발에 헝겊을 감은 노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입김만 하얗게 올랐다가 흩어졌다. 이랑은 한서표를 한 번 보고, 얼굴을 한 번 봤다. 셈이 먼저 나왔다. 스물을 더 들이면 네 도가 내린다. 열다섯이면 옷이 안 마른다. 안 들이면 오늘 밤 영하 스물넷이다.

“다 불러요.”

옥례가 곁에서 말했다.

“다 부르면 열하나예요. 앓아요.”

“안 부르면 얼어요. 앓는 사람은 낫기도 해요. 언 사람은 비탈로 가고요.”

이랑은 셈을 멈추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제일 늙은 사람부터, 아이를 업은 사람부터, 발에 헝겊을 감은 사람부터. 스물째 이름을 부르고 나서 입이 저절로 닫혔다. 문지방 밖에 열이 남았다. 남은 열은 따지지 않았다. 원망하는 눈도 없었다. 그냥 서 있었다. 그게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 그 열은 이튿날 새벽 솔재를 내려가 노루목 쪽으로 갔다. 마종술의 창에 조가 있다는 소문을 따라서였다.

그렇게 열사흘에 열을, 열나흘에 스물을 더 불렀다. 부를 때마다 문지방이 한 번씩 삐걱했고, 삐걱할 때마다 이랑의 목덜미가 조금씩 서늘해졌다. 한서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스물을 들였을 때 스물하나, 서른에 열아홉, 쉰에 열다섯. 다섯이 들 때마다 붉은 물이 한 눈금씩 내려앉았다.

열닷새 아침, 솔재 안쪽 거적들이 마르지 않았다. 밤새 사람 쉰의 숨이 흙바닥 위에 이슬로 앉았고, 해가 떠도 그 이슬이 날아가지 않았다. 옷섶을 만지면 손가락이 축축했다. 막순 할멈은 밤새 기침을 했고, 복실은 새벽부터 이마가 뜨거웠다. 쇠분이 딸의 이마에 젖은 손을 얹었다가 그 손도 젖어 있다는 걸 알고 치마에 닦았다. 치마도 젖어 있었다.

조는 닷새째 올라오지 않았다. 문턱골에서 감자를 얻어 왔지만 길만이 반을 세어 도로 가져갔다. 좌상이 정한 몫이었다.

*

열엿새, 문턱골 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우물가가 아니라 마당이었다. 우물가는 말을 길으러 오는 데고, 마당은 정하러 오는 데였다. 백스물 가운데 걸을 수 있는 어른은 거의 다 나왔다. 길만이 마당 가운데 맷돌 위에 섰다. 할아버지는 마당 가장자리 헛간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곰녀는 늘 하던 대로 가장 좋은 돌을 골라 엉덩이를 붙였다.

“소금 독이 스무날 치 남았다.”

길만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크게 말해야 떨리는 게 덜 들렸다.

“마 객주가 끊은 건 이랑이 때문이다. 이랑이가 그 사람 나무를 받고 그 사람 인부를 불러서다. 그러니 좌상으로서 말한다. 부르기를 그쳐라. 인부 열아홉은 노루목으로 돌려보내라. 그러면 소금이 온다.”

마당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옳다고 했고, 누군가 인부는 무슨 죄냐고 했다. 이랑은 맷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인부들 내려보내면 마 객주 비탈에 세워요. 사흘 세우고 목수 만들어서, 제 자리를 놓게 하고 자기를 부르게 해요. 그러면 노루목에 자릿세 받는 마을이 서요. 할아버지가 제일 무서워하신 거요.”

“그건 노루목 일이다. 여기는 문턱골이야.”

“소금은 노루목에서 와요. 노루목 일이 문턱골 일이에요.”

길만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네가 부른 쉰은? 솔재가 지금 몇 도냐?”

이랑은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다섯이요.”

“열다섯이면 빨래가 안 마른다. 앓는다. 너는 거기서 사람을 들여서 앓게 하고 있어. 영감님이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한 짓을 너는 열흘 만에 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모두 헛간 처마 밑을 봤다. 할아버지는 한참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 마디만 했다.

“봐라, 식는다.”

그 말은 이랑에게 한 말이었는데 마당의 모두가 들었다. 이랑은 목구멍이 막혔다. 할아버지 말이 틀리지 않아서였다.

“셈이 달라요.”

이랑은 한서표를 꺼내 들었다. 손이 떨려 붉은 물이 흔들렸다.

“문턱골은 백스물에 열아홉이에요. 스물마다 한 도예요. 솔재는 쉰에 열다섯이에요. 다섯마다 한 도예요. 같은 느티고 같은 해인데 셈이 달라요. 할아버지 셈이 여기서만 맞는 거예요.”

“셈이 다르면 뭐가 달라지는데?”

곰녀가 물었다. 곰녀는 엉덩이를 한 번 들썩였다.

“아직 몰라요.”

“모르면서 부르냐?”

길만이 말했다. 이랑은 고개를 들었다.

“모르니까 알아낼 거예요. 부르기는 안 그쳐요. 문지방 앞에 서른이 서 있어요. 그중 하나라도 밤에 얼면 비탈에 돌이 하나 늘어요. 문턱골 소금은 제가 어떻게든 구해 올게요.”

길만은 맷돌에서 내려왔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가 곰녀 앞에서 멈췄다.

“곰녀 너는 왜 한마디도 안 하냐? 평소엔 말이 제일 많으면서.”

“엉덩이가 지금 셈하는 중이야.”

마당이 흩어진 뒤 이랑은 헛간 처마 밑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아직 거기 앉아 있었다. 대팻밥 한 줌을 손바닥에서 굴리고 있었다. 마른 대팻밥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났다.

“복실이가 열이 나요. 일곱 살이에요. 하룻밤만 여기 들여 주세요. 스물에 한 도면 한 사람은 티도 안 날 거예요.”

할아버지는 대팻밥을 굴리던 손을 멈췄다.

“하나를 부르면 내일 쉰이 어귀에 선다. 그 쉰 앞에서 너는 또 셈을 하겠지. 한 사람은 티가 안 난다고. 그렇게 해서 식는다. 한 번에 식는 게 아니라 티가 안 나게 식는다.”

“그럼 복실이는요?”

“네가 부른 아이다.”

할아버지는 대팻밥을 바닥에 털고 일어섰다. 이랑은 그 등을 보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오늘 두 번 다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말이 사람을 이렇게 춥게 할 수 있다는 걸 이랑은 처음 알았다.

*

그날 오후 도해가 솔재까지 올라왔다. 지팡이 대신 해 재는 막대를 짚고 왔는데, 비탈 중턱에서 두 번 쉬었다. 도해는 문지방 밖에 서서 안을 오래 들여다봤다. 불리지 않았으니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랑이 부르겠다고 하자 도해는 손을 저었다.

“나까지 들면 열넷이 되오. 늙은이는 밖에서 재도 되오.”

도해는 솔재 둘레를 한 바퀴 걸으며 걸음을 셌다. 바위 셋 사이의 자리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는데, 자리가 끝나는 데는 눈이 녹은 선으로 또렷했다. 걸음을 다 세고 나서 도해는 막대로 눈 위에 네모를 그렸다.

“문턱골 바닥이 얼마나 되오?”

“삼 리에 반 리요. 할아버지 말로는 백이십 마지기래요.”

“여기는 스무 마지기가 안 되오. 여섯에 하나.”

도해는 네모 안에 점을 몇 개 찍었다.

“아가씨 할아버지 셈은 사람을 셌소. 사람만 세면 문턱골에서는 맞소. 그런데 셈은 사람을 땅으로 나눠야 맞소. 넓은 자리는 사람을 많이 먹고도 안 식고, 좁은 자리는 조금만 먹어도 식소. 문턱골이 스물에 한 도면 솔재는 너덧에 한 도가 맞소.”

이랑은 그 셈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맞았다. 다섯마다 한 도.

“그럼 넓은 자리를 찾으면 돼요.”

“찾으시오. 그런데 하나 더 있소.”

도해는 막대를 땅에 꽂고 그림자 끝을 발로 가리켰다.

“해가 해마다 손가락 한 마디씩 낮아지오. 해가 낮아지면 첫 해가 닿는 데가 옮겨 가오. 이 솔재는 열 해 안에 첫 해를 잃소. 저 고개 그림자가 해마다 이 바위 쪽으로 기어 오고 있소. 자리는 늘 모자랄 거요. 늘.”

“그럼 어르신은 왜 해를 재세요? 모자랄 걸 알면서요.”

“어디로 옮겨 가는지 알아야 먼저 가 있을 거 아니오?”

도해는 그 말을 남기고 내려갔다. 이랑은 오래 그 자리에 서서 고개 그림자를 봤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

해 질 녘에 옥례가 문지방 안쪽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옥례는 흙 위에 먹줄로 석 줄을 튕겨 놓고 그 곁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셋째 줄이었다. 한 도를 받은 자는 스물을 부른다.

“이랑 씨, 이거 다시 읽어 봐요.”

이랑은 옆에 앉았다. 흙이 축축했다.

“받은 자가 부른다고 돼 있어요. 놓은 자가 부른다고 안 돼 있어요.”

옥례가 손가락으로 「받은 자」를 짚었다.

“이랑 씨는 문지방 하나 놓고 쉰을 불렀어요. 그러니까 받은 건 우리 쉰이에요. 우리가 부를 차례예요. 그런데 우리는 문지방이 없어요. 서 본 적도 없고요.”

이랑은 흙 위의 글자를 한참 봤다. 제 자리에 스물을 들인다. 그렇게 읽은 건 이랑 자신이었다. 할아버지는 안 부르는 쪽으로 읽었고, 이랑은 한 자리에 채우는 쪽으로 읽었다. 둘 다 부르는 손을 하나로 두었다.

“서요. 내일부터.”

이랑이 말했다.

“언니랑 종구랑 막쇠랑요. 저 위쪽, 해가 먼저 드는 데 있어요. 사흘 서면 보여요.”

“그다음엔 나무가 있어야 하잖아요?”

“알아요.”

그때 비탈 아래에서 누군가 헉헉대며 올라왔다. 곰녀였다. 머리에 작은 항아리를 이고 있었다. 곰녀는 문지방 밖에 항아리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 누런 소금이 반쯤 차 있었다.

“이거 우리 집 독 밑에 묻어 둔 거야. 좌상한테는 비밀이야.”

“아주머니, 문턱골 몫이잖아요?”

“내 엉덩이 몫이야. 내 엉덩이가 그러는데 솔재는 열다섯이래. 열다섯에서 앓는 사람은 짠 걸 먹어야 해. 우리 엄마가 그랬어.”

곰녀는 항아리를 문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곰녀의 손은 넘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위 한 치에서 멈췄지만 항아리는 넘어왔다. 불리지 않은 건 사람뿐이었다.

“좌상이 알면 어떡해요?”

“좌상은 버선 말리느라 바빠.”

곰녀는 돌아서 비탈을 내려갔다. 옥례가 항아리에 손을 넣어 소금을 한 꼬집 집고, 복실이 누운 거적으로 갔다.

이랑은 고개를 들었다. 동쪽으로 문턱골을 감싼 절벽이 저녁 해를 받아 붉었다. 절벽 위는 평평하다고 할아버지가 한 번 말한 적이 있었다. 해가 종일 드는 땅이라고. 그 절벽 끝에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가 하늘을 등지고 서 있었다. 문턱골 사람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는 늙은 느티였다. 삼백 년 넘게 절벽 끝을 붙들고 선 나무라고, 문턱골 아이들은 정월마다 그 밑에 가서 절을 했다. 이랑도 했다. 이랑은 그 가지 수를 셌다. 다 세기 전에 해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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