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19자) · 서이랑 · 동짓달 초닷새
한 짝 값
문지방의 계약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노루목은 솔고개 남쪽 기슭이 강을 만나는 목이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전부 여기서 하나로 모였고, 모인 길목에 마종술의 객주가 섰다. 이랑은 초닷새 아침 해가 한 뼘 오를 때 객주 마당에 들어섰다. 문턱골에서 반나절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발가락이 두 번 제 것이 아니게 됐다가 돌아왔다.
마당은 넓고 소란했다. 소금 섬을 실은 달구지가 셋, 쌀 말을 지고 선 짐꾼들, 얼어 튼 손을 화톳불에 내미는 유민들이 한데 뒤섞였다. 마당 한쪽에 헛간이 있었고, 헛간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 느티 짝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한 발 길이의 누런 나무들, 어떤 것은 못 자국이 넷이고 어떤 것은 여섯이었다. 가장 위에 놓인 짝 옆면에는 칼로 판 획이 보였는데, 획 위를 누군가 끌로 긁어 뭉개 놓았다. 이랑은 걸음을 멈췄다. 석 줄 자리였다.
“쉰둘이오.”
마당 가운데서 늙은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땅에 막대 하나를 꽂아 놓고 그 그림자 끝에 돌을 놓고 있었다. 수염이 허옇고 눈썹이 길어 눈이 반쯤 덮였다.
“마 객주가 남쪽 빈 자리에서 뜯어 온 게 쉰둘이오. 셋째 줄은 다 긁었소. 사는 사람이 읽으면 곤란하니까.”
“어르신은 누구세요?”
“도해요. 해 재는 늙은이. 저 객주 헛간 옆방에 얹혀 사오.”
도해는 그림자 끝에 놓은 돌을 발끝으로 밀어 보더니 혀를 찼다.
“작년 이날보다 손가락 한 마디 길다. 해가 또 낮아졌소. 해마다 이러오.”
이랑의 품을 보던 도해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비옷 앞섶 사이로 한서표 나무판 모서리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건 내가 깎은 거요. 대롱은 남쪽 장인이 불었고, 눈금은 내가 팠소. 서경호라는 젊은이한테 팔았지. 쌀 한 섬 값을 반 섬만 받았소. 사람이 좋아서.”
이랑은 한서표를 꺼내 도해에게 보여 줬다. 도해는 손가락으로 눈금을 쓸어 보고 다시 돌려줬다.
“아비 얼굴은 안 닮았구려. 셈하는 눈은 닮았고.”
*
객주 안방은 더웠다. 화로가 둘, 숯이 벌겋게 쌓여 있었다. 문턱골 사람은 불을 밥 지을 때만 피우는데, 이 방은 숯을 사람 몸 데우는 데 쓰고 있었다. 마종술은 화로 사이에 앉아 이랑에게 꿀물을 권했다. 이랑은 받지 않았다.
“한 짝을 주세요.”
“드리지요. 값을 들어 보시겠소?”
마종술은 꿀물 잔을 제 앞으로 당겨 한 모금 마셨다.
“나를 부르시오.”
“안 부릅니다.”
“서 목수 어른과 똑같이 말하시는구려. 그럼 둘째 값이오. 내 인부 가운데 스물을 부르시오. 내가 고른 스물.”
“제가 고릅니다.”
마종술이 웃었다. 입꼬리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합시다. 셋째 값이오. 봄이 오면 노루목에 한 짝을 놓아 주시오. 내 땅에. 부르는 건 그때 가서 정해도 좋소. 사람 마음은 봄에 바뀌니까.”
이랑은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 셈했다. 부른 스물이 사흘을 서면 목수가 된다. 스물 모두 이 사내에게 빚이 있다. 빚진 목수는 빚 준 사람을 부른다. 할아버지가 마흔한 해 동안 무서워한 것이 화로 너머에 앉아 꿀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 짝을 받으면 그 문을 제 손으로 열게 된다.
“하나 더 있소.”
마종술이 잔을 내려놓았다.
“나무는 내 것이오. 자리는 당신 것이고. 나무를 드리는 게 아니라 놓아 두게 해 드리는 거요. 그 점만 알아 두시오.”
“팔지는 않겠다는 거예요?”
“파는 것보다 좋은 값이 있을 때는 안 파오.”
창밖에서 마당의 유민 하나가 기침을 했다. 오래 끄는 기침이었다. 이랑은 팽덕수의 목에서 나던 가랑잎 소리를 기억했다. 셈이 끝났다. 셈이 끝났는데 손이 떨렸다.
“받겠습니다.”
“증인이 있어야지.”
마종술이 창밖을 향해 도해를 불렀다. 도해가 들어와 두 사람의 말을 한 번씩 다시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해는 방을 나가면서 이랑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저 사람은 약조를 지키오. 그래서 무섭소.”
*
문턱골 어귀에 돌아오니 길만이 문지방 안쪽에 버티고 서 있었다. 좌상의 버선이 오늘도 축축해 보였다. 곰녀는 너럭바위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마 객주 나무를 받았다며?”
“솔재에 놓아요. 여기엔 아무도 안 들여요.”
“여기 안 들이는 건 고맙다. 그런데 이랑아, 소금이 어디서 오느냐? 쌀은? 남쪽 길은 노루목 하나야. 너는 오늘 그 사람 셈 안에 들어갔어. 그 사람이 너한테 무얼 달라고 하면 문턱골이 같이 값을 치른다.”
길만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이랑은 그래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곰녀가 바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좌상, 소금 걱정은 소금 끊기면 해. 지금 끊긴 거 아니잖아?”
“끊기고 나서 걱정하면 늦어.”
“그럼 미리 짜게 먹어 둬.”
길만은 곰녀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고 이랑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영감한테는 말했느냐?”
“할아버지는 안 물으세요.”
“안 묻는 게 제일 크게 묻는 거야. 너도 알잖아?”
*
두만이 짝 하나를 등에 지고 솔재까지 올라왔다. 한 발 길이의 느티가 두만의 등에서 소 멍에처럼 보였다. 비탈을 오르는 내내 두만은 이 나무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물었고, 옥례는 삼백 년 묵어서 그렇다고 대답했고, 두만은 삼백 년이면 좀 가벼워질 때도 됐다고 투덜거렸다.
놓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문지방은 해를 등지고 놓는다. 해가 어디서 올라오는지 알아야 등을 돌릴 수 있었다. 전날 저녁 이랑은 도해가 하던 대로 막대 하나를 꽂아 두었고, 옥례는 해가 넘어가는 쪽에 돌을 놓아 두었다. 뜨는 자리는 지는 자리의 맞은편에서 조금 남쪽으로 비껴 있었다. 동짓달 해는 남쪽으로 기운 채 올라왔다.
초엿새 동틀 녘, 바위 셋이 둘러선 땅 앞에서 이랑과 옥례는 흙을 팠다. 언 땅은 곡괭이 끝을 튕겨 냈다. 한 뼘을 파는 데 해가 뜨기 전 어둠이 다 들었다. 옥례가 숯을 깔고, 이랑이 짝을 눕혔다. 결이 해 쪽으로 누웠는지 두 사람이 번갈아 손바닥으로 쓸어 봤다. 옥례가 먹줄통 실을 당겨 나무 위에 튕겼다. 탁, 검은 줄 하나가 곧게 앉았다.
“수평이에요.”
해가 솔고개 위로 올라왔다. 첫 햇살이 짝의 등을 비추고 넘어 그 안쪽 땅에 닿았다. 이랑은 숨을 멈추고 봤다. 짝 안쪽의 눈이 가장자리부터 투명해지더니 물이 되어 흙으로 스몄다. 바위 셋 사이가 검은 흙이 됐고, 그 흙에서 김이 올랐다. 이번에는 이랑만 보는 김이 아니었다. 인부들이 웅성거렸다. 두만이 입을 벌렸다. 이랑은 한서표를 짝 안쪽 흙 위에 세웠다. 붉은 물이 대롱을 타고 올라가 스물다섯 눈금에 멈췄다.
이랑은 짝 안으로 들어갔다. 발이 아무 걸림 없이 넘어갔다. 놓은 사람은 부름 없이 넘는다. 안쪽 공기가 얼굴을 감쌌고, 얼었던 뺨이 녹으면서 따가웠다. 돌아서니 문지방 밖에 스물아홉과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누구부터 부를지 이랑은 비탈을 오르는 내내 정해 두었다. 정해 둔 이름이 목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르는 것은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었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어떻게 이름을 불렀는지 이랑은 기억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깨금.”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깨금아, 들어와.”
깨금은 한 발을 들어 깨금발로 문지방을 넘었다. 나무가 한 번 삐걱했다. 아이는 안에 내려서자마자 발을 굴러 보고, 흙을 손바닥으로 짚어 보고, 이랑을 올려다봤다.
“누나, 엄마가 부르던 이름 아닌데도 넘어가지네요.”
“네 이름이잖아.”
“그럼 이게 이제 내 이름이에요.”
깨금이 웃었다. 이랑은 그 웃음을 오래 보고 싶었지만 다음 이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옥례.”
옥례가 넘었다. 삐걱.
“막순 할머니. 강서방. 종구. 막쇠. 쇠분 아주머니. 복실.”
한 사람씩 넘었다. 막순은 넘자마자 주저앉아 흙에 손을 묻고 울었다. 복실은 어미 치맛자락을 잡고 넘었다. 이랑은 기침이 긴 사람, 발가락이 까맣게 된 사람, 제일 늙은 사람부터 불렀다. 마종술이 고르라고 했으면 고르지 않았을 사람들이었다. 스무 번째 이름을 부르고 나서 이랑은 입을 닫았다. 문지방 밖에 인부 열이 남았다. 두만이 그 곁에 서서 제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물 가운데 하나는 마 객주 인부가 아니던데요.”
두만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깨금은 누구 것도 아니야.”
“그럼 어른한테 그렇게 전할게요. 어른이 셈이 빠르다고 칭찬하실 거예요. 칭찬하실 때가 제일 무서워요.”
두만은 남은 열을 데리고 비탈을 내려갔다.
*
한낮의 솔재는 이상한 마을이었다. 집은 하나도 없었고 거적 스무 장이 흙바닥에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거적 위에 누워 등을 지지다가, 일어나 앉아 발가락을 주무르다가, 다시 누웠다. 막순은 문턱골에서 얻어 온 솥을 바위 사이에 걸고 조밥을 지었는데, 불을 조금만 피워도 김이 금방 올랐다. 밖에서라면 한 식경 걸릴 물이 여기서는 반 식경 만에 끓었다.
깨금은 한나절 내내 문지방을 드나들었다. 밖으로 깨금발로 뛰어나가 눈을 한 움큼 쥐고, 안으로 뛰어 들어와 눈이 손에서 녹는 것을 구경했다. 넘을 때마다 문지방은 삐걱하지 않았다. 삐걱은 처음 한 번뿐이었다.
“누나, 이제 안 울어요. 나무가.”
“한 번 불렸으니까.”
“그럼 다음엔 누구 불러요?”
이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남은 인부 열의 얼굴이 떠올랐다. 옥례가 조밥 그릇을 들고 와 곁에 앉았다. 옥례는 밥을 반쯤 먹고 먹줄통을 꺼내 실을 감았다 풀었다 했다.
“후회해요?”
“셈하는 중이에요.”
“셈 끝나면 알려 줘요. 저는 아버지 돌 앞에 가서 말해 줄 게 있어서요. 딸이 들어갔다고요.”
해가 기울 무렵 한서표는 스물하나를 가리켰다. 이랑은 대롱을 두 번 들여다봤다. 문턱골에서는 스물이 들면 한 도가 내렸다. 여기서는 스물이 네 도를 먹었다. 할아버지의 셈이 여기서는 맞지 않았다.
비탈 아래에서 발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였다. 곰 털 덧옷은 곰녀에게 뺏긴 채였고, 얇은 누비옷 어깨에 눈이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지방 한 걸음 앞에서 섰다. 이랑이 놓은 문지방이었다. 할아버지의 발은 넘어오지 않았다. 누구도 할아버지를 부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짝의 결을 내려다봤다. 먹줄 자국을 봤고, 숯을 깐 흙을 봤다. 오래 봤다. 문지방 안쪽에서 번지는 온기가 할아버지 얼굴에 닿았을 텐데도, 할아버지는 한 발도 다가서지 않고 제 그림자가 짝에 걸치지 않게 비켜서 있었다.
“결은 제대로 눕혔구나.”
“옥례 언니가 가르쳐 줬어요.”
“이제 너도 부르는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팔리는 것도 너부터다.”
이랑은 대답 대신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려고 입을 열었다. 서만석. 한 번도 소리 내 본 적 없는 이름이 혀끝에서 걸렸고, 그사이 할아버지는 돌아서 비탈을 내려갔다. 눈 위에 난 발자국이 하나씩 해 그림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