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04자) · 문턱
이사회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수요일 첫차. 가운데 자리에 두유 두 개. 그 옆 선반에 네 번 접은 종이 한 장. 준호가 올려놓은 것이었다. 탄원서 사본. 윤병철 씨가 매달 첫째 주에 하던 것. 오늘은 첫째 주가 아니었다. 준호가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요.」
아무도 그 종이를 챙기지 않았다. 세 정거장 뒤, 종점까지 그 종이가 갔다. 누가 펴 봤는지는 모른다.
수요일 오후 두 시, 본관 십삼 층 대회의실. 서하대학교병원 이사회. 복도에 보호자석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접이식 의자 서른 개. 다 찼다. 서 있는 사람이 스무 명. 칠 층 보호자들, 칠십삼 호 아들, 김태호 씨, 오금례 씨. 편의점 점장도 왔다. 학부모 셋이 민정 선생을 따라왔다. 그리고 첫차 3-4호차 여섯.
여섯이었다. 가운데 자리가 왔다. 휠체어로. 재석 씨가 밀었다. 윤병철 씨는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환자복 위에. 무릎에 회색 가방. 손잡이 닳은. 원무과 분실물 보관함에서 재석 씨가 신분증 들고 찾아온 것. 지퍼가 반만 잠겨 있었다.
한 시 오십 분, 대회의실 앞 복도 입구에서 보안 요원 둘이 우리를 막았다. 상임이사 지시라고 했다. 이사회는 비공개라고. 보호자석은 명단에 있는 보호자만. 칠 층 보호자 열한 명 이름만 명단에 있었다. 칠십삼 호 아들 이름은 없었다. 이미 전원 갔으니까.
동진 씨가 넥타이를 다시 맸다. 세 번 만에.
“의료기관 운영 관련 이사회 안건에 이해관계자 참관을 막는 규정이 정관에 있습니까. 보여 주세요.”
보안 요원이 무전을 눌렀다. 한참 뒤에 대답이 왔다. 무전 너머 목소리. 차명훈이었다. 「들여보내. 전부. 의자 모자라면 세미나실에서 가져와.」 보안 요원 둘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비켰다. 한 명은 세미나실로 의자를 가지러 갔다. 준호가 따라가서 같이 날랐다. 의자 열 개.
대회의실 긴 탁자에 이사 아홉. 탁자 위에 생수병과 두꺼운 서류철. 가운데 이사장. 칠십 대. 백발. 그 옆에 재단 상임이사. 행정실장의 윗사람이라고 동진 씨가 귀띔했다. 차명훈은 탁자 끝 발표석에 서 있었다. 안경을 코끝에.
차명훈이 표를 띄웠다. 스크린 빛이 그의 안경에 비쳤다. 설명회 때와 같은 표. 적자 구십억. 상급종합병원 지정. 소아 혈액종양 병동. 그리고 표 한 장이 더 있었다. 설명회 때 없던 것.
협력 의료기관 전원 환자 추적. 최근 이 년 칠 층에서 새봄요양병원으로 전원된 환자 스물여섯 명. 전원 후 삼 개월 내 사망 아홉 명. 전원 전 칠 층 평균 대비 세 배.
차명훈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정확했다. 설명회 때와 같았다. 내용만 달랐다.
“이 숫자는 제가 이 년 전에 봤어야 하는 숫자입니다. 저는 협력 협약을 결재하고 나서 한 번도 전원 이후를 세지 않았습니다. 편해서였습니다. 그 사이 새봄 대외협력실장이 우리 병원 환자 명단을 사고, 보호자들에게 현금을 줬습니다. 경찰 수사 중입니다. 저도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사들이 웅성거렸다. 상임이사가 손을 들었다.
“차 부원장. 그건 개인 일탈이고, 오늘 안건은 칠 층 병동 운영 종료 확정입니다. 적자 구십억은 그대로예요.”
“적자는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닫자고 말씀드립니다.”
복도 보호자석이 술렁였다. 오금례 씨가 일어서려는 걸 옆 사람이 붙잡았다.
“다만 전부는 아닙니다.”
차명훈이 다음 표를 띄웠다. 칠 층 서른여덟 병상 가운데 열아홉. 장기 중증 환자 거점 병상으로 존치. 나머지 열아홉은 공공 요양병원 두 곳과 새 협약, 보호자 동의 절차 병원이 직접 관리, 외부 알선 금지. 존치 병상 적자 사십오억 가운데 이십억은 소아 병동과 묶어 시 보조금 사업으로 신청.
“제 계산을 한 번 바꿨습니다. 소아 병동을 지키려고 칠 층을 전부 닫는 계산에는 전원 이후가 빠져 있었습니다. 빠진 칸을 넣으니 답이 달라졌습니다. 이 계산에 제일 먼저 빠진 칸을 알려 준 사람이 오늘 보호자 발언을 하겠습니다.”
상임이사가 탁자를 두드렸다.
“부원장, 이건 사전에 보고된 안이 아니에요. 보호자 발언은 삼 분입니다. 보호자 대표 한 분만.”
재석 씨가 휠체어를 밀었다. 대회의실 문턱에서 휠체어 바퀴가 걸렸다. 문턱이 이 센티미터. 재석 씨가 들어 올리려는데 안 됐다. 나는 그 문턱을 안다. 이십이 년 동안 그 문턱 앞을 밀대로 닦았다. 왼쪽 끝이 조금 낮다. 나는 휠체어 왼쪽 바퀴를 그쪽으로 틀었다. 넘어갔다.
윤병철 씨가 발표석 옆에 섰다. 섰다. 휠체어에서. 산소 줄을 코에서 뺐다. 재석 씨가 도로 꽂아 주려 했다. 재석 씨가 붙잡으려는 걸 손으로 막았다. 왼쪽 무릎을 한 번 짚고. 이십이 년 동안 첫차에서 내릴 때마다 하던 것처럼. 무릎에 가방을 대신해 민정 선생의 발언문을 들고 있었다. 맨 위에 준호가 쓴 제목. 세 정거장.
그는 발언문을 펴지 않았다.
“칠십이 호 정숙희 남편 윤병철입니다. 이십이 년 동안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첫차를 탔습니다. 앞의 십사 년은 버스 차고지로, 뒤의 팔 년은 이 병원으로. 같은 세 정거장입니다.”
이사장이 안경을 벗었다.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 칸에는 매일 여섯 명이 탔습니다. 청소하는 분, 편의점 야간조 청년, 학원 선생님, 밤새 서류 쓰는 회사원, 칠 층 간병인, 그리고 저. 이십이 년 동안 아무도 서로 이름을 안 물었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여기서는 매일 물어보니까요. 어떠세요,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는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런데 제가 쓰러지고 나니까, 이름도 모르던 그 다섯이 제 아내 옆에 앉아서 신문을 읽어 줬습니다. 청소하는 분이 해고당하면서. 간병인이 제명당하면서. 편의점 청년이 복사비를 월급에서 까이면서. 이십이 년 동안 말 한마디 안 한 사람들이요.”
대회의실이 조용했다. 복도 보호자석도.
“이사님들. 칠 층 서른여덟 병상은 서른여덟 칸입니다. 표로 보면 칸입니다. 그런데 그 칸마다 누가 매일 아침 세 정거장을 타고 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그 칸을 지우시면 그 세 정거장이 없어집니다. 새봄은 우리 집에서 세 정거장이 아니라 한 시간 반입니다.”
그는 발언문을 접었다. 두 번. 같은 크기로. 팔 년 동안 강제 전원 통지서를 접던 손으로.
“저는 제 아내 전원 막으려고 다른 가족 동의서 세 장을 훔쳤습니다. 그것도 여기 적어 두셨으면 합니다. 저도 사람을 칸으로 셌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칸으로 세면 쉽습니다. 사람으로 세면 어렵습니다. 어려운 쪽으로 세 주십시오.”
그는 휠체어에 앉았다. 재석 씨가 산소 줄을 다시 꽂아 줬다. 삼 분이 조금 넘었다. 상임이사가 시계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동진 씨 휴대폰이 진동했다. 동진 씨가 화면을 보고 복도 쪽 우리에게 돌렸다. 뉴스 속보. 서울 서하구 요양병원 환자 알선 브로커 구속. 새봄요양병원 관계자 두 명 입건.
복도에서 누가 박수를 쳤다. 칠십삼 호 아들이었다. 안전화에 시멘트가 그대로 묻은. 혼자 치다가, 오금례 씨가 따라 쳤다. 김태호 씨가. 편의점 점장이. 학부모들이. 대회의실 안까지 소리가 들어갔다. 상임이사가 문 쪽을 봤다.
이사회는 사십 분 더 걸렸다. 복도에서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준호는 서서 졸다가 영애 씨한테 옆구리를 찔렸다. 표결. 차명훈 안. 찬성 여섯, 반대 둘, 기권 하나. 칠 층 열아홉 병상 존치. 열아홉 병상 공공 요양병원 전원, 병원 직접 관리.
회의실 문이 열리고 차명훈이 나왔다. 복도 보호자석 앞에서 멈췄다. 명단을 들고 있었다. 존치 병상 열아홉. 그가 칠십이 호를 가리켰다.
“칠십이 호 존치입니다. 칠십일 호도요.”
오금례 씨가 주저앉았다. 복도 바닥에. 앞치마 대신 외투를 입은 채로. 영애 씨가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어깨를 감쌌다. 무릎 붕대 한 다리로.
열아홉 명은 떠난다. 공공 요양병원으로. 브로커 없이. 그래도 떠난다. 나는 그 숫자를 셌다. 열아홉. 절반이었다. 절반은 남고 절반은 간다. 이십이 년 동안 로비를 닦으며 배운 게 있다면 이거다. 바닥은 한 번에 다 안 마른다. 절반씩 마른다.
차명훈이 나에게 왔다.
“조순례 씨. 병원 환경미화 직접 고용 정원이 내년에 세 자리 생깁니다. 용역 말고 병원 소속. 지원하시겠습니까?”
나는 차명훈을 봤다. 코끝의 안경.
“생각해 볼게요. 대신 한빛클린 스물한 명 재계약은 그대로 해 주세요. 제 자리 때문에 누구 빼지 말고요.”
“그건 약속하겠습니다.”
그가 돌아서려다 말했다.
“그 문턱 왼쪽이 낮은 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닦아 봤으니까요. 이십이 년.”
그날 저녁 여섯 시, 재석 씨가 윤병철 씨 휠체어를 밀고 동관 칠 층으로 갔다. 쓰러진 뒤 처음이었다. 순환기내과 간호사가 삼십 분만 허락했다. 산소통을 휠체어 뒤에 매달고.
칠십이 호 문 앞에서 윤병철 씨가 손을 들었다. 멈추라고. 재석 씨가 멈췄다. 그는 한참 문 앞에 있었다. 문 너머에서 영애 씨가 신문을 읽는 소리가 났다. 사투리가 섞인. 사회면. 숙희 씨가 싫어한다던 그 사투리로.
윤병철 씨가 웃었다. 소리 없이.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두 번.
영애 씨가 문을 열었다. 신문을 든 채로. 윤병철 씨를 보고 신문을 떨어뜨렸다.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문틀을 한 손으로 잡고. 가족이 아니니까. 그래도 문이 열려 있어서 다 보였다.
재석 씨가 휠체어를 침대 옆으로 밀었다. 숙희 씨가 눈을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윤병철 씨가 영애 씨가 떨어뜨린 신문을 주웠다. 무릎 위에 펼쳤다. 사회면. 그리고 읽었다. 버스 안내 방송처럼. 또박또박. 목이 쉬어서 두 문장마다 숨을 골랐다.
“오늘 서울 서하구, 요양병원 환자 알선 브로커 구속.”
숙희 씨가 천장에서 눈을 돌렸다. 아주 천천히. 창가 쪽이 아니라 휠체어 쪽으로. 팔 년 동안 새벽 여섯 시에 그 목소리가 나던 쪽으로.
윤병철 씨는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버스 노선 변경 기사를 읽었다. 백이십칠 번. 그 기사를 읽을 때 숙희 씨 입술이 움직였다. 영애 씨가 복도로 나와 내 옆에 섰다. 문을 반쯤 닫으며.
“둘만 두죠. 삼십 분.”
우리는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청소원도 간병인도 아닌 채로. 칠 층 복도 창으로 저녁 버스가 지나갔다. 백이십칠 번이었는지는 모른다. 너무 멀어서 번호가 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