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4자) · 동의서 세 장
서명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윤병철 씨는 사흘 뒤 일반 병실로 올라왔다. 본관 육 층, 순환기내과. 창가 침대. 커튼이 반쯤 걷혀 있었다. 창밖으로 동관이 보였다. 칠 층 창문들이 한 줄로. 그는 침대 등받이를 세워 달라고 해서 하루 종일 그 창을 봤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칠십이 호 창을.
토요일 오전 열한 시, 우리 다섯이 병실에 갔다. 준호, 민정 선생, 동진 씨, 영애 씨, 나. 병문안 시간. 윤재석 씨가 문을 열어 줬다. 병실에서 소독약과 귤껍질 냄새가 났다. 미국에서 온 아들은 아버지 침대 옆 간이 의자에서 나흘째 자고 있었다. 수염이 까칠하게 자라 있었다.
윤병철 씨는 우리를 봤다. 한 사람씩. 오래. 첫차에서는 옆이나 건너편이라 한 번도 정면으로 못 본 얼굴들을. 그리고 한 사람씩 불렀다. 이름이 아니라 자리로.
“문 옆 첫 자리. 그 옆. 건너편 세 번째. 그 옆. 끝자리.”
준호가 먼저 웃었다. 웃다가 코를 훌쩍였다. 콧물이 났다.
“아저씨, 저 준호예요. 이름 있어요.”
“알아. 이제 알지. 이십이 년 동안 안 물었는데, 누워 있는 동안 영애 씨가 다 알려 줬어.”
그는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말끝마다 숨을 한 번씩 골랐다. 관을 오래 물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또박또박했다. 버스 안내 방송처럼.
“준호 군. 작년 십일월 삼일에 첫차에서 울었지. 창에 머리 박고.”
준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날 두유를 두 개 샀어. 하나는 숙희 주려고, 하나는 너 주려고. 네 가게에서 산 거야. 네가 계산해 줬어.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근데 첫차에서 네 옆에 가서 건넬 수가 없더라. 이십이 년 동안 그 칸에서 아무도 안 그러니까. 나도 못 했어. 두 개 다 숙희한테 가져갔지. 숙희가 입술로 맛만 보고 나머지는 내가 마셨어. 두 개를. 그날 배불렀다.”
준호가 침대 난간을 잡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아저씨. 그 뒤로 두 번 더 샀잖아요. 크리스마스이브랑 삼월.”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순례 씨가 무릎을 절었어. 삼월에는 민정 선생이 시험지를 떨어뜨려서 칸 바닥에 다 흩어졌지. 다들 주워 주는데 나만 못 주웠어. 가방 무릎에 놓고. 그날도 두 개 샀어. 못 줬지.”
민정 선생이 입을 가렸다. 그날을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그날 시험지 하나가 가운데 자리 밑으로 들어갔어요. 끝내 못 찾았어요. 학생 거라 난리 났는데.”
“내 발밑에 있었어. 내가 밟고 있었지. 내릴 때 발 떼면서 봤어. 주워서 선반에 올려 두고 내렸어. 그다음 날 선생님이 선반에서 찾아 가더라.”
민정 선생이 웃다가 울었다. 「저는 그날 누가 선반에 올려놨는지 몰라서, 첫차 귀신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귀신은 무슨. 무릎 짚는 영감이지.”
영애 씨가 옆에서 코를 훌쩍이다가 웃었다.
동진 씨가 서류 봉투를 꺼냈다. 탄원서. 서명이 삼백십사 개. 그리고 진술서 양식.
“윤병철 씨. 로비에서 쓰러지시기 전에 마 실장이랑 무슨 말이 오갔는지, 진술해 주실 수 있으세요. 경찰 수사에 들어가요.”
윤병철 씨는 탄원서를 받아 들었다. 링거 꽂힌 손으로. 한 장씩 넘겼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병실에서 제일 컸다. 자기 손글씨가 민정 선생 문장으로 바뀐 것을, 서명 칸이 찬 것을. 편의점 점장, 백반집 오금례, 칠십삼 호 아들. 관계 칸에 적힌 말들. 첫차 3-4호차 옆자리. 그 줄에서 손이 멈췄다. 내 이름이었다.
“순례 씨. 이십이 년 동안 내 종이 열한 장 가져간 사람이 순례 씨였구나.”
“네. 안 펴 보고 사물함에 넣었어요.”
“알아. 영애 씨가 그랬어. 그래도 버리지는 않았잖아.”
그는 탄원서를 무릎에 놓았다. 가방처럼. 이십이 년 동안 첫차에서 하던 자세였다. 옆자리에 안 놓고, 무릎에.
“진술하기 전에 먼저 말할 게 있어. 이거 모르고 서명받으면 안 돼.”
병실이 조용해졌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커튼 너머에서 기침을 했다. 두 번. 그리고 조용해졌다.
“이 년 전에, 칠 층 폐쇄 얘기 처음 나왔을 때. 간호사실 서류함에서 동의서 세 장을 빼 왔어. 칠십삼 호, 칠십오 호, 칠십칠 호. 보호자들이 벌써 써서 낸 전원 동의서. 그게 들어가면 칠 층 환자 수가 줄고, 환자 수가 줄면 병동 닫는 명분이 커지니까. 빼 와서 집에 뒀어. 병원은 보호자들이 안 낸 줄 알았지. 그 사람들은 이 년 동안 왜 전원이 안 되냐고 원무과에 전화했어. 칠십삼 호 아들이 이백만 원 기다리다 월세가 밀렸어. 내가 그랬어.”
아무도 말을 못 했다. 재석 씨가 아버지를 봤다.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그 세 장, 아직 집에 있어. 서랍에. 가져다 드려야지. 병원에, 그 가족들한테. 벌받을 거면 받고.”
동진 씨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건 따로 처리해요. 사문서 은닉이에요. 병원이 고소할 수도 있고요.”
“알아.”
“그래도 진술하시겠어요.”
“하지. 그 마 실장이 순덕 씨는 원래 오래 못 살 분이었다고 했을 때, 나는 동의서 세 장 생각을 했어. 나도 사람을 서류로 셌거든. 칠 층 환자 수. 머릿수. 그 사람이랑 나랑 다른 건 방향뿐이야. 그 생각 하다가 가슴이 조였어.”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과일 바구니가 먼저 들어왔다. 그 뒤로 갈색 가죽 점퍼. 마 실장. 금목걸이. 향수.
“아이고, 윤 선생님. 깨셨다는 소식 듣고 왔습니다.”
재석 씨가 일어섰다. 키가 아버지보다 한 뼘 컸다. 동진 씨가 휴대폰 녹음을 켰다. 영애 씨가 무릎 붕대를 한 다리로 침대 앞을 막았다.
마 실장은 과일 바구니를 협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친절하게.
“윤 선생님, 좋은 소식 가져왔어요. 새봄 오 층 특실이 하나 비었어요. 창이 제일 큰 방. 숙희 씨 모시면 제가 개인적으로 신경 쓸게요. 이송비, 입원비 다 새봄에서. 대신 이번에 경찰에 들어간 거, 오해라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 동의서 건도 제가 병원에 말 안 할게요. 그 세 장, 윤 선생님이 가져간 거 저도 알거든요.”
윤병철 씨가 마 실장을 봤다. 이십이 년 동안 첫차 창밖을 보던 눈으로. 오래. 병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마 실장. 우리 숙희는 팔 년 동안 칠 층 창밖밖에 못 봤어. 창이 작아서 하늘이 손바닥만 해. 그래도 거기서 버스가 보여. 백이십칠 번. 내가 몰던 거. 새봄 특실 창에서는 백이십칠 번이 안 보여.”
그는 탄원서를 집어 들었다. 볼펜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동진 씨가 줬다. 그는 보호자 서명 칸 맨 위, 비워 둔 첫 줄에 이름을 썼다. 윤병철. 관계, 칠십이 호 정숙희 남편. 그 아래 한 줄을 더 썼다. 전원 동의서 세 장 은닉한 사람.
그리고 탄원서를 마 실장 가슴께에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사진 찍어. 증거로. 나도 증거야.”
마 실장이 뒷걸음쳤다. 구두 굽이 병실 바닥에서 끽 소리를 냈다. 그때 병실 문 앞에 차명훈이 섰다. 보안 요원 둘과 함께.
“마 실장님. 오늘부로 우리 병원 출입 금지입니다. 새봄 협약 해지 통보 오늘 오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행정실장은 대기발령입니다. 나가 주십시오.”
마 실장이 차명훈을 봤다. 웃으려고 했다. 금니가 반쯤 보였다가 사라졌다.
“부원장님, 이 년 전에 협약서 결재한 게 누군지 잊으셨어요?”
“안 잊었습니다. 그것도 경찰에 제가 냈습니다.”
마 실장은 과일 바구니를 두고 나갔다. 보안 요원들이 따라갔다. 차명훈이 병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윤병철 씨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오래.
“윤병철 씨. 동의서 세 장 건은 병원이 고소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칠 층 폐쇄는 이사회 안건으로 다시 올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저는 여전히 닫자고 할 겁니다. 소아 병동 때문에. 그 자리에 오셔서 반대하십시오. 탄원서 들고.”
윤병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협탁 위 과일 바구니를 가리켰다.
“그건 누가 치워.”
모두가 서로를 봤다. 과일 바구니 리본에 새봄요양병원 로고가 박혀 있었다.
“제가요.”
나였다. 청소원 조끼는 없었다. 손은 있었다. 이십이 년 동안 남이 두고 간 걸 치운 손. 오늘은 내가 치우겠다고 먼저 말했다.
과일 바구니를 복도 휴게실로 옮기고 오는데, 병실 앞 복도 의자에 재석 씨와 윤병철 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윤병철 씨는 휠체어에. 재석 씨는 의자에. 둘이 동관 쪽 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고 복도 모퉁이에 섰다.
“아버지. 동의서 세 장, 그거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너는 날씨 얘기만 했잖아.”
“아버지가 날씨 얘기만 했잖아요.”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윤병철 씨가 말했다.
“칠 층 창에서 백이십칠 번 버스가 보여. 네 엄마가 쓰러지던 날도 그 버스 몰고 있었어. 종점에서 전화 받았지. 버스를 차고지에 대 놓고 뛰었어. 그 뒤로 버스를 못 몰았어. 운전대 잡으면 손이 떨려서.”
“그래서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첫차를 계속 탔지. 차고지 대신 병원으로. 같은 세 정거장이야. 차고지랑 병원이. 우습지.”
재석 씨가 아버지 휠체어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동관 창을 봤다. 칠 층. 백이십칠 번이 보인다는 그 창.
다음 날 오전, 재석 씨가 아버지 집 서랍에서 동의서 세 장을 가져왔다. 원무과에 하나씩 냈다. 그리고 칠십삼 호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동진 씨가 번호를 알려 줬다. 통화는 짧았다고 했다. 칠십삼 호 아들이 처음에는 소리를 질렀다고. 이 년 동안 원무과에 몇 번을 전화했는지 아느냐고. 그 사이 월세가 밀려서 보증금을 까먹었다고. 재석 씨는 듣기만 했다고. 다 듣고 나서 그 월세 석 달 치를 보내겠다고 했다고. 칠십삼 호 아들이 한참 조용하다가 말했다고. 「돈은 됐고요. 이사회 날 저도 가요. 탄원서에 저 서명한 거 아시죠. 오늘 보냄이라고 적은 거.」
월요일 첫차. 가운데 자리에 두유 두 개. 민정 선생이 종이 뭉치를 꺼냈다. 이사회 발언문. 윤병철 씨가 할 것.
“삼 분이래요. 보호자 발언 시간. 삼 분에 팔 년을 넣어야 돼요. 첨삭하다 밤샜어요.”
준호가 그 종이 맨 위에 매직으로 제목을 붙였다. 세 정거장. 민정 선생이 지우려다 말았다. 동진 씨가 말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노동위원회에 어제 접수했어요. 순례 씨 거.」 영애 씨는 보자기 위에 손을 겹치고 창밖을 봤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나는 시계를 봤다. 다섯 시 오십일 분. 병철 씨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