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04자) · 일월 이일

가운데 자리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십이월은 천천히 왔다. 그리고 한꺼번에 왔다. 첫차 창밖이 다섯 시 사십 분에도 여전히 캄캄해졌다. 동지로 가는 길이었다.

칠 층 열아홉 명이 공공 요양병원 두 곳으로 옮겨 갔다. 병원 원무과가 보호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 만나서. 명함 돌리는 사람 없이. 옮기는 날마다 영애 씨가 짐을 쌌다. 속옷, 보습 크림, 손수건. 이번에는 크림을 두 통씩 넣었다. 한 통은 환자 것, 한 통은 그 병원 간병인한테 주라고. 쪽지를 붙여서. 이 분은 왼쪽 팔꿈치가 약해요. 이 분은 크림을 손가락 사이에 발라야 좋아하세요. 영애 씨 글씨는 둥글고 작았다. 열아홉 장.

새봄으로 갔던 칠십삼 호 할아버지도 공공 요양병원으로 다시 옮겼다. 아들이 월세 석 달 치 받은 돈으로 이송비를 냈다고 했다. 재석 씨가 보낸 돈. 아들은 그 병원이 집에서 세 정거장이라고 좋아했다.

마 실장은 기소됐다. 의료법 위반, 폭행. 새봄요양병원 이사장도 같이. 서하대병원 행정실장은 해임됐다. 차명훈은 감봉 석 달. 협약 결재 책임. 그는 징계 통보를 받은 날에도 칠 층 존치 병상 보조금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고 동진 씨가 전했다. 계산하는 사람은 징계 중에도 계산을 한다.

한빛클린은 내 계약 만료를 철회했다. 노동위원회 조정 기일 사흘 전에. 동진 씨가 조정 신청서 사본을 한빛클린 본사에 보낸 다음 날이었다. 구 소장이 전화를 했다. 조 여사님, 다시 나오세요. 로비.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행정실에서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스물한 명이 연판장 돌렸어요. 박 언니가 제일 먼저 서명했어요.

박 여사님. 대기실에서 그냥 서명하라고 했던 사람. 박 여사님은 연판장 맨 위에 서명하고 옆에 한 줄을 적었다고 했다. 순례 없으면 로비 창가 쪽 줄이 삐뚤어져요. 나보다 두 살 위. 십오 년 같이 로비를 닦은.

나는 한빛클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차명훈이 말한 병원 직접 고용 환경미화 세 자리에 지원했다. 일월 이일 첫 출근. 구역은 동관. 칠 층 포함. 한빛클린 스물한 명은 재계약됐다. 약속대로. 구 소장은 내가 마지막으로 대기실에 짐을 가지러 갔을 때 사물함 십칠 번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조 여사님, 스티커 자국은 안 지웠어요. 다음 사람이 물어보면 얘기해 주려고.」

영애 씨는 간병 협회 제명이 풀리지 않았다. 대신 윤재석 씨가 개인 간병 계약을 했다. 숙희 씨 전담. 재석 씨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영애 씨에게 계약서를 내밀면서 관계 칸에 뭐라고 쓸지 물었다고 한다. 영애 씨는 이웃이라고 했다. 재석 씨는 그렇게 적었다.

준호는 편의점 점장이 되기로 했다. 지금 점장이 요양원 계신 아버지 곁으로 이사를 간다고. 준호한테 가게를 넘기겠다고 했다. 준호는 점장 되면 야간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한참 고민하다가, 첫차는 계속 타겠다고 했다. 새벽 다섯 시 반 마감 정산은 점장이 하는 거라서.

민정 선생 어머니는 민정 선생 집 근처 요양원으로 옮겼다. 걸어서 십 분. 민정 선생은 새벽 수업 전에 들른다고 했다. 첫차를 타기 전에. 그래서 이제 첫차 출발역이 아니라 두 정거장 앞에서 탄다. 우리 칸에는 여전히 탄다.

동진 씨는 노무사 이차 시험을 다시 보기로 했다. 세 번 떨어진 시험이라고. 넥타이는 이제 첫차에서 안 푼다고 했다. 풀고 매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윤병철 씨는 십이월 둘째 주에 퇴원했다. 지팡이를 짚고. 재석 씨가 고른 지팡이였다. 손잡이가 버스 기어봉처럼 둥근 것. 윤병철 씨가 그걸 보고 한참 웃었다고 했다. 왼쪽 무릎은 짚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팡이가 대신 짚으니까.

퇴원하던 날, 윤병철 씨가 본관 로비에 들렀다. 지팡이를 짚고. 나는 그날 한빛클린 마지막 짐을 가지러 왔다가 그를 만났다. 그는 행정실 앞 대리석 바닥에 서 있었다. 쓰러진 자리.

“순례 씨. 여기였지.”

“네. 저는 그때 저쪽 창가에 있었어요. 이어폰 볼륨 올리고. 못 봤어요. 죄송해요.”

윤병철 씨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형광등이 대리석에 비쳤다.

“나 여기 누워 있을 때 바닥이 반짝였어. 누가 방금 닦은 바닥. 뺨이 닿았는데 차갑고 깨끗했어. 가슴이 조여서 숨을 못 쉬는데, 그 생각이 들더라. 이 바닥 누가 닦나. 이십이 년 동안 이 병원에 다니면서 한 번도 안 한 생각이야.”

그는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한 번 톡 쳤다. 로비가 그 소리를 크게 돌려줬다. 대리석이라.

“순례 씨가 닦은 바닥에 누웠네. 그러니까 순례 씨가 날 받은 거야. 못 봤어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로비 대리석에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이십이 년 동안 내려다보기만 한 바닥에.

십이월 셋째 주 토요일, 오금례 씨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다. 오금례 씨가 가게를 하루 닫고 우리만 불렀다. 칠 층 보호자 몇 사람, 김태호 씨, 칠십삼 호 아들, 편의점 점장, 민정 선생 학부모 한 분, 첫차 여섯, 그리고 재석 씨. 미국 가기 사흘 전. 테이블 여섯 개를 붙였다. 의자가 모자라 주방 목욕탕 의자까지 나왔다. 된장찌개 뚝배기가 여덟 개. 이번에는 오금례 씨가 팔팔 끓여서 냈다. 「우리 가게 찌개 식었다고 소문났대서.」 영애 씨가 웃었다. 무릎 흉터를 쓰다듬으며.

밥을 먹는 도중에 문이 열렸다. 차명훈이었다. 혼자. 양복 대신 스웨터.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오금례 씨가 국자를 든 채로 그를 봤다. 한참. 그리고 빈 의자를 하나 끌어다 테이블 끝에 붙였다.

“앉으세요. 찌개는 계산하고 드세요.”

차명훈이 앉았다. 재석 씨가 그에게 물 잔을 따라 줬다. 둘은 말없이 고개를 한 번씩 숙였다. 차명훈이 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뜨거워서 안경에 김이 서렸다. 그는 안경을 벗지 않고 김이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반기지도 않았다. 그냥 옆자리 사람이 김치 접시를 그쪽으로 밀어 줬다.

그리고 일월 이일. 새해 첫 평일. 새벽 다섯 시 삼십구 분 오십 초. 터널에서 바람이 먼저 왔다. 쇠 냄새가 섞인. 발목부터 식었다. 나는 3-4호차 앞에 섰다. 병원 환경미화 새 조끼를 입고. 초록색. 이십이 년 입은 파란 조끼 말고. 문이 정확히 내 앞에서 열렸다.

문 옆 첫 자리에 준호. 안 자고 있었다. 점장 조끼. 그 옆이 내 자리. 건너편 세 번째 자리에 민정 선생. 채점지 대신 요양원 면회 기록지. 그 옆에 동진 씨. 넥타이를 매고. 끝자리에 영애 씨. 보자기를 무릎에.

그리고 가운데 자리. 문에서 세 번째. 윤병철 씨. 회색 점퍼. 손잡이 닳은 회색 가방을 무릎에. 지팡이를 다리 사이에 세우고. 지퍼는 반만 잠겨 있었다. 이십이 년 동안 본 그대로. 달라진 건 지팡이 하나였다.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이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첫차에서 인사를 했다. 나도 숙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첫차에서, 소리 내어.

“순례 씨. 오늘 무릎 괜찮아요?”

“괜찮아요. 병철 씨는요.”

“지팡이가 대신 아파요. 무릎 짚는 것도 이제 지팡이가 해요.”

준호가 웃었다. 민정 선생도. 동진 씨가 넥타이를 만지며 웃었다. 영애 씨가 보자기 위에서 손을 겹치고 웃었다. 이십이 년 동안 이 칸에서 여섯 명이 한꺼번에 웃은 건 처음이었다.

윤병철 씨가 가방을 열었다. 편의점 비닐봉지. 두유 두 개. 그는 하나를 꺼내 준호에게 내밀었다. 팔을 뻗어서. 가운데 자리에서 문 옆 첫 자리까지. 한 칸 반.

“작년 십일월 삼일 거. 늦었지.”

준호가 받았다. 두 손으로. 받는 손이 떨렸다. 유통기한을 보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준호가 두유를 받고 유통기한을 안 본 건.

“아저씨, 이거 우리 가게 거네요.”

“어디서 사겠어. 첫차 타기 전에 거기밖에 없는데.”

두 번째 정거장에서 윤병철 씨가 손목시계를 봤다. 다섯 시 오십일 분. 그리고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두 번 접힌 A5. 강제 전원 통지서가 아니었다. 새 종이. 칠 층 존치 병상 입원 확인서. 정숙희. 그는 그 종이를 펴서 한 번 보고, 다시 두 번 접었다. 같은 크기로. 주머니에 넣었다. 매일 접을 종이가 바뀌었다. 접는 손은 그대로였다.

세 번째 정거장. 서하대학교병원역. 윤병철 씨가 일어섰다. 지팡이를 짚고. 나도 일어섰다. 영애 씨도. 우리 셋이 같은 역에서 내린다. 이제는 같은 출구로. 3번 출구. 동관. 칠 층.

윤병철 씨가 일어서면서 가방에서 두 번째 두유를 꺼내 가운데 자리에 올려놓았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준호 쪽을 봤다.

“그건 두고 가. 내일 누가 앉을지 모르니까.”

“누가 앉아요, 거기. 아저씨 자리잖아요.”

“내 자리가 아니야. 가운데 자리지. 이 년 뒤에 누가 첫 야간 끝나고 여기서 울지도 모르잖아.”

문이 열렸다. 차가운 승강장 바람이 들어왔다. 우리 셋이 내렸다. 나는 승강장에서 뒤를 돌아봤다. 그 사람이 매일 하던 것이다. 이제 나도 한다.

가운데 자리에 두유 한 개가 앉아 있었다. 준호가 그 옆에 자기가 받은 두유를 내려놓았다. 마시지 않고. 두 개가 됐다. 문이 닫혔다. 열차가 떠났다. 두유 두 개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 갔다. 세 정거장 더. 종점까지.

나는 3번 출구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난간이 차가웠다. 장갑을 안 끼고 왔다. 이십이 년 만에 처음 오르는 계단이었다. 무릎이 아팠다. 짚지 않았다. 앞에서 윤병철 씨가 지팡이로 한 칸씩 올라갔다. 영애 씨가 그 옆에서 보자기를 들고. 계단 끝에 동관 불빛이 보였다. 칠 층 창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거기서 여섯 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여섯 시, 칠십이 호. 윤병철 씨가 보호자 의자에 앉아 신문을 폈다. 사회면. 나는 초록 조끼를 입고 복도를 닦으며 그 소리를 들었다. 버스 안내 방송 같은 목소리. 칠십이 호 문틈으로 보니 숙희 씨의 오른손이 이불 위에 나와 있었다. 윤병철 씨가 신문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손가락이 이불을 조금씩 쥐었다 놓았다. 박자는 맞지 않았다. 신문 넘기는 소리보다 조금 늦게. 영애 씨가 그걸 보고 수첩에 적었다. 간병 일지. 오늘 여섯 시, 손가락 반응 여섯 번. 칠 층 복도가 이제 내 구역이다. 문을 반쯤 열어 둔 병실마다 새벽 소리가 났다. 칠십일 호에서 오금례 씨 아버지가 벽 너머 신문 소리를 들으려고 깨어 있었다. 이 층에서는 이제 볼륨을 올리지 않는다. 대신 밀대를 천천히 민다. 소리 나는 쪽으로.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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