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8자) · 사물함 십칠 번
해고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일요일 저녁, 윤재석 씨가 미국에서 들어왔다. 공항에서 곧장 병원으로. 캐리어를 끌고 칠 층에 올라와서, 숙희 씨 침대 앞에 한참 서 있었다. 팔 년 만이라고 했다. 어머니 쓰러지고 한 번, 그 뒤로 못 왔다고. 영애 씨가 의자를 내주자 앉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 손을 잡았다. 크림 바른 손. 부드러웠다고 나중에 영애 씨한테 말했다. 미국 병원에서 본 손들보다.
그는 중환자실 창 앞에도 갔다. 아버지 얼굴을 유리 너머로 봤다. 그리고 복도에 서 있던 나한테 와서 고개를 숙였다.
“동진 씨한테 들었어요. 첫차 칸. 아버지가 그 칸 얘기를 엄마한테 매일 했대요. 저한테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저는 아버지랑 통화하면 날씨 얘기만 했어요.”
“저희도 이십이 년 동안 날씨 얘기도 안 했어요.”
그가 웃었다. 울면서.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탄원서 한 장을 폈다. 민정 선생이 고친 것. 서명 칸 백 개 가운데 서른 칸이 비어 있었다. 나는 볼펜을 들었다. 가족이 아니라서 안 쓰던 칸이었다. 이름을 쓰고, 관계 칸에 적었다. 첫차 3-4호차. 옆자리.
월요일 오후 두 시, 청소원 대기실. 한빛클린 서하대병원 현장 스물두 명이 다 모였다. 오전조, 오후조, 야간조. 한 번에 다 모인 건 작년 송년회 이후 처음이었다. 플라스틱 의자가 모자라서 절반은 서 있었다. 사물함 앞에, 세탁기 앞에, 걸레 건조대 옆에.
구 소장이 서류를 들고 가운데 섰다. 옆에 본사 인사 담당.
“재계약 결과 말씀드릴게요. 병원이 한빛클린이랑 내년 재계약 하기로 했어요. 스물두 명 그대로. 단가도 그대로.”
박수가 조금 나왔다. 오후조 김 여사님이 제일 크게 쳤다.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옆 사람한테 옆구리를 찔렸다. 김 여사님은 손녀 학원비 때문에 야간까지 뛴다.
“단, 조건이 하나 있어요.”
박수가 멎었다.
“병원 측 요청으로, 조순례 씨는 이번 달 말로 계약 만료입니다. 남은 연차 소진하시고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됩니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세탁기 도는 소리만 났다. 스물한 명이 나를 봤다. 나는 사물함 앞에 서 있었다. 이십이 년 쓴 사물함. 번호 십칠. 문짝 경첩에 녹이 슬어 여닫을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난다. 문짝 안쪽에 남편 사진이 붙어 있다. 스티커가 누렇게 바랬다.
“병원 측 누구요.”
내가 물었다.
“행정실이요. 공문으로 왔어요. 사유는 업무 구역 무단 이탈, 병원 운영 개입.”
“행정부원장님이요?”
“공문에는 행정실장 이름이에요.”
본사 인사 담당이 말했다.
“조순례 씨, 이십이 년 근속 감안해서 위로금 드릴게요. 석 달 치. 대신 퇴직 합의서에 서명해 주세요. 향후 병원 관련 민원이나 소송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항 있어요.”
그는 서류를 내밀었다. 퇴직 합의서. 맨 아래 조항. 본인은 향후 서하대학교병원 운영과 관련하여 일체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번 경위서와 같은 문장이었다. 같은 사람이 쓴 문장이었다.
“이 줄은 못 써요.”
“그럼 위로금은 없어요.”
“알아요.”
오전조 박 여사님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보다 두 살 위. 십오 년 같이 로비를 닦았다.
“순례야. 그냥 써. 석 달 치면 얼마야.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일해. 우리 다 살자고 하는 거잖아. 너 하나 때문에 스물두 명 다 잘릴 뻔했어.”
그 말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간조 젊은 여자 하나가 나를 보지 않고 사물함을 열었다 닫았다.
오후조 김 여사님이 말했다.
“박 언니, 순례 언니가 뭘 잘못했는데. 칠 층 할머니들 옮기는 거 막은 거? 그거 나도 봤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레질. 나 그거 보고 화장실 가서 울었어. 이십 년 청소하면서 처음으로 우리가 뭘 막는 걸 봤어.”
“막아서 뭐가 됐어. 열한 명 다 갔잖아.”
“한 명은 안 갔잖아. 칠십이 호.”
대기실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소리가 커졌다. 세탁기가 탈수로 넘어가며 덜컹거렸다. 아무도 끄러 가지 않았다. 누구 손녀 학원비, 누구 남편 병원비, 누구 월세. 다 맞는 말이었다. 다 이 대기실에서 이십 년 동안 오간 말이었다. 오늘은 그 말들이 나를 가운데 두고 오갔다.
구 소장이 손을 들었다.
“그만. 조 여사님, 서명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나는 서류를 봤다. 위로금 석 달 치. 이십이 년 치 로비.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안 해요.”
“그럼 위로금 없이 계약 만료예요.”
“네.”
나는 사물함을 열었다. 청소원 조끼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남편 사진 스티커를 손톱으로 떼었다. 한 번에 안 떨어졌다. 모서리부터 살살. 이런 걸 잘하게 된 것도 좀 슬픈 일이다. 사진을 지갑에 넣었다. 사망진단서 옆에. 사물함 문짝에 스티커 자국이 네모나게 남았다. 누가 다음에 쓰든 그 자국은 한동안 안 지워질 것이다.
대기실을 나오려는데 동진 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반차를 냈다고 했다. 영애 씨가 연락했다고. 동진 씨가 구 소장과 본사 인사 담당 앞에 섰다.
“한빛클린 본사 분이시죠. 노무사 사무소 한동진입니다. 조순례 씨 해고 사유가 원청 요청이라고요. 공문 보여 주시겠어요.”
본사 담당이 머뭇거렸다.
“외부인한테 보여 드릴 수는.”
“그럼 노동위원회에서 보여 주세요. 원청이 하청 근로자 특정해서 계약 만료 조건을 걸었으면 부당노동행위 소지가 있어요. 사유가 병원 운영 개입이라면, 그 개입이 뭐였는지도 거기서 다 나올 거예요. 칠 층 강제 전원, 브로커 고발, 백반집 녹음까지. 병원이 그걸 노동위원회 기록에 남기고 싶을까요?”
본사 담당이 구 소장을 봤다. 구 소장이 나를 봤다. 오래.
“조 여사님. 이 사람 누구예요.”
“첫차 같은 칸 사람이요.”
“같은 칸이요?”
“넥타이 풀린 회사원. 이십이 년 동안 이름도 몰랐어요.”
구 소장이 웃었다. 처음이었다. 이십이 년 동안 구 소장이 나 앞에서 웃은 건.
“조 여사님, 그 칸 참 이상한 칸이네.”
대기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본관 엘리베이터에서 차명훈이 내렸다. 혼자. 서류철을 들고.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청소원 조끼가 없는 나를. 그는 그걸 먼저 봤다.
“조순례 씨. 조끼는요.”
“오늘부로 계약 만료래요. 행정실 공문으로.”
차명훈의 얼굴이 굳었다. 서류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가 보낸 공문이 아닙니다.”
“행정실장 이름이래요.”
“행정실장은.”
차명훈이 말을 멈췄다. 안경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한 문장을 했다. 천천히. 계산이 끝난 사람처럼.
“행정실장은 새봄 마 실장이랑 골프 치는 사이예요. 제가 그걸 알면서 협력 협약 결재를 올렸습니다. 이 년 전에. 편해서.”
“지금 그 말 왜 하세요.”
“증거 가져오면 자른다고 했잖아요. 제 서명도 증거예요.”
그는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말했다.
“조순례 씨 계약 건은 제가 한빛클린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약속은 못 합니다. 원청이 하청 인사에 손대는 게 문제라면, 되돌리는 것도 손대는 거니까요.”
“그럼 하지 마세요.”
차명훈이 나를 봤다.
“저는 조끼 벗은 김에 칠 층에 신문 읽으러 갈 거예요. 보호자 면회 시간에. 거기는 청소원 아니어도 들어가요.”
차명훈은 한참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짧게. 그리고 행정실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빨랐다.
로비를 지났다. 오후 세 시 로비. 김 여사님이 내 구역을 닦고 있었다. 오늘부터 김 여사님 구역. 나를 보고 밀대를 멈췄다. 그리고 밀대 손잡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한 줄 그으라고.
나는 밀대를 받았다. 로비 한가운데, 행정실 앞. 일주일 전 윤병철 씨가 쓰러진 자리. 거기서부터 원무과 분실물 보관함까지 한 줄을 그었다. 대리석이 한 줄 어두워졌다가, 마르면서 다시 밝아졌다. 이십이 년 동안 그은 줄 가운데 제일 긴 줄이었다. 무릎이 아팠다. 짚지 않았다.
그날 밤 잠이 안 왔다. 새벽 다섯 시 십 분에 일어났다. 출근할 데가 없는데 몸이 일어났다. 이십이 년 치 몸. 나는 옷을 입었다. 청소원 조끼 없이. 옷장 거울에 비친 몸이 이상하게 가벼워 보였다. 지갑을 챙겼다. 남편 사진과 사망진단서가 든.
다섯 시 사십 분. 첫차. 터널 바람이 먼저 왔다. 3-4호차. 문이 내 앞에서 열렸다. 가운데 자리에 두유 두 개. 준호가 나를 보고 눈이 커졌다.
“오늘 출근하세요? 영애 씨가 잘리셨다고.”
“잘렸어요. 근데 세 정거장은 가야죠.”
민정 선생이 채점지를 덮었다. 그리고 빨간 볼펜으로 채점지 뒷면에 뭔가를 크게 적어 내게 보여 줬다. 동그라미 하나. 그 안에 백.
“이게 뭐예요.”
“백 점이요. 어제 대기실 일. 동진 씨한테 들었어요. 서명 안 하신 거.”
준호가 옆에서 말했다. 「저는 폐기 두유로 드릴게요. 백 점 기념.」 그러고는 가운데 자리의 두유 두 개 말고, 조끼 주머니에서 두유 하나를 더 꺼냈다. 오늘까지 유통기한.
동진 씨가 넥타이를 풀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서, 어젯밤에 초안 써 뒀어요. 서명만 하시면 돼요.」
끝자리 영애 씨가 보자기 위에 손을 겹쳤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순례 씨, 오늘은 로비 말고 칠 층으로 와요. 여섯 시.」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나는 내렸다. 1번 출구가 아니라 3번 출구로. 동관 칠 층. 여섯 시 정각. 칠십이 호. 숙희 씨가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신문을 폈다. 병철 씨가 팔 년 동안 앉던 시각에. 사회면부터.
여섯 시 사십 분, 영애 씨 휴대폰이 울렸다. 중환자실. 영애 씨가 받았다. 듣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깨셨대요. 병철 씨. 방금. 첫마디가, 오늘 신문 누가 읽었냐고.”
우리는 중환자실로 뛰었다. 영애 씨는 무릎 붕대 때문에 절뚝이면서. 나는 무릎이 아파서 절뚝이면서. 둘이 절뚝이며 동관 복도를 달리는 모습을 간호사 하나가 보고 웃음을 참았다.
면회 창 커튼이 걷혀 있었다. 셋째 침대. 윤병철 씨가 눈을 뜨고 있었다. 입에 관은 빠져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이 아니라 창에 비친 복도를. 우리 둘을.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창을 넘지 못했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전해 줬다.
“뭐라고 하시냐면요. 그 청소하시는 분, 오늘 무릎 아프시냐고요.”
영애 씨가 웃다가 울었다. 나는 울다가 웃었다. 이십이 년 동안 첫차에서 한 번도 말을 안 건 사람의 첫 번째 질문이 내 무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