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6자) · 된장찌개

장부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목요일 첫차. 준호가 두유 두 개를 가운데 자리에 다시 올려놓았다. 어제 그 두유였다. 종점 역무실 분실물 선반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역무원 아저씨가 이거 찾으러 오는 사람 처음 봤대요. 두유 두 개. 분실물 대장에 적는데 품목 칸에 두유 두 개, 습득 장소 칸에 3-4호차 가운데 자리. 그렇게 적었대요. 사연 있냐고 물어서 있다고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이십이 년짜리 자리라고요.”

민정 선생이 웃었다. 동진 씨도. 끝자리 영애 씨는 웃지 않았다. 오늘 오후 세 시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목요일 오후 세 시, 본관 십이 층 행정부원장실. 영애 씨가 간병인 조끼를 벗어 팔에 걸고 문 앞에 섰다. 나는 청소원 조끼를 입은 채로 그 옆에. 휴게 시간이었다. 한 시간.

차명훈은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앉지 않았다. 부원장실 창밖으로 동관이 보였다. 칠 층 창문들이 한 줄로. 그중 몇 개는 벌써 커튼이 걷혀 있었다. 어제 비운 병실들.

“간병인 박영애입니다. 칠 층 팔 년. 작년 사월에 새봄요양병원 마 실장한테 칠 층 환자 명단을 넘겼습니다. 호실, 병명, 보호자 이름, 연락처. 서른여덟 명 전부요. 오십만 원 받았습니다.”

영애 씨는 그 말을 한 번에 했다. 쉬지 않고. 연습한 사람처럼. 어젯밤 숙희 씨 앞에서 연습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차명훈이 안경을 벗었다.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왜 지금 말씀하십니까?”

“부원장님이 증거 가져오면 자른다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증거예요. 그 명단으로 마 실장이 보호자들한테 하나씩 전화했어요. 따로따로. 같이 연락하면 같이 버티니까. 순덕 할머니 아드님도 그 전화 받았어요.”

“명단을 넘긴 건 박영애 씨 개인 정보 유출입니다. 간병 협회에 통보해야 합니다.”

“하세요.”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마 실장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안 됩니다. 명단을 샀다는 것뿐이죠. 새봄이 환자 한 명당 얼마를 줬는지, 그게 필요합니다.”

차명훈의 목소리에 화가 없었다. 계산하는 목소리였다. 무엇이 모자란지 정확히 아는.

나는 그때 말했다. 무릎이 시큰거려서 한 발을 뒤로 뺐다.

“김순덕 할머니 아드님 휴대폰에 문자가 있을 거예요. 동의서 받으러 오기 전에 마 실장이 보낸 거. 빈소에서 봉투 돌려줄 때 그 얼굴이, 받은 게 처음이 아닌 얼굴이었어요.”

차명훈이 나를 봤다.

“조순례 씨는 이 일에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가족도 아니시고.”

“이십이 년 동안 가운데 자리에 앉던 분이 로비에서 쓰러졌는데 저는 볼륨을 올렸어요. 그거 하나 갚으려고요.”

차명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협력 의료기관 협약서. 새봄요양병원.

“증거가 오면 이 협약은 제가 끊습니다. 칠 층 폐쇄는 별개입니다. 그건 바뀌지 않습니다.”

부원장실을 나오자 엘리베이터 앞에 구 소장이 서 있었다. 행정실에서 연락이 간 모양이었다. 구 소장은 나를 보고 한참 말이 없다가 말했다.

“조 여사님. 이제 부원장실까지 가세요?”

“휴게 시간이에요.”

“휴게 시간에 부원장실 가는 청소원 이십이 년 동안 처음 봐요. 조 여사님, 재계약 심사가 다음 주예요. 조 여사님 이름이 벌써 올라가 있대요. 병원에서 한빛클린한테 조건을 걸었대요. 그 사람 빼면 재계약한다고.”

“누가요.”

“누구겠어요.”

구 소장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그는 타지 않았다. 나한테 먼저 타라고 손짓했다.

“조 여사님 하나 빼면 스물한 명이 살아요. 제가 그 계산 안 하게 해 주세요.”

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구 소장은 따라 타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거울에 청소원 조끼가 비쳤다. 이십이 년 입은 조끼. 스물한 명. 계산은 간단했다. 틀린 데가 없었다.

동진 씨가 김순덕 할머니 아드님, 김태호 씨에게 연락했다. 발인 이후 처음. 저녁에 김태호 씨가 휴대폰 화면을 캡처해서 보냈다. 문자 세 개. 작년 여름부터.

김 선생님, 어머님 서하대 칠 층 폐쇄 예정입니다. 미리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새봄요양병원 마 실장.

새봄으로 옮기시면 이사비 명목으로 백만 원 지원됩니다. 현금으로 드립니다. 동의서만 써 주시면 됩니다.

어머님 잘 도착하셨습니다. 약속드린 거 오늘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김태호 씨가 한 줄을 덧붙였다. 그 백만 원, 빈소에서 돌려준 봉투 말고 처음 받은 거요. 엄마 옮기던 날 받았어요. 쓰지 않았어요. 서랍에 그대로 있어요. 드릴까요.

다음 날 아침 김태호 씨가 첫차 출발역으로 직접 왔다. 다섯 시 삼십오 분. 검은 양복이 아니라 작업복이었다. 그는 봉투 하나를 동진 씨 손에 쥐여 줬다. 흰 봉투. 백만 원. 엄마 옮기던 날 받은 것. 쓰지 않은.

“증거로 쓰세요. 저도 공범이에요. 받았으니까. 벌받을게요.”

그는 첫차를 타지 않았다. 반대 방향 승강장으로 건너갔다. 새봄요양병원 쪽. 엄마 짐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크림하고 손수건.

동진 씨가 그 문자를 보여 주며 말했다.

“환자 유인 알선이에요. 의료법 위반. 이걸로 고발할 수 있어요. 근데 마 실장 혼자 돈을 댔다고 하면 새봄은 빠져나가요. 새봄 장부가 필요해요.”

금요일 점심, 오금례 씨 백반집. 서하대병원 뒤 골목. 테이블 여섯 개. 벽에 달력, 계산대 옆에 사탕 바구니. 오금례 씨가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찌개를 나르고 있었다. 나와 영애 씨와 동진 씨가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오금례 씨가 찌개 넷을 놓으며 작게 말했다.

“마 실장 여기 점심 먹으러 와요. 매일. 열두 시 반. 창가 자리. 밥 먹으면서 수첩에 뭘 적어요. 전화하면서. 이름 부르고 숫자 부르고.”

“무슨 숫자요.”

“백, 백오십, 이백. 이름 뒤에.”

열두 시 반. 백반집 문이 열렸다. 마 실장이었다. 가죽 점퍼, 금목걸이. 향수 냄새가 된장 냄새 위로 올라왔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금례 씨가 물을 가져다줬다. 마 실장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검은 수첩을 폈다. 백반이 나오기 전에 전화를 두 통 했다. 「칠십삼 호 건 오늘 입금 확인했고요. 박 실장님 백오십 맞죠.」 수첩에 적었다.

영애 씨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동진 씨가 휴대폰 녹음을 켰다. 식탁 밑에서. 손이 조금 떨렸다.

마 실장이 두 번째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다. 백반집을 둘러봤다. 구석 테이블. 나. 영애 씨. 그의 얼굴이 굳었다. 수첩을 덮었다. 일어섰다. 우리 테이블로 왔다.

“조순례 씨. 영애 씨. 여기서 다 모이셨네. 밥이 넘어가요?”

그는 우리 테이블 옆에 섰다. 영애 씨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영애 씨. 어제 행정부원장실 갔다며. 명단 얘기 했다며. 협회에서 전화 갔을 거예요. 오늘부로 영애 씨 간병 못 해요. 숙희 씨 옆에 누가 앉을까. 걱정되네.”

영애 씨가 어깨를 틀어 그 손을 떨어냈다.

“내가 앉을 거예요. 보호자로. 아드님이 위임한대요.”

마 실장이 웃었다. 금니. 그리고 손을 뻗어 우리 테이블의 된장찌개 뚝배기를 쳤다. 뚝배기가 넘어졌다. 뜨거운 찌개가 테이블을 타고 영애 씨 무릎으로 쏟아졌다. 영애 씨가 비명을 질렀다. 동진 씨가 일어서다 의자를 넘어뜨렸다.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오금례 씨가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행주를 들고. 앞치마 끈이 풀려 있었다. 영애 씨 무릎을 닦으며 마 실장을 올려다봤다.

“나가요. 밥값 안 받을게. 다시는 오지 마.”

“아주머니 칠십일 호 아버님, 이번에 안 옮기셨죠. 다음 차에는 꼭 가시게 해 드릴게요.”

마 실장은 창가 자리로 돌아가 수첩을 챙겼다. 수첩을 가죽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오금례 씨가 외쳤다.

“우리 아버지 신문 소리 들으려고 새벽에 깨요! 당신이 그 소리 끊었어!”

영애 씨 무릎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스타킹이 무릎에 달라붙었다. 오금례 씨가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수건에 쌌다. 나는 영애 씨 옆에 쪼그려 앉아 그 얼음을 무릎에 대 주었다. 영애 씨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수첩이요. 봤어요?”

“봤어요.”

“검은 수첩. 작년 사월에 나한테 오십만 원 줄 때도 거기 적었어요. 박영애, 오십. 내 이름도 거기 있어요.”

동진 씨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녹음 파일. 칠십삼 호 건 오늘 입금 확인했고요. 박 실장님 백오십 맞죠. 그리고 뚝배기 넘어지는 소리.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폭행까지 들어갔네요.”

동진 씨가 말했다. 넥타이를 풀면서. 오늘은 매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동진 씨가 서하구 보건소와 경찰서에 고발장을 냈다. 의료법 위반 환자 유인 알선, 폭행. 첨부. 김태호 씨 문자, 박영애 씨 진술서, 백반집 녹음, 오금례 씨 목격 진술. 그리고 탄원서 사본. 서명 이백칠십 개.

그날 저녁 칠 층에 올라가니 영애 씨가 간병인 조끼를 입은 채 숙희 씨 옆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붕대. 협탁 위에 서류 한 장. 내일부터 쓸 보호자 등록 신청서. 윤재석 씨 위임으로 박영애. 관계 칸에 영애 씨가 적어 놓은 말이 있었다. 팔 년 간병, 지금은 이웃.

“간호사실에서 관계 칸 뭐라고 쓰냐고 해서, 이웃이라고 했어요. 칠 층에 팔 년 살았으니까 이웃이지.”

나는 신문을 폈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일 면. 오늘은 영애 씨가 먼저 말했다. 「사회면부터 읽어 줘요. 병철 씨는 사회면부터 읽었대요. 숙희 씨가 옛날에 동네 소식 좋아해서.」 나는 사회면을 폈다. 구청 소식, 시장 개장, 버스 노선 변경. 버스 노선 변경 기사를 읽을 때 숙희 씨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영애 씨가 그걸 보고 말했다. 「병철 씨가 운전하던 노선이에요. 백이십칠 번.」

밤 아홉 시, 영애 씨한테서 문자가 왔다. 간병 협회 제명 통보 받았어요. 신청서 써 두길 잘했어요. 내일부터 숙희 씨 옆에 보호자로 앉아요. 무릎은 괜찮아요. 찌개가 좀 식은 거였어요. 오금례 씨 가게는 찌개를 너무 오래 안 끓여요.

밤 열 시, 차명훈이 동진 씨한테 전화를 했다고 했다. 고발장 사본을 행정실로도 보냈더니. 짧게. 새봄요양병원 협력 협약, 오늘부로 효력 정지합니다. 이차 전원은 새봄으로 안 갑니다. 병동 폐쇄는 예정대로입니다. 그 말만 하고 끊었다고.

동진 씨가 그 말을 전해 주며 말했다. 「계산하는 사람이 계산을 한 번 바꿨네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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