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04자) · 칠십이 호

가족회의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이레째 아침, 나는 두 번째 정거장에서 시계를 봤다. 가운데 자리 사람이 이십이 년 동안 하던 것이다. 다섯 시 오십일 분. 여기서 병원까지 세 정거장째 도착이 다섯 시 오십육 분. 3번 출구에서 동관 칠 층까지 사 분. 여섯 시 정각. 그 사람은 두 번째 정거장에서 시계를 보고, 숙희 씨 머리맡에 도착하는 시각을 계산했다. 그리고 종이를 접었다. 강제 전원 통지서. 매일 한 번 펴 보고 매일 다시 접었다. 남편 사망진단서를 지갑에서 꺼내 보던 내 손과 같은 손이었다.

엿새째 아침, 그 칸에서 민정 선생이 종이 뭉치를 꺼냈다. 밤새 다시 쓴 탄원서. 윤병철 씨 손글씨 탄원서를 바탕으로, 문장을 고치고 법 조항을 넣었다. 동진 씨가 알려 준 것. 의료법, 환자 유인 알선 금지. 맨 아래 서명 칸 백 개.

“이 년 치 첨삭 실력을 다 넣었어요. 빨간 볼펜 안 쓰고.”

준호가 그걸 받아 들고 말했다. 「이거 백 장 뽑아 올게요. 가게 복사기로.」 그리고 오늘 아침 준호는 백 장을 들고 왔다. 그리고 점장한테 걸렸다고 했다. 복사비 만 원을 월급에서 까기로 했다고. 「점장님이 이게 뭐냐고 해서 탄원서라고 했더니, 자기 아버지도 요양원에 계시대요. 만 원은 까는데 한 장 달래서 줬어요. 서명해서 왔어요.」 준호가 첫 장을 펼쳤다. 서명 칸 첫 줄에 편의점 점장 이름. 윤병철 씨가 일 년 동안 열한 번 두고 간 종이에 처음으로 들어간 이름이었다. 칠 층 가족도 아니고, 이 칸 사람도 아닌.

그날 저녁 여섯 시, 동관 이 층 세미나실에서 장기요양병동 보호자 설명회가 열렸다. 영애 씨가 알려 줬다. 보호자 서른여덟 가구에 문자가 갔다고. 윤병철 씨 휴대폰은 중환자실 보관함에 있어서 그 문자를 못 받았다고.

세미나실 앞에서 동진 씨가 넥타이를 다시 매고 있었다. 매듭이 두 번 풀렸다. 세 번째에 됐다. 사무소에서 반차를 냈다고 했다. 손에 서류 봉투.

“윤병철 씨 아들이 미국에 있어요. 영애 씨가 번호 알려 줘서 어젯밤에 통화했어요. 위임장 받았어요. 팩스로. 아버지 깨어날 때까지 어머니 일은 저한테 맡긴대요. 노무사는 아니지만 사무소 직원이라 서류는 쓸 줄 알아요.”

“그렇게 해도 돼요?”

“해도 돼요. 오늘은.”

세미나실에 보호자 스무 명쯤이 앉아 있었다. 접이식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누군가 휴대폰으로 가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 쉰에서 예순. 작업복 입은 사람, 앞치마 두른 사람, 양복 입은 사람. 퇴근길에 온 사람들. 앞쪽 탁자에 명패 두 개. 행정부원장 차명훈. 협력 의료기관 대표 새봄요양병원. 새봄 명패 뒤에 마 실장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가죽 점퍼 대신 양복. 금목걸이는 셔츠 안으로 넣었다.

차명훈은 쉰 중반이었다. 양복 소매 끝이 반들반들했다. 오래 입은 양복이었다. 회색 머리를 짧게 깎았고, 안경을 코끝에 걸쳤다. 목소리가 낮고 정확했다. 스크린에 표가 떴다.

“보호자 여러분, 먼저 사과드립니다. 병동 운영 종료 결정이 갑작스러우셨을 겁니다. 이유를 숫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기요양병동 연간 적자 구십억. 병상 가동률은 높은데 수가가 낮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중증 환자 비율 기준 미달 위험. 지정에서 떨어지면 병원 전체 수가가 깎인다. 그러면 암 병동, 소아 병동, 응급실이 흔들린다.

“칠 층 서른여덟 명을 지키려다 이 병원 환자 천이백 분이 위험해집니다. 저는 그 계산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대신 협력 의료기관을 연결해 드리고, 이송비 전액과 이주 지원금 이백만 원을 드립니다.”

틀린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세미나실 에어컨 소리만 났다. 십일월인데 에어컨이 돌았다. 작업복 입은 남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이백만 원은 언제 줘요.”

남자의 작업복 가슴에 건설 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다.

“동의서 제출하시는 날.”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앞치마 두른 여자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여기서 십 년 계셨어요. 옮기면 돌아가셔요.」 차명훈이 대답했다. 「새봄요양병원 의료진도 훌륭합니다. 대표님이 오셨으니 직접 설명 듣으시죠.」

마 실장이 일어섰다. 웃었다. 금니가 보였다.

“새봄은 창이 큽니다. 간호 인력도 법정 기준 이상이고요. 어르신들 지금보다 편하실 겁니다.”

동진 씨가 손을 들었다. 차명훈이 명단을 봤다.

“어느 분 보호자시죠.”

“칠십이 호 정숙희 씨. 보호자 윤병철 씨 위임입니다. 아드님 위임장 여기 있습니다.”

차명훈이 안경을 올렸다.

“윤병철 씨. 로비에서 쓰러지신 분.”

“네. 그 로비에서 저분이랑 말다툼하시다가요.”

동진 씨가 마 실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세미나실이 조용해졌다. 마 실장의 웃음이 굳었다.

“행정부원장님. 새봄요양병원 대외협력실장이 병원 설명회에 협력 기관 대표로 앉아 있는 게 맞습니까. 이분은 지난 일 년 동안 칠 층 보호자들한테 개별로 연락해서 전원 동의서를 받아 왔습니다. 새봄으로 가는 환자 한 명당 얼마를 받는지 새봄 쪽 장부를 보셨습니까?”

차명훈이 마 실장을 봤다. 짧게. 그리고 동진 씨를 봤다.

“근거 없는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협력 기관 선정은 공개 절차로 했습니다.”

“지난주 김순덕 씨 빈소에서 저분이 유족한테 현금 봉투를 줬습니다. 병원 위로금이라고 하면서요. 서류는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위로금 나간 적 있습니까?”

차명훈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 실장이 말했다.

“그건 제 개인 조의금이에요.”

“두툼하던데요.”

나였다. 뒷줄에 서 있던 내가 말했다. 모두 돌아봤다. 청소원 조끼.

“누구세요?” 차명훈이 물었다.

“본관 로비 청소하는 사람이에요. 조순례. 이십이 년. 행정부원장님이 제 이름 물어보셨다고 들었어요.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차명훈이 나를 한참 봤다. 코끝의 안경 너머로.

“보호자 설명회입니다. 관계자 외에는 나가 주셔야 합니다.”

“일주일 전 로비에서 윤병철 씨 쓰러질 때 저 거기 있었어요. 못 봤어요. 이어폰 볼륨 올려서. 로비 청소원이 이십이 년 동안 하는 일이 그거예요. 안 보고, 안 듣고, 닦는 거. 오늘은 나가라고 하셔도 들을게요. 복도에서라도.”

영애 씨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간병인 조끼.

“저도 관계자 아니에요. 간병인이라. 근데 서른여덟 명 중에 열한 명 제가 기저귀 갈아요. 그 열한 명 중에 누가 새봄 가면 그 기저귀는 누가 갈아요?”

차명훈이 탁자 위 서류를 가지런히 모았다. 손이 조금 빨랐다.

“오늘 설명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일차 전원은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열두 명. 명단은 개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동진 씨를 보고.

“참고로,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환자분은 병원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전원 조치할 수 있습니다. 병상이 없어지니까요. 윤병철 씨 위임장은 법무팀이 효력을 검토하겠습니다.”

보호자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마 실장이 명함을 돌리기 시작했다. 앞치마 여자가 명함을 받지 않고 지나갔다. 작업복 남자는 받았다.

앞치마 여자가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오금례. 칠십일 호 환자 딸. 동네 백반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앞치마에 김칫국물이 튀어 있었다. 저녁 장사 중에 나온 사람이었다.

“아까 로비 청소하신다는 분. 그 종이, 서명하는 거 있어요?”

나는 가방에서 준호가 뽑은 탄원서를 꺼냈다. 오금례 씨는 복도 벽에 종이를 대고 서명했다. 볼펜 잉크가 잘 안 나와서 세 번 그었다. 칠 층 가족 가운데 첫 번째 서명이었다.

“우리 아버지 칠십일 호, 숙희 씨 옆방이에요. 병철 씨가 새벽마다 신문 읽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렸대요. 우리 아버지는 그 소리 들으려고 새벽에 깨요. 간병인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그 뒤에서 마 실장이 영애 씨를 불러 세웠다. 목소리를 낮췄는데, 복도가 좁아서 들렸다.

“영애 씨. 작년 봄에 칠 층 명단 넘겨준 거 기억하죠. 보호자 연락처까지. 그거 병원에서 알면 영애 씨 간병 협회 제명이에요. 오늘 같은 짓 하지 마요.”

영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자기를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마 실장은 영애 씨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영애 씨가 나를 봤다. 내가 들었다는 걸 알았다. 영애 씨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세미나실 문 앞에서 차명훈이 동진 씨를 불러 세웠다. 혼자였다. 마 실장은 없었다.

“위임장 가져오신 분.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칠 층을 안 닫으면 내년에 닫아야 하는 게 소아 혈액종양 병동이에요. 거기도 서른 병상이에요. 아이들이에요. 그 부모님들한테는 누가 설명합니까. 저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데 브로커가 끼면 안 되죠.”

차명훈의 안경이 코끝에서 조금 흘렀다. 그는 안경을 올리지 않았다.

“브로커 얘기는, 증거를 가져오세요. 가져오시면 제가 먼저 자르겠습니다. 저도 그 사람 싫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갔다. 동진 씨가 한참 그 뒷모습을 봤다. 「저 사람은 계산하는 사람이네요.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하는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나는 이십이 년 동안 로비에서 봤다. 그 얼굴은 대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세미나실을 나와 칠 층으로 올라갔다. 간호사실 앞 게시판에 종이가 새로 붙어 있었다. 일차 전원 예정 환자. 호실만 적혀 있었다. 칠십일, 칠십삼, 칠십오. 그리고 칠십이.

영애 씨가 그 종이 앞에서 멈췄다. 보자기를 쥔 손이 하얘졌다.

“칠십이 호. 숙희 씨예요.”

동진 씨가 종이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사진을 확대했다. 칠십이 옆에 작은 글씨로 괄호. 보호자 연락 불가, 병원 판단.

영애 씨가 게시판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숙희 씨 팔 년 동안 한 번도 이 층을 안 떠났어요. 엘리베이터도 안 타 봤어요. 첫 엘리베이터가 새봄 가는 엘리베이터면 안 돼요.」

나는 칠십이 호 문을 열었다. 숙희 씨가 눈을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협탁 위에 신문이 한 부. 오늘 저녁엔 누가 읽어 주나.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신문을 폈다. 일 면부터.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에는 끝까지 떨렸다. 숙희 씨는 끝까지 내 쪽을 봤다. 떨리는 목소리를 버스 안내 방송처럼 또박또박 들어 주는 얼굴로.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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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05.24· 4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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