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05자) · 빈소
두유 두 개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준호가 일하는 편의점은 첫차 출발역 바로 앞에 있다. 역 계단에서 스무 걸음. 밤 열 시부터 아침 다섯 시 반까지가 준호의 시간이다. 교대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 다섯 시 삼십팔 분. 첫차 3-4호차 문 옆 첫 자리에 앉는다. 이 년 동안.
닷새째 아침, 준호가 첫차에 타면서 영수증 뭉치를 흔들었다.
“찾았어요. 새벽 다섯 시대 두유 두 개. 포스기 기록 일 년 치 다 뽑았어요. 점장님 몰래요.”
세 건이었다. 작년 십일월 삼일 다섯 시 십이 분. 작년 십이월 이십사일 다섯 시 구 분. 올해 삼월 팔일 다섯 시 십오 분.
“세 번 다 제가 계산했어요. 근데 기억이 안 나요. 새벽 다섯 시에 오는 손님 얼굴은 다 똑같거든요. 피곤한 얼굴.”
“그분이 두유를 왜 두 개 샀을까요?”
“하나는 자기 거, 하나는 부인 거겠죠.”
영애 씨가 끝자리에서 말했다. 첫차에서 영애 씨가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모두 그쪽을 봤다.
“숙희 씨는 못 마셔요. 코로 드시니까. 병철 씨는 두유를 병실에 가져와서 숙희 씨 입술에 한 방울 묻혀 줬어요. 맛은 보라고. 그러고 나머지는 자기가 마셨어요. 한 개로.”
“그럼 두 번째 두유는요.”
영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자기를 매만졌다.
민정 선생이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어제 신문 삼 면 부고를 오려 온 것. 김순덕, 일흔둘. 발인 오늘 아침 일곱 시. 새봄요양병원 장례식장. 새봄요양병원은 서하대병원역에서 두 정거장 더 가서 버스로 십오 분.
“발인 가 볼래요? 순덕 할머니요.”
민정 선생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가서 뭐 해요.”
“가족을 만나요. 마 실장이 어떻게 동의서 받았는지.”
동진 씨가 넥타이를 한 번 만졌다.
“발인 날 가족한테 그런 거 묻는 건 좀.”
“그럼 언제 물어요.”
민정 선생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우리 엄마도 요양원에 계세요. 경기도. 작년에 옮겼어요. 원래 계시던 데가 문 닫는다고 해서. 새로 간 데 상담실장이 명함을 줬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원래 요양원에서도 명함을 돌리던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때 아무것도 안 물었어요. 학원 일 바빠서. 엄마가 새 데서 한 달 동안 밥을 안 드셨어요. 저는 한 달 뒤에 알았어요. 발인 끝나면 다 흩어져요. 흩어지면 아무도 안 물어요. 이 칸처럼.”
민정 선생은 무릎 위 채점지를 덮었다. 빨간 동그라미가 가득한 종이.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여섯 시에 출근해야 했다. 구 소장 얼굴이 떠올랐다. 조 여사님 때문에 스물두 명이. 나는 휴대폰을 꺼내 소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무릎 때문에 병원 들렀다 두 시간 늦겠습니다. 이십이 년 만에 처음 보내는 지각 문자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병원에 들르는 건 맞으니까. 다른 병원이지만.
새봄요양병원은 오 층짜리 건물이었다. 외벽에 창이 컸다. 일 층이 장례식장. 입구에 화환이 둘. 하나는 새봄요양병원 임직원 일동. 하나는 서하대학교병원 행정부원장 차명훈.
빈소는 작았다. 향 냄새가 복도까지 나왔다. 영정 사진 속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오래전 사진이었다. 상주는 오십 대 남자 하나. 검은 양복. 눈이 부어 있었다. 조문객은 우리 넷뿐이었다. 순례, 준호, 민정, 동진. 영애 씨는 병동에 출근했다. 숙희 씨를 혼자 둘 수 없다고. 대신 봉투 하나를 내게 쥐여 줬다. 조의금. 순덕 할머니 칠 년 간병한 사람의 봉투.
상주가 우리를 봤다. 모르는 얼굴들. 편의점 조끼, 청소원 조끼, 학원 가방, 풀린 넥타이.
“누구세요.”
“서하대병원에서요. 칠 층 순덕 할머니 알던 사람들이요.”
상주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도 절을 했다. 준호는 절하는 법을 몰라서 동진 씨를 곁눈질하며 따라 했다. 한 박자 늦게.
절을 하고 일어섰을 때 빈소 입구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갈색 가죽 점퍼. 금목걸이. 마 실장이었다. 손에 흰 봉투. 두툼했다.
“아이고, 김 선생님. 고생 많으시죠.”
마 실장은 상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흰 봉투를 상주 손에 쥐여 줬다.
“병원에서 위로금이에요. 장례비 보태시라고. 이런 일이 생겨서 저희도 마음이 안 좋아요. 대신 한 가지만. 병원 쪽 일로 누가 연락 오면 저한테 먼저 알려 주세요. 요즘 서하대 칠 층 쪽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들쑤시고 다녀서요.”
그러다 나를 봤다. 청소원 조끼를. 그의 웃음이 멈췄다.
“조순례 씨. 여기까지 오셨네.”
상주가 봉투를 든 채로 나와 마 실장을 번갈아 봤다.
“아는 사이세요?”
“서하대 로비 청소하시는 분이에요. 저희 일에 좀 관심이 많으셔서.”
나는 상주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무릎이 아팠다.
“선생님. 순덕 할머니 칠 층에서 칠 년 계셨죠. 욕창 한 번도 안 났다고 들었어요. 여기 오시고 닷새 만에 터졌다고요.”
상주의 얼굴이 굳었다. 마 실장이 내 앞을 막았다.
“아주머니, 빈소에서 무슨 말씀이세요. 유족분 마음 아프게.”
“동의서, 누가 받으러 왔어요? 이분이요?”
상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봉투를 봤다. 흰 봉투. 두툼한.
동진 씨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병원 위로금이면 영수증이나 지급 서류가 있어요. 병원 이름으로. 그 봉투에 뭐 있어요?”
상주가 봉투를 열었다. 현금뿐이었다. 서류는 없었다.
마 실장이 웃었다. 금니가 보였다.
“서류는 나중에 드릴게요. 급하게 챙겨 오느라.”
상주가 봉투를 닫았다. 한참 들고 있었다. 봉투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하얬다. 그리고 마 실장 가죽 점퍼 가슴께에 밀어 넣었다.
“가져가세요. 엄마 전원 갈 때 실장님이 그러셨죠. 새봄이 서하대보다 좋다고. 간호사도 많고 창도 크다고. 엄마는 창 큰 방에서 닷새 살았어요.”
마 실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봉투를 받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나를 보고, 빈소를 나갔다. 나가면서 말했다. 나한테만 들리게.
“조순례 씨. 재계약 잘 되시길.”
상주는 빈소 의자에 주저앉았다. 준호가 종이컵에 물을 떠다 드렸다. 상주가 물을 마시고 말했다.
“그 사람이 동의서 들고 왔을 때 저는 기뻤어요. 칠 년 동안 매일 퇴근하고 서하대 가서 엄마 봤거든요. 새봄은 우리 집에서 가까워요. 걸어서 십 분. 이제 좀 편해지겠다 싶었어요. 제가 편해지려고 엄마를 보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영정 속 할머니만 웃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준호가 영수증 뭉치를 다시 꺼냈다. 두유 두 개. 세 번.
“근데요. 십일월 삼일, 이거 제가 평일 야간으로 옮긴 첫날이에요. 그 전 일 년은 주말 야간만 했거든요.”
준호는 영수증을 한참 봤다.
“그날 저 첫차에서 울었어요. 첫 야간이 너무 힘들어서. 창에 머리 박고.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영애 씨가 대답하지 않은 두 번째 두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때 우리는 몰랐다. 준호는 영수증을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두 번, 같은 크기로.
아홉 시 반에 로비에 들어섰다. 두 시간 늦게. 구 소장이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밀대를 쥔 채로. 내 밀대였다. 내가 사물함에 걸어 둔.
“조 여사님. 무릎 때문에 병원이요?”
“네.”
“새봄요양병원 장례식장이 무릎 보는 데예요?”
마 실장이 벌써 전화를 한 것이었다. 구 소장이 밀대를 내 앞에 내밀었다.
“조 여사님. 행정실에서 방금 또 전화 왔어요. 우리 한빛클린 직원이 전원 간 환자 빈소에 가서 소란을 피웠다고. 행정부원장님이 직접 물어보셨대요. 저 사람 이름이 뭐냐고. 조순례. 그 이름 행정부원장님 입에서 나왔어요.”
나는 밀대를 받았다. 손잡이가 차가웠다.
“소장님. 그 할머니 새봄 가서 닷새 만에 돌아가셨어요. 여기서는 칠 년 동안 욕창 한 번 안 났는데.”
“그게 우리 일이에요? 우리는 바닥 닦는 사람이에요. 욕창은 간호사가 봐요.”
“그 욕창 난 이불, 여기 칠 층 이불이었으면 우리가 빨았어요.”
구 소장이 나를 봤다. 처음 보는 사람 보듯이.
“조 여사님, 이십이 년 동안 말대꾸 한 번 안 하셨잖아요.”
“이십이 년 동안 아무도 안 물었으니까요.”
구 소장은 한참 서 있다가 무전기를 들었다. 「로비 오후조 조 여사님 빼고 김 여사님으로.」 그리고 나한테 말했다.
“오늘은 지하 주차장 하세요. 로비 말고. 조용한 데서 생각 좀 하세요.”
지하 주차장은 형광등이 반만 켜져 있었다. 기둥마다 번호. 바닥에 기름 자국. 밀대를 밀어도 줄이 안 생겼다. 나는 거기서 여섯 시까지 닦았다. 로비 대리석 소리가 그리웠다. 사람 발소리가 울리던 소리. 거기서는 누가 쓰러지면 들렸을 텐데. 볼륨만 안 올렸으면.
여섯 시 반, 칠 층에 올라갔다. 영애 씨가 숙희 씨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누운 채로. 침대 머리맡에 대야를 받치고, 물 온도를 손목으로 재 가며. 나는 수건을 들고 옆에 섰다. 청소원 손이라 수건 짜는 건 잘한다. 영애 씨가 내 손을 보고 말했다.
“물기를 너무 짜면 머리카락이 끊겨요. 반만.”
반만 짰다. 영애 씨가 그 수건으로 숙희 씨 머리를 감쌌다.
“빈소 어땠어요.”
나는 말했다. 상주가 봉투를 돌려준 것. 마 실장이 나간 것. 창 큰 방에서 닷새.
영애 씨는 숙희 씨 머리를 수건으로 톡톡 두드리며 들었다.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순덕 할머니 전원 가던 날, 제가 짐 쌌어요. 속옷, 보습 크림, 손수건. 크림은 순덕 할머니가 좋아하던 거. 새봄 가면 그거 발라 줄 사람 없을 거 알면서 쌌어요.”
영애 씨의 손이 멈췄다.
“알면서 쌌어요. 그게 제 일이니까. 짐 싸고, 이송 침대에 옮기고,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 손 흔들고.”
숙희 씨가 눈을 떴다. 수건 아래에서. 영애 씨를 봤다가 나를 봤다. 나는 협탁에서 오늘 자 신문을 꺼냈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일 면부터 읽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안 떨렸다. 숙희 씨가 천장을 보지 않고 내 쪽을 계속 봤다.
신문을 다 읽고 일어서는데 영애 씨가 말했다.
“준호 학생한테 전해 줘요. 두 번째 두유 얘기는 병철 씨가 깨어나면 직접 하라고. 제가 하면 안 되는 얘기라서.”
“깨어나실까요?”
“깨어나야죠. 숙희 씨 신문 읽어 줄 사람이 청소 아줌마 하나면 너무 모자라잖아요.”
영애 씨가 처음으로 웃었다. 사투리가 섞인 웃음이었다. 나도 웃었다. 이십이 년 동안 병원에서 웃어 본 기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