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07자) · 끝자리
아는 것들
세 정거장 차이 · 도경
나흘째 아침에도 가운데 자리는 비어 있었다. 신문은 없었다.
이 시간 첫차는 사람이 적다. 한 칸에 열 명이 안 된다. 적으면 빈자리가 보인다. 빈자리가 보이면 누가 없는지도 보인다. 낮 지하철에서는 이런 게 안 보인다. 사람이 많으면 없는 사람이 안 보인다.
나는 청소 일지 뒷장을 꺼냈다. 우리는 층마다 일지를 쓴다. 몇 시에 시작했고, 몇 시에 끝났고, 특이 사항이 뭔지. 뒷장에 적었다.
내가 아는 것.
남자. 예순 안팎. 다섯 시 사십 분 첫차, 3-4호차, 가운데 자리. 세 정거장 가서 내린다. 회색 가방, 손잡이가 닳았다. 가방을 무릎에 놓는다. 겨울에도 목도리를 안 한다. 검은 구두, 뒤축이 닳았는데 안쪽이 더 닳았다. 자지 않는다. 창밖을 본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시계를 본다. 내릴 때 왼쪽 무릎을 한 번 짚는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두 개 들고 탄다. 매달 첫째 주에 종이를 두고 내린다.
열두 줄이었다. 이름은 없다.
이름은 이제 안다. 윤병철. 탄원서 끝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이름을 열세 번째 줄에 적지 않았다. 이 목록은 이십이 년 동안 내가 본 것만 적는 목록이었다. 이름은 내가 본 게 아니라 읽은 것이다.
우산을 두 개 들고 타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여덟 해쯤 전부터 그랬다. 그때쯤부터 구두 뒤축이 안쪽으로 닳기 시작했다. 안쪽이 닳는 건 다리에 힘이 한쪽으로 실린다는 뜻이다. 나는 청소 일을 하면서 남의 신발을 많이 본다. 로비에서 위를 안 보고 아래를 보고 다니니까. 이십이 년 동안 본 신발이 몇만 켤레는 될 것이다.
“뭐 쓰세요?”
편의점 조끼. 옆자리 젊은 사람이 안 자고 있었다. 이름표에 준호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년 동안 그 이름표를 한 번도 안 봤다.
“그분 얘기요. 가운데 자리.”
준호가 종이를 받았다. 읽는 데 이 분쯤 걸렸다.
“이거 무섭네요. 이십이 년 동안 보신 거잖아요. 근데 이름이 없어요.”
“이름은 알아요. 윤병철.”
준호가 나를 봤다. 나는 가방에서 탄원서 한 장을 꺼냈다. 준호가 그걸 읽는 동안 건너편에서 학원 선생이 왔다. 넥타이 풀린 회사원도 고개를 들었다. 이십이 년 동안 이 칸에서 자리를 떠서 남의 자리로 온 사람은 없었다.
학원 선생이 탄원서를 읽었다. 서민정이라고 자기 이름을 먼저 말했다. 새벽 수학 학원 강사. 첫 수업 전에 교재를 채점한다고.
“이거 그분이 매달 두고 가신 거예요? 그 선반에?”
“네. 열한 장.”
“열한 장을 그냥 두셨어요?”
그 말에 비난은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유실물인 줄 알았어요. 아니, 알았어요. 알았는데 안 펴 봤어요.”
넥타이 회사원이 종이를 가져갔다. 한동진. 노무사 사무소 직원이라고 했다. 밤새 산재 서류를 쓰고 첫차로 집에 간다고. 그는 탄원서를 두 번 읽고 말했다.
“강제 전원이면 원래 안 돼요. 환자나 보호자 동의 없이 병원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못 옮겨요. 의료법이에요. 근데 병동을 닫아 버리면 얘기가 달라요. 병상이 없어지니까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죠. 동의서는 결국 쓰게 돼요. 안 쓰면 갈 데가 없으니까.”
“돈 받고 옮긴다는 건요.”
“그게 브로커예요. 요양병원이 환자 한 명 데려오면 소개비를 줘요. 불법이에요. 환자 유인 알선. 근데 잡기 어려워요. 다들 입을 안 여니까.”
끝자리 아주머니는 오늘도 창밖을 봤다. 유리에 아주머니 얼굴이 비쳤다. 보자기를 무릎에 올리고. 우리 넷이 한 자리에 모여 떠드는 동안 한 번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 동진 씨가 브로커라는 말을 할 때, 보자기를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준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두유 두 개를 꺼냈다. 편의점 폐기 직전 거라고 했다. 유통기한 오늘까지.
“이 년 동안 자기만 해서 죄송해서요. 오늘부터 안 잘게요. 대신 이거 드세요.”
“폐기를요?”
“오늘까지는 폐기 아니에요. 법적으로.”
민정 선생이 웃었다. 이 칸에서 누가 소리 내어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동진 씨가 두유를 받아 들고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노무사 사무소 직원다웠다. 「오늘 날짜 맞네요.」 준호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이거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준호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몰라요. 나흘째니까요.”
세 정거장. 나는 내렸다. 내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 사람이 매일 하던 것이다. 가운데 자리가 보였다. 비어 있었다. 끝자리 아주머니도 내렸다. 나보다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3번 출구 쪽으로.
일곱 시, 로비 바닥을 밀고 있는데 무전기가 울렸다. 소장님. 대기실로.
한빛클린 서하대병원 현장 소장 구필호. 쉰여덟. 대기실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손에 종이컵 커피. 내가 들어가자 커피를 내려놓지 않고 말했다.
“조 여사님, 어제 원무과 분실물 앞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가방을 가져가겠다는 분이 계셔서, 가족 오시라고 했어요.”
“그분이 누군지 알아요?”
“새봄요양병원 마 실장이요. 명함 받았어요.”
“그 양반이 어제 행정실에 얘기했대요. 청소원이 협조를 안 한다고. 행정실에서 나한테 전화 왔어요. 행정부원장님 라인이에요.”
구 소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믹스커피 냄새가 대기실에 퍼졌다.
“조 여사님. 우리 계약이 십이월 말이에요. 병원이 한빛클린이랑 재계약할지 말지 이번 달에 정해요. 재계약하면 우리 스물두 명 그대로 가요. 안 하면 스물두 명 다 나가요. 조 여사님 때문에 행정실이 우리를 삐딱하게 보면 스물두 명이 다 곤란해요.”
“가방 하나 때문에요?”
“가방 하나 때문에요. 병원 일에 끼지 마세요. 청소원은 닦는 사람이지 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그걸 보고 나를 봤다. 나는 허리를 굽혀 종이컵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십이 년 동안 그렇게 했다. 떨어진 걸 줍는 사람. 떨어뜨린 사람한테 뭐라고 하지 않는 사람.
“소장님.”
“네.”
“나흘 전 오후 네 시 이십 분에 로비에서 사람이 쓰러졌대요. 그때 누가 로비 담당이었어요.”
구 소장이 나를 봤다. 한참.
“조 여사님이었죠. 그날 여섯 시까지.”
“저는 못 봤어요.”
“그러니까요. 못 본 거예요. 그렇게 쭉 가세요. 이십이 년 그렇게 잘 오셨잖아요.”
오후 두 시, 휴게 시간. 대기실 사물함을 열었다. 탄원서 열한 장 위에 쪽지 한 장이 끼어 있었다. 내가 넣은 게 아니었다. 사물함 문틈으로 밀어 넣은 것. 볼펜 글씨. 둥글고 작은.
칠 층 칠십이 호. 저녁 일곱 시 면회. 보호자가 못 오시니 제가 있습니다. 끝자리.
나는 쪽지를 오래 봤다. 종이는 간호 기록지를 찢은 것이었다. 뒷면에 체온 칸이 비쳐 보였다. 끝자리. 이름 대신 자리를 쓴 사람. 우리 칸에서는 그게 이름이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기 전에 무릎이 먼저 아팠다. 열두 시간 일한 무릎. 동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는 왼쪽 무릎을 한 번 짚었다. 그 사람이 내릴 때 하던 것처럼. 짚고 나서 알았다. 이십이 년 동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따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동관 칠 층 장기요양병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냄새가 먼저 왔다. 소독약과 가래와 미음. 본관 로비 냄새와 달랐다. 로비는 사람이 지나가는 냄새고, 여기는 사람이 머무는 냄새였다. 복도 벽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장기요양병동 운영 종료 안내. 십이월 삼십일일 자. 환자분들은 협력 의료기관으로 순차 전원 예정.
칠십이 호는 복도 끝이었다. 사인실. 문 옆에 손 소독제가 반쯤 비어 있었다. 침대 넷 가운데 창가 쪽 침대에 여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쉰여덟쯤. 눈은 뜨고 있었다. 천장을 봤다. 코에 가는 관이 들어가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이름표. 정숙희.
그 옆 보호자 의자에 끝자리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간병인 조끼. 보자기를 무릎에 놓고. 나를 보고 일어섰다.
“박영애예요. 간병인. 이 병동 팔 년 차. 숙희 씨 팔 년 봤어요.”
“조순례예요. 본관 청소. 이십이 년.”
“알아요. 첫차에서 이 년 봤잖아요. 서로 모르는 척하고.”
영애 씨가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었다. 신문이 쌓여 있었다. 날짜별로. 맨 위가 닷새 전 자.
“병철 씨가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와서 이걸 읽어 줬어요. 숙희 씨한테. 한 시간. 제 교대 전에. 기차에서는 창밖만 보다가 여기 와서 읽는 거예요. 목 아낀다고. 팔 년 동안요.”
“그래서 신문을.”
“그 신문 제가 놨어요. 가운데 자리에. 어제랑 그제. 병철 씨 대신 누가 읽어 주나 해서 사다가, 여기 오기 전에 그 자리에 놨어요. 그 자리 비어 있는 게 싫어서.”
“동그라미는요.”
영애 씨가 창가 쪽 빈 침대를 봤다. 칠십일 호와 붙은 쪽. 매트리스만 남은 침대.
“저 자리가 순덕 할머니 자리였어요. 김순덕. 삼 주 전에 새봄요양병원으로 전원 갔어요. 마 실장이 가족한테 동의서 받아서. 거기 가서 닷새 만에 돌아가셨어요. 욕창이 터져서. 여기서는 팔 년 동안 한 번도 안 터졌던 욕창이.”
영애 씨는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 수건 세 장과 보습 크림, 가제 손수건. 영애 씨가 정숙희 씨 손을 들어 크림을 발랐다. 손등이 얇아서 핏줄이 다 보였다. 손가락 사이사이. 천천히.
“병철 씨가 쓰러진 날, 로비 행정실 앞에서 마 실장이랑 싸웠대요. 마 실장이 그랬대요. 순덕 할머니는 원래 오래 못 사실 분이었다고. 병철 씨가 그 말 듣고 가슴을 잡고 앉았대요. 로비 대리석 바닥에.”
나는 그 대리석 바닥을 안다. 매일 밀대로 민다. 그날 네 시 이십 분에도 밀었을 것이다. 반대쪽 창가에서, 볼륨을 한 칸 올리고.
“숙희 씨는 몰라요. 병철 씨가 안 오는 거. 아니, 알 거예요. 새벽 여섯 시에 신문 소리가 안 나니까. 요 며칠 눈을 더 오래 떠요.”
영애 씨가 신문 한 부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오늘 자.
“읽어 줄래요? 저는 사투리가 심해서 숙희 씨가 싫어해요. 병철 씨는 버스 안내 방송처럼 읽었대요. 또박또박.”
나는 신문을 받아 들었다. 보호자 의자에 앉았다. 이십이 년 동안 병원에서 앉아 본 적 없는 의자였다. 일 면 머리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두 문장째에 안 떨렸다. 정숙희 씨가 천장에서 눈을 돌려 내 쪽을 봤다.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