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18자) · 분실물
다섯 시 사십 분
이십이 년 같은 첫차를 탄 남자 · 도경
첫차는 다섯 시 사십 분에 온다. 정확히는 다섯 시 삼십구 분 오십 초쯤에 소리가 먼저 온다. 터널에서 바람이 밀려 나오는 소리. 쇠 냄새가 섞인. 십일월 새벽의 바람은 승강장 바닥을 기어서 발목부터 식힌다. 이십이 년 동안 그 바람을 맞았다. 3-4호차 앞에 서면 문이 정확히 내 앞에서 열린다. 이것도 이십이 년 걸려 알아낸 것이다.
이 칸에는 매일 같은 사람들이 탄다. 여섯 명이다. 문 옆 첫 자리에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젊은 사람. 야간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 늘 잔다. 고개가 꺾여 창에 닿는다. 그 옆이 나. 건너편 세 번째 자리에 학원 선생. 늘 종이를 본다.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다. 그 옆에 넥타이 풀린 회사원. 밤을 새운 얼굴로 집에 간다. 문 반대쪽 끝자리에 이름 모르는 아주머니. 나보다 몇 살 아래. 무릎에 보자기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 문에서 세 번째.
가운데 자리에 앉는 분은 남자다. 예순쯤. 늘 회색 점퍼. 손잡이가 닳은 회색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옆자리에 안 놓는다. 세 정거장 뒤, 내가 내리는 역에서 같이 내린다. 이십이 년 동안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앞의 십사 년은 회색 버스 기사 점퍼였고, 뒤의 팔 년은 그냥 회색 점퍼였다. 명절에도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열차가 이십 분 늦은 날에도 있었다.
사흘 전부터 없다.
첫날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둘째 날에 그 자리를 봤다. 우리 칸에서는 빈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 누가 정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오늘이 사흘째다. 문이 열렸다. 탔다. 가운데 자리에 신문이 한 부 놓여 있었다. 접혀서. 오늘 자였다. 첫차가 다섯 시 사십 분에 여기 오는데 신문이 오늘 자라는 것은, 누군가 오늘 새벽 이 칸에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신문을 집었다. 종이가 아직 차가웠다. 손이 조금 떨렸다. 이십이 년 동안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다. 인사도 안 했다. 그런데 저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 가방 지퍼를 반만 잠근다. 내릴 때 왼쪽 무릎을 한 번 짚는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손목시계를 본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매달 첫째 주에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좌석 옆 선반에 두고 내렸다. 네 번 접은 종이.
나는 그것을 챙겼다. 열한 장. 유실물이라고 생각했다. 역무실에 갖다 줄까 하다가 안 갖다 줬다. 청소원 대기실 내 사물함에 넣어 두었다. 펴 보지 않았다. 펴 보면 그 사람 일이 내 일이 될 것 같아서.
신문을 펼쳤다. 삼 면 아래쪽에 볼펜 동그라미가 있었다. 기사가 아니라 부고였다. 김순덕, 일흔둘. 발인 모레. 빈소 새봄요양병원 장례식장.
건너편에서 학원 선생이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이십이 년 만에 처음은 아니었다. 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저 사람이 이 칸에 탄 지 사 년이니까. 선생이 먼저 눈을 내렸다.
끝자리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쥔 손에 힘을 주는 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신문을 보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두웠다.
세 정거장. 서하대학교병원역. 나는 내렸다. 이십이 년 동안 이 역에서 내렸다. 서하대병원 본관 로비 청소. 한빛클린 소속.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가 원래 시간이다. 요즘은 한 사람이 그만둬서 여섯 시까지 한다. 무릎이 먼저 간다.
승강장에 내렸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저기요.”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젊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안 내린다. 이 년 동안 한 번도. 두 정거장 더 간다.
“그거. 동그라미. 저도 봤어요. 어제 새벽에도 그 자리에 신문 있었어요. 어제 자로. 동그라미는 없었고요.”
“누가 두고 갔는지 봤어요?”
“아니요. 저 탈 때 이미 있었어요. 근데 그분 아니에요. 그분은 신문 안 보세요. 창밖만 보세요.”
학원 선생도 따라 내렸다. 종이 뭉치를 가슴에 안고.
“저도 하나 알아요. 그분 두 번째 정거장에서 손목시계 보고 나서 종이를 접으세요. 매일. 같은 크기로. 두 번 접어요.”
우리 셋은 승강장에 서 있었다. 열차가 떠났다. 사 년, 이십이 년, 이 년. 같은 칸에서 서로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셋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한참 어색했다.
“그분 어디 가셨을까요?”
젊은 사람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것이 없었다. 그때는.
가운데 자리 사람도 이 역에서 내렸다. 이십이 년 동안. 그런데 병원 안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 나는 1번 출구로 나가 직원 통로로 들어가고, 그는 3번 출구로 나갔다. 3번 출구는 동관으로 이어진다. 동관은 내 구역이 아니다.
본관 로비는 새벽에 제일 조용하다. 대리석 바닥에 형광등이 비친다. 밀대를 밀면 바닥이 한 줄씩 어두워졌다가 마르면서 다시 밝아진다. 그 줄을 이십이 년 그었다. 로비 의자는 스물넷. 청소원은 로비 의자에 앉지 않는다. 서서 기다린다.
일곱 시 반, 원무과 앞 분실물 보관함을 닦다가 멈췄다. 유리문 안쪽 두 번째 칸에 회색 가방이 있었다. 손잡이가 닳은. 지퍼가 반만 잠긴.
분실물 대장을 넘겼다. 나흘 전. 오후 네 시 이십 분. 본관 로비 행정실 앞. 회색 가방 하나. 습득자 보안팀. 비고란에 한 줄. 소유자 로비에서 쓰러져 응급실 이송.
나는 밀대를 벽에 기대 세웠다. 밀대 걸레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손이 차가웠다. 나흘 전 오후 네 시 이십 분이면 나도 로비에 있었다. 여섯 시까지 하니까. 네 시 이십 분에 나는 어디를 닦고 있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누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기억도 없다. 로비는 소리가 크다. 대리석이라. 사람이 쓰러지면 들렸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어폰을 끼고 있었나. 남편 떠나고 나서 일할 때 라디오를 듣는 버릇이 생겼다.
“그 가방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남자 하나가 분실물 보관함 앞에 서 있었다. 오십 대. 갈색 가죽 점퍼, 금목걸이. 손에 명함 지갑. 향수 냄새가 로비 소독약 냄새를 이겼다.
“윤병철 씨 보호자 대신 왔어요. 새봄요양병원 협력 담당 마 실장입니다.”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새봄요양병원 대외협력실장. 전원 상담.
“분실물은 본인이나 가족이 신분증 들고 원무과에 오셔야 돼요.”
“가족이 경황이 없어서요. 제가 대신. 급한 서류가 그 안에 있어요.”
그는 보관함 유리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었다. 열쇠는 원무과에 있다. 그리고 청소원 열쇠 꾸러미에도 있다. 보관함 안을 닦아야 하니까. 유리에 찍힌 손자국은 매일 새로 생긴다. 잃어버린 걸 찾으러 온 사람들 손자국. 내 앞치마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마 실장이 그 소리를 들었다.
“아주머니, 그 열쇠로 좀 열어 주세요. 제가 원무과에는 말씀드릴게요.”
“안 돼요.”
“왜요.”
“규정이요.”
마 실장이 웃었다. 이가 누렜다. 금니가 두 개.
“아주머니 한빛클린이죠. 구 소장님 제가 잘 알아요. 아주머니 재계약이 언제더라.”
나는 앞치마 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열쇠 소리가 멎었다.
“가족분 오시라고 하세요. 신분증 들고.”
마 실장은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찍었다. 분실물 보관함을. 그 앞의 나를. 명찰까지. 조순례.
“조순례 씨. 기억해 둘게요.”
그는 로비를 가로질러 나갔다. 내가 방금 닦은 줄을 밟고. 구두 자국이 줄 위에 찍혔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에 울렸다. 이렇게 소리가 크게 나는 곳에서 나흘 전 사람이 쓰러졌는데 나는 못 들었다.
열두 시, 점심을 거르고 동관으로 갔다. 내 구역이 아닌 곳에 청소원 조끼를 입고 들어가는 것은 이십이 년 만이었다. 중환자실은 동관 삼 층. 면회 창구 간호사가 컴퓨터를 봤다.
“윤병철 님이요? 가족분이세요?”
“아니요.”
“그럼 상태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살아 계세요?”
간호사가 나를 한참 봤다. 청소원 조끼를.
“가족분만.”
돌아서는데 동관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칠 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간병인 조끼를 입은 여자 하나가 식판 수레를 밀고 나왔다. 무릎에 보자기를 올려놓던 사람. 첫차 끝자리 아주머니. 그녀가 나를 봤다. 청소원 조끼를 봤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칸에서 내려서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십이 년 동안.
아주머니가 먼저 눈을 돌렸다. 수레를 밀고 복도 끝으로 갔다. 수레 바퀴 하나가 삐걱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두 시, 휴게 시간에 나는 대기실 사물함을 열었다. 열한 장. 네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폈다. 손글씨였다. 반듯하고 굵었다.
서하대학교병원 동관 칠 층 장기요양병동 폐쇄 및 강제 전원 반대 탄원서. 환자 가족 일동. 우리 가족을 돈 받고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명해 주십시오. 칠 층 칠십이 호 정숙희 보호자 윤병철.
그 아래 빈칸이 서른 개. 서명은 없었다. 그가 매달 첫째 주에 두고 간 것은 유실물이 아니었다. 같은 칸 사람들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이십이 년 동안 말 한마디 안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제일 큰 말이었다. 나는 그것을 열한 번 받아서 열한 번 사물함에 넣었다.
그리고 기억이 하나 올라왔다. 나흘 전 오후. 로비 행정실 앞이 시끄러웠던 것. 남자 둘이 언성을 높였던 것. 나는 그쪽을 한 번 봤다. 갈색 가죽 점퍼와 회색 점퍼. 로비에서 보호자들이 언성을 높이는 건 흔한 일이다. 나는 밀대를 돌려 반대쪽 창가로 갔다. 이어폰 볼륨을 한 칸 올렸다. 그게 이십이 년 동안 로비에서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안 보고, 안 듣고, 닦는 것.
그 회색 점퍼가 그 사람이었는지 나는 그때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볼륨을 올린 손은 내 손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무릎에 펴 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청소원 대기실 플라스틱 의자는 차가웠다. 벽 너머로 동관 엘리베이터 도는 소리가 났다. 칠 층까지 올라가는 소리.
퇴근길 첫차 반대 방향 열차는 사람이 많았다. 가운데 자리 같은 건 없었다. 서서 갔다. 지갑 속 남편 사망진단서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네 조각으로 갈라진 종이. 십사 년 동안 접었다 폈다 해서. 집에 와서 탄원서 열한 장을 식탁에 펴 놓았다. 서명 칸 서른 개가 열한 번. 삼백삼십 개의 빈칸. 나는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내 이름을 쓸 칸이 아니었다. 나는 가족이 아니니까. 그래도 볼펜을 치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