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54자) · 하람 · 1월 21일

병존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재심의는 1월 21일 오후 두 시, 본사 지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창이 없는 방이었다. 천장 형광등 스무 개가 한꺼번에 켜져 있어서 탁자 위 서류 모서리마다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다. 공조기가 돌았는데 관제실 것보다 소리가 가늘고 높았다. 하람은 그 소리가 낯설어서 들어오자마자 귀가 먼저 긴장했다. 야간조라 오후 두 시에 깨어 있는 것부터가 몸에 안 맞았다. 눈꺼풀 안쪽이 모래를 문지른 것처럼 까끌거렸다.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김 차장이 양복을 입고 벽 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칠 년을 같이 일하면서 양복 입은 걸 처음 봤다. 소매가 손등을 반쯤 덮었고 어깨선이 한 뼘쯤 흘러내려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양복이 좀 크시네요.”

“아들 거야. 내 건 장례식장 갈 때 입던 건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김 차장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가, 걷은 게 더 이상해 보이자 도로 내렸다. 뒤에 앉은 세아가 점검 기록지 뭉치를 무릎에 올린 채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세아는 점검 용역사 대표로 측정 자료를 내러 왔다. 안전모 대신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초시계 앱이 켜진 휴대폰을 기록지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소원은 두 시 오 분 전에 들어왔다. 목에 방문증을 걸고 있었다. 사원증이 아니었다. 하람이 그걸 봤고, 소원은 봤다는 걸 알고 방문증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소원은 하람 옆자리에 앉았다. 오른쪽이었다.

도경환은 두 시 정각에 들어왔다. 채민호가 문을 잡았다. 도경환은 당시 신호설비처장 자격의 관계인으로 불려 왔는데, 들어오면서 위원들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하람에게는 숙이지 않았다. 사장 공모 최종 발표가 다음 주였다. 그의 넥타이핀이 형광등 아래에서 하얗게 빛났다.

위원은 다섯이었다. 서울시가 추천한 외부 위원 셋, 공사 안전처 둘. 가운데 앉은 위원장이 안경을 올리며 안건을 읽었다.

*

음성은 세 번째 순서였다.

기술 직원이 노트북에 케이블을 꽂았다. 천장 스피커에서 잡음이 먼저 났다. 칠 년 된 파일이라고 했다. 모니터에 날짜가 떴다. 2019년 11월 5일 00시 51분 12초.

하람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옆에서 소원의 손이 탁자 아래로 내려와 하람의 손등 가까이에 머물렀다. 닿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만 났다. 승강장 소리였다.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레일을 타고 먼저 왔다. 소리가 먼저 오고 열차가 나중에 오는, 하람이 칠 년 동안 매일 들은 순서였다.

그다음에 목소리가 났다. 여자 목소리였다. 숨이 차 있었다.

“여보세요? 여기 가람역 11-4인데요. 문이 제멋대로예요. 늦게 열리고, 어떤 때는 안 닫혀요. 사람들이 계속 부딪쳐요.”

잡음이 한 번 끼었다.

“지금도 한 명 넘어졌어요. 여기 좀 봐 주세요. 진짜로요.”

상담원이 접수번호를 불러 주는 소리가 끝에 있었다. 통화는 십사 초였다. 스피커가 꺼졌다.

회의실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공조기의 가늘고 높은 소리만 남았다. 하람은 그 목소리가 언니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첫마디에 알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들었다. 진짜로요, 하는 마지막 말에서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 하나가 저절로 굽었다. 소원의 손이 그제야 하람의 손등에 닿았다. 탁자 아래였다. 위원들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외부 위원 하나가 물었다.

“이 통화가 사고 당일 것입니까?”

“사고 열이틀 전입니다.”

“접수 뒤에 조치가 있었습니까?”

기술 직원이 화면을 넘겼다.

“조치 칸이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다는 건 안 했다는 겁니까, 안 적었다는 겁니까?”

기술 직원이 대답을 못 했다. 소원이 손을 들었다. 하람의 손등에서 소원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 확인되는 건 하나입니다. 열이틀 뒤에 같은 문 앞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지금도 0.8초 늦게 열립니다.”

세아가 기록지를 들고 일어섰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는데, 숫자를 읽기 시작하자 떨림이 멎었다.

“작년 11월 13일 점검, 가람 내선 11-4, 열 번 중 열 번, 열림 쪽만 0.8초입니다. 쉰여덟 역 가운데 서른한 역에서 편차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관제실에서 관제사분들이 직접 잰 게 오천열한 건 있습니다. 그중에 11-4는 칠 년 전 초안 원인 칸하고 같은 얘기를 합니다.”

위원장이 십 분 쉬었다 가자고 했다.

*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도경환이 하람을 불러 세웠다.

지하 복도는 회의실보다 추웠다. 자판기 불빛이 복도 바닥 대리석에 네모나게 번져 있었고, 냉각기가 웅 소리를 내며 떨었다. 도경환은 동전을 넣었는데 기계가 두 번 뱉어 냈다. 본사 자판기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세 번째 넣기를 그만두고 동전을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정 관제사, 이겨서 뭐가 돌아옵니까?”

목소리가 낮았다. 회의실에서 쓰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비로 바뀌면 그날 준공검사 한 사람들이 다 불려 나옵니다. 벌써 은퇴한 사람, 아픈 사람도 있어요. 윤 본부장님은 돌아가셨고, 그 따님은 아버지를 제 손으로 끌어내고요. 그렇게 해서 정 관제사 언니가 돌아옵니까?”

하람은 자판기 불빛에 반쯤 물든 도경환의 얼굴을 봤다. 칠 년 동안 이 사람 얼굴을 몰랐다. 결재란의 이름만 알았고, 전화 한 통의 목소리는 들은 적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 밑이 거뭇했다. 이 사람도 요즘 잠을 못 자는 것 같았다.

“언니는 안 돌아옵니다.”

“그러면요?”

“이름이 돌아옵니다. 승객 1명 말고, 정하윤이요.”

도경환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하람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두 번 뱉어 냈고, 세 번째에 먹었다. 버튼을 누르자 종이컵이 떨어지고 커피가 쏟아졌다. 하람은 그 잔을 도경환 앞에 놓고 돌아섰다.

“세 번째부터 먹습니다, 본부장님.”

*

김 차장이 손을 들었다.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차장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양복 소매를 한 번 당겼다.

“2019년 11월 17일 야간 당직 부장이 저였습니다. 새벽 한 시 반에 제가 지연 사유를 03, 신호·설비 계통으로 올렸습니다. 세 시 반에 전화가 왔습니다. 07로 바꾸라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바꿨습니다. 삼 초 걸렸습니다.”

“누구 전화였습니까?”

김 차장이 도경환 쪽을 봤다. 오래 보지 않았다. 한 번 보고 위원장에게 눈을 돌렸다.

“당시 신호설비처장, 도경환 처장이었습니다.”

회의실 공기가 한쪽으로 쏠렸다. 채민호가 노트북 위에서 손을 멈췄다. 도경환이 웃었다. 이번에도 웃음이 먼저 나왔다.

“칠 년 전 새벽 전화 한 통을 이제 와서 기억하신다니 놀랍네요. 통화 기록은 없습니다. 그 시절엔 다 유선이었고요.”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음성을 남겼습니다. 코드는 삼 초 만에 바꿨는데, 그건 삼 초 만에 못 지우겠더라고요.”

김 차장이 앉았다. 앉으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바꾼 건 제가 한 일입니다. 그건 제 이름으로 적어 주십시오.”

도경환이 위원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위원장님,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재심의를 신청한 유족은 그날 밤 관제 근무자입니다. 지난주 징계위원회에서 본인 입으로 관제 소홀을 인정했습니다. 사용 중지를 걸 수 있었는데 안 걸었다고요. 원인이 설비로 바뀌면 누구 책임이 가벼워지는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위원들의 눈이 하람에게 왔다. 다섯 쌍이었다. 하람은 그 눈들을 하나씩 마주 봤다. 목 뒤에 땀이 배었다. 칠 년 동안 이 자리에 앉는 꿈을 여러 번 꿨는데, 꿈에서는 늘 말이 안 나왔다.

“맞습니다. 저는 그날 삼십 분 동안 다른 역을 봤습니다. 그 삼십 분도 여기 올려 주십시오. 제 근무 기록 전부요. 빼 달라고 신청한 적 없습니다.”

하람이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손이 떨렸지만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제 삼십 분이 가벼워지자고 원인을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그 문은 열이틀 전에도 늦게 열렸고, 지금도 늦게 열립니다. 제가 07을 사천삼백열아홉 번 누르는 동안에도 늦게 열렸습니다. 원인 칸에 승객이라고 적혀 있으면 아무도 그 문을 안 고칩니다. 칠 년 동안 안 고쳤습니다.”

소원이 가방에서 누런 봉투를 꺼냈다. 가람, 두 글자. 소원이 초안 여덟째 장을 펴서 위원장 앞으로 밀었다. 볼펜 줄 두 개, 뭉친 잉크, 여백의 두 글자.

“참고 자료로 낸 초안 원본입니다. 원인 칸의 설비에 줄을 긋고 승객이라고 고쳐 쓴 글씨는 당시 운영본부장 윤태석의 글씨입니다.”

소원이 숨을 한 번 골랐다.

“제 아버지 글씨입니다.”

위원장이 안경을 벗었다. 도경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데 삼 초쯤 걸렸다.

*

심의가 끝나고 셋이 지하 주차장까지 같이 내려갔다.

주차장은 춥고 넓었다. 기둥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고, 어디선가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가 콘크리트에 울렸다. 결과는 설 앞에 나온다고 했다. 김 차장이 양복 윗도리 단추를 풀면서 먼저 말했다.

“정 관제사. 내가 그날 07로 안 바꿨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을 칠 년 했는데 답이 안 나와. 03을 눌렀어도 그날 고쳤을 리가 없거든. 접수가 한 건 더 쌓였을 뿐이지.”

하람이 걸음을 멈췄다.

“한 건이 쌓이면 그다음이 있잖아. 한 건에서 멈춘 게 내 탓이야.”

소원이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차장님, 한 건이 아니었어요. 제가 시청 과제로 찾은 게 이십 년 치 안전문 비상통화 백열네 건이에요. 백열네 건 다 조치 칸이 비어 있어요. 가람만 열아홉 건이고요.”

김 차장이 종이를 받아 한참 봤다. 주차장 형광등이 그의 흰머리 위에서 윙 하고 떨었다.

“그게 위로가 되는 건가?”

“아니요. 그런데 혼자 하신 게 아니라는 건 맞아요.”

김 차장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아들 양복이라 안주머니가 깊었다. 그는 손을 넣은 채로 잠깐 서 있다가, 하람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아까 네가 그 삼십 분 올려 달라고 할 때 말이야.”

“네.”

“나는 칠 년 동안 그 말을 못 했다.”

김 차장이 먼저 차 쪽으로 걸어갔다. 하람과 소원은 기둥 옆에 남았다. 물방울 소리가 한 번, 한 번 더 났다. 소원이 하람의 손을 찾았다. 이번에는 탁자 아래가 아니었다. 하람은 그 손을 쥐었다. 둘 다 손이 차가웠는데, 쥐고 있으니 가운데부터 따뜻해졌다.

“하람 씨, 아까 떨렸어요?”

“다 보셨잖아요.”

“감추지 않아서 좋았어요.”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차장 출구 쪽 경사로 위로 겨울 오후 빛이 비스듬히 내려와 있었다. 둘은 그 빛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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